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대는, 어딨어?
..........
야, 장이씽.
.....갔어.
어디를.
지옥.
들고있던 노란 우산이 땅으로 툭, 박혔다. 찰박거리는 빗물소리와 함께 턱끝에 고여 떨어지는 차가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무밤을 자고 일어났고,서른밤을 혼자 방에 쳐박혀 지내서야 깨달았다.
종대는.
'형, 좋아해요.'
나의, 김종대는.
'구역질나, 꺼져.'
죽었다.
루한을 사랑한 김종대는 자살.
그리고 남겨진 루한은 종대가 죽은 그날이후부터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민석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창가에 앉아 창문을 검지로 톡톡-. 거리며 두들기던 손가락이 멈췄다.
왔어?
곧, 손가락은 제자리인 것처럼 루한의 입술사이로 씹혀들어갔다.
잘근, 잘근.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걸어온 민석이 루한의 손목을 낚아채듯 빼냈다.
그만해. 피나잖아.
신경꺼.
..루한.
신경,끄라고.
입을 그대로 꾹 닫은 민석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야 루한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마른 세수를 한 루한의 눈이 정처없이 밖으로 나돌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늘.
종대야..
김종대가 생각났다.
그는, 비오는 날 머리를 땅으로 처박아 죽었으니까.
몇일동안 비어버린 책상을 보던 민석은 수리 선생이 교탁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힐끔 보고서는 교재를 꺼내려 책상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손안에 잡힌 건 참고서와 연필 그리고. 웃고있는 세사람. 사진을 절반으로 찢어버린 민석은 미친사람처럼 웃었다. 잘게 조각난 사진은 자신같았다. 꼭, 갈기갈기 찢겨진 김민석.
루한을 좋아한 건 종대가 먼저였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그 둘 사이에 끼어든 건 바로 자신이었다. 지켜만 보자고 다짐했던 마음이 종대가 루한에게 고백하는 것을 목격한 뒤로. 무너졌다. 처참하게.
'형, 루한형 못봤어?'
'못봤는데..'
어색하게 웃어보인 민석이 가방을 고쳐매고 나가려다 멈춰섰다. 의아하게 교실안을 배회하던 종대를 힐끔거리다 입을 달싹였다.
있잖아 종대야.
응?
루한은.
.....
게이싫어해.
형..
루한의 책상앞에 멈춰서서 그가 앉았을 의자위를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참을 수 없는 희열감이 민석을 싸고돌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악을 쓰고 울것 같은 종대의 표정이 위태로워보였다.
솔직히.
.....
더럽잖아.
......형..그게..
역겨워.
다리에 힘이 풀린 종대가 주저앉고서야 민석은 완연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입꼬리를 가득 당겨올린 민석의 웃음은 예뻤다. 역겨운거야, 종대야, 그건 더럽고 역겹고 구토가 나오는 짓들이라고. 근데, 나는 내가 가장 역겨워. 민석은 입을 다물었다. 뒷말은 하지않기로 했다. 더이상 쓸데없는 소리는 자신에게도 상처가 될 뿐이였다.
몇일 뒤 종대의 책상위에는 흰 국화 한송이가 올려졌다. 그리고 루한은 미쳐갔다.
출석을 부르는 수리선생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김민석.
네.
루한.
루한없어? 몇일째 집에도 안들어갔다더니. 이새끼 이거.
비어버린 책상은 더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방과 후 민석은 처음으로 학원, 집 그리고 루한이 집도 아닌, 딱 한번 가본적이 있는 낡은 건물로 발길을 돌렸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빨갛게 터질듯한 태양이 썩 마음에 들었다. 민석은 웃지 않았다. 웃음기가 맴도는 얼굴이였지만 눈은 지극히도 무거웠다. 탁,탁-. 계단 위를 가뿐히 오르고 낡아빠진 옥상문을 열었을 때 난간밑에 웅크린 익숙한 노란 머리가 보였다. 왈칵,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가볍고 밝은 머릿결이 축 늘어져 까맣게 더럽혀져있었다.
...루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대로 몸을 웅크려 감싸안은 그는 꼭 어미의 뱃속에 자리잡은 태아같았다. 한겨울에 반팔티셔츠를 입은 루한의 하얀 팔이 무섭도록 늘어져있었다. 운동화를 질질끌어 더듬더듬 그의 얼굴을 매만지자 눈을 끔뻑이는 게 죽은 사람마냥 기운이 없었다. 겨우 참았던 울음이 결국 터져나왔다.
루한..루한....
......
정신좀..차려봐...루한..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손끝에 피가 딱딱하게 굳어 말라붙어있었다. 열손가락을 다 물어뜯은 건지 손톱끝이 삐뚤삐뚤 날카로웠고 핏멍울이 뭉글게 맺혀있었다. 눈물때문에 흐려진 시야를 벅벅대며 닦은 민석이 가방안에서 밴드를 꺼내 조심스럽게 붙였다. 민석이 하는 것을 멍하니 보던 루한이 고개를 툭, 떨궜다.
퉁퉁 불어버린 손에는 체온이 남아있지 않은 것마냥 시리고 시렸다. 민석은 루한의 굳은 두 손을 입앞으로 끌어당겨 호- 입김을 불었다. 점점 녹아가는 손처럼, 루한의 마음도 제게 녹아주었으면 하고 바랬었다. 이미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이미, 김종대는 죽었고 루한은 혼자 남겨졌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김민석은...
나는.. 나는 안돼?
...
나는 안보여..? 나는, 정말 안돼?
갑작스럽게 눈물을 닦아내는 손길에 고개를 쳐든 민석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며 루한이 웅얼거렸다.
'사랑해'
다 쉬어버린 목소리가 색색대며 거칠었다. 입모양을 뻐끔거리며 사랑한다 말하는 루한의 품에 정신없이 안겨들었다.
그리고, 듣지못했던 뒷말.
'종대야..'
그대로 굳은 민석이 헛웃음을 흘렸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