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찬디/찬백] 장미에 가시가 있는 이유
written by. 돼지저금통
13. 너를 향한 내 맘 Love Love Love
10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그 종이 치기만을 기다린 아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싸놓은 가방을 챙기고 왁자지껄하게 교실을 빠져 나간다. 주번인 찬열은 마지막까지 남아 창문을 모두 잠그고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기 위해 자물쇠를 꺼내 들었다. 그 전에 불을 껐다. 깜깜한 교실에 혼자 서있으려니 이상하게 마음이 허했다. 생각을 안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 지금쯤 종인의 에스코트 아래 집에 안전하게 도착했을 경수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늘 핸드폰을 붙잡고 연락을 했었는데 그 연락이 없는것도 그렇고. 야자 하기 전엔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야자를 마친 뒤에는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주는 경수가 없으니 어딘가 텅 빈 느낌이 든다.
결국엔 다 소용이 없는데. 찬열은 입술을 씹어 물고는 천천히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집으로 걸어 가는 발걸음이 전 만큼 신이 나지는 않는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쉬고 싶은 마음 뿐이다. 출출한데 슈퍼에서 초코우유나 사들고 집에 갈까,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찬열의 팔을 붙든다.
“…어?”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 본 곳에는, 백현이 있었다.
“형.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상냥하고 다정해서, 찬열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괜찮지 않기 때문에.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백현은 저가 먼저 팔을 잡아 끌고 공원에 왔으면서 아까부터 한마디 말이 없었다. 뭔가를 말할락 말락, 망설이는 것 같기는 한데 쉽사리 꺼내지는 못했다. 그저 기가 죽은 눈으로 찬열의 눈치를 힐끔힐끔 봤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하고 말해주려다가 그 모습이 좀 웃기고 귀여워서 찬열은 그냥 모른 척 했다.
“너 왜 연락 두절했어. 어?”
“아… 그냥, 연락 하면 안될 것 같아서요….”
“좀 서운했다, 나.”
그건 진심이었다. 경수와 다시 만나고 그 얘길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신경이 쓰여서 몇번 전화번호를 누르려다가 참았으니까. 카톡과 문자를 모조리 씹어 먹었던 것을 생각하니 좀 괘씸하기도 했다. 어디 감히 하늘같은 선배의 연락을 씹어 씹기를.
백현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릿 속이 복잡해보였다. 괜히 말했나, 머쓱해진 찬열이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저… 형.”
“엉.”
“미안해요.”
말을 꺼내는 백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애써 담담한 척 하지만, 역시나 감정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목소리.
“네가 뭐가 미안하냐.”
“……형, 속인거요. 도경수랑 헤어지게 한 것도.”
“그게 왜 네 잘못이야?”
“제가 다 계획했잖아요. 다 들었으면서.”
미안해 하는 입장이면서 제법 투덜대기까지 한다. 뭐 이런 맹랑한 애가 다 있지. 불퉁거리는 그 입과 잔뜩 찡그린 눈썹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항상 백현은 자신을 유쾌하게 해줬었다. 죽도 잘 맞았고. 그것이 경수와 반대되는 면이었고, 어쩌면 그래서 찬열이 넘어가 이런 일이 벌어 졌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찬열이 부처도 아니고, 백현을 원망한 적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아주 잠깐동안 백현을 만나서 이렇게 된 건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찬열은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워냈다. 그래도 그 때 백현을 구해주고, 백현의 이름을 묻고, 백현에게 전화번호를 주고, 백현을 만났던 사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후회 하고 싶지 않다. 경수와 사귀었던 기억이 예쁘게 남아 있는 만큼 자신을 많이 좋아해준 이 소년과의 기억도 예쁘게 남기고 싶다.
“그래도… 형. 다 진심이었어요.”
찬열이 백현과 있었던 일을 천천히 곱씹고 있는데, 백현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좋아 한다고 했던 거요.”
“…….”
“다 진심이었어요.”
“…….”
“형이 좋아서, 정말 형이 좋아서 그런 짓 한거에요.”
이해해달라고, 용서 해달라고는 안해요.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까. 힘 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시선은 바닥으로 둔 채, 백현이 뒷말을 내뱉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좀 우스워서 찬열은 그냥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형 위해서 도경수한테 말한거구요. 정말, 진심이어서…”
“알아.”
쳐진 어깨가 안쓰러웠다. 쳐진 눈꼬리가 안쓰러웠다. 그 날, 골목길에서 새끼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울던 백현의 모습이 그 모습 위로 겹쳤다. 이렇게 작은 애가, 나쁜 마음을 먹고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 안한다. 정말로 진심이었다는 걸, 백현이 정말 자신을 좋아했다는 걸 찬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경수와는 비록 헤어졌지만 백현을 미워 할 수가 없다. 미워 하고 싶지 않다.
“형… 그, 때… 형은… 기억 못하지만….”
울음 섞인 백현의 목소리가 띄엄 띄엄 이어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통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찬열은 앉아 있던 벤치에서 내려 와 백현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응, 말해봐. 눈물이 나도록 다정하고 낮은 목소리.
“저는, 형 알기 전부터… 형 좋아했었어요….”
백현은 지나가던 길에 찬열의 패거리에게 잡혔던 일을 기억했다. 지금보다 더 작았던 몸으로 겁에 질려 눈만 홉뜨고는 발발 떨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찬열이 제 패거리의 뒷통수를 팍 치면서 미안하다고 백현에게 사과를 했었다. 완벽한 강자의 여유로움. 약자는 건들이지 않는 신사스러움에 백현은 찬열을 우상처럼 생각했었다.
“그래서, 형, 미안해요, 미안…….”
“미안해?”
“네… 미안해요….”
“…그러면 옆에서 갚아.”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이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백현의 눈이 커진다. 네?
“네 위로 없으니까 정말 힘들더라.”
“형… 흑, 흐윽….”
“그러니까 내 옆에서 다 갚아.”
“흑, 흐윽…… 끅, 흑….”
“울지 마. 네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백현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역시 저보다 작은 아이의 눈물에는 약한 찬열이 잔뜩 당황해서는 백현의 눈물을 닦아주고, 닦아주다가 결국 멈추지 않자 백현을 품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 품에 딱이네. 아무리 생각해도 애완동물 같다.
“지금은 완벽히 잊기는 힘들겠지만.”
“흐윽, 흐으윽…”
“네가 도와주면 금방 괜찮아지겠지.”
아직 완벽히 경수를 지워내지는 못했지만 백현의 옆에 있으면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짓이 귀엽기도 하고, 사람 마음 잘 읽어 주기도 하고. 거기다 무엇보다 제가 좋아서 못살겠다는 아인데 모질게 밀어 낼 수가 없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는데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닐까. 찬열은 제 마음 속에서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수의 얼굴을 보고도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좋은 추억은 좋은 추억으로. 예뻤던 기억으로, 아련한 첫사랑으로. 머릿 속에 묻어 두고 나중에 웃으면서 꺼내 보면 될 것이다. 이제 경수는 종인의 옆에서 행복할테니, 이번엔 찬열의 차례다.
“형, 흐끅, 제가 잘할게요, 정말로……”
“울지 말라니까. 죽겠네 진짜.”
울지 말라는 말에 억지로 울음을 참으면서 품에 깊히 안겨 드는 것이 귀엽다. 꼭 강아지 같아. 품 안에서 꼬물거리며 한참 울음을 삼키던 백현이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형, 하고 찬열을 부른다. 응? 다정한 대답. 백현은 눈물이 또 쏟아지려는 것을 입술을 꼭 깨물어 참아낸다. 그 때 골목길에서 그것두요…. 찬열이 엉? 하고 멍청한 소릴 낸다. 그리고는 뒤이어서 어이가 없다는 웃음. 허, 설마? 그 말에 백현이 고개를 까닥까닥.
“똑똑하네, 우리 백현이….”
우리 백현이. 그 말에 품 속에서도 흐흐, 하는 흐뭇한 웃음이 터진다.
“사랑은 쟁취하는 거잖아요.”
사랑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법이지. 어쨌거나 최종 승자는 변백현이 된 것 같다.
-
“형!”
찬열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입김이 공중으로 너울 너울 올라가다 사라진다. 백현을 만난 늦 봄, 초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이 됐다. 오늘은 찬열의 수능날. 아침에 백현이 싸준 도시락을 먹어서 그런지 제법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수학을 칠 때 시간이 좀 부족하긴 했지만 원래 부족했던 과목이라 큰 기대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원래 기대했던 국어와 영어가 쉽게 느껴졌으니 아마 붙은 수시에 최저 등급 맞추는 정도는 쉽게 될 것이다.
찬열은 수능장 앞에서 두 손을 머리 위로 크게 저으면서 저를 부르는 백현을 본다. 뽀얀 얼굴에 날씨가 추워 그런지 코 끝이 발갛게 얼었다. 저보다 더 긴장을 했던지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게 보인다. 앞으로 달려가서 손을 잡아 보니 손도 장난 아니게 떨고 있다.
“너 추워서 떨고 있는거야?”
“아, 아니. 떨려서.”
잘쳤어? 라는 말은 차마 못한다. 고3이 수능장을 나와서 어떤 심정인지는 주위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다. 12년 정규 교육의 마침표. 인생의 첫번째 관문. 그 높은 산을 하루도 채 안되는 시간에 훌쩍 넘겨 버렸으니 그 허무감은 말로 설명 못할 것이다. 그래도, 제 앞에서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잘 친 것 같기도 하고. 백현은 괜히 대견한 마음에 찬열의 엉덩이를 톡톡 쳤다.
“잘했어.”
“많이 컸다 우리 백현이? 형 엉덩이도 치고. 어?”
“히히. 맛있는거 먹으로 가자. 내가 쏠게!”
“니가 돈이 어딨다고. 이 형아가 어른 된 기념으로 쏜다!”
그렇게 말하는 찬열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걸려있다. 백현의 얼굴에도 그에 못지 않는 환한 웃음이 걸려있다. 둘은 수능장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남들이 안보는 새에 손을 슬그머니 잡는다. 아니, 남들이 봐도 상관이 없긴 하다. 우리가 좋다는데 그게 뭐. 한달만 있으면 갓 스무살이 되는 박찬열과 이제 겨우 열아홉이 되는 변백현의 패기는 남다르다.
“백현아.”
“응?”
“너 없었으면 아마 수능도 못쳤을거야.”
학교를 자퇴했을지도 모르고, 나쁜 길로 들어섰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 수많은 유혹들을 옆에서 백현이 잡아 준 덕에 이겨냈다.
찬열은 백현과 만나면서도 바로 마음을 잡지는 못했다. 백현과는 다른 학교지만 경수와는 같은 학교였기에 아예 안마주칠수가 없었다. 가끔 매점을 갈 때 보이고, 등교를 할 때도 보였다. 종인과 경수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는데 그 때는 하루종일 공부도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그럴 때 마다 백현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지켜줬다. 한 살 어린 주제에 때로는 엄마처럼 찬열을 다그치기도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는 애완동물처럼 찬열의 옆에 붙어 앉아 끌어 안고 보듬어 주기도 했다. 백현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찬열은 제가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경수의 이야기를 꺼내고, 힘들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확실히 명언이기는 한건지, 날이 갈수록 찬열의 머릿속에서 경수가 지워졌다. 백현에게 경수의 이야기를 꺼내는 숫자가 줄어 들었다. 점점 이제 과거의 슬픔은 깔끔히는 아니더라도 희미해져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찬열은 알고 있었다. 백현이 아직까지 죄책감을 가지고, 불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오늘은 꼭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변백.”
마지막 이름을 가르쳐 줬던 그 때가 생각이 나서, 백현의 마음 속에 달달한 설렘이 퍼진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
“이제 그만 너를 용서해.”
“…….”
“그리고 불안해 하지마.”
“…형.”
“아무데도 안갈게. 어?”
늘 한없이 다정했던 찬열의 눈이 백현을 본다. 백현은 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찬열의 눈동자에 담긴 사람은…… 도경수가 아니라, 저였다. 왈칵 눈물이 치민다.
“좋아해, 백현아.”
나를 지켜준 너에게, 이제 내 마음을 고백할게.
좋아해, 백현아.
-
찬열은 원하던 대학을 가뿐하게 붙었다. 그러고 나니 또 백현의 고3 수험기간이 찾아왔다. 찬열은 이번에는 제가 백현을 책임지겠다며 과외선생을 자처하고 나섰다. 일주일에 7일을 백현의 방에 틀어 박혀서는 과외를 했다. 물론 과외만 한 건 아니고, 붙어 먹기도 했다는 것은 짱짱 비밀. 어쨌거나 그렇게 일년을 공부 한 다음 백현은 찬열의 대학 같은 과에 원서를 냈다. 수시 떨어져서 조마조마 했었는데 다행히 정시에 붙어서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CC를 할 수 있었다는 거는 더 짱짱 비밀이다. 물론 수많은 시련과 역경이 그들의 연애를 가로막았지만 둘은 그것을 모두 가뿐히 이겨냈다. 드디어 보아고의 클레오파트라 변백현은 수만고의 늑대 박찬열을 완벽 쟁취 한 것이다!
아 뭐. 이전과 달라진게 몇가지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박찬열과 변백현의 위치 정도?
“백현아, 어? 뽀뽀 한번만 하자. 어?”
“아 형 왜그래요. 나 시험 공부 해야된다니까.”
“내가 가르쳐 줄께. 뽀뽀 한번만 하고 하자. 어어?”
“아 진짜! ……그럼 아이스크림 사줄거에요?”
“하프갤런으로 사줄께. 키스 한번만 하자.”
“아 씨! 왜 키스로 또 바뀌어요!”
“알겠어, 알겠어. 일단 하고 말해보자 알겠지?”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으븝! 느!!! 느으으!!!”
***
“아이 씨팔!!! 저 바퀴벌레 새끼들!!!!!!”
세훈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당장이라도 내 이 에프킬라를 들고 달려나가 저 한쌍의 바퀴벌레 새키들을 박멸하고 싶은데 차마 폭행 살인죄로 고소미를 먹을까봐 실행을 못하겠다. 다시 붙은 김종인X도경수 커플은 전보다 더 끈끈해진 애정을 선보여서 세훈과 종대 두 노멀을 기함하게 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쪽쪽 뽀뽀를 해대다가 그 날 주번인 종대에게 걸려서 「나 아니고 딴 애들이었음 어떡할 뻔 했냐고!!!!」 하는 잔소리에 태연하게 「다 아는데 뭐」 하는 뻔뻔한 대답을 날리기도 했고, 청소시간에는 제 반 청소를 미뤄 놓고 경수 청소를 도와주겠다고 와서는 경수의 손만 만지작 거리기가 일쑤였다. 거기다가 씨팔 급식을 먹을 땐 전부터 그랬긴 하지만 안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눈빛으로 주위를 끈적한 버터로 떡칠을 해버리는데, 대체 정상인의 멘탈을 가진 세훈과 종대가 버텨 낼 수가 없는 거다.
“야야. 진정해. 왤케 시끄럽냐 너.”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하는 종인에 세훈이 더 열을 받는다. 저 새끼 뻔뻔한 꼬라지 좀 보라고!
“그나저나 오늘 몇시에 올라온댔지?”
“두시. 아, 지금 십분 남았다.”
“헝, 어떡해…… 떨린다.”
현재 상당히 언밸런스한 조합인 종대, 세훈, 종인, 경수는 종대의 방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바로바로 수만고의 홈페이지. 오늘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반 배정이 발표나는 날인 것이다.
“이 바퀴벌레 새키들이 같은 반 되면, 진짜 교장실 엎는다 내가.”
동감이오. 말 없이 속으로만 중얼거린 종대가 세훈의 손을 집어 들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까부터 종인은 경수의 어깨에 제 머리를 턱 올리고 귀여운데다 깜찍하기까지 한 제 연인의 옆모습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가끔 엉덩이를 주물거리기다가 맞기도 하고 손을 꼬물거리다가 세훈에게 한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오분 남았어. 어떡해, 어떡해 조니나…”
쟤도 가만 보면 엄청 여우다. 여태까지 봐왔던 경수와는 완전히 틀린 모습에 종대가 토하는 시늉을 해보이고 이번에는 세훈이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요청한다. 사실 죽이 제일 척척 맞는 것은 세훈과 종대다. 둘은 벌써 저 게이 커플로 인하여 절친중의 절친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경수야. 너랑 같은 반 안되면 내가 선생님한테 말해볼게.”
지랄 하고 자빠졌지. 지가 언제부터 꼬박꼬박 님까지 붙여서 선생을 불렀대. 세훈이 코웃음을 팽- 친다.
“으응… 나 친구 없으면 어떡해? 나 혼자 떨어지면…”
“그럼 내가 맨날 맨날 오분에 한번씩 니 반으로 찾아갈게.”
지금도 충분히 그러고 있는 것 같은데. 보살과도 같은 얼굴로 종대가 인자하게 웃는다.
“야! 나왔다!!”
“하느님 제발!!!”
“씨발!! 야!!! 컨트롤 에프!! 내 이름 부터!!!”
세훈의 말은 깡그리 무시하고 무력으로 종대를 제압한 종인이 키보드를 꿰차고 떨리는 손으로 「도경수」 이름 석자부터 친다. 도경수가 속한 반은 3학년 2반 12번. 종인은 뒤에서 헤드락을 걸려는 세훈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다음 이름을 눌렀다. ㄱ…ㅣ…ㅈ…ㅗ…인.
“어….”
“으아악! 아아악!!! 우와아아악!!!”
김종인. 3학년 2반 8번.
모니터에 선명히 뜬 글씨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세훈과 종대의 뒤로, 얼싸 안고 방방 뛰는 종인과 경수가 보인다. 세훈은 한숨을 푹 쉬며 마지막 희망을 위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제발, 저 바퀴벌레 한쌍과 다른 반이 되게 해주세요. 제발 저 꼴 좀 안보게 해주세요!
“…힘 내, 세훈아.”
오세훈. 3학년 2반 18번.
아까보다 한층 더 충격의 깊이가 깊어진 세훈을 옆으로 살짝 밀어 내고, 종대는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제 이름을 입력했다. 김, 종, 대. 진짜 내가 여태까지 성당을 다닌게 얼만데 이거 하나 안들어 주시면 정말 미워할거에요 예수님.
“……같이 죽자, 종대야.”
김종대. 3학년 2반 7번.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모두 같은 반이 될 수 있는거지. 순식간에 종대의 혼이 나가서 애가 흐물럭 흐물럭 해지고, 그러거나 말거나 신이 난 김종인은 도경수의 볼에 쪽쪽쪽 입을 맞추고 앉아 있고. 쓰러진 제 친구를 구하는게 먼저인지 저 바퀴벌레 새끼들을 짜부라 트리는게 먼저인지 잠시 고민하던 세훈은 결국 내 친구를 잃고 홀로 남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새끼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노라 다짐을 하며 샤프를 들고 달려들었다. 어억! 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몇 방 샤프에 찔리면서도 내 장미는 지키리라, 종인이 경수를 감싸 안고 있는 것을 비치는 모니터 화면으로 종대의 텅 빈 눈이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앞으로 펼쳐질 고3 생활이 왜 순탄하지 않을 것만 같을까.
-
“안녕하세요!!”
아무도 없는 집인데도 종인의 인사가 우렁차다. 종인은 지금 경수의 집에 두번째의 방문을 한 상태이다. 오늘의 데이트 코스는 어디로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경수에게 집이 빈다는 엄마의 문자가 날아 온 것이다. 그 때 부터 종인은 노골적으로 경수의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첨엔 죽자고 거절하던 경수도 결국 갈 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종인을 제 집으로 들였다.
“우리 경수 방에 들어가볼까~”
얼마나 좋은지 엉덩이는 씰룩대고 노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아주 난리가 났다. 겨우 한번 와봤을 뿐인데도 제법 익숙하게 경수의 방을 찾아 들어간다. 전과는 별로 달라 진 것이 없지만 어딘가 한부분이 이상하게 달라 보였다.
“어. 경수….”
“오바는. 왜?”
“…….”
종인이 말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곳에는 경수가 물병에 넣어 두었던 다 마른 장미가 있었다. 장미는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만, 그 때 장미를 꽂아 두면서 빌었던 소원은 이루어 졌다. 경수는 괜스리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건 제가 사 준 장미가 꽂혀 있는 것을 보는 종인의 마음도 그랬다.
“저렇게 말라 버린 것도 꽂아뒀네.”
“즐!”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져서는 중간손가락을 날리고 도도도 침대로 뛰어 들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 어쩜 저리 하는 짓이 귀여운지. 저거 지금 잡아 먹어 달라고 시위 하는 거 맞는가, 싶어서 경수는 침대 위로 올라가 경수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겹쳤다.
“악!! 너 뭐해!!!”
소리를 꿱 지르면서 갑자기 고개를 팍 드는 통에 경수의 머리에 턱을 맞은 종인이 아프다고 뒹굴거린다. 헉, 많이 아파? 실수 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눈을 동글동글하게 뜨고는 흰자가 가득한 눈에 걱정을 가득 담고 어디 봐, 거리면서 종인의 턱을 쓰다듬는다. 아, 좋아 죽겠다 도경수. 가시가 바짝 설 때는 언제고, 또 금방 이렇게 넘어와가지고.
참을 수가 없어진 종인이 경수의 팔목을 확 잡아 끌었다. 경수와 종인의 얼굴이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다.
“경수야….”
나른하고, 섹시하고, 묘한 종인의 목소리. 경수의 볼이 화르륵 붉어진다.
“저 장미, 버려.”
“…응?”
“새 거 사줄게.”
“아… 그….”
“백송이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인과 경수의 입술이 맞닿았다.
-
같은 반이 된 종인과 경수는 서로 상부상조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개뿔, 도도한 장미 도경수는 저 혼자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 붙으셨고 원래부터 공부는 중상위권이었던 종인은 뒷빽 살짝 섞어서 허겁지겁 도경수를 따라 같은 대학,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과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리 저리 술자리를 맥없이 끌려다니는 경수의 주위를 경계하느라 날마다 땀을 빼는 상황. 그래도 장미에 가시가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해충들이 꼬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처음의 해충 종인에게 그랬던 것 처럼, 경수는 지금도 가시에 날을 잘 세워서 달려드는 해충들을 「즐」 한마디로 딱 딱 잘 끊어내고 있다. 물론 이제 OO대학교의 흑표범으로 불리는 김종인도 경수의 날 선 가시 중의 1번이기도 하고. 아, 그리고 그 둘의 연애에 고통 받던 세훈과 종대만 애꿎게도 피해를 봐서는, 세훈은 재수를 하고 종대는 하향을 해 들어갔다. 그래서 뭐. 대학에 올라가면 바퀴벌레 새끼들 다시는 안보겠노라 이를 빠득 빠득 갈아대도 그 오랜 우정이 그렇게 쉽게 끝나겠냐고. 가끔 술도 같이 마시고, 아니 자주 마시고. 부르면 달려가고 가끔 부르기도 하고. 어쨌거나 돈독한 친구 사이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아, 그리고 사실 장미 도경수가 요즘 가시를 바짝 세우는 데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아 씨발. 김종인 너 이거 뭐야.”
“응? 씨발이라니, 우리 예쁜 경수 입이 험하네.”
“더 험해지기 전에 이거 뭔지 설명해라. 어?”
“어, 이거… 야! 오, 오해야!”
“오-수-경? 너 이년이랑 아직까지 연락하냐?!! 어?!?!!”
“아, 아니, 아 얘가 자꾸 연락이 온다니까!!!”
“니가 잘 끊어 냈으면 이럴 일 없을거 아냐!!! 통화 눌러. 통화 눌러!!!”
“무, 뭐 어떡하려구 경수야… 내가 알아 듣게 얘기할게, 어?”
“눌러!! 누르라고!!!! 당장 전화 걸어!!!!”
하..하..드디어 끝났네요!
마지막 편은 찬백과 카디의 달달함 뭐 이런걸 넣고싶었는데
워낙 달달한게 어려워서......항상 달달 에피소드 쓸때가 제일 힘들어요...하...☞☜
엄청 흐지부지하고 급하게 끝난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봐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댓글이랑 조회수가 별로 없어서..메일링...을 제목에 쓰기도 부끄....(///)
그래도 댓글로 메일 적어주시면 텍파 보내 드릴께요...^~^..원하시지..않으시겠지만..흐규..ㅠㅠㅠㅠㅠㅠ(그래놓고도 일단은 강조를 해본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 그리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 파우ㅓ 감사합니다!!!!!!!!!!!
제 첫 중..장편이라 마음이 먹먹먹먹 한데.. 이제 고3.. 수능 150일 남았으니 간간히 단편으로 오게 될 것 같아요
부족한 글 사랑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하구요 이제는 자주 못오겠지만 저 없어도!!!그래도!!!! 늘 카디찬백한 하루 되세요ㅎㅎ♡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