옆집을 훔쳐보고 있어요
아저씨가 가고 난 뒤에, 뭔가 알수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너무 좋은것도 아닌, 그렇다고 나쁜 기분도 아니였다. 뭐랄까, 굉장히 말랑말랑한····.
" 나 물좀 주라 "
아, 오세훈이 우리집에 있었다는걸 까맣게 있고 있었다. 나는 안방에서 붕뜬 머리로 어기적 어기적 기어 나오는 세훈이를 보니, 기분이 꽤나 이상했다. 뭐랄까, 오세훈과 결혼한 기분?
" 세훈아 안가? "
" 이제 가야지. 편의점 때문에 "
세훈이는 내가 준 물을 한번에 벌컥벌컥 마시더니, 소매로 슬쩍 입을 닦았다. 그리고는 내 질문에 심드렁 한듯 대답했다.
" 편의점 자주 놀러갈게 "
" 진짜? 약속했다? "
" 응. 진짜 "
편의점에 간 다는 세훈이의 말에서 왠지모를 피곤함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해버렸다. 그러자 세훈이는 그런 말을 한 내가 미안해질정도로 활짝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서 난 얼떨결에 고개까지 세차게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세훈이는 내 대답에 만족스럽다는듯이 웃으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아, 좀만 더 있다가지.
" 세훈아 그럼 나중에 봐 "
" 뭘 나중에 봐. 편의점 자주 온다며 "
" 아 맞다.. 그럼, 곧 봐! "
" 그래, 나 없다고 울지 말고 "
세훈이는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구겨 신었다. 그리고는 내 우렁찬 대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헝클였다. 세훈이는 한번 더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뭐야, 이 섭섭함은.
옆집을 훔쳐보고 있어요
어렸을적부터 그랬다. 항상 외로움에 싸여 자란 것. 그게 어렸을 때부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보다는 여자, 남자 가릴것 없이 동갑친구들에게 더 정을 쏟았고, 그러다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내가 질렸다고 나를 차버리는게 대수였다. 이유는 내가 너무 잘해줘서라나 뭐라나.
나는 항상 외로웠다. 몇번 본적 없는 세훈이가 집에서 가는것을 볼때 아쉬움을 느꼈던 것처럼. 나는 항상, 언제나 외로웠다.
' 띵동 '
" 누구세요 "
백지영의 총맞은것처럼을 들으며 옛 남자친구들을 회상하고 있는데, 급작스럽게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요즘따라 왜이리 초인종 소리가 많이 들리는거야.
" 나 오세훈인데 "
목소리는 진짜 오세훈이였다. 근데, 아까 분명히 가는거 봤는데.
" 왜 다시왔어? "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오세훈에게 걱정스런 말투를 건넸다. 그러자 오세훈이 잠시 뭔가를 고민하나 싶더니, 내 양 볼을 턱 잡고 쭈욱 늘렸다. 덕분에 나는 오세훈에게 양 볼을 잡힌 꼴이 되어 버렸다.
" 야 OOO "
" 으에 "
(왜)
" 아까 내가 한 말, 그냥 흘려 듣지마. 나도 꽤 많이 고민해서 한 말이니까 "
" ..... "
" 그럼 난 간다 "
오세훈은 한껏 가벼워진 표정으로 뒤도 안돌아보고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나는 폭풍이라도 왔다간듯 몇초간 멍 때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휘휘 돌려, 아무도 없는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
벌써 밖이 깜깜했다. 아직 드라마 다 보려면 한참 남았는데. 나는 아쉬움으로 그득했지만 내일 과외가 낮시간이라서 일찍 잠에 들어야했다. 나는 피곤함에 절여진 몸을 이끌고 안방으로 향했다.
내 예상에 맞게 안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건 커다란 커튼이였다. 나는 왠지모르게 커튼이 답답해보여, 커튼을 시원하게 양쪽으로 쳤다. 그러자 보이는건..
" 헐 "
내가 무슨 생각으로 커튼을 친건지 모르겠다. 피곤해서 잠깐 정신을 논거 같다. 나는 커튼을 치자마자 마주친 아저씨의 눈빛에 그만 커튼을 다시 휙 닫아버렸다. 아, 망했어. 이제 다시는 못 훔쳐보겠네.
나는 죄없는 내 머리를 아프지않게 두번 때렸다. 그리고는 어제와 같이 창문에 딱 붙어 누워서, 커튼을 아주 조금 들춰보았다.
그러자 보이는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아저씨는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자세 그대로 서있었다. 내가 아저씨라도, 많이 당황 했을거다.
나는 이렇게 배째라는듯이 있어봤자 내일이면 아저씨가 올게 뻔해, 커튼을 아까보다는 약한 강도로 쳤다. 그러자 아저씨의 벙찐 얼굴이 다시금 보였다. 나는 다시 놀란 아저씨를 보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러자 아저씨가 좀 적응이 된건지, 나를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책상으로가, 종이에 무언갈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종이를 들고 창문으로 가까워왔다. 그리고 아까 무언갈 끄적이던 종이를 창문에 척 붙였다. 나는 종이에 쓰여있는 글씨를 읽기위해 미간을 찌푸리고 온갖 신경을 집중했다.
' 신기해요. 그치? '
저 사람 떨리게 하는 반존대. 저거저거 법으로 금지 시켜야 한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책장 옆에 있는 책상으로 달려가, 아무 종이나 꺼내서 아저씨에게 답장을 썼다.
' 네. 이렇게 가까울줄은 정말 몰랐어요 '
나는 꽤 거짓말을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몇번 꾀병으로 조퇴한적도 있고. 아저씨는 내가 거짓으로 놀란 표정에 쉽사리 속은거 같았다. 나를 향해 이쁘게 웃는것을 보면 말이다.
아저씨는 내 종이를 한번 보더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덕분에 나도 얼떨결에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 댔다. 그리고 아저씨는 또 다시 책상으로 가, 종이에 무언갈 써내려갔다.
' 나 옷갈아입을건데, 커튼 안칠거에요? 우리집은 커튼 없는데 '
아저씨는 종이를 들고 나를 보며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종이에 써 있는 글을 다 읽고,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 커튼을 쳤다. 참나, 아저씨는 나를 뭘로 본거야?
나는 살짝 걷혀져있는 부분까지 커튼을 치고, 침대 끝에 살짝 걸터앉았다. 그러자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냄새 안나던 침대에서 오세훈 냄새가 났다. 그것도 엄청 강하게. 나는 왠지 싫지는 않은 기분에, 침대에 몸을 뉘었다.
***
' 띵동 '
저 놈의 초인종 소리. 이제는 좀 지겹다. 나는 물을 먹다 말고 일어나, 과외 선생님을 맞았다.
" 들어 오세요 "
선생님은 어색한듯 머리를 헝클어댔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한번 쳐다보고, 책상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선생님은 내가 앉고 난뒤, 정확히 2분 후에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나는 어제 사온 교재와 가방에 있던 필통을 꺼내놓았다.
" 교재, 사왔네요? "
" 네 "
" 그럼 수업 시작해요 "
선생님은 교재를 능숙하게 폈다. 나는 눈으로 선생님 손을 쫓았다. 곧이어, 선생님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여길 배울건데..' 선생님은 우리 집에 들어왔을때의 어색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가르쳤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따라 한껏 집중을 했다.
" 이해가 잘 되요? "
" 아, 네. "
선생님은 수업중 간간히 내 눈을 쳐다보며 다정히 물어왔다. 아, 나는 어쩔수 없는 금사빠 인가봐. 나는 선생님이 쳐다볼때마다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느라 애를 먹었다.
***
" 오늘 수고 했어요 "
" 아, 선생님도요 "
" 수업을 너무 잘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그럼, 내일모레 봐요 "
" 네. 조심히 가세요 "
문을 열고 나가는 선생님께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문을 닫자 마자 선생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현관문으로 뛰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현관문 옆 계단에 오세훈이 앉아있었다. 오세훈은 무척 화가난 얼굴로 선생님을 한번,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 너 여기서 뭐하냐? "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오세훈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오세훈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씩씩대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 꼬여도 완전히 꼬였다. 분명 오세훈이 나와 선생님을 오해하는거다. 나는 나와 오세훈을 번갈아보는 선생님께 거듭 사과를 하고 선생님을 보냈다. 선생님은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내내 찝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야, 너 뭐냐? "
오세훈은 선생님이 가자마자 벌떡 일어나,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런 오세훈을 올려다보니 오세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 뭐가 "
" 왜 니네 집에서 남자가 나오냐고 "
오세훈은 화를 꾹꾹 눌러담는 말투였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나왔다. 도대체 나를 뭘로 본거야.
" 수업 했으니까 "
" 뭐? "
" 수업했다고. 저 남자, 과외 선생님이라고 "
내가 오른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을 했다. 그러자 오세훈은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오세훈을 빤히 쳐다보며 '우리 세훈이 질투해쪄여?' 라며 말을 했다.
" 하지마 "
" 우리 세훈이가ㅠㅠㅠㅠ질투를ㅠㅠㅠㅠ "
" 아 하지말라고! "
" ㅋㅋㅋㅋㅋ "
오세훈은 나를 쳐다 보지도 못하고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런 오세훈을 보며 기분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얘 진짜 왜 온거야.
" 야 근데 진짜 왜왔어 "
" 아.. 그게 "
오세훈은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고, 여전히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오세훈을 보며 얘도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생긴건 잘 놀게 생겨가지고..
" 내가 어제 한 고백 말인데 "
" 어? "
내 예상과 달리 오세훈의 입에서는 꽤 당황스러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오세훈을 쳐다 보았다. 그러자 오세훈이 머쓱한듯 노란 머리를 탈탈 털었다.
" 내가 흘려 듣지 말라고 했잖아. 근데 만약 많이 부담스러웠으면 그냥 잊어버려도 된다고 "
" .... "
" 그냥 이 얘기 하러 온거야. 그럼 나 이제 갈게. 잘자 "
" 야 오세훈 "
" 응? "
" 자고 갈래? "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뱉은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서히 빨개지는 오세훈의 얼굴을 보며, 대충 상황 파악이 됬다. 나는 엄청 고민하다 뱉은 고백을 잊어버리라는 오세훈을 보며 꽤 안쓰러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위로를 해준답시고 내뱉은 말인데, 어감이 너무 이상했다. 누가들어도 오해할만한 그런 말이였다.
" 뭐? "
" 어, 아니, 그게, 아니라 "
" ....? "
" 그냥 너무 늦었고 해서. 오, 오해는 하지마! "
" 아.. "
오세훈은 살짝 당황한 내 말에 고개를 가벼히 끄덕였다. 나는 혹시나 오세훈이 오해는 하지 않았을까 싶어, 오세훈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어, 근데 저 상처..
" 야 너 다쳤어? "
" 어? "
오세훈은 내 뜬금없는 말에 살짝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는 바람빠진 웃음을 지으며 ' 넘어졌어 ' 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댔다. 누가 봐도 넘어진 상처는 아니였다. 머리로 가리고 있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꽤 큰 상처였다. 나는 오세훈에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에 그냥 눈감아 주었다. 다음에 또 발견했을땐, 그땐 물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 나 그럼 오늘만 자고 가도 돼? 집에 아무도 없어서 "
" 왜 아무도 안계셔? 아빠는? 엄마는? "
" 두분 다 새벽에 들어오셔. 그리고 다시 낮에 나가시니까.. "
오세훈의 말에 알수없는 동정심이 피어올랐다. 왠지, 내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을 가지고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오세훈을 추측했다.
" 그럼 들어와 "
나는 오세훈을 쳐다보다가 현관문으로 몸을 돌려, 번호키를 꾹꾹 눌렀다. 그러자 ' 띠리링 '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오세훈에게 고개를 틀어, 들어오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오세훈이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집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여주가 세훈이에게 집에서 자고가라고 내 뱉은 말을 대충 해석해드리자면
처음에 세훈이가 고백을 잊어버리라고 하잖아요? 그때 세훈이를 향해 약간의 동정심이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세훈이가 부모님이 늦게 들어온다고 하자, 여주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세훈이를 향해 아까보다는 훨씬 더 강함 동정심을 느낍니다.
그래서 문도 벌컥 열어준거구요.
하지만 저라면.. 이미 세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을 열어줬을거에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암호닉
뭉이님
세훈님
로운님
감자튀김님
벚꽃만두님
쮸쀼쮸쀼님
윤아얌님
춰쿼롸뛔님
뽀조개님
롱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