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도 예지몽을 꿨다. 정확히 말하면 그 전날, 나는 형사가 나를 찾아오는 꿈을 꿨다. 그는 확신에 차있었다. 그는 내가 그 사건의 용의자임에 확신했고 나는 그를 따랐다. 다만 깨어나서 생각했을 때, 의심할 구석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영장을 보여주지도,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가 날 데리고 온 곳은 누군가의 고상한 저택이었다. 쓸데없이 크고 하얀 저택이었다. 그를 따라 대문을 넘으면 한참을 걸어야 했다. 관리된 정원을 지나고 나서야 하얀 저택이 나왔고, 그 안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공간이었다.
그는 익숙한 듯 계단을 올라 몇 개의 방을 지나쳤다. 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어 그것이 방이라고 인식한 것은 꿈에서 깨고 나서였다. 그는 가장 마지막 방으로 나를 인도했고, 그 안엔 정장 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를 소개하는 것이 마지막 꿈의 기억이었다.
“은하일보 기자 차학연입니다.”
그는 악수를 건넸지만, 나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족혐오인가?”
그는 웃었다.
“이해합니다. 이상하게 느낄 만하죠.”
“…….”
“근데 알아둬야 할 건, 강별씨가 기댈 곳은 저 하나라는 거죠.”
자신에 찬 눈빛, 그 눈빛이 혐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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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力
Written by. Horror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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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을 사이코메트리라고 소개했다. 물체가 닿으면 그 물체와 관련된 과거가 그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분명 그것으로 끝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능력을 더 발전시켜 나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원할 때 그 능력을 차단시킬 수도, 그 능력을 기자로서 활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신문을 손끝으로 훑기만 해도 그 사건의 진실이 보인다고 했다. 물론 물건에 닿는 것보다 미세하지만, 그래도 진실을 쥐고 있는 소재 파악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은 굳이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초면에 믿기 힘든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게 만드는 정확한 어휘, 단정한 커프스 버튼과 셔츠 깃 사이로 보이는 비싼 시계, 맞닿은 두 손끝의 정갈한 손톱은 그와 내가 극과 극임을 표현한다. 그는 친절히도 설명하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더 보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는 아주 돈이 많고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며, 그저 흥미를 위해 나를 찾아온 듯 했다.
“오늘 아침에 뉴스 봤어요?”
뉴스라면, 아무래도 형사가 나를 찾아왔을 때 봤던 뉴스를 말하는 것인가.
“이상하죠.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뉴스에선 강별씨가 범인인 것 마냥 매도해요.”
“…….”
“보통의 경우라면 경찰이든 검찰이든 기자들한테 떡밥 안 주려고 할 텐데, 이상하게 처음부터 범인이 정해진 양 굴고 있어요.”
“그래서요?”
“이상했죠. 그래서 그 신문을 훑어봤어요.”
“…….”
“그랬더니 더 이상하더라고. 나는 살면서 두 개의 상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사건의 진실은 두 개로 보였어요.”
“…….”
“하나는 강별씨가 칼을 쥐고 있고, 다른 하나는 강별씨의 아버지가 그 칼을 쥐고 있었죠.”
“…….”
“단순한 흥미로 이러는 건 아니에요. 나와 비슷한 사람인지, 우리 말고도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꽤 궁금해서.”
그리고 당신의 일을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는 작게 덧붙여 말했다. 확신이었다. 형사와 기자 모두 자신들이 내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헛웃음이 나왔다.
“뭘 바라고 해결해준다는 건데요?”
“응?”
“나는 당신들이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 거라곤 생각하지 않거든요. 나도 살만큼 살아봤고, 알만큼 알아요. 그래봤자 나는 당신들보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데.”
“뭘 바라진 않은데…….”
기자는 말끝을 흐렸다. 형사는 답답한 듯이 제 머릴 흩뜨렸다.
“우린 우리 말고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지가 가장 관건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
“영화에서처럼 초능력을 쓸 줄 아는 사람들.”
“…….”
“네가 왜 그렇게 보는지는 이해하는데 우리도 답답해서 그래. 여태껏 드러내놓고 능력을 쓰는 사람들을 못 봤거든. 어제 갑자기 차학연이 우리 같은 애를 본 것 같다고 해서 널 데려온 거고.”
초능력이라면 예지몽을 말하는 건가. 그 정도가 초능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서 우린 진실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도울 수도 있고.”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몰라요.”
“뭐든 괜찮아요.”
기자는 따뜻하게 눈을 맞췄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예지몽을 자주 꿨어요.”
“그, 미래를 보여주는 그런 꿈?”
“네, 그거.”
“언제부터?”
“그건 모르겠는데……. 아마 어릴 때부터였어요.”
우리랑은 다른데, 형사가 기자에게 속삭였다.
“그날, 갑자기 꿈을 꿨는데, 그 꿈은…….”
“강별씨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요.”
형사는 두 손으로 제 머리를 헝클였다.
“그것만으론 알리바이 증명이 어려울 거야.”
“나는 그동안 찜질방에서 머물렀어요. CCTV 확인하면 되잖아요.”
“그 찜질방 이름이 어떻게 돼?”
나는 형사에게 내가 묵었던 찜질방을 말해주며, 근처에 지하철역과 나의 일터가 있었다고 전했다. 형사는 익숙하게 수첩을 꺼내 몇 자 적더니 바로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형사는 기자에게 일단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바로 전화를 하러 나갔다. 물론 벽이 투명했기에 형사는 잘 보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말을 믿어야 할 텐데.
“경찰에선 지금 강별씨의 소재 파악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내 촉 상…….”
“…….”
“강별씨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요.”
“진짜예요! 나는 진실을 다 말했어요!”
나는 절실하다.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쓸 순 없다. 갑자기 기자는 자신의 상체를 뒤로 젖혔다.
“진짜 맞지?”
줄곧 존댓말을 써오던 그가 단숨에 차가워졌다. 나는 급속도로 달라진 그의 분위기에 얼어붙었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나는 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고, 미래를 보는 꿈을 꾼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말만 늘어놨으니까. 애초에 이상한 사람들에게 끌려온 거나 다름없었는데. 사람 쉽게 믿는 거 아니라고 그렇게 겪어놓고서 나도 모르게 다 말해버렸다. 후회됐다. 나는 어쩌자고 그렇게 순진하게 다 말해버렸을까.
냉각된 공기에서 벽이 움직였다. 흰 색의 벽은 벽이 아니라 문과 같았다. 그 안에는,
“응, 거짓말 하는 건 아니야.”
사람이 있었다.
“그럴 그릇도 안 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도 안 되게 하얀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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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설정이 안 되네요. 부득이하게 유튜브로 올립니다.
오랜만에 돌아오게 되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