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갈게요."
요 몇일새에 부쩍 거칠어진 뺨을 쓸어내렸다. 푸석한 표면에 인상을 찌푸리고 대충 목에 걸친 헤드폰을 끌어올렸다. 다시요, 쫌. 어둡게 내려앉는 목소리는 신경질적이다. 덕분에 방음부스안에 들어가있던 신인 여가수는 움찔 표정을 굳히고 목을 가다듬는다. 존나 못하네, 저걸 가수라고. 기계판을 툭툭 두드리는 우지호의 표정이 탐탐찮게 일그러졌다. 캬. 일하는 남자의 포스가 이런 건가효? 손나재효? …죄송합니다. 점점 작가의 개드립이 우죠 빰싸대기를 갈굴만큼 질떨어지고 있는것 같지만 그래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흑흑.
[지권] 내 슈퍼카가 고장나는 이유
04
우지호 고갱님은 고민중이다. 엄청난 순발력과 입담으로 유권과의 저녁약속을 굳혀놓긴 했는데 도대체 어느타이밍에 어떻게 전화를해서 무슨맨트로 어떤저녁을 사먹여야 얘가 나한테 홀랑 넘어올까. 제법 느즈막히 끝난 음반작업에 지쳐 집에 돌아와 씻지도않고 침대에 퍼질러 누워 하는생각이 그거다. 뭐 어떡해그럼, 김유권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아른아른하게 그려지는 웃음의 잔상에 지호의 볼이 뾰로통하게 부풀어올랐다. 아. 보고싶다. 우지호, 내생각엔 이정도면 중증이지 싶다. 상사병 걸리기 일보직전일세. 줄줄이 소시지마냥 차오르는 김유권의 상판에 푸드득 고개를 저은 그가 자켓주머니를 뒤적거려 휴대폰을 꺼내든다. 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정도 시간이면 퇴근했겠지? 거의 밤 열시로 달려가는 휴대폰 액정 상단의 시간을 흘끗거린 지호가 진즉에 저장해 놓았던 돋는 서비스문자 발신인 유권의 번호를 띄웠다. ♡햇살보다유권♡ …헐 누가보면 벌써 못볼거 다본사인줄 오해하겠네여. 우지호 설레발은 베스트오브 베스트로 입증되었습니다.
통화버튼을 눌러야하나 말아야하나 엄지손가락이 화면위에서 정신사납게 꼼지락거린다. 그러기를 약 8분. 대체 언제까 꼼지락거릴소냐, 용기있는 상남자가 미인을 쟁취하는 법이라고!! 울렁이는 가슴께를 훅 부여잡은 우지호가 충동적인 1g의 용기로 초록색 통화버트을 터치했다. 띵똥띠링띵! 경퇘한 신호음과 함께 밋밋한 연결음이 이어졌다. 컬러링같은거도 없다 유권씨 생각보다 좀 심심하시네. 당당하게도 제 자작곡을 컬러링으로 지정해놓은 우지호는 다음 만남때 유권의 컬러링을 제 노래로 바꿔주겠다 설레는 다짐을 곱씹으며 조금 길어지는 통화시간에 초조한듯 엄지손톱을 깨문다. …왜안받아. 풍요로운 삶속에서 인내심이라곤 눈꼽만큼도 배우지 못한 지호는 연결음이 1분을 넘기자 금단증세를 일으키는 마약러처럼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슬슬 빡치기 시작함. 성격하고는. 혼자살기엔 몹시도 넓은 거실로 나서 그 가운데를 빙빙 돌고있는데, 여보세요? 조금 피곤에 젖은 목소리가 골골거리며 넘겨왔다. 우뚝. 지호의 부산한 걸음걸이가 멈추었다.
"아 왜이렇게 늦게받아요!!!" -네…? 저기, 누구….
헐. 실수. 저도모르게 박경과의 통화마냥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얼른 제 두툼한 입술에 매운손을 휘갈기고 멍청하게도 힘조절을 못해 제법 아팠는지 우죠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아 따가워…. 한동안 수화기 너머로 아무소리도 들려오지않자 의아했던 유권이 다시 조심스레 물어온다. 누구세요…?
"아, 저. 죄송합니다. 저 우지호입니다." -우지…호요? "네. 2012페라리 캘리포니아요."
애써 담담한척 존재를 밝혔지만 사실 우지호는 실망했다. 아니 떠날때마다 그렇게 상큼하게 우지호 고객님~ 하고 인사해놓고 내 이름을 기억 못한단 말이야?? 어떻게 그래?? 당장이라도 바락바락 따지고싶었지만 너무도 순수하게 아~ 우지호고객님! 하고 터져나오는 유권의 감탄사가 졸라 이쁘니까 봐준다 내가. 전화상으로 보일리도 없는데 옷매무새와 표정, 갈라진 금색 앞머리까지 이쁘게 정리한 지호는 크게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네, 우지호고객님 맞아요.
-제가 깜빡하고 번호 저장을 안했나봐요. 근데 무슨일로 전화를 다 주셨어요? "다른게 아니라 식사한번 대접한다고 약속드린거 지키고 싶어서요. 주말에 시간 괜찮으세요?" -예? 저 정말 괜찮은데…. 그말 진심이셨어요?
유권의 놀란 목소리에 지호의 주먹이 불끈 쥐여졌다. 나만 이약속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거지. 김유권이 어벙하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때마다 우지호의 위험한 승부욕은 한단계씩 업그레이드 되고 있었다. 헐. 유권아 도망가!!
"당연히 진심이죠. 토요일 저녁에 괜찮으세요? 카센터 끝나는 시간에 데릴러 갈게요."
네 뭐 저야 남는게 시간이긴 한데…. 유권이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아직 낯선사람과의 저녁식사가 조금은 불편한건지 머리를 긁적인 유권이 수화기를 고쳐잡았다. …불편하지만, 호의를 베풀어주신다는데 딱히 거절한 번명거리도 떠오르질않는다. 그래 뭐 이렇게 한끼 떼우고 그러는거지.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여섯시에 퇴근이에요. 괜찮으세요?
-네 그럼 그때 뵐게요. 잘자요. "네, 들어가세요."
마지막 맨트가 조금 농후하긴 했다만 유권은 전혀 개의치않고 쿨하게 통화를 종료시켰다. 뜻밖에 저녁약속을 상기시키며 참, 요즘 돈많은 사람들은 되게 착하구나 배풀줄 아는 삶을 살고계시네 주억거리며 종전의 샤워로 젖을머리를 툭툭 털어낸다. 노곤하게 축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침대에 걸터앉은 유권은 방금 통화를 마친 번호를 '우지호고객님'으로 저장시키고 화면을 닫았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곰곰히 생각해보니…헐. 그럼 나 페라리타고 밥먹으러 가는거야!? 이거슨 생각보다 더 위대한 약속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급 기분이 고공상승한 유권은 공중에 발차기를 하며 기뻐했다. 야호!!! 신난다!!! …아 우리지호 불쌍해서 어떡해요 페라리없었으면 어쩔뻔했어. 당장 우지호를 붙잡고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해주고 싶지만 지금쯤 김유권과의 저녁약속 체결에 씬이나 구구가가 고릴라춤을 추고있을 우지호를 위해, 서울사는 늑대의유혹 카센터 정비공 김군. 자신에게 대쉬하는 고객님보다 고객님 차를 더 좋아하는건, 쉿. 우리끼리 비밀입니다.
*
대차게 스즈끼를 벗고 후드티를 꿰어입은 표지훈이 말아올라간 티의 앞부분을 주욱 끌어내렸다. 설렁설렁한 걸음걸이로, 자켓을 차려입고있는 이민혁에게 다가가며 뭣하러 갑갑하게 쫙 빼입어영 티한장으로 디테일이 사는 마이네임이즈 퓌.오. 라며 이죽거리고 싶었지만 카센터 짤릴까봐 곧 관두었다. 오후 여섯시면 영업이 끝나는 오늘은 saturday. 토요일. 주말이라고도 한다. 멋들어지게 세운 머리를 슬슬 쓰다듬으며 아부성 짙게 민혁의 어깨를 툭툭 털어준 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사장님. 한다. 난 니가 날 그렇게 부를때마다 너무 무서워. 가볍게 대답하는 민혁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다.
"왜." "오늘외식해영. 유권이형이랑 쏘맥 말고 포장마차 우동 콜?" "양대창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너 월급에서 다 깐다?" "아앙 사장니임."
너지금 그걸 애교라고…죽여버린다. 유권을 제외한 모든 남자사람에겐 쓸때없이 섬뜩해지는 미녁신. 덕분에 쩝 입맛을 다신 지훈이 애교를 관두고 괜히 유권을 끌어들였다. 유권이형도 아까 우동 먹고싶다 그러던데…. 그래도 양대창보단 우동이 훨 싸잖아영.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사실 김유권은 우동의 '동'자도 언급한일이 없건만 아주 거짓말이 매끄럽게 터져나오는 표지훈은 존나 능청스럽다. 내가 사장님 약점이야 빠삭하게 꿰고있지.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유권이형 우동 되게좋아하는데. 결정타를 날리자 자켓의 깃을 정리던 민혁의 손이 움찔. 하더니 하아. 한숨을 내쉰다. …그래. 먹자. 빨리 유권이 불러와. 언제쯤 표지훈을 떼어놓고 유권과 단둘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볼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오늘은 오동동한 우동을 흡입하는 김유권, 쏘맥먹고 취해서 포풍애교부리는 김유권으로 일주일간의 피로를 씻어내야겠다. 헐생각만해도…정력이…. 이렇게 김유권 자양강장제설은 튼튼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우동생각에 잔뜩 신이난 지훈이 풀쩍풀쩍 뛰며 지금쯤 옷을 갈아입고있을 유권을 부르러 탈의실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보다 먼저 선수쳐 멀끔히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유권이 스웨터의 끝을 매만지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다. 어, 형! 우리 우동먹으러 가요! 지훈이 패기넘치게 소리쳤고 민혁도 아까와는 다른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그래. 우동 먹으러 가자. 하며 제안했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요 김유권의 토요일밤은 이미 지난날 우지호가 덥썩 예약신고를 해버리고 말았답니다. 일제히 자신의 대답을 갈구하는 두명의 시선에 당황함을 느낀 유권은 괜시리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저기…그게요….
"저 오늘 선약이 있는데…." "선약? 누구랑?"
이민혁과 표지훈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런말하긴 뭐하지만 사실 김유권은 따로 자주만나는 친구들이 많이 없어 주말을 거의 혼자보내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걸 아주 잘 알고있는데 뜬금없이 선약이라니. 유권이 먼저 식사제안을 거절하는것은 연중행사마냥 임팩트있는 일이라 두사람은 괜시리 초조해졌다. 뭐야, 무슨 약속이야.
한편 유권은 추후의 행보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어, 그게요. 말끝만 흐린다. 뭐라그래야 되냐 이걸. 어눌하게 운을 떼려는데 별안간 빵빵! 하는 클락슨 소리가 정적은 우리의 역적! 뚫고들렸다. 손님인가? 일제히 세사람의 시선에 정비소 밖으로 쏟아졌다. 조금 어스름한 얕은 어둠을 뚫고 밝은 헤드라이트 두 줄기가 들이닥쳤다. 어, 오셨나보다! 유권의 걸음이 급해졌다. …오셨다고? 누가?
"안녕하세요!" "잘 있었어요?"
맙소사. 뛰쳐나가는 유권의 뒤를따라 정비소 건물을 나선 민혁과 지훈의 표정이 썪어들어갔다. 페라리 허세남이다.
날도 좀 추운데 꿋꿋하게 오픈된 페라리를 타고 나타난 금발의 우지호는 싱긋 신사다운(본인생각) 미소를 지어보이며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차의 곁으로 다가간 유권과 간단한 인사치레를 주고받고 나서야 저쪽에 얼음동상이 되어 딱딱하게 굳은 둘에게로 옛다 시선을 던진 우지호는 승리감에 도취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거만하게 목례했다. 가히 뱃속이 요동치는 기분이다. 아그작 어금니를 깨문 민혁이 빠른 보폭으로 유권에게 다가섰고 항상 폭풍의 핵인 김유권은 해맑게도 고개를 숙인다. 사장님, 저 가볼게요.
"이사람이랑, 저녁약속 있는거였어?" "네."
김유권은 그게 뭐?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유권을 원망섞인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그걸 알리가 없다. 다만 그 시선을 약삭빠르게 캐치해낸 우지호가 슬쩍 유권의 어깨를 붙잡았다. 예약해뒀는데 얼른가요. 조수석의 문까지 열어주자 슈퍼카 앞에서 몸둘바를 모르겠는지 황홀경에 빠진 김유권. 다시한번 민혁에게 인사하고 조수석에 올랐다. 퐝. 차문을 닫아준 우지호가 반대편 운전석으로 걸어가며 자신과 눈이 마주친 이민혁에게 다시한번 시크한 웃음을 띄며 고개를 까닥였다. 그가 다시 운전석에 오르고, 시동이 걸렸다. 매끄럽게 카센터를 빠져나가는 우월한 슈퍼카의 뒷테를 멍하니 바라보며 오늘은 정녕 김유권을 보내야 하는 것인가.
"…지훈아." "네…." "쏘맥말러 가자."
-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폭연할게영^0^ ...아 아무도 안기다리셨....을라낰ㅋㅋㅋㅋㅋㅋㅋㅋ죄송해여 짜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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