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구두 한 번 신어볼랍니까?
w. 랑데부
16.
ㅇㅇㅇ의 남자 강영현은 누구?
ㅇㅇㅇ♡강영현 ...언제부터?
레드카펫에서 공개적인 스킨십 ...논란 잠재우기 위해서였나
ㅇㅇㅇ♡강영현, GH엔터 '사실무근'
"실장님!"
프린트 된 기사들이 도운의 얼굴을 강타하고 쏟아져 내렸다. 지금 뭐하는.., 실장에게 달려드는 ㅇㅇ를 막아 세운 도운은 고개를 숙였다. 너 당장 나와. 지금 전화선 뽑아 놓은 거 안 보여?
"윤도운 너 안 나와? ㅇㅇㅇ 어쩔 거야. 갑자기 잠적한 거 죽어라 막아두니까 뭐, 열애설? 네가 지금 이러고 다닐 때야?!"
"아니라고요"
"레드카펫에서 당당히 손 잡는 관계에 대고 아니라고 하면 믿겠니? 어떻게 설명할 거야. 그 디자이너는 또 누구고"
열을 참지 못하고 ㅇㅇ의 옷자락을 잡은 실장에게서 도운은 ㅇㅇ를 끌어 안고 뒷통수를 감쌌다. 가만히, 나 괜찮으니까 누나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도운의 등을 거세게 때리는 손길을 받아내며 도운은 ㅇㅇ의 등을 쓸어 내렸다.
"스폰 거절로 밑바닥 기어갈 거 건져주니까 ㅇㅇㅇ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아? 어쩔 거야 이제!"
"사과 할게요"
"누나!"
"누나 나 봐요"
"가서 빈다고"
순간적으로 언성을 높이던 실장의 행동이 멎었다. 가서 빌겠다고, 모든 거. 전부 다.
배우의 직업도, 한 장의 지폐로만 보는 소속사이지만 그런 사람들도, 도운이도, 그리고 강영현도 없으면 무너질 것을 알았다. 내 잘못이 시작이었건 아니었건 ㅇㅇ는 모두가 떠난 곳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잘못은 없었다. 단지 위협적인 상황에서 구해 주었을 뿐이었지만 생각도 못했던 루트로 빠져 버린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건 어이없게도 ㅇㅇㅇ 뿐이었다. 도운은 ㅇㅇ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양팔을 붙들었지만 ㅇㅇ는 그 손을 놓았다.
"내가 다, 잘못 했으니까"
"당장 가서 빌겠다고요. 그리고"
"이 상황도, 그 논란도, 그리고 그 사람도"
다 돌려 놓겠다고. 내가.
*
영현에게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괜한 일에 휘말려 복잡할 거였으니까. 다가서려던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그렇게 이건 전부 내 잘못이었다.
"가지마요"
"도운아"
"가지 말라고"
착잡한 도운의 눈이 아렸다. 왜 손을 잡았건 강영현의 책임이었고, 지들 입맛대로 원하는대로 해명은 듣지도 않고 잔뜩 요리해 먹는 무책임한 일이 어떻게 ㅇㅇㅇ의 잘못이란 말인가. "나는 공인이잖아. 그러면 안 됐어, 그러니까 내 잘못이야" ㅇㅇ의 말이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손 하나 잡은 게 누군가에게 깊은 피해를 줬나. 아니다. 그 누구에게도 준 피해는 없었다. 단지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잘나가는 배우라는 이유만으로.
"올라갔다 오면 내 얼굴 안 볼 거야?"
"..그런게 아니고"
"지금 얼굴 봐주면 안 돼 도운아?"
도운은 얼굴을 쓸어내리고 ㅇㅇ를 내려다 보았다. 나 괜찮다니까. 애써 웃는 ㅇㅇ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아니 그보다 이 상황에서 그 무엇도 해줄 수가 없는 자신이 괴로웠다.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등을 돌린 ㅇㅇ의 손을 쥔 도운은 ㅇㅇ를 끌어 당겼다.
"여기 있을게요"
"계속 여기 있을테니까"
힘들면, 가다가 도중이라도 못 가겠으면 그냥 와도 돼요.
17.
우와 엄청 신기하게 생겼다. 도운은 몸을 잔뜩 쭈그리고 소속사 내부를 이리저리 살폈다. 계약을 마치고 나가려던 찰나 곧 출근을 할 회사이니 한 번쯤 둘러보고 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내려온 곳이 지하 연습실이었다. 넘버가 쓰여 있는 연습룸이 쭉 나열된 복도를 걸으며 도운은 혹시라도 운이 좋아 제가 존경하는 연예인이라도 만날까 연습룸을 빼꼼 살폈지만 꽤나 늦은 시간으로 거의 불이 꺼져 있었다. 어 저기, 켜져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하씨 아니, 아니야"
"제가 할, 콜록"
이거 제대로 할 때까지 집 안 갈거야. 진짜 안 가 나.
곧 찢어질 운명을 맏이할 대본을 든 ㅇㅇ는 녹음 스튜디어 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걸으며 몇 번이고 대사 한 줄을 되내였다. 이미 연기를 지도해주는 선생님은 퇴근을 한 상태였고 벌써 열 한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래 이건 검이야 검. 검이 눈 앞에 있어도 꼼짝 안 하다가.. ㅇㅇ는 대본을 앞에두고 연필꽂이에 꽂혀 있던 가위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뭐하는 거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ㅇ, 어어. 엄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전에 죽을 뻔했어요.
검을 잡는 듯 가위를 양손으로 쥔 ㅇㅇ가 뒤를 홱 돌았을 땐 연습실을 빼꼼 바라보고 있던 도운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귀신, 귀신이야? 하필 괴담이 쏟아지던 8번 방이었기에 ㅇㅇ는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눈을 질끈 감고 문을 벌컥 열었다.
"저 ㅅ, 사람. 사람입니다"
"누구세요? 여기 어떻게.."
사원증도 출입증도 없는 모습에 더욱 겁을 집어 먹은 ㅇㅇ는 쿠션을 껴안고 극도로 도운을 경계했다. 그런게 아니고, 저.
"여기 ..핸드폰, 지, 지갑이요. 안녕히 가세요"
"네?"
"ㅈ,저쪽으로 나가면 되거든요. 저쪽은 뒷문이라 경찰도 없구..."
뭐지? 지금 도둑으로 오해한 건가? 도운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제 소지품을 두 손으로 내미는 ㅇㅇ를 보고 입술을 축였다. 그러니까 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지.아. 도운은 급하게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ㅇㅇ의 손에 얹어 주었다. 도둑이 종잇장을 주나, 어.. 어?
"...죄송합니다"
ㅇㅇ는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 사과했다. 아 등신 ㅇㅇㅇ 등신. 아 직원이었어. 망할 내 이미지, 안녕 내 이미지.. 도운은 제 계약서를 꼭 안고 연신 사과를 하는 ㅇㅇ에게 손사레를 치며 동시에 다시 받아가야 하는 계약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거 다시 주셔야 하는데
*
"스케줄 관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ㅇㅇㅇ가야. 유독 애가 어리광도 심하고 세상물정 몰라, 어렸을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해서. 뭐 먹고 싶다고 하면 무조건 안 돼. 아직 결정된 작품만 3개니까. 헬스는 같이 해주는 게 좋을 거고, 대본 숙지는 잘하는 편이지만 확인 하고. 항상 언론에서 주목하는 배우인 거 알지? 꼬투리 잡히지 않게 잘하고. 어 저기, 저기있네"
그렇게 도운의 눈에 들어온 건 누드핑크톤의 한복을 입고 치마를 살짝 쥔 채 걸어오는 ㅇㅇ였다. 아, 저 여자.
그리고 ㅇㅇ는 잠시 쭈그려 앉았다. 머리에 떨어진 벚꽃 잎을 떼어내 손가락으로 작게 흙을 파더니 그곳에 꽃잎을 묻어주고 해사하게 웃으며 다시 달려오는 거였다. 그 모습에 도운은 꼼짝없이 시선에 묶여 코 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숨이 멎어 들었다.
"ㅇㅇ야 인사하자. 새 매니저. 윤..,"
"윤, 도운입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 어?"
어 그때 그 도, 아니아니. 사슴처럼 큰 눈망울이 동그랗게 변했다. 맞다, 계약서. ㅇㅇ는 냅다 벤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는 도운은 양손을 모은 채 그대로 서 있어야만했다. ㅇㅇ가 올 때까지.
"하아, 이거. 아 숨차, 계약서"
언젠가 마주칠 거라 믿고 가방 안에 고히 들고 다녔다. 정신이 없어 전해주지 못한 게 항상 미안했던 터라 한껏 울상이 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도운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더워요?"
"네? 아뇨. 아니에요, 아닙니다"
귀가 엄청 빨간데. 괜찮은 거에요? 악의 없이 다가가 귀로 다가온 손길에 도운은 잠시 빠르게 돌아서 숨을 몰아 쉬었다. 등신아 하던대로 해. 하던대로.
그러나 정말 말이 쉬웠다. 도운이 금방 사랑에 빠지는 타입이었는가? 전혀 아니다. 그러니 더 도운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얼굴은 식혀야겠고 그런데 쉽사리 뒤는 돌아 보지 못하겠고.
"..잘 부탁드립니다"
"저두요"
재빨리 다시 돌아선 도운은 지금 피부를 스치는 바람처럼 따스한 ㅇㅇ를 마주하고 느꼈다. 처음으로 만난 봄이라고, 말이다.
18.
"..놀랐죠"
"조금요"
무작정 찾아간 집 앞 문을 열어준 영현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내려다 보았다. ..어, 마실래요? 아무래도 술을 조금 해야 말이 나올 것 같았다. ㅇㅇ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영현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딱 영현과 닮은 집 안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 한켠엔 영현이 디자인한 구두들이 진열 되어 있었다. 집에서도 일하는구나.
"근데 마셔도 돼요?"
"네? 아 그럼요"
영현은 대충 냉장고에서 치즈를 꺼내 와인과 함께 들고와 앉았다. 우리가 건배할 사이는 아니니까 어, 패쓰. 영현이 차분히 따라준 와인을 한 모금 꼴깍 삼킨 ㅇㅇ는 무슨 말은 먼저 끄집어 내야 하나 조심스럽게 고민했다.
"미안해요. 수습 기사 충분히 나갔으니까 이젠 귀찮게 하는 전화나 그런 일들 없을 거에요"
"네"
"...힘들었죠"
딱딱한 영현의 목소리는 ㅇㅇ를 웅크러들게 만들었다. 꽤 오랜 정적이 들고 그동안 영현은 와인만 넘겼다. 어, 그러니까.
"힘든 건 ㅇㅇ씨가 힘들었겠죠"
"네?"
이 전개가 아닌데. 제대로 한 소리 들을 예상으로 와 ㅇㅇ의 손에서 와인은 그대로 추락했다. 어 미안 어떡해. ㅇㅇ의 니트를 흠뻑 적시고 러그 위로 떨어진 와인에 ㅇㅇ는 놀라 우선 잔을 집어 올렸다. 나 또 사과하려고 이러는 거니. 영현은 급하게 휴지를 뽑아와 ㅇㅇ에게 건네다 이미 수습이 어려운 상황에 잠시 몸을 일으켰다.
"젖은 거 입고 있으면 감기 걸려요. 집이 추운 편이라"
"네? 아니에요. 아뇨"
"그냥 입어요"
차가운 얼굴에 더 분위기를 얼려 버리면 안 될 것만 같아 조용히 영현이 내민 맨투맨을 받아 ㅇㅇ의 욕실에서 갈아 입었다.
"미안해요. 할 말이.."
"많이 힘들었냐고"
"네?"
"얼굴이 반쪽이 됐길래"
소파 깊숙히 몸을 묻은 ㅇㅇ는 영현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니까, 화 안 났어요? 내가 왜 화가 나요. 잘못은 내가 했는데. 의연한 영현의 태도에 ㅇㅇ는 새로 받은 잔을 들고 잠시 마실까 고민했다. 원래 저렇게 쿨했나. 스위스에선 엄청, 어 그래 다무는 게 좋겠지. 영현은 다시끔 잔을 비웠다. 속도가 엄청 빠르네.
"괜히 나 때문에 들썩였잖아요. 그러니까 미안한 거죠, 영현씨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내가 경솔했던 거죠. 다른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아니에요. 그냥 나는.. 그 상황에서 꺼내준 게 고마웠어요.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모르고"
"근데"
"근데?"
"그 남잔 누구에요?"
그쪽 손 잡고 안 놔줬던 사람이요. ㅇㅇ는 잠시 입술을 축였다. 말을 해, 말아. 하게 된다면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것이었다. 물론 하고 싶었다. 정말로 하고 싶었다. 나에 대해알아줬음 했고 그렇게 가까워지고 싶었다. 영현은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며칠 밤 그 남자 때문에 잠을 못 이뤘다는 사실을 영현은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그러니,"
그때였다. 갑자기 어깨 한 구석이 푹 무거워져 고개를 돌리니 영현이었다. 벌써 취한 거야? 얼떨떨했다. 아니 물어보고 이렇게 잠들면 나보고 어떻하라고. ㅇㅇ는 잔을 내려두고 조심히 영현을 바라 보았다. 이젠 어깨를 부비며 작은 한숨을 뱉는 영현이었다. 헐 귀여워. 아니 그보다 어깨가 저리는데.
"..저기 영현씨? 졸려요?"
"후으..."
"어.. 영현씨?"
"누나"
뭐 누나? 아니 저번에도 그렇고, 나보다 동생이었어?
눈이 반쯤 풀려버린 영현은 여직 마르지 않은 제 앞머리를 매만지다 불쑥 ㅇㅇ에게 가까히 얼굴을 붙힌 영현은 멍하니 ㅇㅇ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는.. 영현의 손가락이 ㅇㅇ의 입술에 닿았다.
"...취한 거에요?"
영현이 갑자기 푸스스 웃었다. 주사야 뭐야. 근데 저렇게 웃기도 하는 구나. 퍽 긴장한 ㅇㅇ는 침을 꼴깍 삼켰다. 어어, 방심한 틈에 영현은 ㅇㅇ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잠든, 잠든 게 아닌가?
"...영현씨?"
허리를 꼭 감싸오는 팔에 얼어 붙은 ㅇㅇ는 시선만 내려 영현을 바라보았다. 지금 나, 안은 거야?
"많이 취했.."
영현을 부축하기 위해 쥐었던 손을 ㅇㅇ는 천천히 떼어냈다.
"...나 좋아해요?"
"후으, 아뇨"
"..좋아할 생각, 있어요?"
영현은 띵한 머리에 손을 짚었다 소파에 풀쑥 기대어 ㅇㅇ를 바라보았다. 답이 듣고 싶었다, 들어할 이유가 생겨 버려서. ㅇㅇ는 영현쪽으로 마주해 똑같이 소파에 기대어 영현을 바라 보았다.
"..있어요?"
"없어요"
그쪽을 좋아하진 않을 거에요.
영현의 과거 |
너는 나를 어떻게 만났었는지 기억이 날까. 나는 처음부터 네가 좋았다. 우선 걔는 알고 있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거, 대체 왜 너여야했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