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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요, 떡볶이 1인분이랑요, 순대 1인분에, 어묵도 두 개 주시고 튀김도 1인분 주세요."
"윤도운 쫄면도."
"아 맞다 맞다. 쫄면도 주세요."
감기 때문인지 윤도운 때문인지 끙끙 앓았던 날들이 다 지나가고 드디어 약속한 날짜가 됐다. 답지 않게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더랬다. 평소 기상 시간보다 몇 시간이나 앞당겨진 시간이었지만 피곤함 없이 내내 입가에 웃음만 걸려있었다.
"오늘 내가 다 사는 거니까, 마이마이 무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수저를 쥐여주는 윤도운에, 떡볶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무감각해질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윤도운과 함께할 때에는 윤도운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윤도운의 한순간 한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내 모든 감각은 윤도운만을 향했다. 윤도운의 1초, 1초를 모두 담던 나이기에, 변화 또한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오늘따라 핸드폰을 자주 만지작거린다. 나와 이야기할 때도, 떡볶이를 먹을 때도 간간이 핸드폰을 확인한다.
"... 누구 연락 기다리는 사람 있어?"
"어? 아이다."
아니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윤도운의 시선은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고 매일 나를 흔드는 그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안하다.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혹시 너 여자 생긴 건 아니지?"
부러 태연하게 떡볶이를 우물거리며 물었지만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윤도운에게까지 들릴까 두려웠다. 머릿속으로는 아니라고 몇 번을 계속 외쳤지만 떨림은 멎어들지 않았다.
*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더 놀자고 징징거리는 윤도운을 뒤로하고 가방을 챙겨 나오니 또 바보 같은 윤도운은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며 기어이 나를 붙잡았다.
'아 뭔 여자야. 그냥 어쩌다 보니까 연락 하게돼가꼬..'
멋쩍게 웃으며 말하던 윤도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수백 번째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윤도운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윤도운의 연애는 절대 뜨겁지 않았었다. 윤도운이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고,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바보 같은 윤도운은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았다. 내 좋다는 애한테 어떻게 막 하노. 하며 허허실실 웃던 윤도운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건 항상 나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렇게 불안했던 적이 없었다. 계속 핸드폰을 확인하는 윤도운은 누가 봐도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윤도운에 처음 느끼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3-1
고삼의 겨울 방학은 한가하다 못해 무료하다. 최근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으면 정말 방학 내내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거다. 김원필의 추천으로 하게 된 카페 알바는 생각보다 고됐지만 다가올 월급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별 되지도 않는 이유를 늘어놓으면서 윤도운을 최대한 만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연락을 피하는 건 도저히 못 하겠더라. 윤도운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내 일상의 한 부분에 너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순간 피해버린 다면 윤도운은 무슨 일 있냐고 물어올 게 분명하고, 거기에 니가 썸 타서 심란하다고 답할 수는 없으니까. 사실 다 핑계고 윤도운을 피하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통해서라도 윤도운이 보고 싶었다.
다른 날처럼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며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육체적으로 지친 것도 모자라 퇴근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다는 생각에 정신까지 지친 나는 무기력할 때로 무기력해져 있었다. 가만히 서서 주문만 받으면 되는 초간단 개꿀 알바라고 나를 회유한 김원필을 꼭 쥐어박아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 대하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이제는 띠링 하고 문 열리는 종소리만 들려도 고개가 벌떡벌떡 들린다.
"어서 오세요. 커피 더 식스입니... 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윤도운이었다. 방금 전까지 무기력했던 나는 어디 가고 생기가 돌아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윤도운의 뒤로 보이는 얼굴에 내 웃음은 얼마 안 가 사라지고 말았다.
" 김여주! 내가 일부러 너 일하는 데로 왔다 아이가. 요즘 니 너무 바빠가 통 얼굴을 못 봐서 내가 이렇게 보러 왔다. 잘했제."
"어? 어... 근데 뒤에는 누구셔?"
"아, 내가 그때 말한 그 아. 기억 나제?"
수줍은 윤도운의 모습이 어색했다. 낯선 너의 모습이 싫었다. 기억이 왜 안 나겠어. 몇 날 며칠을 너랑 얼굴도 모르는 사람 생각에 잠을 못 잤는데.
"도운이한테 말 많이 들었어요. 엄청 오래된 친구라고, 맞으시죠?"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귀엽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선한 인상에 똘망똘망한 목소리까지. ... 안 좋아할 수가 없겠네.
"아, 네. 주문 도와드릴게요."
"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수연이 니는 뭐 마실래."
"나도 니가 먹는 거 먹을래!"
"오야.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잔이요."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속은 여전히 울렁거렸다. 정신이 아득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포인트 있으세요?"
"아니요 없어요."
"네 결제 완료되셨습니다."
"고마워요 알바 누나~"
아까부터 계속 존댓말을 쓰며 장난을 걸어오는 윤도운이 얄밉다. 내 속은 지금 까맣게 타들어가는데 태연하게 장난이나 치고 있는 윤도운이 밉다. 하지만 바보 같은 윤도운 보다 더 바보인 나는 그런 윤도운을 보고 웃는다. 피식 비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진동벨과 도장 쿠폰을 건네주자 신이 나서 누나 고마워요 하는 윤도운을 보니 울렁거림은 떨림으로 번졌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세 잔 나왔습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니 그제야 뭐가 잘못되었는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둘인데 음료는 세잔? 일행이 더 있는 건가?
"김여주 자. 이거 니 무라. 쉬엄쉬엄해 쉬엄쉬엄. 몇 시에 끝나노."
"... 나 여섯시."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네. 내가 마음 같아서는 기다렸다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은데 약속이 있어가..."
"괜찮아, 내가 애냐. 혼자 갈 수 있어. 이거 잘 마실게. 얼른 가봐."
"어어. 미안타. 이따 비 온다는 말 있는데 우산.. 없제?"
"됐어. 비 오기 전에 집 가면 되지. 빨리 가."
알았다 알았다. 손을 흔들며 맑게 웃어 보인 윤도운이 카페를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주저앉아버렸다. 손님이 많이 없는 시간이라 다행이다. 천천히 숨을 골랐다. 커피를 마셨는데 정신이 들기는 커녕 아득해져만 갔다. 윤도운의 습관적인 다정함에 푹 잠식되다가도, 도운아 고마워, 잘 먹을게! 하던 그 애를 보며 나에게 보여준 웃음을 똑같이 짓던 윤도운이 생각나자 내 곪은 감정이 윤도운의 다정함을 삼키기 시작했다.
3-2
하루 종일 되는 일이 없다. 퇴근시간이 되어 짐을 챙겨 나오자 거짓말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다. 머피의 법칙이란 게 피부로 느껴지는 날이다. 이게 다 김원필 때문이다. 모든 일의 원흉인 김원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원필앙."
"아 또 뭐 시키려고."
"나 알바 끝났는데 우산이 없어..."
"어? 어쩌라고?"
"짜증 나 진짜. 너 때문이잖아. 그니까 빨리 우산 들고 나 데리러 와."
"... 난 진짜 니가 대학 어떻게 붙었는지 너무 궁금해."
"왜 갑자기 시비야. 오분 준다. 빨리 텨와."
"금붕어냐 진짜? 나 친척 집 내려와 있다고 얘기했잖아. 물론 그거 아니어도 안 갔을 거지마,"
아, 맞다. 김원필 삼촌네 놀러 간다고 했지. 짜증 나는 김원필. 도움 안 되는 김원필. 온 신경이 곤두서 초예민 상태인 나는 김원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함에 카페 앞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오늘 하루 종일 왜 이러냐 진짜... 눈치 없이 또 눈물이 터져 나오려 한다.
"하아... 하아... 김여주... 하... 이거."
"윤도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는 탓에 말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고, 손에 쥐어진 우산은 방금 막 사온 건지 텍이 달랑달랑 붙어있었다. 꿈인가 하고 다리를 꼬집어 봤지만 아프기만 했다.
"야, 야 니가 왜 여기 있어? 약속은?"
"니 우산 없는 거 생각 나가, 빨리, 정리하고 왔다. 벌써 갔으면 우야노, 싶었는,데 나, 안 늦었네."
거칠게 숨을 내쉬는 탓에 말이 뚝뚝 끊겨 들렸다. 하이고 되다. 허리를 쭉 펴면서 활짝 웃는 윤도운에 심장은 터질 듯 반응했고, 겨우 참아냈던 눈물은 다시금 나오려고 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지. 그깟 친구가 뭐라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도 마다하고 달려오는 건지. 윤도운에게 친구가 갖는 의미가 대체 뭐길래, 나한테 이러는지.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지만 벙긋거리는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김여주? 니 우나."
"울긴 누가 울어. 하품한 거야, 하품."
"아인 거 같은데. 헥 벌써 7시네. 빨리 가자. 니 설마 한 시간 동안 이래 밖에 있었나."
윤도운 손에 이끌려 몸을 일으켰다. 우산을 펴자 윤도운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고 혹 심장소리가 윤도운에게까지 들릴까 두 손을 모아 가슴 언저리에 얹어놓고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면 소리가 좀 막아질까 싶어서. 맨날 윤도운을 바보라고 하는 나는 그런 바보 윤도운 앞에서 한없이 멍청해졌다.
제발 너를 먼저 생각해 달라던 나의 말이 무색하게, 네 우산이니까 네가 쓰는 게 맞다던 윤도운의 말이 무색하게 나를 집까지 데려다 놓고 돌아서는 윤도운의 오른쪽 어깨는 푹 젖어있었다.
3-3
일요일 오후, 간만에 늦잠을 자던 나를 깨운 건 윤도운의 전화 한 통이었다. 핸드폰 액정에 찍힌 윤도운 이름 세 글자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들어 목을 두어 번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김여주. 잤나."
"방금 일어났어. 왜?"
"아니 물어볼 게 있어가 카톡 보냈는데 니가 안 봐서 전화했다."
"아 진짜? 지금 볼게."
스피커폰을 켜고 윤도운과의 대화방에 들어갔더니 예쁜 디자인의 목걸이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웬 목걸이야?"
"선물하고 싶은데, 뭘 좋아할지 몰라가. 이런 거 물어볼 사람 내한테 니 밖에 없다 아이가."
"아... 누구 주게?"
"비밀이다. 빨리 고르기나 해라."
"... 나는 세 번째 거."
"세 번째? 알았다. 진짜 고맙다. 내는 진짜 여주밖에 없어. 더 자라. 끊을게."
뚝 끊긴 전화에 핸드폰을 붙들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보나마나 그 여자애 주려는 거겠지. 내가 윤도운이 여자한테 선물 주려고 고민하는 걸 다 보네. 텁텁한 입안에서 쓴맛이 돌았다. 그 여자애가 정말이지 너무, 너무 부러웠다. 질투와 시기의 감정은 없었다. 윤도운에게 여과 없이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그리고 그 마음이 윤도운의 마음과 같을 그 애가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났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지만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악세서리 가게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윤도운과 채워진 옆자리를 보았을 때, 나는 한없이 무너져내렸다.
+
와우 대박. 며칠만이야 진짜.
일단 머리 박고 사과부터 드릴게요ㅠㅠㅠㅠ
영현쒸. 현생 좀 뿌셔줘.
++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셨죠?
아니셨다면 유감이애요. 미아내.
제가 원필이와의 장면을 넣은 이유는 여주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서에요
여주는 되게 활발하고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 야무지고 깡도 짱짱한 아이지만
좋아하는 도운이 앞에서는 한 없이 유해지고 약해진 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랬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느껴졌을지 모르겠네요ㅠㅠ
도짜님들의 반응이 가장 궁금해지는 화 입니다.
영랑 여러분의 관심을 먹고 살아요.
댓글...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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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합니다는 총 7부작 입니다!
뼈대는 다 세워 놓아서 제가 열심히 쓰기만하면
금방 완결낼 수 있을 것 같은디
존버가 참 힘드네요...
++++
부족한 글 읽어줘서 오늘도 너무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에 이유를 찾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