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우리의 FM W.담녀 01 "DJ규의 라디오, 평일버전 <규하고 웃는 낮>, 오늘 방송도 이렇게 끝이 나네요. 아쉽다고요? 거짓말. 내일 다시 볼 거 다 알면서.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요! 하하하. 장난이에요. 어쨌든 오늘은 이만! 내일은 토요일! DJ규의 라디오 주말버전 <규하고 우는 밤>으로 저녁 9시에 찾아뵙겠습니다. 이상, 규였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규데이가 되세요! 안녕!" 발랄한 음악소리가 나가고 마이크가 꺼진 것을 확인한 성규가 헤드폰을 벗으며 한숨을 축 내쉬었다. 아이고, 오늘도 겨우 끝났네.
길거리에 걷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안다고 할 정도로 인기있는 라디오, 를 2년 째 진행하고 있는 성규는 요즘 들어 점점 지쳐가는게 느껴졌다. 심심풀이로 인터넷 방송을 하던 성규를 눈여겨 보고 있던 PD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 처음엔 이벤트성으로 진행자와 청취자 모두가 전화번호도 노출되지 않는 익명으로 참여하는 라디오였었다. 파일럿 프로그램 이었지만, '익명성'이라는 특이함으로 호감을 얻고 인기를 끌어 계속 방송하게 된것이 어느새 2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그럼에 따라 성규의 기분도 좋아지고, 행복한 것은 맞지만, 요즘따라 그의 기분이 영 저기압이 었다. 게다가 오늘은... "성규씨, PD님이 잠깐 부르셨어."
"윽,...네..."
...또 다시 지각을 하고 말았으니.
*** '...이상, 규였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규데이가 되세요! 안녕!' 탁-
라디오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끊기자 마자 잠시 얼굴에 떠오르던 웃음을 지운 우현은, 라디오를 미련없이 꺼버렸다. 사실, 사진 콘테스트가 얼마 남지 않아 빨리 임시 출품작을 정해놓고, 혹시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며 돌아다녀야 하는 것을, 버릇처럼 정해진 시간에 라디오를 켜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자리잡고 듣게 된 것 이었다.
2년 전, 우연히 켰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을 들은 뒤로 DJ의 목소리에 끌리는 바람에 매일 빠짐 없이 라디오를 듣게 된 우현이었다. 워낙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 탓에 우현이 라디오를 듣는 다는 사실에 지인들은 모두 한번씩은 우현에게 병원에 가보길 권했었다. 물론, 언덕위의 하얀집으로. 우현도 자신의 변화에 놀랐었지만, 또 다시 그냥 무심히 넘겨버렸다. 남자가 남자 DJ의 목소리에 끌렸다는 건... 아직까지도 찝찝하기 하지만. 게다가 그때의 자신은 누구든 감정이 풍부해진다는,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그것 때문이려니 했었다. 잠시 떠오르는 옛 생각에 멍해 있던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한 우현이 카메라 가방을 들고는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었다. "아, 또 해지고 나서 들어오겠다-."
아무래도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찍으려고 계획했던 평일의 낮 풍경을 또 포기해야만 할 듯 하다.
*** "...내가 무슨 말 할 줄 알지?"
"...네..."
성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제 왜 내가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잊고 있었을까. 고개를 숙이며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은 모습의 성규를 보며 호원은 한숨을 지었다.
"하...아니, 어떻게, 하루도 안 빼놓고 지각을 할 수가 있어?! 징글징글하지도 않냐?"
"제가 잠이 많은 걸 어떻게해요..."
"뭐?! 잠이 많은 걸 어떻게 해요? 장난해? 그럼 줄여야지!!!"
결국엔 또 역정이다. 2년 전, 우연히 후배의 추천으로 듣게 된 인터넷 방송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방송하던 성규에게 DJ직을 제안한 건 2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가 되는 건 아니지만...
"잠때문에 일주일 방송에 5번을 방송 5분 전에 들어오는 게 어디있어!!!! 아침방송도 아닌데!!!!"
이럴때는 제 안목이 원망스럽기만 한 호원이다.
*** 탁- '적어도 20분 전에는 도착해있어!! 안그러면 다른 놈으로 대체시킨다!!' 에고- 결국 밥줄로 협박을 당하고 나온 성규는 라디오 스튜디오의 문을 닫고 나오면서 다시 한 숨을 쉬었다. 아니, PD님도 너무 하시지, 다른 것도 아니라 어떻게 저런걸로 협박하시냐. 호원에 대한 원망을 중얼거리던 성규는 복도에 서서 잠깐 스튜디오문을 찍- 하고 째려보고는 백팩의 끈을 꼭 잡고 방송국을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러 걸어갔다. ...근데, 하루정도 더 늦는다고 진짜 자르시진 않겠지?
*** 찰칵- 우현의 카메라에 한 적한 달동네의 모습이 담겼다. 프레임에 담긴 모습은, 쓸쓸하지만 아기자기해보였다. "...라디오를 트는게 아니었는데."
사실 이 곳에 오는게 처음은 아니었다. 몇일 전에도 와서 지금과 비슷한 구도의 사진을 프레임에 담아갔었고, 그 몇 일 전에도 똑같았고, 또 몇 일 전에도... 조용히 자신이 찍은 달동네의 사진을 넘겨보던 우현이 조그맣게 투덜거리며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라디오를 트는게 아니였어, 진짜. 오늘은 꼭 찍으려고 했던 오후 시간의 바쁜 사람들의 모습, 혹은 그와 대비되는 느긋한 풍경이 자신의 버릇으로 다시 다음으로 넘겨버려야 하는 게 못내 아쉬운 우현이었다.
"...하아, 몰라. 월요일에는 라디오를 치워놓던가 해야지."
다시 한 번 굳게 결심한 우현은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가방에 정리해 넣고선 시내로 나가는 길로 몸을 돌렸다.
월요일엔 여기 절대 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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