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감정에도 적당함이 존재한다
03
/꺼민/
지긋지긋했던 시험이 끝이 났다.
시험이 끝나는 날은 밀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누워서 계속 돌려보고 때도 밀며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날이었다.
물론 난 지금 20년 인생동안 그래왔다.근데 대학에 들어오는 순간 나의 오래된 습관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분위기메이커랍시고 항상 나서다 고생하는 우리 과대때문에 난 꼼짝없이 잡혀가야 했다.
과대는 시험도 끝났는데 어딜 들어가냐며 과 애들 다 모았으니까 무조건 와야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난 사실 술을 굉장히 좋아한다.과대가 쏘는게 분명 할텐데 마다할리가 없다.
단, 문제는 과 애들을 모두 모았다는게 문제가 되는거지.분명 오세훈이 있을거다.
과대가 안오면 평생을 괴롭힐거라고 고래고래 소지를 질러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말 간이 배밖으로 튀어나온 애 아니면 오게 되어있다.
과 안에서 그렇게 존재감없고 친구도 없고 아싸를 자처하는 오세훈도 술자리는 꼬박꼬박 나왔으니까.
그 이후로 시험기간이라 나대로 너무 바쁘고 도서관에서 아예 살다시피 해서 오세훈을 잠깐 잊고 있었다.
즉 그때 실음과 연습실 사건 이후로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건데 오늘 보게 될거라는 거다.
시험으로 인한 푸석해진 내 피부와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그리고 찌뿌등한 몸상태까지.오늘 최악인데 그를 마주해야 한다니.
이 와중에 외모에 신경쓰고 있는 내 자신도 한심하다.
"자자,다 모였네요.여러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신난 과대와 과동기들.할 일 없는 선배님들까지 다 모이니 치킨집은 터질 듯 했다.
사실 우리과는 소수인원이라 별로 많은 인원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시끌시끌했다.
자리배치는 또 어쩜 이런지 난 하필 오세훈 맞은편 대각선이었다.
마주보고 앉지 않은것에 감사해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자,오늘 제가 치킨 쏘는 거니까 마음껏 드시고!먹고 죽자!"
"와아~~"
과대는 돈도 많다.응?
다음 학기부터는 회비를 걷어서 하자는 과대 말에 질색을 한 나지만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여서 그러려니 됬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 과 회식을 매번 해야한다는 소리이다.
참 우리 과 애들은 착하고 성격도 밝고 사교성도 좋고....다 좋네.
"야,너 오늘 어디 아파?술만 들어가면 헤벌레한 애가 왜이래?"
"좀 피곤해서 그래."
"얼씨구야.피곤한게 풀메이크업하냐?달릴거지?"
"......내가 누군데.가야지."
과에서 제일 친한 여정이랑 소근소근 떠들고 있는데 내 반대편에 앉은 과대가 벌써부터 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사실 난 술고래다.아니 고래라고 하기에는 오바긴 하지만
술을 잘 마신다.좋아하고.
우리집은 모두가 애주가인데다가 주사도 없어서 나도 자연스럽게 술을 컨트롤할 능력이 됬다.
보통 남자애들보다 술이 쎄고 잘 취하지 않고 좋아해서 친구들 사이에선 술 잘마시는 애로 통한다.
피곤에 찌든 몸이지만 술 들어갈 상태는 된다는 소리다.공짜라는데 마다할 이유도 전혀 없고.
"야,마셔마셔.홀짝거리지 말고."
"넌 참 체력 좋아서 부럽다.과대."
"내가 누군데.오늘 2차,3차 다 때린다."
"얼씨구."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기분도 업되면서 나도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앞에 과대랑도 떠들고 여정이랑도 떠들면서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가끔 오세훈쪽을 바라보긴 했지만 그도 여전히 술만 홀짝거리며 대충 분위기를 즐기는 듯 했다.
워낙 우리 과에서 아웃사이더인 오세훈이기 때문에 딱히 사람들과 어울릴려고 하진 않았다.
성격이 이상한 것 같지도 않고 낯을 딱히 가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리 사람들과 안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말 없이 술만 마시는 오세훈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쳐 황급히 눈을 돌렸다.
아...방금 진짜 웃겼다.내 표정 진짜 웃겼을거야.
"자자,분위기도 후끈후끈 달아오르는데 게임이나 하자."
"그래그래.랜덤게임?"
"아,지겨워.좀 생각해봐.과대야."
"내가 오락부장까지 하라고?너무하네."
"우리 과끼리 친해진 것도 같은데 진실게임 어떠냐,어?"
"오오!!!!그래그래.이제 썸 탈 시기가 됬지!!"
"아,유치하게 무슨 진실게임이야?콜."
애들끼리 낄낄거리며 떠들다가 나온 얘기가 결국 진실게임이다.
내가 최악으로 싫어하는 게임인데 이미 진실게임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인원이 많은데 설마 내가 걸리겠어 하는 생각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동의했다.
그리고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오게 되어있지.
"와!!!이번에...어...오세훈."
".....나?"
"그러게.너네.자,세훈이한테 질문 할 사람?"
재미없는 진실게임이 계속 되고 있는데 오세훈이 걸렸다.
쟤가 걸렸는데 이상하게 내가 긴장이 되서 뒷목이 뻐근해졌다.
그냥 말똥말똥 오세훈을 쳐다보는데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다.
흠칫 몸을 떨었지만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그냥 그러고 싶었다.
다들 세훈이랑 친하지 않아서 그런지 질문하기를 꺼려했다.왕따도 아니고.
나라도 해야하나 하고 있는데 오지라퍼 과대가 번쩍 손을 들더니 자기가 질문하겠다고 했다.
"내가 알지.오세훈의 숨겨진 비밀을~"
"올~과대가 뭘 아나본데.뭐야뭐야."
"오세훈이 최근에 선배가 OOO한테 심부름 시킨거 대신 해주고 가디건도 덮어주고 했다던데~"
"으에~?"
그 소문이 어느새 너희 귀까지 들어갔냐...내가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는데 애들이 날 보고 막 소리를 질러댔다.
조용한 놈들이 문제라는 둥 이렇게 보니까 잘 어울린다는 둥 오세훈은 아무 대답도 안했는데 자기들이 더 난리였다.
과대는 선배들한테 들었다며 선배들은 이미 우리 둘이 뭐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머리가 띵하다.띵해.
오세훈은 한참 생각하는 표정이었다.사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저 입이 제일 무섭다.참.
"대답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어?어!그래.둘이 어떤 사인데 뭔데?"
"일방적인 사이.아직까지는."
"응?뭐?"
"내가 일방적이라고.지금은."
오세훈의 대답은 치킨집을 뒤집을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조명이 어두워서 티가 안났겠지만 난 얼굴이 토마토처럼 시뻘게졌을것이다.얼굴이 화끈거리는게 느껴졌으니까.
오세훈은 평소처럼 유지하던 포커페이스로 다시 술만 홀짝거렸다.뻔뻔하기는.
괜히 일 벌려놓고 무책임하게 구는 오세훈이 미웠다.사실 기대한 것도 맞고 떨렸던 것도 맞는데 속이 콩알만한건지
왜 저리 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오세훈이 미웠다.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한심했다.
"야야,돌려돌려."
"오세훈 돌려!!!이거이거 OOO나오면 대박인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안 좋은 예감은 항상 들어 맞는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오세훈 손끝에 집중해 있을때 나 빼고 모두가 바라던 결과가 나온다는게.
이 많은 인원 중에 지금까지 한번도 안 걸린 내가 걸릴 확률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결국 나였다.
"와악!!!!!!!!!!OOO이다."
"ㅋㅋㅋㅋㅋㅋ대박 대박이야."
"누가 질문해?내가 할래!!!"
"아니야.내가 할래."
대학와서 동기들한테 이렇게 인기 있기는 처음이다.
테이블에 고개를 쳐박고 한숨을 푹 쉬었다.난 이미 멘붕이었다.
그래,해라 해.
"어허!너희 룰 알지?진실게임에서 이어지는 질문 하면 안되는 거.오세훈 관련된거 금지임."
"아,과대!그런게 어딨냐.존나 재미없게."
"와씨,그럼 뭐 물어봐."
"그냥 해.처음에 약속한 거 가지고."
이런 일을 예상했던 것처럼 과대는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넘겼다.
저거 작정했네.작정했어.내가 과대를 마구 흘기자 씨익 웃으며 능글맞게 넘어가는 과대였다.
우리 과에서 짓궂기로 소문난 남자애가 한명있었는데 걔가 손을 번쩍 들더니 질문하겠다고 설쳤다.
옆에서 여정이가 이상한 소리하면 죽인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 남자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너 남자랑 진도 어디까지 나가봤냐?"
표정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무너졌다.
남자애들은 재밌다고 킥킥거렸지만 여자한테는 정말 기분나쁘고 예민한 질문이었다.
사실 답하기는 어렵지 않다.하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하던간에 소문으로 와전될게 뻔하고 안좋은 소리를 들을게 뻔하니까.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여정이는 저럴 줄 알았다며 반쯤 죽여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난 그런 여정이를 앉혀야 했다.
내 앞에 놓인 폭탄주를 마시면 노코멘트로 넘어가니까 조용히 폭탄주잔을 들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잘 마신다.
마시려는 순간 누가 내 잔을 채갔다.놀랍게도 오세훈이었다.
오세훈은 망설임없이 그 폭탄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옆에 보고 있던 애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럴수록 일이 복잡해지고 내 마음도 복잡해진다는걸 모르는걸까?
"와!!오세훈 존나 남자다!"
"흑기사는 소원 말할수 있지 않냐?워후~"
"고백해!고백해!"
시끄러운 애들 사이에서 우린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사실 마주쳤다고 할 수 없는게 내가 거의 째려보다시피 했다.
오세훈은 뒷머릴 긁적거리더니 자리에 풀석 앉았다.소원은 다음에 말하겠다고 하며 어물쩡 넘어갔다.
하얀 얼굴이 조금 발개진 것 같은데 오세훈은 지금 취한것 같다.
조금씩 마시더니 결국은 취한건지 고개를 푹숙이고 손만 꼼지락대고 있었다.
순간 또 귀여워서 웃음이 새어나왔다.바람빠진 웃음소리가 오세훈에게 들린걸까 오세훈이 다시 날 향해 고갤 들었다.
발개진 볼과 배시시 웃는 미소가 오세훈답지 않았다.그리고는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많이 마시지 말라며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취하면 저렇게 귀여워지는 구나.
"2차 가자.2차!!!!"
"과대...지치지도 않냐."
"이제 시작이야~이제!!야야.집 갈 애들 보내고 노래방 가자."
오늘 술을 많이 못 마셔서 나는 2차가 당겼다.
여정이는 통금시간이 있다며 먼저 집에 갔고 난 애매모호한 이 감정을 불사지르기 위해 2차에 가겠다고 했다.
오세훈은 걷는 폼이 흔들릴정도로 취해서는 2차에 오겠다고 했다.
애들은 내가 간다니까 가는 거라며 오세훈이 2차 가는걸 처음 봤다고 또 나랑 엮었다.
과대랑 안 취한 남자애들이 대충 세훈을 부축하고 우린 노래방으로 향했다.
10명 이내로 줄어든 우리 애들은 편하게 노래방으로 들어섰다.애들이 많이 남을 줄 알았는데 역시 다들 피곤한 듯 집에 가봤다.
안 취한 애들은 극히 드물었고 취해도 끝까지 달린다고 큰소리 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난 본격적으로 마시려고 했지만 나만 빤히 쳐다보는 오세훈이 신경쓰여 그러지도 못했다.
"야야,안되겠다.오세훈 쟤 집에 보내자."
"...괜찮아.안가."
"니 상태가 안괜찮은데 이새꺄.빨리 일어나."
"....바람 쐬면 괜찮아져...진짜로."
"후...세수라도 하고와라.어?"
"..응.."
결국 오세훈은 비틀거리며 노래방을 나갔다.
신경쓰였지만 별 생각없이 애들 노래부르는걸 구경이나 하며 술을 마셨다.
과대는 진짜 안 취해도 잘 논다.
여정이한테 톡하느라 폰만 보며 술을 마시는데 과대가 나한테 다가왔다.
"이야~역시.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어,넌."
"칭찬 고맙다."
"...야.아까 내가 오세훈한테 쓸데없는 질문해서 많이 곤란했냐?"
"물론이지.동네방네 소문날텐데."
"미안하다...근데 진짜 오세훈이 너무 불쌍해서."
"....어?"
"쟤 눈에서 대놓고 너가 읽히는데 어쩌냐.내가 원래 잘 설치니까.저 새끼 우리 과랑 잘 안어울려도 꼬박꼬박 나오는게 너때문인걸 내가 아는데.."
"무슨 소린데.이해되게 설명해."
"...아씨.내가 오늘 무슨 모임있다 문자하면 꼭 뭐라고 보내는 줄 아냐?"
"...뭐."
"너 오냐고.너 있냐고."
"......."
"웃기는 애야.오세훈도.쟤 저렇게 취한 것도 처음보는데 나갔다 와봐."
"내가 왜.."
"사고칠까봐지.그래도 너 눈 앞에 보이면 정신차릴 놈인데.응?잘 좀 해봐라.세훈이 안쓰럽지도 않냐."
항상 이런 식이다.나에 대한 너의 마음을 왜 항상 3자를 통해서 들어야 하는지.
너의 입에서 직접.마주보고 가까이.
듣고 싶다.세훈아.
밖을 나가보니 노래방 건물 앞에서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오세훈이 보였다.
조용히 다가가 옆에 같이 쪼그려 앉으니 오세훈의 고개가 서서히 들렸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세훈이의 눈이 또렷하게 보였다.
우린 그렇게 가까이서 눈을 마주쳤다.세훈의 눈은 풀려있었지만 날 담고 있는 눈동자는 선명했다.
살살 부는 바람이 내 몸을 간질였다.
"...안돼."
"........응?"
"...치마...안돼."
잘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데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세훈은 내 치마를 가르키더니 막 손사래를 쳤다.
아마 치마 입고 쪼그려 앉아서 그러는 것 같았다.
"괜찮아.안보여."
"...그래두.."
"정말이야.술은 좀 깨?"
"어...어...아니."
"....후..그래.그런 것 같다."
발그레한 볼과 그한테 풍기는 술냄새가 완전히 취한 오세훈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정도로 많이 마셨는데 주사가 없는게 참 신기했다.
달라진 거라곤 느려진 말투와 잘 웃는 표정 뿐이었다.
무릎을 모아 끌어안고 머리를 기대 아예 세훈쪽으로 고개를 고정시켰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부끄러운지 오세훈이 괜히 고갤 숙이고 웃었다.
이렇게 보면 참 순진한 어린 소년같다.
"저기..있자나.."
"응?"
"..나 아까 흑기사..그거."
"..아..어."
"소원...."
긴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조용하고 느리게 말하는 오세훈때문에 저절로 그의 소리에 집중하게 됬다.
바람소리와 그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거..취해서 하는 소리 아니고..며칠 전부터 고민한건데.."
"응."
"나름..구실이 생겼으니까..그래서 그런건데."
"응."
"소원 들어줘."
"...그래서 뭔데?소원?"
가까운 거리에서 오세훈이 내 쪽으로 고갤 돌렸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 당황해 눈이 커졌다.
새근새근 작게 숨쉬는 오세훈의 숨결이 느껴졌다.
풀린 눈으로 날 보는 오세훈의 눈빛이 참 묘했다.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 쿵쾅거렸다.
"...번호...좀...줄래."
"........"
"전화번호..를 갖고 싶어."
웃기게도 괜히 아쉬운 내 마음은 뭘까.
하지만 기뻤다.오세훈이 나에게 한발짝 더 다가왔다.
끄흐뷰ㅠㅠㅠㅠ늦어서 죄송해요.뭐라 할말이 없어요....흑흐ㅏㄱ
전 나름 뺀다고 하는데 진도가 왜이리 안나갈까요..세훈이가 소시미해서 그래!!!바버야!!!!!
다음편부터 쭈왁쭈왁 뽑아볼게요!
항상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
긴청
규야
사과머리
다람쥐
워후
쪼꼬미니
쎄쎄쎄훈
지안
언제나 감사해요~암호닉,신알신 감사드립니다!
혹시 제가 빼먹은 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ㅠㅠㅠㅠㅠㅠ
사랑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