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감정에도 적당함이 존재한다
01
/꺼민/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오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의 봄길 中
그 이후로 세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에게 아직 세훈의 가디건이 있어서 빨리 전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마다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기만 했다.
얼핏 본 것 같아 달려가면 어느새 사라져 있고
시선이 느껴져 그 쪽을 바라보면 세훈의 모습은 커녕 머리카락도 보기 힘들었다.
찾으니까 없는 사람, 답답하다.
"그래서 아직도 가디건을 갖고 있다고?"
"응.내가 클리닝도 맡기고 예쁘게 보관하고 있는데 이러다 도로 눅눅해지겠어."
"너도 정성이다.좋아하냐?"
"아,그 흑백논리는 뭐야."
"유식한 용어 쓰지마.짜증나니까."
"ㅋㅋㅋㅋㅋ미친놈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릴 때부터 친했던 경수랑 대학교 밖에서 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데
옆 테이블에 여고생들이 우루루 모여 꺅꺅거리는게 들렸다.
신기해서 멍하니 쳐다보는데 괜히 아련해지고 그랬다.
하...내 꽃같았던 고등학교 시절...크흡..
"뭘 그리 빤히 보냐."
"...야...내가 저렇게 풋풋했었다..아,귀엽네."
"...존나 진상부리고 있어.너 스무살이다."
"야,내가 반년만에 몸이 얼마나 상했는데!내 몸이 아니에요."
"ㅋㅋㅋ하긴 너 살도 많이 빠지고..수척해지긴 했지."
"그건 다이어트 한거고 병신아."
도경수는 다 좋은데 말이 안통한다.
참 좋은 친구다.
"아니아니 봐봐.찬열오빠가 제일 잘생겼다니까?"
"뭐라는거야 이년이.오늘 종인오빠 핏 못봤냐?"
"오세훈 두고 핏타령이야."
"야 찬열오빠가 키 제일 크고 어?"
"근데 오다리."
"아 존나!!!친구라고 데려온게 잘못이지."
도경수랑 계속 투닥거리고 있는데 아까부터 그 여고생 무리 대화가 거슬렸다.
익숙한 이름이 자꾸 오르락내리락 거리는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오세훈?우리 학교 1학년 오세훈 말하는건가?
찬열..종인..다 우리학교 같은데.
"야,야!!!내 말 듣고 있어?"
"어..어?뭐라고?"
"그만 좀 봐라.그렇게 그립냐?어?"
"..아니..쟤네가 오세훈 얘기 하는 것 같길래."
"별 꼴갑을 다 보겠네."
"야야,그러지말고 너 찬열이랑 종인이라고 알아?"
도경수가 큰 눈을 말갛게 뜨며 입을 삐죽거렸다.
저 거만한 표정봐라.
난 자포자기한듯 다음에 밥 한번 사겠다고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오세훈을 만나야 되는게 우선이었다.
"박찬열 우리과야.뭐,나름 친하고."
"헐.오세훈이랑은?"
"내가 알기론 그 셋이 엄청 친하다는데.부모님들끼리 아는 사이라 어릴때부터 친했대.우리처럼."
"아..그렇구나.야,넌 알면서 왜 말을 안했어?"
"안 물어봤잖아.나한테 지랄."
할 말이 없어서 괜히 어깨를 퍽 때렸더니 눈을 부릅뜨고 날 노려보는 도경수였다.
도경수는 박찬열한테 내 얘기를 한 적이 없어서 나에 대해 아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정 그렇게 원하면 박찬열한테 전화라도 해보겠다고 해서 바로 콜을 외쳤다.
혹시 모르니까 라는 실날같은 희망을 품에 안고 도경수에게 찰싹 붙었다.
우리 입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나오니 여학생들이 우릴 쳐다보기도 했다.
야,근데 신기하긴 하네.여고생들이 쫓아다닐 정도면 얼마나 인기가 많은거야...그 정도 인가.
"아,더워.붙지마."
"그럼 스피커폰하던가!"
"으,알겠다고.존나 누가보면 보고싶어서 미친 줄 알겠다."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거 아니야.빨리빨리!"
"네네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뭔데 떨리는 거지?
내 자신이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순간순간 계속 바뀌는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도경수는 날 보며 쯧쯧 혀를 찼다.
더위먹은게 틀림이 없다면서.
-여어~경수야.
"어.너 뭐하냐?"
-나...?여기 연습실.왜.형님 보고싶냐.
"됬고, 혼자 연습하는 중이야?"
-아니.애들이랑 놀고 있는데?오게?
"누군데."
-오세훈.김종인.내가 말한 적 있지?
도경수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날 향해 눈을 찡긋거리며 입모양으로 럭키를 외쳤다.
막상 또 오세훈 소식을 들으니 나는 담담해졌다.
멀쩡하게 학교에 있으면서 안 보였다는건 피했다는 소린가?이상하네.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앞길이 캄캄했다.
어색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겹치면서.
"내가 거길 왜 가냐.계속 거기 있을거야?"
-어.너는 뭐 하는데?
"나..뭐.떡볶이 먹는데."
-ㅋㅋㅋㅋㅋ안 어울리게 떡볶이야.누구랑?
".....어...친구."
-얼레~?왜 말을 더듬으십니까?여자친구냐?
"아니야.그냥 친구야.너 계속 거기 있어라."
-에..?왜 그러는데?
"있으라면 있어."
도경수는 친구들한테 생각보다 굉장히 시크한 편이었다.오히려 나랑 있을 때 말이 많을 정도로.
애가 생긴건 귀여워가지고 남자다운 척을 엄청 한다.
도경수는 전화를 뚝 끊더니 됬냐? 라면서 또 생색을 냈다.
내가 우물쭈물거리자 같이는 안 간다면서 딱 잘라 말하는 좋은 친구다.
난 실음과 연습실이 어디있는 줄도 모르는데 매정한 실음과 친구여...
겨우겨우 찾아온 실음과 연습실인데 연습실이 한 두개가 아니다.
당황스러워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는데 사람이 없는지 조용했다.
오세훈의 가디건이 든 쇼핑백만 만지작 거리면서 살금살금 걸었다.정말 살금살금.
"와,진짜 오세훈 병신 아니야?"
"조용히 해."
저 멀리서 소근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 다가가니 놀랍게도 정말 오세훈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은땀이 난다.뭔데 긴장하지?대학교 면접도 긴장 별로 안했던 강심장인 내가.
더욱 숨죽여 다가가는데 살짝 열려있는 연습실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뒤통수와 처음보는 얼굴들.
아 저 둘이 박찬열,김종인인가 보다.
잘생긴 외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래서 여고생들이 따라다니는 구나.하긴 오세훈도 잘생기긴 했는데..
멍 때리며 다른 생각을 하느라 들어갈 타이밍을 놓쳤다.
난 문을 등지고 그들의 대화를 몰래 듣는 상황이 되었다.웃기게도.
"그래서 지금까지 안 만났다고?"
"응."
"와 생긴건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아가지고 수줍음은 존나 타요."
"야, 수줍어서가 아니라고."
"세훈아.거짓말도 할수록 자연스러워 진다더니 너 많이 변했다."
"아,김종인 너까지 그럴래?"
"어머어머 쟤봐라.귀 빨개지는 것봐!!!"
"아씨,박찬열!"
일방적으로 놀림받는 오세훈의 모습이 웃겨 웃음이 나왔다.
박찬열이라는 애는 낮은 목소리에 비해 촐싹되는 성격이었고 김종인은 말이 없다가 툭툭 내뱉는 스타일이었다.
그 사이에 오세훈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무슨 얘기를 하는지 감이 안 잡혔지만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계속 듣고 있어야 했다.
이게 뭐야.남의 이야기나 엿듣는 사람 같고.
"걔가 너 안 싫어하는 것 같다며.번호도 안 땄냐?"
"...어..어떻게 번호를 따..이름도 겨우 알려줬는데."
"...미친 새끼.내가 너였으면 지금 사귀고도 남았겠다."
"야,말 가려라.누구랑 사겨."
"허이고야?무서워서 살겠나?"
"박찬열 그만해라.좀.얘 이러는거 한두번이냐.고딩때부터 이랬어."
"존나 순정남이세요."
아무래도 오세훈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나보다.
뒷목이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에 이상해서 벅벅 긁었다.
내 얘기인가?라는 생각이 번뜩 들자 내가 진정 미친거라고 확신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들어갈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니 가디건도 친절히 둘러줬다며!그럴 용기는 어디서 나왔.....에?"
".......어...안녕..아니..음..저기.."
박찬열의 큰 눈이 2배로 더 커진걸 보고 나도 오히려 당황해 쇼핑백을 놓칠 뻔 했다.
덤으로 박찬열 입에서 나온 가디건 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시종일관 무심한 표정일 것 같은 김종인도 덩달아 입이 벌어졌다.
기분이 이상해 입술만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갈색머리에 오세훈 뒤통수가 돌아갔다.
"..........안녕.세훈아."
"헐."
그 소리는 세훈이 입에서가 아닌 박찬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항상 포커페이스였던 오세훈의 얼굴을 정말 당황한 표정으로 마주했다.
일주일만에 보는 오세훈이었다.
변한게 하나도 없었다.빨개진 귀와 당황한 눈 빼고는.
"....야야!뭐하냐!손님 왔는데."
"......어.그러게.여기 앉을래?"
"아니..난 괜찮은데.그냥 이거 전해주려고..잠깐."
오세훈한테 용기내어 한 인사가 무참히 씹히고 어색한 정적을 깬건 역시나 박찬열이었다.
김종인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는데 빨리 이 자릴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만으로 책상에 쇼핑백을 올려놨다.
어색하게 웃으며 그만 가보겠다고 하고 휙 나와 버렸다.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간접고백을 받은건 또 처음이었다.아니...고백이 아닌가?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너무 늦게 왔죠?ㅠㅠㅠ죄송해요 빠른 업뎃하도록 할게요.
다음편에는 세훈이 시점으로 과거가 나올 것 같아요!
진도 팍팍 때립시다 여러분!
브금이 귀여워서 내 글도 귀여워지뮤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암호닉
긴청
사과머리
규야
사랑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