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지민 |
김태형은 어딜 가도 눈에 들어온다. 북적거리는 시장에 가도 너밖에 안 보이고 교실에서 아이들한테 둘러 싸여도 내 콩깍지가 너무 대단해서 너만 보인다. 언제 벗겨질까 과연 벗겨질까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네가 내 옆으로 와 턱을 괴곤 예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 해?” “잘까 생각 중.” 하마터면 네 생각이라 답할 뻔했다. 다음 수업이 하필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다. 너는 의아한 표정으로 많이 졸리냐며 물었다. 그냥 수업 들어야겠다. 그래 그게 좋지. 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밖에서 부르는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상기된 볼이 정말 요즘 아이같이 소녀 같았다. 나는 될 수 없는 그런 사랑스러운. 이상한 습관이 있다면 수업 도중에 너의 뒤통수를 자주 본다. 다른 아이들보다 아주 조금 더 밝은 갈색이라서 눈에 띄는 걸까 내 맘에 띄는 걸까 손발이 쪼그라드는 생각에 등교하면서 받은 부채로 열심히 얼굴을 식혔다. 눈을 문제집으로 돌렸다. 그래 공부하자. 세상에서 처음은 가장 소중하며 신기하고 더 나아가 고귀할 수도 있다. 나에게 첫사랑은 어리숙하고 그것밖에 보이지 않아 골치 아프고 가끔은 너무 놀라서 숨이 막히는 그런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꼭 어렸을 적 별똥별을 본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김태형을 볼 때마다 별동별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렇게 설레고 눈도 맞추지 못할 정도로 떨린다. 너는 내 첫 별똥별이다. |
태형지민 |
삼일 남았다. 본연의 살점은 진물에 눌려 벗겨졌고 온전한 사람의 피부가 돋아났다. 하얀 가죽 보라색의 핏줄 따위가 아름다운 그 몸이 꼴에 아시아라고 텁텁해지고 털도 많고 핏줄은 청록색으로 누군가 덧칠해놓은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의 눈이 가장 궁금했다. 보라색과 자주색을 오가던 눈동자가 까만 밤하늘을 담고 있을지 아니면 고동색으로 익어갔을지 거울을 보고 싶었다. 주변이 온통 어두워 눈을 사방으로 굴려도 재미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져서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놓고 까딱까딱 거리며 자주 듣던 팝송을 흥얼거렸다. 좋은 노래지. 당신이 불러 줬으니까. 500일이란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신이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신과 함께 삶을 살고 싶어 위험하고 힘든 길을 택했다. 발에 걸리는 돌들을 무시하며 더럽게 날카로운 바람을 조금이라도 덜 맞고 싶어 한껏 웅크리고 눅눅한 기온에 잠깐 들어 눕기도 한 여정을 당신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알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감당할 수 있는 정신이 약해서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보고 싶다.” 48시간. 슬슬 일어나 허리를 좌우로 굽혔다. 사실 우리의 아버지와 계약을 했다. 아버지는 그가 인간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는 아주 훌륭한 능력이 있었으니. 선물이라면 고맙고 각인이라면 할 수 없는 능력을 없애지 않은 건 어떤 의미인지 본인도 몰라 아버지의 뇌 속이 궁금해졌다. 반 인간 반 괴물로 살라는 건가? 누군가 그를 불렀다. 나갈 시간이다. 치가 떨리게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당신을 생각했다. 나보다 조금 작은 키 길고 작아서 가끔은 무섭고 가끔은 귀여운 눈 코 볼이 두터워서 자꾸 만지는 손. 빨리 보고 싶어 걸음을 빨리 했다.당신과 그가 처음 만났던 그 장소가 가까워지자 어딜 가는지 백팩을 매고 어린 아이처럼 걷는 당신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찾았다, 우리 지민이.” |
태형지민 |
“도련님! 뛰지 마세요!” 오늘은 내가 사모하는 도령이 오는 날이란 말이다! 태형은 이 한마디와 주먹을 불끈 쥐고서 종의 부름을 무시한 채 부리나케 뛰었다. 공부방 앞까지 뛰어와 숨을 고른 뒤 헛기침을 크게 뱉었다. 들었으려나? 문이 열리지 않아 입을 삐죽 내밀었다. 결국 신을 벗고 두 손을 뒷짐 지며 도령을 불렀다. “도령, 안에 계십니까?” 말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인가. 해가 이렇게 기울어질 때 쯤 도착한다고 나와 약조를 하였는데 괜히 뛰어왔구먼. 돌아가려 곱게 벗어 둔 신을 다 신고 아련하게 문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시원하게 열리며 태형이 그토록 바라던 도령이 웃으며 태형을 바라보았다. 오셨습니까? 볼이 빨간 것이 아마 글을 읽다 턱을 괴고 잠든 것이 분명했다. 아!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니! 얼마나 귀여운데! 태형은 민망한지 볼을 긁으며 들어오라는 듯 문을 열어두는 도령의 뒷모습을 보며 쫄래쫄래 들어왔다. 단단히 잠그고 도령의 맞은편에 앉아 어서 이야기를 하라는 듯 팔짱을 꼈다. “재미있으셨습니까?” “괜찮았습니다.”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도령의 볼이 아까보다 더 붉어졌다. 약과라도 드시지 않겠습니까. 괜찮소.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한 걸음에 달려왔소. 도령은 눈동자를 크게 굴렸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가 크고 눈이 파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았고 물과 친한 옆 나라 사람들과 술도 한 잔씩 마시기도 했고 치파오를 입은 사내들과 산을 오르고 내리며 친해지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길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며 싱글벙글 웃으며 까르르 이야기하는데 태형은 그 모습을 어미 새가 아기 새를 보듯이 참으로 다정했다. 아 참,도령에게 드릴 것이 있소.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건너가더니 작은 상자를 들고 와 태형의 앞에 올려놓았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 덕에 바로 풀어보니 오른쪽 손을 귀엽게 들고 있는 고양이 모양의도자기였다. “맘에 드십니까?” 맘에 들고 말고가 있겠습니까, 그대가 준 선물인데. 태형은 헤벌쭉 웃으며 꼭 껴안았다. 어느새 해가 더 기울어져 조금 있으면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태형은 가기 싫었다. 조금 더 있고 싶은데. 도령이 어서 가지 않으면 내일 얼굴도 보지 않을 것이라 으름장을 내니 그제야 신을 신고 꾸벅 인사를 했다. “지민 도령 내일은 더 일찍 와도 되겠습니까?” 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자 태형도 집 밖으로 겨우 나갔다. 품에 안긴 고양이 모양의 도자기를 보며 다음 번 자신의 여행길에 더 근사한 것을 가지고 와 고백을 할 것이라 다짐했다. 지민 도령은 사랑스러우니까 사랑스러운 것을 준비해야겠어. 그때까지 숨기던 마음을 더 꼭꼭 숨기며 한 번에 다 드리라 다짐하고 다짐하는 태형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태형지민 |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마치 꿈을 꾸는 하루가. 이런 날은 잠에서 깨도 몽롱하고 초점이 없는 눈으로 아침을 시작해 정신을 차리려 샤워를 해도 개운해지지 않는다. 밥을 입에 넣고 씹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텅 빈 밥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어 놓고 밖으로 나온다. 거무죽죽한 하늘이 오늘 기분 같아 껄끄러우면서도 부정하지 않는다. 혹시 몰라 우산을 챙기고 골목을 걷는다. 분명 여기서 미용실 옆 골목으로 꺾고 오르막길을 올라 편의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죽은 네가 너무 맑게 서있다.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하며 너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나보다 키가 한참 작은 너는 이렇게 하는 게 편해서 좋으니까. 그렇게 교실에 올라가 빈자리에 앉고 너는 내 옆에 앉는다. 어제 뭐 했어? 난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있었는데. 넌 또 게임만 했지? 놀러 와도 되는데. 너는 아쉬운 건지 바라는 건지 엎어져서 나를 달콤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단둘이 지금처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던 때가 언제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아 차츰차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점점 뿌옇게 변하는 시야가 너를 흐릿하게 만든다. 네가 사라진다. 점점 앞이 보이지 않는다. “김태태, 일어나 새끼야.” “담임 왔어.” 평소와 같은 교실이다. 맨 앞 구석자리 너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고 내 옆에는 너와 내가 친했던 친구가 있고 심지어 하늘은 맑은 평소와 같은 날이다. 핸드폰을 켜 날짜를 확인했다. 23일, 너와 있었던 꿈속에서 하루를 잃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
태형지민정국 |
이런 따듯함을 원한 적 없는데. 봄을 지나 여름이 오니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이렇게 더운 것보다 적당히 따듯한 봄이 더 좋은데. 그냥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추운 게 훨씬 낫지. 더운 것보다. 근데 난 봄이 제일 좋아. 적당히 따듯하고 셔츠만 입어도 되는 그런 날씨. 물론 꽃가루는 알레르기 때문에 싫지만. “아 그냥 에어컨 좀 틀어줬으면 좋겠다.” 학교가 더럽게 돈이 없어. 에어컨은 장식이고 선풍기는 나약하니 이거 뭐 숨 쉴 수 있나. 교실에 애들도 많은데 거기다 남고라고 냄새가 얼마나 심한 줄 알아? 아 진짜 발암이다. 이 와중에 박지민 진짜 잘 잔다. 코 골 기세인데. 입도 쪼그만 게 살짝 벌려서 자는 게 침 떨어지겠네. 생일 선물로 턱받이나 사줄까. 어 수업 끝났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일어난다. 느낌이 싸한데. 전정국 올 삘이다. 빨리 매점이든 잠 깨라고 돌아다니든 모르는 문제 있다고 교무실 가자는 등 빨리 교실에서 도망쳐야겠다. “지민아, 일어나봐.” “…아으응 왜에….” 시발 존나 귀여워. 뭘 먹고 이렇게 귀여운 거지? 눈부셔서 담요에 얼굴 박고 도리도리짓 하는 것 봐. 그렇게 애교 부리기야? 나도 너 재우고 싶은데 느낌이 안 좋단 말이야. 후배 주제에 선배 교실에 들어오고 너 데려가고 나랑 대화하는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고 시발! 그러니까 매점이라도 가자 내가 바나나우유 사줄게. “형 왜 깨워요.” 헐 진짜 왔다. 진짜가 나타났다! 전정국이 지민이 앞자리에 앉아 등받이에 손을 접히게 기대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 뭐 인마. 네 면상 보기 싫어서 나가려고 한다. 뭐. 내가 큰 눈으로 째려보자 전정국이 비웃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발랑 까져서. 쉬는 시간에 예습해야 하는 거 몰라? 짜증나 짜증나. 나한테만 귀여우면 되는데 왜 남한테까지 귀여워서 자꾸 다른 남자가 추파 던지게 하냐. 고개를 들어 작은 눈을 깜빡거리는 데 나와 전정국 표정이 정확하게 아빠 미소였다. 우쭈쭈 내 새끼 졸렸어? 좀 더 잘래? 아니면 매점 갈까? “매점가자 나 배고파.” 뭐 먹을래? 피자빵? 형 내가 사줄게요. 정국이 언제 왔어? 방금요. 형 보고 싶어서. 히히 우리 쩡국이. 형이 사줄까? 너 교실로 안가냐? 데려다 줄게. 아니요, 알아서 잘 가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정국이네 교실 가자. 너 데려다 주고 매점 갈래.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저 매, 매점 가려고요. 커피우유가 갑자기 마시고 싶네. 그러면 같이 가자. 씨발 전정국. 뭐라고요? 아니야. 박지민을 가운데 두고 한참 대화하다 매점에 도착했다. 어? 오늘은 형이네? “지민이 왔어?” “넵.” 지민이 계산하려 하자 매점 형이 그냥 가져가라며 웃었다. 에이 그래도 돈은 받아야죠. 우리 지민이 예뻐서 주는 거야. 고마우면 자주 와. 전정국과 나는 매점 형을 노려보았다. 둘의 표정을 보고 깔깔 웃으며 우리 지민이 인기 많네 한 소리 하자 지민은 입에 사탕을 문 채로 저 애잉 업능데여 실실 새는 발음으로 답했다. 빨리 매점에서 나오자마자 저 형이랑 어떻게 친해졌냐 많이 친하냐 사적으로 만난 적 있냐 온갖 질문들이 우르르 나왔다. 지민이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둘이 시끄러워 죽겠다며 혀를 날름거리곤 교실로 들어갔다. 정국이와 내가 합창하듯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그래서 그 형이랑 어떻게 친해진 건데요?! 형!” “아니 그래서 그 형이랑 어떻게 친해진 건데?! 야!” |
제가 그 유명한 뷔민(국) 아만자잉데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