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너무 놀라면 말도 안 나온다더니, 그 말이 영 틀린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짧은 순간에 수백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휩쓸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너무 보고싶어서 나타난 환상일까? 지난 6년간 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그치만 수없이 그리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리고 지금 영화 속의 한 장면같은 전개로 내 앞에서 눈을 맞추며 서있다.
" 이 정도면 괜찮은 등장이지 않아? "
굉장히 괜찮고 로맨틱하긴 했는데, 심장엔 여러 의미로 무리가 좀.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그제서야 차근차근 퍼즐이 맞춰졌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던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 여주야, 다 왔다. "
" 아 징짜...? "
" 잠 덜깼으면 눈 감고있어. 손 잡고 가자. "
" 아라써... "
마크ㅡ를 가장한 김태형ㅡ는 튜브에서 나를 깨울 때부터 한국어를 사용했었고, 나는 잠에 취해 눈치채지 못한 채로 착실히 대답하며 걸었었지. 둘둘 감기는 목도리 냄새를 맡으며 김태형의 교복 가디건을 떠올렸던 것도 내가 미련 덩어리여서가 아니라 정말 김태형의 냄새여서 그랬던 거였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자 그 다음은 기대가 피었다. 너도 날 못 잊었던 걸까, 너도 내가 그리웠던 걸까, 너도 날... 좋아했던 걸까.
/
" 진짜 김태형이야...? "
" 아니, 가짠데. "
" 엉...? "
" 엉은 뭐가 엉이야.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 "
얼추 차분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 우연의 우연같은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사실 하나는, 내 손을 이끌고 할 이야기가 산더미 같으니 어서 타러 가자는 김태형은 실재한다는 거다.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 자연스럽게 런던 아이로 향하는 뒤통수를 쫓으며 혼잣말 하듯이 중얼거리는 나를 그 애는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쳤다. 복장과 배경, 그리고 시간까지 모든 것이 달랐지만 네모진 웃음을 지어보이는 김태형을 마주하자 다시 열아홉으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5년동안 변한게 없다는 김태형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 그럼 진짜로 하지, 가짜로 해? '
6년 전 어느 새벽, 진짜 전화하면 어떡하냐는 타박에 돌아왔던 말은 6년의 시간이 지나도 다른게 하나 없었으니.
여전히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입장한 캡슐 안에는 우리 말고도 여러 관광객이 많았다. 여러명의 사람들은 가족들과 친구들, 간간히 혼자인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커플인 것 같았다. 남들 눈에는 우리도 그냥 커플처럼 보일까. 타고 나서도 창 밖만을 응시하며 뜸을 들이는 김태형에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나 하면서 기다려야겠다고 다짐한 찰나, 드디어 김태형이 말문을 열었다.
" 예쁘다. 말만 들었지 타보는 건 처음이네. "
" ... 온지 얼마나 됐는데? "
" 글쎄, 그래도 3년은 됐지? "
창밖을 향해 선 채로 말하는 너의 목소리의 떨림에서 지금 김태형이 느끼는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기에 왜 3년째나 머물고 있었는지도 궁금했지만 한 번 말하면 다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올 것 같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왜 3년 간 있었는데도 런던 아이는 처음 타보는 건지부터 시작해 그동안 뭐하고 지낸 건지, 나는 어떻게 찾았는지, 그때 왜 그랬었는지 등 여러 질문들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괜히 사연있어 보이는 표정의 김태형을 보니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 왜 지금까지 안 타고 있었는지 안 물어봐? "
" ... 왜 그랬는데? "
" 너랑 타려고. "
그 중 하나는 내가 궁금해하길 바라는 눈치길래 물어봤지만,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오는 대답이 아주 위험했다. 옐로 카드야 너...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혼자만 당하면 억울하잖아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혹시나 하던 기대엔 확신이 섰다. 나는 대답 대신 그 애의 손을 잡았다. 예상 외로 김태형은 조용했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깜짝 놀라 떨어질 것 같았는데. 하던 말도 뚝 멈추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손을 잡힌 채로 목석마냥 서있었다.
" 여주야... "
미안한데 나 손에서 땀이 나서... 잠깐 닦고 다시 잡아도 돼...? 그리고 그 얌전함은 채 3분을 못 갔다. 꼭 쥐고있던 손을 조심스레 놓으며 제 뒤통수를 긁적이는 꼴이 꼭 모의고사를 망친 뒤 잘 봤냐는 물음에 멋쩍어하던 모습과 겹쳐보여 피식 웃음이 터졌다. 말 뿐만 아니라 행동도 그대로네. 김태형은 내가 변한게 없다고 하지만, 정말로 변한게 없는 건 오히려 자기인 것을 영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안된다고 장난을 칠까 싶었는데 관뒀다. 그냥, 장난이라도 그렇게 말하면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아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곤 김태형이 바지 위로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
" ... 보고싶었어. "
" ... "
" 이 말을 제일 먼저 했어야 하는데. "
" 태형아. "
" 응. "
"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
나 기다렸어?
숨 돌릴 틈도 없이 공이 날아들었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은 채로 허공을 끌어안자 예상 외로 허무하게 공은 쉽게 잡혀 멈춰버렸다. 상대방은 당황한 눈치였다. 지금 던지면 내가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품 안에 얌전히 앉아있는 공을 들어올려 던졌다. 힘껏.
" 응. "
" ... "
" 너 고등학교때 런던 꼭 가겠다고 노래를 불렀었잖아. "
그리고, 그 애는 여전히 반칙을 썼다.
/
김태형의 구구절절 스토리를 대강 요약하자면 그랬다. 예전엔 그렇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3학년 올라오며 같은 반이 되자마자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갔다. 그 전부터 자기 친구들이랑은 다 친한데 자기랑만 안 친해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자리가 가까워 같이 지내다보니 친해져서 좋았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빠졌는데 연애를 안해봐도 모르고 있다가 하교하다 우연히 본 내 모습에 알아챘다. 그런데 뭐 이렇게 되어버렸다고. 그 하굣날에 내가 뭘 하는 모습에 반했는지는 끝까지 입을 안 열어서 결국 알아내진 못했다. 그리고, 여기 다음부터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하는 욕지기를 막느라 바빠 잘 못 들었다. 그럼 결과가 어찌되었든 서로 좋아했는데 모르고 삽질만 하다가 끝났다, 이거지.
" 너 정시 준비했으니까, 대학 잘 가라고 연락 꾹 참았지. "
우리는 그냥 바보였다. 심지어 김태형은 내가 제기한 윤가인과의 재회설도 극구 부인했다.
" 그럼 윤가인이랑 카페는...? "
" 카페에서 만난 건 너 이야기로 연애상담 하려다가 너를 만나서... 아무말이나 하다가 무산된 거고, 그 이후로 너가 나 피해다니길래. "
" 졸업식날 고백은...? "
" 뭐야, 너 알고 있었... "
" 응. 너 윤가인 가방에다 편지 넣고 있었잖아. "
" 무슨 소리야 나 그거 니 가방에 넣다가... 너야말로 그 날 누구한테 고백 받았는데!? "
" 나 그 날 고백 안 받았는데...? "
" 그럼 그 꽃이랑 편지는??? "
" 너 거였는... 와, 미쳤네. "
바보도 이런 바보도 없지... 정정한다. 우린 병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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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나마... 하하하
더 쓰고 싶은데 제가 지금 맥주 한 캔 해가지구 ^ㅁ^ 자꾸만 잠이 오네요...
내일 7화 올리등가 수정하등가 하겟습니다 ㅋㅋㅋㅋㅋ 짧아서 오늘은 무료에요 예!
안녕히 주무시구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