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꿈꾸던 일이 있었다. 범우주적인 글을 쓰는 것. 어떻게 보면 소박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정말 특별한 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난 신비하고 기이한 것에 사족을 못쓰는 아이였다. 영화를 볼 때도 항상 판타지, SF류만 즐겨보았으며, 하루에도 몇 번 씩 요상한 상상을 하기에 바빴다. 사람들은 그런 날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부모님도 나를 걱정하셨다. 나는 내 머릿속의 거대한 세계를 펼쳐나가기를 원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상상은 커져가 나를 짓눌렀고, 그것을 표출하고 싶었으나 나를 이해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열다섯이라는 어린나이에서부터 스물 여덟인 지금까지 세상에서 서서히 겉돌기 시작했다. 죽을만큼 공부해서 별 볼일 없는 대학에 들어가 관심없는 과에 들어가 의미없는 공부를 하고, 의미없는 나날을 보냈다.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나를 이해해주는 아이는 몇 있었으나 비슷한 아이는 없었다. 나는 내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소외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스물 세살이 될 무렵, 대학을 자퇴하고 방안에 들어박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참 무모한 일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넘쳐나는 상상뿐인 나는 바보같은 짓을 시작했다. 하루의 반은 몸을 혹사시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하루의 반은 글을 쓰며 보냈다. 기대감에 부풀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좀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항상 똑같은 말을 했다. 창의성은 굉장히 뛰어난데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그렇게 반복되는 퇴짜를 맞으며 글을 쓴지 5년이 좀 넘었을 때, 나의 세계를 끌어안는 유일한 존재를 만났다.
푸른 별 회고록
by M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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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여기! "
종인은 졸리는 눈을 비비며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경수가 자신의 몸집과 비슷한, 아니 더 큰 망원경의 앞에 앉아 있었다. 헐, 이게 뭐야?! 종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망원경 쪽으로 달려갔다. 광택이 번지르르한 망원경은 딱 봐도 꽤 값이 나가 보였다. 종인은 졸렸던 것도 잊고, 그 육중한 몸집을 보며 감탄했다.
" 죽이지? "
종인은 이제야 경수가 왜 그렇게 자신의 집으로 놀러오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경수는 종인에게 있어 유일하게 마음이 맞는 친구였다. 종인의 독특한 상상력을 이해해주고, 때로는 더 창의적인 상상을 보태기도 했다. 경수는 현재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별에대한 관심이 많았다. 며칠 전부터 경수는 종인을 계속 귀찮게 했다. 우리 집에 와봐. 보여줄 거 있어. 아 왜 안온다는 거야? 알바 그거 하루 쉬면 뭐가 어때서! 한 번만 와보라니까? 종인은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을 미루고 미뤘지만, 결국 성화에 못이겨 오늘 경수의 집을 찾아갔다. 문은 열려있으니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고 들어간 집안은 고요했고 경수는 보이지 않았다. 종인은 좁지는 않은 경수의 집을 몇번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베란다 쪽에서 경수의 목소리가 들려와 그 쪽을 바라본 순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다란 천체 망원경. 경수가 갖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것이었다.
" 너 보여주려고 기다렸다. "
" 돈 없다며? "
" 쥐꼬리 만한 월급 아껴서 샀지. "
종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서있지 말고 한 번 봐봐. 경수가 멍하니 서있던 종인의 등을 떠밀었다. 종인은 자연스레 망원경 앞에 자리하게 되었다. 슬며시 망원경을 잡고 조심스레 눈을 가져다 대었다. 검은색 하늘 위에 자리한 별들이 보였다. 이 쪽으로 하면 목성 줄무늬도 보여. 경수가 망원경을 살짝 옆으로 틀어주었다. 종인은 거의 10분 동안을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구멍이 송송 뚫려있던 달의 표면부터, 각기 다른 행성들의 까슬한 표면, 아름답게 수놓아 있던 별들. 우주는 웅장함의 연속이었다. 종인은 신비한 장면들을 남김없이 모두 눈 속에 담았다. 경수는 그런 종인을 못말린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 야, 김종인. "
대답 좀 해봐. 아, 어.
" 이거 보면 그런 생각 들지 않냐? "
" 뭐가. "
" 네 말처럼, 진짜 행성에 생명체가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어쩌면 지구에서 살고 있을지도 몰라. "
망원경으로 우주 아주 먼 곳까지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경수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종인은 망원경에 정신이 팔려 경수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얼핏 검은 우주 속을 유영하는 여행자를 본 것 같기도 했다. 종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한 시간 정도를 망원경만 붙들고 있던 종인은 이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아쉬운 마음에 망원경을 몇 번 쓰다듬고는 일어나 베란다를 나왔다. 거실로 나가보니 경수가 소파에 웅크린채 자고 있었다.
" 야, 도경수. 일어나. "
완전히 골아떨어진 경수는 종인이 몸을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종인은 고개를 젓고는 인사도 못한채 경수의 집을 나섰다. 한 여름이었지만 바람이 제법 서늘했다. 얇은 가디건을 여미며 한참을 걸었을까 종인은 깜짝 놀라 뒤로 까무라칠 뻔 했다. 가로등도 별로 없는 골목길은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만 누워있는 사람의 손을 밟아버린 것이다. 분홍색 머리를 한 새하얀 남자. 얼핏 보니 쓰러져 있는 것 같았다. 종인은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채 남자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 저기요, 괜찮으세요? 저기요! "
혹시 죽은건 아닌가 싶어 코 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위험할텐데. 가뜩이나 흉흉한 사건사고들이 많이 일어나는 동네였다. 종인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취방까지의 10분 거리를 남자를 들쳐매고 집으로 향했다. 남자는 키가 무척 커서 집까지 가는데 무척 힘이들었다. 종인의 턱선을 따라 굵은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가까스로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종인은 남자를 이불 위에 던지듯 눕혀 놓고는 숨을 골랐다. 땀으로 범벅된 온 몸이 찝찝했다. 샤워나 해야겠다. 종인은 아직까지 기척도 없는 남자를 한번 쳐다보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찬물을 맞으니 좀 살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은 뒤 그냥 나가려다 밖에 남자가 깨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누워서 고른 숨을 쉴 뿐이었다.
종인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정신이 몽롱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남자의 얼굴을 정말 묘했다. 종인은 남자가 다른 별에서 온 것 같다고 느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나도 참. 헛웃음을 짓고는 옆에 놓여있던 책상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남자 옆에 누워서 자는 것은 무리였다. 종인은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노트북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채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별에서 온 남자. 예상 외로 소설은 술술 써졌다.
어깨 위를 툭툭 치는 손길에 눈을 떴다. 깜박 잠이 들었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아직도 까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몽롱했던 정신이 눈 앞에 자리한 얼굴 덕에 확 깨버렸다. 옅은 분홍색 머리와 회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 아까 쓰러져있던 남자가 깨어난 것이다.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벙쪄있는 나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나는 남자에게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바라보던 남자는 손길을 거두고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아직도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 지구 맞죠? "
" ..네? "
원래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야 정상 아닌가? 내 예상과는 달리 남자의 입에서는 뜻밖의 질문이 흘러나왔다. 이 남자가 배고파서 정신이 이상해진걸까. 잘못 온 것 같아요. 지구는 계획에 없었거든요. 이래서 길치는 여행하지 말라는 거구나.. 남자는 도통 알 수 없는 말들을 해댔다. 나는 용기내어 남자에게 한 마디 건냈다.
" 저.. 아까 쓰러져계셔서 여기로 데리고 왔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네. 남자가 덤덤하게 답했다. 그리고는 정적의 연속이었다. 나의 침삼키는 소리와 시계 초침소리만 고막을 울릴 뿐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오는 남자의 말이 정적을 깼다. 근데. 네? 배고파요.. 먹을 것 드릴까요? 최대한 정중히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는 재빨리 부엌으로 달려가 수납 공간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아냈다. 남자 혼자 사는 곳이라서 먹을 것이라곤 과자 몇 봉지와 라면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남자는 감자칩 한 봉지를 정말 맛있게 먹어치웠다. 우리는 또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남자는 감자칩에 정신이 팔리고 나는 남자를 쳐다보기 여념이 없고. 그러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 아까 왜 쓰러져 계셨던 거에요? "
글쎄요. 남자가 담담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곧이어 또다시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구로 여행왔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 요상한 문장과 말투에 뭐라 대답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남자는 그런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태양에서 아주 먼 행성에서 왔어요. 우주를 여행하기로 했는데 시스템이 고장나서 이곳으로 떨어지게 된거죠. 곧 있으면 저희 별에서 연락이 올거에요. 그럼 몰래 시작한 여행이 끝이 날거구요. 전 엄마에게 혼날거에요 아마. 아마, 하고 말을 마치며 남자가 작게 웃었다. 그 모습이 개구진 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남자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나의 상상속에서 일어날 법한 말들 뿐이었으므로. 남자는 웃는 낯으로 나에게 무어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어려운 부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묘한 기운으로 인해 나는 홀리듯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별로 돌아갈 때까지만 여기서 머물러도 될까요?
네, 하고 대답하는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에서 저절로 나온 대답이었다. 참 이상하다. 정말 이상한 첫 만남이고 이상한 대화에 이상한 표현들. 그러나 하나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 말대로 난 정말 특이한걸까? 몇 번이고 나에게 질문을 했지만 결론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내 앞에서 하늘에 뜬 달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어떠한 이상함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정말 홀려버린게 분명하다.
" 정말 다른 별에서 오신거에요? "
남자가 내 질문에 눈을 접어 웃어보였다. 안 믿으실지 알았어요. 그리고는 다시 달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남자의 분홍빛 머리칼은 어두움 속에서 선명하게 빛을 내었다. 나는 또 다른 질문을 하고 싶었으나 그냥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만히 서있는 날 보고 물었다. 이름이 뭐에요? 그러면 나는 또 홀리듯 답을 하게 될 것이다.
" 김종인. "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