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예고 없음처럼 w.이현웅
(짧은 단편입니다^^)
너란 사람, 그는 나에게 너무 아름다운 존재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름다울 그런 사람이었다.
때는 봄날 대학교 1학년이었다. 나는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가방을 메고 선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대학교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 항상 하던 얘기를 하며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래, 나는 기껏 대학교까지 와서 시간을 죽이는 일 따위나 하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시간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냥 예쁜 여자 어디 없나- 하며 주변을 두리번대는 친구 녀석들과 함께.
그렇게 너는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한줄기의 빛처럼 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같이 다니는 듯한 그런 사람들과 환하게 웃으며 나는 모르는 어디론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꽤나 느린 듯해 보이지만 빠른 너의 걸음 덕에 너를 쫓는 내 고개는 그 누가 봐도 누군가를 보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면 너는 그 시간을 다시 살리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닌 너는 내가 시간을 보내게 해줬다. 그 순간만큼은.
"어디 봐?"
"아, 어. 아, 아니"
친구에게 변명을 하느라 너란 사람을 놓쳤다. 이름도, 학과가 어딘지도 몰랐었다. 그 사람의 목소리도 몰랐다. 그냥 '너'라는 존재 하나 밖에 몰랐다. 그 존재만으로도 황홀하고 나를 눈멀게 했다. 세상에 저리도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너는 그렇게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매력 있는 얼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너는 절대로 정말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너만의 독특한 스타일, 머리, 남들과는 패션. 이것이 아니라 나는 너가 환하게 웃는 그 미소에 반했었던 것 같다. 너의 미소는 정말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너를 처음 본 날, 나는 그 유치한 '한눈에 반해버렸다'라는 표현을 태어나서 난생처음으로 머릿속에 떠올렸던 것 같다.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네가 처음이고 마지막일 것이다.
처음에는 너의 얼굴을 보고 내가 반했구나-라는 걸 알고 난 후, 너의 존재를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저 멀리 도 사라지던 그 형상이 머리를 싸고돌았다. 너를 생각하며 술을 마신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내가 이런 짓을 해도 너는 모를 것을 생각하니 그냥 가슴이 미어졌다.
그 예고 없음처럼 너는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가끔은 얼이 빠져 아무것도 못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같이 너가 다니던 그 길에 앉아있었다. 나는 너를 볼 수 없었다. 설마 저번에 봤던 너의 모습이 꿈은 아닐까-, 그냥 내가 만들어낸 허상은 아닌가 싶었다. 슬슬 마음을 접고 이제 너는 못 보는 인연이려니-라고 마음을 먹을 때, 내 눈에 너가 나타났다. 그때 그 예고 없음처럼. 그리고
너와 눈을 마주쳤다. 우연이었다. 나는 보려고 본 것이지만 그는 나를 보려던 것이 아니었지만, 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대략 5초 정도 지났을까? 너는 너의 옆에 있던 친구의 부름에 급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 짜릿함이 끊겼다. 그 심장 떨림은 어찌 이루 말할 수 있었을까.
그 뒤로 너를 보지 못하였다. 아니, 나는 너를 보려 하지 않았다. 너를 보던 그 장소 근처에도 가지 못 했다. 운명이라면 보겠지-하며 아쉬웠지만 그냥 너를 그 자리에서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어쩌면 그 거지 같은 운명이라는 말을 붙여 너와 나의 인연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많이 앓았다. 하루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너와의 인연은 이것이 끝이라는 것에, 너와는 운명이 아니라는 것에 실망하면서. 아니, 속으로만 앓은 게 아니라 겉으로도 앓았었다. 하루하루 얼굴이 수척해지고 입에 잘 안 대던 술을 입에 자주 댔다.
주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느냐며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다. 한눈에 반한 사람이 있다.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차피 운명, 인연도 아닌 거 보지 않으려 그를 피했다. 그는 내 존재를 알지도 못한다. 나는 그냥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사람에 이렇게 아파하고 있다. 이렇게 미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남자답게 다가가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혼자서 뒤에서 그런 미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나도 내 상황이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를 향해 내가 다가가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이러한 고민들을 하며 그렇게 나는 다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 아쉬움에, 그 서러움에.
역시 또 술을 먹고 난 다음날이었다. 학교에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겨우겨우 수업을 들었다. 교수님과 친구들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냐며 나를 달달 볶아댔지만 지금은 이제 질렸는지 그러려니-하고 넘겼다. 수업이 끝났는지 다른 사람들이 가방을 싸고 나가길래 나도 내 몸을 이끌고 출구를 향했다. 툭- 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혔다. 그중에서도 조금 느낌이 다른 부딪힘이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너가 있었다. 오매불망하던, 마시면서도 생각나던 너가 있었다.
그때처럼 너와 눈이 마주쳤다. 너는 환한 눈빛으로, 나는 찌들어간 눈빛으로 너를 보았다.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예고 없음처럼 너는 나에게 다가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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