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주십시오."
착한 성미가 덕지덕지 붙은 짙은 눈썹이 아래로 수그러져있다. 이 씨 옆의 만삭의 아낙네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고, 옆의 이 씨는 짙은 눈썹을 아래로 수그리고는 손을 뻗어왔다. 창백한 인상은, 자신의 속내를 담아냈다. 그에 손에 쥐고 있던 보따리를 이 씨에게 넘기고는 물었다.
"짐은 이게 답니까?"
"예."
계속해서 눈길이 가는 짙은 눈썹에서 시선을 돌리고는, 이 씨의 눈을 마주봐라보았다. 피로에 한껏 풀이 죽은 눈은 힘이 없었다. 이 씨는 마당에 널부러진 비루한 짐들을 휘저으며 이것이 다라고 말한다. 팔로 휘저으며 다라고 하는 그의 얼굴엔 드러나지 않았지만 창피함을 베여있었다는건 세살배기 꼬마들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자신들의 집을 꾸릴게 고작 몇몇개의 보따리이였기에 말이다. 그럼, 수고하라고 한뒤에 나는 다시 슬리퍼를 벗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고대로 놓여있는 밥상앞에 앉아, 마당에서 이래저래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 씨네를 쳐다보며 숟가락을 놀렸다. 국이 오늘 따라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에구머니나, 여보. 아무래도 약속이 틀린거 같은데."
손에 묻은 물기를 닦은 뒤 아내가 내 귀에 말을 흘렸다. 그래, 확실히 약속이 틀렸다. 이사를 오라는 말이 없었는데 덜컥 와버렸으니, 틀린게 맞는것이다. 그치만, 나쁘지 않았다. 기분이 썩 나쁘지가 않았다. 오히려 좋아지고 있었다. 다시한번 숟가락을 들었다. 국이 간이 알맞게 베어 입에 감기었다.
- - -
이 씨네가 덜컥 문간방으로 이사온지 며칠이 지나서였다, 대문에서는 누군가가 온듯 댕동 거렸고 그에 어기적거리며 나가자 옆집의 동선생이 서있었다. 멋쩍스럽게 웃으며 대문안으로 들어오고는 저 손에 들린 조그만한 바구니를 내민다. 아아, 그냥 떡 좀 쪘는데 드시라구 하며 또 멋쩍게 웃는다. 그에 감사하다고 하며 어언일로 왔냐 물었다.
"아 글쎄, 요 근래에 형님 댁 문간방에 이승현이라구 있잖소. 그 사내 말이오."
"이 씨 말입니까?"
"참, 형님도 말씀 놓으시라니까…, 암튼 그 작자가 전과가 있다잖수! 그래서 쫓기듯 이사온거라든디. 형님 여하여튼 조심하시라구 이렇게 찾아왔지 말이야. 그럼 형님 잘계시구 부탁할거 있으면 언제든 들리시구,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말 좀 놓으쇼!"
동선생은 넋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훠이훠이 가버렸다. 손에 들려진 바구니 안에 있는 하이얀 떡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뜨거운 김이 얼굴에 닿으며, 얼굴을 적셔온다. 바구니를 들고 본채로 들어서려다, 저어기 구석뱅이에 있는 조그만한 문이 눈에 들어온다. 손에 들려진 바구니를 맨지작 거리다가 그 조그만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똑똑똑 두드리니, 조용히 문이 열리고는 창백한 인상의 이 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있었다.
"이거 드십시오. 옆집에서 가져다 준건데, 제 아내와 저는 떡을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에요. 보니까 아이가 있는것 같던데 먹이세요."
이 씨는 조심스레 바구니를 받아들고는 고개를 꾸벅였다. 꾸벅이는 이 씨의 얼굴뒤로 벽 옆으로 조그맣게 얼굴을 내민 어여쁜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스를쩍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에 아이는 고새 숨어버렸다. 이 씨는 바구니를 들고 머뭇거리더니만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비루한 집에 집의 본주인을 들이는게 못내 창피한것인지 썩 좋은 표정은 짓고있진 않았다. 슬리퍼를 벗으며 자연스레 눈이 아래로 향하자 그 곳엔 열 켤레의 구두가 신줏단지 모시든 놓여있었다. 빤질나게 잘 닦여져 은은한 광택이 도는 좋은 구두들이었다. 지금 이 씨의 형편과는 맞지 않는 구두들이었다. 그의 성품이 고집스레 묻어있는 것 같아, 괜히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이 씨가 어서들어오시라고 말하였다. 그에 마저 슬리퍼를 벗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급하게 이사를 해야할 일 때문에 약속했던 것과는 다르게 말없이 와버렸다고 설명을 덧붙이는 이 씨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린다. 그리고 이삿날 보았던 이 씨 옆의 아낙네는 이 씨의 부인이었고, 임신 9개월 이라고 하였다. 예상했었던 만삭이 적중하였던 것이었다. 괜스레 커피를 한모금더 삼켰다. 입안에 남은 커피가 쓰게 느껴진다. 싸구려 믹스커피가 쓸게 어딨다고, 잔유물이 입안을 쓰게 적셨다. 이 씨 옆에 딱 달라붙어 앉은 조막만한 계집아이는 이승호 라고 놀랍게도 사내아이였다. 사내아이 답지않게 또래 애들보다 긴머리카락과 기다란 속눈썹, 제 아비를 닮아 희디 흰 피부는 누가봐도 계집아이였다. 놀라움에 아이만 쳐다보고 있자, 아이는 이 씨 뒤에 숨어버린다.
"아저씨는 나쁜 사람 아니야."
주머니에 있던 알사탕 하나를 건네어 아이에게 건네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호기롭게 거절당했다. 아이는 맹렬히 고개를 돌리곤 이 씨 뒤에 푹 숨어 발끝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 이 씨는 죄송하다며 아이가 쑥쓰러움이 많다고 알사탕을 대신 건네 받아가 아이에게 건네었다. 알사탕을 받아가며 맞닿은 이 씨의 손끝이 차가웠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