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승 윤 X 남 태 현
첫 번째 남자, 천 번째 남자 03화
w. 이현웅
그 뒤로 몇 개월 간 있었던 그와의 로맨스는 어느 로맨스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달달한 그런 일들이었다.
어느 날은, 강승윤이 커피 체인점 중에서도 서울의 어느 지점이었더라.... 강남 쪽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하여튼 그 점이 가장 깨끗하고 커피 양도 다른 곳보다 더 많이 준다며 나를 끌고 간 적이 있었다. 평소에도 자판기나, 커피 체인점이나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자주 즐겨먹는 나를 강승윤은 잘 알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자판기만 보면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사 줄 정도로.
자주 가는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강남이라서 뭔가가 좀 다르기는 달랐다. 우선 카페 규모 자체도 크고, 알바생이 대체 몇 명인 지도 모르겠지만, 바닥도 깔끔하고. 나름 좋았던 것 같다.
" 선배, 여기 어떻게 알았어요?? "
" 누나가 자기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면서 커피 마시러 많이 다니는데 여기만큼 깨끗한데 없다면서 하루 종일 나 붙잡고 말해."
그때, 강승윤의 가족과 그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졌지 않나 싶다. 내가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강승윤이 시킨 아포가토를 기다리면서 누나의 나이는 몇이냐, 아버지는 엄하시냐, 어머니는 예쁘실 것 같다, 뭐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로 지나갔고 강승윤은 나에게 한 번 같이 보자 하며 그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의 과거는 좀 싫었지만, 송민호 선배에게 조공을 바치며 졸업앨범과 함께 정보를 좀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따로 기계가 없었던 지라, 알바생이 우리에게 커피를 가져왔고, 맛있게 드십시오-라는 말과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내 커피를 빨대로 휘휘 저어 조금씩 마시고, 강승윤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두세 번 떠먹더니 듬뿍 퍼 내 입 앞에 갖다 댔다.
"먹어봐, 맛있어. 달다 "
나는 입을 살짝 벌려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몇 번 짭짭대다가 아-맛있다 하면서 내 스푼으로 강승윤의 컵 위에 예쁘게 올려져 있던 아이스크림을 한 번 더 퍼먹었다. 강승윤은 내 앞에서는 항상 웃고 있었다. 기억 속에선. 강승윤이 내 아메리카노를 자기 쪽으로 돌리더니 한 번 빨대를 빨아마시더니 으, 써-하며 혀를 쭉 내밀었고, 나는 아기 입맛 하면서 한참을 놀려댔더랬다.
어느새 밤이 되었는지, 어둑어둑해지고 강승윤은 마찬가지로 제 집을 가기 위해, 혹은 나를 데려다 주기 위해 항상 가던 그 골목을 걸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로등만 그날이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그 누구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집들의 불도 다 꺼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가 조금 넘어있었고, 뭐 그런가 보다-하면서 걸었다. 강승윤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내 손에 깍지를 껴왔다. 항상 잡던 손이지만, 손깍지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이라 주위의 눈치도 많이 보이고, 강승윤이나 나나 서로 사귀는 사이임을 숨기고 싶어 하진 않았지만, 아직은 동성애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와 사회이기에 데이트도 그냥 친한 선후배 간의 만남처럼, 나와 강승윤 서로에게는 아니었지만, 친한 동성 친구들끼리 하는 스킨십처럼 지내느라 악수하듯 손은 잡은 적 있지만, 손깍지는 처음이었어서 그런지 손 마디마디마다 강승윤의 온기가 전해져오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어느새, 내 집 앞에 도착했고, 정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불빛은 없었다. 저 멀리 도로에서 쌩쌩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불빛과 약한 가로등 빛으로만 서로를 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나나 강승윤이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하고 내가 집으로 들어가기 마련이었는데, 그날은 나를 노란 가로등 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벤치 아래로 데려가 날 앉히고 내 옆에 강승윤이 앉았다.
" 선배, 왜요? "
"빠이빠이 하기 싫어서"
서로 잘 가라고 인사하는 걸 강승윤은 빠이빠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나이는 많던 게 저 단어를 쓰면서 어울리지 않게 아랫입술을 쭉 빼어 입꼬리를 내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꼬리마저 축 내리고는 힝- 하면서 되도 안되는 애교를 피웠다.
"에이, 뭐야. 늦었어 나, 들어가 봐야 돼요. 빠이빠이 선배."
내가 벤치에서 일어나자, 강승윤이 내 팔을 잡아당겼고, 그 힘에 못 이겨 다시 벤치로 털썩 주저앉았다.
"사랑해"
강승윤이 내 볼 위로 손을 올리고 한 말은 그 세 글자였고, 강승윤이 제 목을 빼 내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강승윤이 내 목덜미를 잡아댕기자 나의 입이 살짝 벌려졌고, 그 사이로 강승윤의 혀가 파고들었다. 강승윤이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혀를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강승윤은 천천히 내 입안을 휘젓고, 눈을 살짝 떠 당황해서 눈을 뜨고 있는 나의 눈을 살짝 손으로 덮었다. 강승윤이 움직이는 대로, 나도 따라 움직였고, 숨 차서 강승윤의 어깨를 톡톡 치는 나에게 공기를 불어넣고 계속 그 황홀한 키스를 이어갔다.
강승윤이 입을 때서 코 끝만 닿아있는 상태에서 씩 웃고 다시 내 입술에 잠깐 입술을 포갠 뒤 뗐다. 내가 급하게 내 두 팔을 들어 강승윤의 목덜미를 끌었고, 강승윤은 한 번 픽 웃더니 다시 나에게 키스를 했다. 한참 서로를 느끼다가 내가 두른 팔을 내리고 얼굴을 뗐다.
"사랑해"
그날, 하얀 목련 꽃이 화려히 펴있는 목련나무 앞, 가로등이 은은히 비치는 우리 집 앞 벤치에서 나는 강승윤과 첫 키스를 했다.
그날 집에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아마 실실 쪼개면서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흥얼흥얼 거리면서 집으로 들어오니 엄마가 내 방 침대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왜 여기 있어?
"그림 좋더라."
잠깐 분리수거를 하러 나온 엄마가 그 장면을 보았나 보다. 엄마가 핸드폰을 나한테 던졌고, 난 그걸 잡고는 화면에 있는 사진을 보았다. 어찌나 사진을 그렇게 예쁘게 찍었는지.
"승윤 서방이랑 참 좋은 장소에서 키스를 했네, 아유 우리 아들. 그 사진 보냈으니까 잘 간직해 둬. 예쁘다 사진."
사진은 매우 예뻤다. 5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하나는 강승윤이 목을 빼서 나에게 키스를 하는 사진, 코를 맞대고 있는 사진, 강승윤이 나에게 입을 맞추는 사진, 내가 팔을 걸어 키스를 하는 사진, 키스를 하면서 내 가방에 무언갈 넣는 사진. 뭘 넣었지...?하며 혹시 내 물건을 뺏어간 거는 아닌가 싶어서 강승윤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켰더니 "가방 열어봐"라는 문구가 쓰여있었고, 나는 가방 앞주머니 지퍼를 열어보니, 작은 케이스에 심플한 실버링이 있었다.
강승윤의 프사는 브이-를 하고 있는 자신의 셀카로 바뀌어있었고, 그의 펴져있는 두 손가락 중 첫 번째 손가락에 내 것과 마찬가지로 심플한 반지가 끼어있었다.
" 꼭 네 번째 손가락에 껴."
"왜 선배는 두 번째 손가락에 꼈어요 ㅡㅡ"
"사진에서만. 사진에서 반지 잘 보이라고."
강승윤은 항상 그렇게 나에게 설렘과 두근거림만을 가져다주었다. 한 장의 사진이 전송되어 확대해 보니, 그의 굳은살 박인 손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짝반짝은 아니어도, 은색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나는 그 반지를 내 손가락에 껴보니 사이즈는 신기하게도 딱 맞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키보드 칠 때 그 손가락이랑 건반이랑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보느라 키보드 치는 손을 뚫어져라 봤다고 한다. 그냥 물어보지.
나도 강승윤과 같은 자세로 셀카를 찍고 반지가 껴져 있는 내 손을 찍었다. 셀카는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고 내 손을 찍은 사진은 강승윤에게 보냈더니, 아 이쁘다. 하며 지 안목은 매우 뛰어나다느니-하는 소리를 지껄이길래 네. 하고 딱딱한 답을 보내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밋밋하던 손에는 빛에 반사되어 반짝하는 반지가 끼어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반지는 나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있다.
엄마가 보내준 사진을 다시 확인해보니 그 배경이 참 이뻤다. 그 5장의 사진을 강승윤에게 보냈다 "엄마가 찍어줬어요. 큰일 났어요! 엄마가 봤나 봐 아... 강승윤 사랑해 "라는 문구와 함께. 강승윤은 자고 있었는지, 그 다음날 우리 집 앞에서 사진에 대한 얘기를 쫑알쫑알 거렸다. 어떻게 그런 곳을 알았는지. 그 뒤로 그 장소에만 가면 그때의 그 떨림, 그대로 다시 나에게 와서 안 간지 꽤 된 것 같다.
키스를 하고 나니, 더 어색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가까워졌었던 것 같다. 이게 과연 키스의 힘인가.. 싶었다. 첫 키스를 하고 한 달인가가 지나니, 100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었다. 지금은 별로 그리 큰 의미가 없는데, 그때의 100일은 지금 내 나이로써는 1주년 가까이 되는 세월이었다. 강승윤은 그 100일 동안 한 번도 나를 힘들게 한다거나, 울린 적은 없었다. 친한 여자 선배들이랑 인사할 때 질투가 나기는 했었다만.
정확하게 나와 강승윤의 사이를 아는 건 우리 엄마와 송민호 선배였다. 민호 선배는 동성애에 별로 관심 있지도 않고, 그리 혐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둘의 사이를 알고는 강승윤이 어릴 적에는 뭐 뭐 했었는데, 지금은 참 애가 괜찮아졌네. 하며 나는 모르는 그의 얘기를 해주었다. 내가 100일 때는 무얼 해줄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하고 있을 때 송민호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곧 100일이라며. 강승윤도 지금 너 꼴로 하고 앉아있다. 이렇게 하면서 "
머리를 쥐어뜯는 내 포즈를 따라 하더니 지혼자 낄낄낄 웃었다.
"태현아. 이참에 너 귀 뚫어라."
"네?"
"승윤이는 귀 뚫었는데, 너 아직 귀 안 뚫었잖아. 너만 귀 뚫으면 커플 피어싱하면 되잖아."
송민호는 은근히 나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일이 많았다. 그걸 그 선배는 알고는 있을라나.
"승윤이는 이번엔 선물 말고 이벤트 할 모양이더라. 그니까 선물 겹칠까 고민하지 말고 준비해. 그럼 새꺄- 힘내라."
송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내 교실을 나갔다. 100일 선물은 커플 피어싱을 하리라.
100일 전날인 99일이 다가왔고, 오늘은 나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공부를 꽤나 잘했던 강승윤에게는 중요한 중3 기말고사였다. 3학년은 과목 수가 많아 하루 더 봤기 때문에, 나는 그날, 강승윤은 우리 100일인 그 다음날에 시험이 끝났다. 강승윤은 나를 이끌고 평소보다는 좀 더 빠르게 걸었다. 내 집 앞에서 평소에는 빠이빠이 하기 싫어서 찡찡댔는데 그날은 어지간히도 급하게 안녕-하고 제 집 쪽으로 뛰어갔다.
99일이 되는 그날, 친구들은 모두 피시방에 갔고, 피시방에서 두어 시간 게임을 하고 나오니 그제야 피어싱이 생각이 났었다. 엄마에게 부탁해서 하트를 하고 있는 내 전신사진을 찍어달라 했고, " 공부 열심히 하고, 시험 잘봐용 여보 "라는 문구와 함께 그 사진을 보내니 5초도 안돼서 "내일 다 맞을게, 여보." 하고 답장이 왔다. 더 이상 연락을 하면 강승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었기에, 나는 핸드폰을 끄고, 집을 나와 피어싱 가게로 향했다.
피어싱 가게에서 강승윤과는 반대로 왼쪽 귓불에 구멍 하나, 오른쪽 귓불에 구멍 2개를 내고 피어싱 3쌍을 샀다. 2쌍은 똑같은 종류였고, 나머지 하나는 은색 글씨로 작게 N과 K가 적혀있는 피어싱이었다. 남색 큐빅이 박혀있는 피어싱과 N이 적혀있는 피어싱을 각각 꽂고, 나머지 3개는 전에 강승윤이 나에게 준 반지 케이스에 곱게 넣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에 초콜릿과 간식거리를 중간 사이즈의 박스에 피어싱이 들어있는 케이스를 중심으로 담아 가방에 조심히 넣었다. 내일은 꼭 내가 먼저 뽀뽀를 해줘야지-라는 생각과 잠에 들었다.
내 인생의 첫 연애 백 일이었다. 강승윤은 오늘도 어김없이 내 집 앞에서 폰을 들여다보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한 번만 말해주라. 응??"
"선배, 학교 늦어요오. 빨리 가자"
"아아아아- 해주라아아"
강승윤이 내 팔을 잡고 흡사 로봇을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매달렸다. 얼굴은 또 축 처지게 해가지고는 어찌나 귀여웠던지 또 강승윤한테 안겨버릴 뻔했다. 내가 강승윤을 잡아당겼지만, 강승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해주라아아- 하며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여보야, 가자"
이 말에 강승윤이 내 팔을 잡고 그래, 가자 여보야. 하며 당당한 걸음으로 학교로 걸어갔다. 그때, 강승윤이랑 연애할 때에는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강승윤이 연습실이 아닌 어딘가로 향했다. 이내 어느 아파트에 들어와 강승윤이 그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강승윤의 집은 내가 가는 그 길 따라가면 있다 했는데, 여기는 내 집에서 반대 방향이었고, 강승윤은 남의 문을 따고 들어갔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강승윤을 째려봤다.
" 우선 들어와. "
강승윤의 말에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누구 집인지도 몰라서 어색하게 서있자, 소파에 앉아서 TV 보라고 하는 강승윤이 조금 이상했다. 이벤트는 이런 게 이벤트구나- 하며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 따위 보지 않는 15세 남태현은 그냥 강승윤이 하라는 대로 TV를 켰다. 강승윤은 남의 집 냉장고를 뒤적뒤적 대고 있었다.
띠리릭-하며 티비가 켜지고 잠깐 지잉-하더니 어떤 영상이 켜졌다. 반주로는 귀여운 사랑 노래가 흘러나왔고 2초 간격으로 나와 강승윤의 사진 10장이 나왔고, 노래 가사에 맞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강승윤의 사진이 나왔고, 그냥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는 노래 부분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지나갈 때마다 밴드부 선배, 알 수 없는 3학년 선배들이 하트를 하고 있는 사진이 그 박에 맞춰 화면이 바뀌었다.
잠깐 까만 화면이 뜨더니 흠, 흠하며 헛기침을 하는 강승윤의 영상이 떴다. 강승윤은 밥을 차리는 건지 그냥 보기 민망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부엌에서 나오질 않았다.
"안녕, 아 개어색하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서 하는 거야. 시험공부는 아까 너한테 문자 받고 4시간 만에 끝냈어. 진짜야!! 여기 문제집. 어, 음, 하하하. 오늘 우리 100일인데 이벤트를 멋있는 걸로 하려 했는데 시간이 참 애매해서 진짜 소소하게 준비했는데 좋아할지 모르겠다. 섭섭해 하지 마! 아까 그그 하트영상에 밴드부랑 친구들 사진 넣는다고 내가 얼마나 앵겨서 따 낸 건데- 너가 혹시 섭섭해할까 봐 여자애들이 기꺼이 하겠다는 거 내가 꺼지라 그랬어. 잘했지? 실은. 여기가 내 집이야. 너랑 같이 가려고 집 주소까지 속였다. 하핳.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너 가고 나면 맨날 니네 아파트 뒤로 돌아가고 그랬어. 뭐, 하튼 이렇게 내 이벤트가 끝나가네에-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쁘게 사귀자. 내가 잘해줄게. 사랑해, 우리 마누라. "
강승윤의 고백 영상이 끝나고, 난 그저 멍하니 꺼진 화면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거실 불이 꺼지고 강승윤이 큰 초 10개가 꽂혀있는 케이크를 들고 왔다.
"쨔잔- 100일이니까 초 100개 꽂을 수는 없어서 큰 거 10개. 촛농 녹는다. 빨리 불어."
후-하고 촛불이 꺼지고 강승윤이 다시 거실 불을 켰다. 장식이 따로 없는 초코케이크 위에는 강승윤이 썼는지 삐뚤빼뚤하게 '♥100♥'이라고 써져 있었다. 강승윤이 부엌 서랍에서 포크 2개를 꺼내더니 나에게 하나를 건네주었다. 나는 포크를 건네받아 케이크 끝 쪽부터 퍼먹기 시작했다. 둘 다 성장기의 남자여서 그랬는지 그냥 배가 고팠는지 엄청난 속도로 케이크를 먹어치웠다. 강승윤이 케이크를 열심히 퍼먹으면서 내 눈치를 보길래 혹시나 케이크에 반지가 들어있나- 싶었지만 아무리 먹어도 딱딱한 물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 끝 쪽부터 먹어서 이제 중간 부분만 남겨두고 강승윤이 아- 배부르다. 먹고 있어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배가 무지막지하게 고팠던 상태였었는지, 강승윤이 가건 말건 그냥 케이크를 열심히 퍼먹었다. 중간 부분을 해치우고 있는데, 케이크 바닥에서 이상한 비닐이 보였다. 나는 새우깡에서 쥐꼬리가 나온 걸 발견한 사람만큼 충격을 먹은 채 그 비닐을 잡아당겼다.
초코로 덕지덕지 더럽혀져있는 비닐봉지에 묻어있는 초콜릿을 좀 떼보니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비닐을 뜯는 곳을 찾아 탈탈 털어보니 그동안 서로와 찍었던 사진들, 언제 찍었는지 나의 사진들이 인화되어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보내준 그와의 키스 사진도 껴 있었다.
화장실 쪽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나고 손 씻는 소리가 들리더니 강승윤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이게 뭐냐는 내 질문에 강승윤은 뻘쭘한지 목덜미를 긁으며 그거 없으면 100일이 너무 허접해지잖아아... 하면서 말하더니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얼굴이 빨개졌다며 놀리니 강승윤이 내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그러자 내 얼굴에서 열이 나는 듯하더니 강승윤이 너도 빨개- 하며 같이 웃었다.
강승윤이 케이크판을 치우고 나와 함께 집을 나왔다. 역시 밤은 어둑어둑해졌고, 저번보다는 꽤나 많은 집안에서도 많은 불빛이 켜져있었다. 강승윤의 집에서 내 집까지는 거리가 꽤나 상당했다. 나보고 매일매일 이 길을 가라 하면 포기할 정도로. 이유가 강승윤이라면 조금 생각은 해보겠다만. 항상 가던 그 거리 그대로 나의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가방을 뒤적뒤적 대 맨 아래 고이 모셔놓은 박스를 꺼냈다. 그 박스를 강승윤에게 건네주었고 내 옆머리카락을 들어 내 귀를 보여주었다.
" 쨘- 나 귀 뚫었어요. 선배랑 반대로 이쪽에 2개, 이쪽에 하나."
"어? 진짜네. 곧 있으면 다 커플 되겠다."
"그렇 좋고."
내가 씩 웃어 보였다. 항상 그가 먼저 웃어 보였었는데,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먼저 웃어 보인 거 같다. 아닌가- 뭐 아니면 말고.
강승윤에게 살짝 뽀뽀를 하고 빠이빠이-하면서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강승윤에게 카톡으로 " 박스꼭꼭열어봐야해요안열면나화냄ㅡㅡ" 하고 문자를 보내자 시간 옆 1이 없어지고 갑자기 귀 사진이 떠서 놀랐지만 이내 내가 준 피어싱이구나. 하며 기뻐했다.
생각보다 강승윤에게 잘 어울려서 다행이었다. 이제 강승윤과 같은 반지를 끼고, 같은 피어싱을 한다는 사실에 내가 연애 한 번 제대로 하는구나- 하며 거울 속 나를 향해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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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장면에서 저 장면하고 이 장면 중 어떤 걸 할까 고민하다가 번외로 빼내서 써용
(첫키스 번외)
어느새, 내 집 앞에 도착했고, 정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불빛은 없었다. 저 멀리 도로에서 쌩쌩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불빛과 약한 가로등 빛으로만 서로를 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나나 강승윤이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하고 내가 집으로 들어가기 마련이었는데, 그날은 나를 노란 가로등 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벤치 아래로 데려가 날 앉히고 내 옆에 강승윤이 앉았다.
" 선배, 왜요? "
"빠이빠이하기 싫어서"
서로 잘 가라고 인사하는 걸 강승윤은 빠이빠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나이는 많던게 저 단어를 쓰면서 어울리지 않게 아랫입술을 쭉 빼어 입꼬리를 내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꼬리마저 축 내리고는 힝- 하면서 되도 안되는 애교를 피웠다.
"에이, 뭐야. 늦었어 나, 들어가 봐야 돼요. 빠이빠이 선배."
내가 벤치에서 일어나자 강승윤이 내 팔을 잡아 따라 일어나, 내 양 볼을 잡았다.
"사랑해"
강승윤이 내 볼 위로 손을 올리고 한 말은 그 세 글자였고, 강승윤이 제 목을 빼 내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강승윤이 내 목덜미를 잡아댕기자 나의 입이 살짝 벌려졌고, 그 사이로 강승윤의 혀가 파고들었다. 강승윤이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혀를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강승윤은 천천히 내 입안을 휘젓고, 눈을 살짝 떠 당황해서 눈을 뜨고 있는 나의 눈을 살짝 손으로 덮었다. 강승윤이 움직이는 대로, 나도 따라 움직였고, 숨 차서 강승윤의 어깨를 톡톡 치는 나에게 공기를 불어넣고 계속 그 황홀한 키스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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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