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s :: Lavender
W. flowers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던 내 인생이라는 악보에.
희망이라는 음을. 사랑이라는 가사를 그려준 한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시작과도 같은 이야기.
#7.
남자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한 건 나였지만, 막상 낯선 사람을 마주하니 어쩔 수 없이 긴장이 온 몸을 덮쳤다.
내가 비정상적으로 낯선 사람을 꺼린다는건,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 이제 우리 친구에요? "
하지만 이 남자는 나를 모른다.
- 친구하자면서요.
" 도망치길래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
이유 없이 싫어하진 않는데.. 뚱하니 남자를 보자 남자는 생글생글 웃고 있다. 인상이 참 밝다. 난 내내 인상이 어둡단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괜시리 남자가 부러워졌다. 이런 사람들은 우울함이란게 없는걸까. 딱히 할 말이 없어 눈알을 굴리는데 나와 달리 남자는 여유 넘치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 소리가 썩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재주가 좋아보인다 해야하나. 노래를 잘 할 것도 같았다.
남자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인지 병실 이리저리를 돌다가 꽃병을 보자 우뚝 멈춰섰다.
" 전 이 꽃 되게 좋아해요. "
뜬금 없이 왠 꽃 타령이람. 하지만 그것조차 이 사람 답다고 생각되어 가만히 남자의 말을 들었다.
왜요? 라고 눈빛으로 물었는데 남자는 놀랍게도 알아 들은건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제가 제일 많이 본 꽃이거든요. "
" .......... "
" 실은 이름도 몰라요. 헤헤. "
이 사람. 병원에 오래 있었구나. 남자의 말과 표정 뒤엔 많은 생략이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너무나 병원에 익숙해져 있는 저 행동들도. 하지만 남자와 이런 어두운 얘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노트를 들고 무슨 말로 분위기를 바꿔야하나 고민하다 기본적인 것부터 물어 보기로 했다.
아깐 도망치던 내가 이젠 무언가 전하려하는게 신기한지 남자는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 이름이 뭐에요?
" 에~ 그때 알려줬는데? 이창섭이요. "
- 나이는요?
" 스물 넷. "
스물 넷??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자 남자.. 아니 이창섭이 나를 보며 으하하, 하고 괴상하게 웃었다.
스물 넷이라니. 육성재보다도 네 살이나 많다. 전혀 그렇게 안보이는데.. 나랑 여섯 살이나 차이난다.
" 그 쪽은요? "
- 18살이요.
" 엥. 완전 애기네. "
애기라니.. 이창섭의 말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뭔가 억울했다. 왜 나보다 더 애 같은 사람한테 애 취급을 받는거야? 육성재로 때때로 날 애 취급하지만.
다시 찾아 온 정적에 어색해서 팔을 쓸었다. 이번엔 남자쪽에서 물어왔다.
" 이름이 뭐에요? "
이름.. 이런 질문도 오랜만에 받네. 가만히 내가 적는 글자들을 보던 이창섭은 말 없이 웃다가 속삭였다.
이름, 예쁘다. 라고.
" 야!!!!!!!!!! "
" 으왁!!!!!!!!!! "
" 죽을래!! 그새 또 도망을 가!? "
갑자기 또 한 번 병실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왠 남자가 나타나 이창섭의 귀를 사정없이 잡아챘다. 뭐, 뭐야.. 이 상황..
병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온게 처음이라 잔뜩 벙찐 채 막 쳐들어 온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이창섭을 놓고 90도로 인사했다. 이건 또 무슨..
" 죄송합니다. 제 동생 놈이 민폐를 끼쳤네요. 당장 데리고 사라지겠습니다. "
" 아냐! 나 얘랑 친구야!! "
" 닥쳐라. "
" 진짜라고! "
동생..? 그럼 이 사람이 형? 하나도 닮지 않은 형제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 민폐 아니에요.
" 음..? "
아. 이 사람은 내가 말 못하는걸 모르지. 무심코 종이에 적어 보여줘버렸다.
남자는 종이를 슥 보더니 내 예상과 달리 이창섭의 귀를 다시 낚아챘다. 또 무슨 짓 하고 있었어. 하고 으르렁 대는 남자를 말리려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아니.. 민폐가 아닌데..! 그보다 내가 말 못하는건 아무렇지 않은건가?
" 아, 형!! "
" 검사 3시까지라 했지. "
" 윽.. "
" 가자. 죄송했습니다. "
" 여깄는건 또 어떻게 안거야.. "
" 꿍얼대지마. "
이창섭이 두터운 입술을 쭉 내미니 남자는 그걸 또 툭 치고 내게 목인사를 했다.
아.. 인사를 해야하는데.. 급히 종이를 들었지만 이미 남자들이 병실을 나가버린 후였다.
- 안녕히 가세요.
뒤늦게 종이에 인삿말을 써봤지만, 읽을 수 있는건.. 나밖에 없구나.
" 아아, 죄송. "
" ? "
가버린 줄 알았던 남자가 다시 문을 열더니 손가락을 까딱였다. 응? 내가 의아해하자 종이를 콕콕 가리킨다.
이거, 들라구요? 가만히 종이를 들자 글씨를 읽은 남자는 살짝 웃었다.
" 안녕히 갑니다. "
" ............. "
" 또 봅시다. 왠지 저 놈이 그 쪽한테 자주 올 것 같으니까. "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형제는 형제구나. 물끄럼히 종이를 보다 한장을 넘겨 글씨를 끄적였다.
- 형제는 마음이 닮는구나.
작가의 말 |
형은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이' 씨 입니다. 비투비엔 이씨가 두 명이니까 아실거라 믿어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