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운지민 |
달동네에 들어가는 유일한 출입구 앞 긴 도로를 오 분쯤 걷다보면 제법 멀쩡한 집들이 나왔다. 검은 가방을 맨 남자는 운동화 끈을 확인하고 도로를 따라 걷는다. 이른 아침, 그 허름한 출입구를 지나치면 고등학생이 발랄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남자의 뒤를 따라 걷는 학생은 버스 정류장을 지나친다. 남자는 정류장에 있는 허름한 의자 끝에 앉아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진짜, 작다. 핸드폰을 켜 문자를 확인했다. [오늘도 봤어?] [어.] [그 놈 하나 보려고 지금 나오는 너나] [그게 궁금해서 문자하는 너나] [올 때 라면사와랅 @.@] [어.] 학생을 보려 고개를 돌렸다. 없다. 걸음 하나는 빠르네. 처음 본 날이 아마 학교 체육대회 준비 때문에 일찍 나왔어야 할 여름이었다. 사실 찝찝해서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로 나왔다. 이 시간에 일어난 게 언제더라, 군대에서도 이렇게 못 일어났는데. 아무튼 축구화를 챙기고 나왔다. 귀에 이어폰을 끼며 생각 없이 정류장으로 걷는데 쪼그만 남자애가 달동네 입구에서 총총총 내려왔다. 교복을 보니 내 후배였다. 그것도 고등학생. 몸집은 중학생인데?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빈 의자에 앉고 남자애를 주시했다. 코너를 꺾는 순간까지 지켜보다 버스를 놓쳤다. 그 뒤로 계속 이 시간에 나오는 나를 멍청하게 보는 차학연이 요즘 들어 측은하게 맞이했다. 라면은 어디 있어? 가방 안에. 궁금하다 보고 싶어. 부엌으로 들어가 전자레인지를 켜고 양은 냄비에 물을 담았다. 멍청하게 뒷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걔도 몸이 예뻐.” “뭐?” 아니야. 급히 방으로 들어가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어, 그래. 차학연보다 더 몸이 예뻤다. 어깨 라인이라던가 다리 선이. 키가 좀 그렇지만. 잠이 찾아올 쯤에 라면 냄새가 나서 일어났다. 상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차학연은 음식을 먹으면서 입을 정리할 줄 몰랐다. 아, 진짜. 학교 수업을 듣자마자 흙냄새가 진하게 났다. 학연아 우산 있어? 응. 오늘부터 장마라던데. 봐봐 구름 모이는 거. 내가 네 우산도 챙겼어. 나 같은 친구가 어디 있냐, 너 새끼 정수리 걱정도 해주고. 이마에 꿀밤을 놓고 손에 들린 삼단 우산을 빼앗았다. 분명 오늘 그 학생 손에 우산 없었는데. 나 먼저 간다. 뒤도 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찡찡거리는 소리가 귀를 찌른다. 오늘만, 혹시 모르니까.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신호등을 기다렸다.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진다. 우산을 쓰고 시계를 확인했다. 야자하려나? 안할 것 같은데. 학교 안으로 들어갈까 고민하던 와중 신호등 불이 파랗게 내려왔다. 학교로 가보자. 오랜만에 본 교정은 여전했다. 여기서 한창 뛰어다녔는데. 그럼 아직 학생인 너는? 항상 조금씩 들떠있던데.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으면 개구쟁이 같이 생긴 친구와 만나 같이 골목을 건넌다거나. 적막한 학교에서 흙냄새가 아까보다 심하게 났다. 어디 있을까. 거기에 있을까. 매일 보던 그 출입구. 허름한 세계로 들어가 거칠며 알 수 없는 사회로 나오는 세 걸음 남짓한 그 곳. 주변을 살피며 도착하자 계단에 쪼그려 앉아 땅만 바라보는 네가 있었다. 차라리 집에 들어가지. 교복도 젖고 춥고 처량한데. 눈높이에 맞게 무릎을 구부려 머리 위로 우산을 넘겼다. “학생.” “…예?”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요.” 우산 들어요. 작은 눈으로 얼떨결에 잡은 우산과 나를 번갈아보았다. 나는 태연하게 집으로 걸었다. 갈 생각이 없는지 그저 멍청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빨리 들어가지. 이미 젖은 어깨와 머리가 안쓰러웠다. 그냥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걸 그랬다. 격차가 벌어지자 너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총총총 내 뒤를 따라왔다. 저기요. “나는 이미 맞았어요.” “…나도 맞았는데.” 그럼 둘 다 안 쓰면 되겠네요. 우산을 접고 나를 향해 웃었다. 그게 귀여워서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진짜, 작고 귀엽다. 우산을 돌돌 말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저기 끝 주택에 살죠? 나는 저 위에 살아요. 통통한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깨물면 아파할까 딴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또 봐요. 허리를 구십도까지 꺾으며 인사하고 너는 그 출입구로 뛰어갔다. 사라지는 게 마술 같아서 우산을 쥐었다 폈다 하며 비를 맞았다. 아, 감기 걸릴 것 같은데. 그러면 내일 쟤 못 보는데. 빨리 들어가서 씻어야겠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
태형지민 |
너는 외모만큼 연기 실력이 좋지 않다. 무대와 관객석이 이렇게 먼 데도 어색함이 밀물 오듯이 다가왔다. 연극이 끝나고 맑게 웃으며 나에게 뛰어온다. 꼭 아기 사자 같아 품을 열기에 시간이 걸렸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말랑한 내 볼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싼다. 그게 좋아서 너를 떠나야 한다는 마음을 아주 조금 후회했다. 사람들은 다들 너에게 가능성이 있다며 한 마디씩 던졌다. 글쎄. 외모 발전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맞는 말인데 그 외는 썩. 네가 좋아하는 소나무를 잔뜩 그렸다. 이유가 뭐였더라. 눈을 맞든 비를 맞든 당당한 풍채가 좋다고 그랬다. 눈 모자를 쓴 것 마냥 한 겨울의 소나무를 그려주고 싶었는데 대본과 어울리지 않아 포기했다. 너는 많이 좋아했다. 가져가도 되냐며 웃었다. 둘 집도 없으면서. 몰래 짐을 쌌다. 꼴에 꾸미고 산다고 가방 하나가 가득 차고 몸만 한 캐리어의 삼분의 이만큼이나 빵빵해졌다. 이 안에 너와 같이 산 커플 티셔츠도 있고 내 허름한 운동화를 보고 사준 스니커즈가 있고 며칠간 떨어져 있을 때 첫사랑의 풋풋한 감정이 든 편지가 있다. 내가 두고 가지 못한 이유는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천막에서 나왔다. 자고 있을 네가 나의 앞길을 막았다. 진짜 앞길을 막는 사람이 누구일까. 속으로 작게 비웃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눈동자는 살짝 위로 표정은 없이 입술은 꾹 다물고. 아무 말이라도 해봐. 그래야 덜 불안하지. 이렇게 밉게 바라보면 가기 전인 지금 울 것 같단 말이야. “어디 가는 데.”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올게.” 내가 처음으로 너의 입술에 도장을 찍었다. 많이 놀랐는지 큰 눈으로 나를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너를 지나쳤다. 너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나와 너를 위해 떠나는 마음의 가시가 점점 많아졌다. 그게 많이 아파서 조금 울었다. 아주, 조금. |
정국지민 |
나의 별이 떨어진다. 행선지도 모르게 떨어지는 네가 산속 어딘가 식어가고 있다면 내가 안아줘도 될까. 격렬하게 빛나던 너는 여기로 내려와 모든 걸 잃고 아무도 모르게 그저 돌덩이라며 이름 없이 살겠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너를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를 덩어리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너는 나에게 있어서 세상 하나의 조각이다. 너를 만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대중으로 봐 둔 그곳을 두 발로 내 친히 걸어가 안으리라 생각했다. 가깝고도 멀었다. 분명 눈앞에 네가 있는데 왜 내 걸음은 가지 못하는지. 한참을 고민하다 하루를 꼬박 걸었다. 기어코 찾은 나는 너를 껴안았다. 너는 울고 있었다. 많이 외로웠는지 스스로를 안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너를 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안아 줘야 할까, 아니면 혼자 있는 시간을 줄까. 고민한 끝에 결국 너를 안았다. 분명 너를 혼자 둔다면 계속 울고 있을 것이니까. 내 체온이 느껴지는지 너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린 내 외형보다 너는 더 어렸다. 너는 많이 차가웠다. 그래 이렇게 차가운 너를 어떻게 혼자 둘까. 나는 너를 울리지 않아. 갈색의 차분한 머리를 쓸었다. 너는 내 품에서 쓰러질 듯이 울다 나를 안았다. 그래 너는 너의 하늘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구나. 내 욕심이 너를 아프게 했구나. 내 질투 때문에 네가 망가졌다면 내가 너를 평생 사랑하겠다 마음속으로 수십 번 다짐했다. (별똥별 지민이랑 그 별똥별이 자신에게 오라며 매일 기도한 정국이) |
태형지민 |
너는 어떠한 몸짓을 해도 하늘거린다. 무대 위에 곱게 뻗어있는 발끝이 너무 섬세해서 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손이 위를 잡고 끌어당긴다. 화살에 맞은 듯 표정이 아려왔다. 곧 울 것 같이 망가뜨린 미간 아래로 동글동글한 코가 빨개졌다. 한 바퀴 돌고 한 마리의 새처럼 뛰어오르는 네가 정말 날아갈까 불안했다. 뒤에 배경으로 달려있는 보름달과 짙은 남색에 하얀색으로 점이 한 두 개 찍혀있는 하늘이 외로워 보였다. 나에게 있어서 너는 항상 위협적이다. 내 모든 감정을 가져갔는데 도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너에게 무엇을 줘야 할까 너를 어떻게 채울까 사탕 발린 언어로 너를 달래야 할까. 나의 손을 주고 포옹을 주고 입술을 주고 사랑을 주었다. 그게 나의 모든 것인데, 나는 남아있는 것이 없는데. 그래, 그냥 나를 주면 되겠구나. 너는 나를 무엇이라 생각할까. 단순히 사랑했었던 사람일까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사람일까. 나를 다 갉아먹고 나서 너는 행복했을까. 네가 조금이라도 만족했으면 난 그걸로 행복해. 너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선을 이어가는 너의 몸이 조금 얄궂다. 다리를 천천히 뻗으며 상체를 아래로 숙인다. 검은 머리카락이 너의 피부에 닿는다. 땀 때문에 달라붙어있어 떼어주고 싶었다. 네가 흘린 땀에 내가 비쳤으면 좋겠다. “행복하니?” 너는 여전히 무대 위를 차분히 걸었다. 정확히 네가 잘 보이지도 않고 너무 잘 보이는 자리에도 앉지 않는 자리가 고마웠다. 지금 내 표정이 얼마나 추한지 알기 때문에. 나오는 음악이 점점 웅장해지고 너의 모습도 격해졌다. 마무리는 주저앉아 무릎을 감싸는 거겠지. 너는 항상 그랬으니까. 음악이 점점 잔잔해지며 너의 선이 더 부드러워졌다. 얼굴이 위를 보는 순간 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지독하게 흘렸던 눈물을 왜 지금 흘리는 건지. 사람들은 너의 눈물에 격한 박수를 들려주었다. 보는 내가 더 아프다. 행복하라고 너를 놓았는데 왜 울어. 웃으라고 너를 보냈는데 왜 울어. 항상 그렇듯이 너는 너를 감싸 안으며 무대를 끝냈다. 사람들이 너무 행복하게 웃으며 우아한 자태로 손뼉을 치며 조명이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붉어진 눈두덩이로 웃으며 인사를 하는 너를 차마 보지 못하겠다. 제발 행복해서 엉망진창이 된 나를 다시 한 번 찾아와줘. 우리가 만났던 그날처럼 안아줘. 여전히 사랑한다고 착각할 수 있게 반겨줘. 눈이 마주쳤다. 너의 눈에 물이 가득 차오르고 있다. 톡 떨어지다 턱 끝까지 내려오는 눈물방울이 내 말에 대한 대답 같아 고마웠다. 너의 기억 속에서 내가 아름다웠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할까. 나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욕심이 커서 만족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도 너의 사람이고 너는 나의 사람이고 싶다. (무용하는 지민이 바라만보는 태형이) |
정국지민 |
무슨 일인가 했네. 맞은편에 앉아있는 교복 입은 남자는 밥 먹기 싫은지 숟가락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한 그릇 가득한 쌀밥이 연기를 내보였다. 먹으라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밥 한가운데 꽂았다. 한 입 가득 담고 나서 오물오물 씹는 게 꼭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 같아서 좀 많이, 웃겼다. “우리 아들은 왜 안 먹어?” 먼저 드세요. 인디언 보조개가 자글자글해질 만큼 웃었다. 어머니는 내 앞에 반찬을 두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가정부가 다 해놓은 음식을 자신이 한 것처럼 하는 꼬락서니가 한심했다. 어머니가 수저를 들자마자 나도 밥을 먹었다. 남자는 반찬을 집지도 않고 밥만 입안에 넣었다. 학교에 수업받아야 할 나를 불러놓고 뭐 하는 짓인지 한참 고민했다. 저 남자는 뭐길래 여기서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지금 물어보기엔 타이밍이 애매했다. 결국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시선이 남자에게 머물러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힐끗거리며 쳐다보았고 나는 대놓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장난 좀 칠까. 남자의 밥 위에 고기를 올려놓았다. 아까처럼 웃으며 아이같이 말했다. “드세요.” “아, 고마워요.” 목소리는 많이 어리네? 아버지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래 이거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자마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버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국아. 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도 가져갈까 봐 무섭나 보네. “네 아버지.” “알아서 먹게 내버려 둬라.” 밥만 먹고 있는 사람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를 보았다. 눈치를 보는 폼이 많이 어려 보였다. 세 사람 다 밥을 먹지 않았다. 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마저 자리에 일어나 서재로 들어갔다. 이때다. “누구세요?” 물을 마시고 물어보았다. 대충은 알 것 같은데.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보자마자 이내 눈을 깔았다. 찔리는 게 있긴 있구나. 핸드폰을 만지며 딴청을 피우는 듯싶었다. 화면을 나에게 넘겼다. 적힌 단어가 설득력 있었다. [당신 아버지께서 직접 나를 스폰 하겠다네요.] 남자는 아까와는 다르게 씩씩하게 밥을 먹었다. 뭐야? 연기한 거야? 내가 대놓고 웃자 내 앞에 있는 반찬을 입에 넣으며 웃었다. 너 나보다 어리지? 어. 그거 알아? 너네 엄마 요리 못하는 거? 이거 가정부가 한 거야. 역시, 맛있더라. 연기하니까 재미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려면 이 정도 연기쯤이야. 뭐하고 싶은데? 무용. 몸 예쁘겠네? 그러니까 너네 아빠가 직접 왔지. 대단한 년. 년 아니라 놈이거든? 다리 벌리면 똑같지 뭐. |
정국지민 |
정국아 오늘 중요한 날인 거 알지? 가슴을 쓸며 애타는 눈으로 바라보는 어머니가 오늘따라 더 가냘퍼보였다. 자주 색의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낸 드레스는 열일곱의 아들이 있는 아줌마로 보이지 않았다. 우아한 목덜미를 바라보다 작게 숨을 뱉었다. 조금은 나이 들어 보이는 것도 좋은데. 레스토랑에 들어가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인상 좋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었고 옆에 앉아있는 아들은 재미없다는 듯 턱을 괴고 물이 담긴 와인잔을 들며 빙빙 돌리기만 했다. 남자의 손을 잡으며 소녀처럼 웃고 있는 어머니가 밉고 고마웠다.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나와 있을 땐 웃지도 않으면서. 찰랑이며 와인 잔 안으로 들어가는 물을 보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내 이름을 물었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에 눈을 살짝 접으니 웃는 모습이 예쁘다며 껄껄 웃었다. 표정과 다르게 속마음은 어디론가 내려가는 듯 찜찜하고 더러웠다. 웃는 내 모습이 웃긴지 아들은 내 눈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기 바빴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대화소리와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아들과 나는 그 소리마저 끼기 어려웠다. 그들만의 세상. 이 표현이 알맞았다. 아들은 반 이상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을 챙기지 않은 걸 보니 화장실에 간 듯했고, 이때다 싶어 남자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아들이 숫기가 없어서, 괜찮지?” “그럼요. 잘생기셨던데요.” 정말로, 내 취향일 정도로. 남자는 기분 좋은 듯 안경을 올렸다. 자리에 앉아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나마 먹었던 부분을 덜어주었다. 아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웃으며 먹으라며 눈썹을 씰룩거렸다. 입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다 그냥 갑자기 입술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어쩐 일이라며 고상하게 웃었다. 아니, 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
태형지민 |
나는 제멋대로다. 그래서 오늘의 이별도 내 멋대로 발설하고 만다. 철교 아래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 너의 말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너를 덜 아프게 하려고 말이다. 나는 더 이상 내 옆에서 웃지 않는 너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제멋대로라도 너와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려고 한다. 너는 나를 잡지 않는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 이름 불러주면 안 될까, 못 들은 척 넘어가 줄 테니까 그냥 불러주면 안 될까. 등 뒤의 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우는 표정일까 아니면 덤덤하게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까. 손이라도 내밀고 있을까. 너와 멀어지는 이 순간마저 네가 보고 싶고 안고 싶어서 두 눈을 꼭 감았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한 것처럼 태연하고 당연하듯이 말한 이별을 너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깊게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일상이 언제부터 무표정이었을까. 분명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너의 뺨을 코를 손등을 어루만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눈빛부터 지쳐있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왜 눈에서는 그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자꾸 흐르는 눈물을 닦고 너를 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뒤돌았다. “왜 울어. 지민아.” 왜, 너도 우는 건데. 권태의 시작은 누가 했는지 몰라도 이별은 내가 먼저 할게. 내가 먼저 말하고 내가 먼저 아파할게. 너는 아프지 말라고 애를 쓰는데. 왜 울어 지민아. 다가가고 싶어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너도 나를 기다리는 듯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한참을 서로 바라보다 지민이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난 울지 말아야지 마지막이니까 울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눈에선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비 온다고 했었는데 내 눈에선 이미 소나기가 내린다. 발발 떠는 몸으로 너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민아 우리 마지막인데 이렇게 하면 너무 아프잖아.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가지 마.” 끅끅거리며 말을 하는 네가 안쓰럽다가도 미안하다. 우리가 다시 서로를 보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럴까. 서로가 더 냉정해지기 전에 여기서 끝내야 하는 게 따듯하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내 손을 잡으려는 너를 뒷걸음으로 멀어지게 하고 나서야 너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그랬지 너 우는 거 더럽게 못생겼다고. 기왕 마지막인데 우리 웃으면서 헤어지자. |
통일성을 위해 슈랩뷔는 안올림... 홈에다 올려야지...
그나저나 엄청 많이 썼넼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