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자살이라면 보편적으로 잘린 손목이 욕조 밖에 나와있는 장면을 생각하실 줄로 압니다. 하지만 죽은 김종인은, 잘린 손목과, 손목을 그은 칼과 함께 핏물에 담겨있었습니다. 피고인 박찬열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질문에 솔직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은 김종인의 핸드폰을 확인해보자, 문자 메세지 수신함에 피고인이 보낸 문자가 있었습니다. 모두 미안하다, 는 내용 뿐이었죠. 김종인에게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변호인 석에 앉아 검사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던 백현이 손을 들어 판사에게 외쳤다.
"이의 있습니다! 검찰 측은 지금 사적인 문제까지 사건에 개입시키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 문제는 이 사건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을 용의자로 구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오세훈 검사, 계속 하세요."
"질문에 답 해주세요, 피고인."
겁먹은 표정을 하고 앉아있던 찬열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옆에서 수화를 해석하기 위해 서 있던 사람이 찬열의 손을 유심히 봤고, 찬열의 움직임이 끝나자 큰 목소리로 말했다.
"…종인이의 애인을 사랑했어요. 그걸 종인이가 알게되었고, 그래서 사과 한 거에요."
"김종인은 그 사과를 받아주었나요?"
세훈의 말을 들은 찬열이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훈이 판사를 보며, 증인 신청을 했다. 그리고 곧 남자 한 명이 나와 증인석에 자리하고 앉았다.
"선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인, 도경수."
"증인, 증인은 김종인과 무슨 사이입니까?"
"…저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제, 담당 의사선생님 이셨어요."
"김종인은 평소 어떤 성격이었죠?"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고 다정했어요. 처음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꺼려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치료도 잘 받고…,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다만 흠이 하나 있다면……. 선생님은 정말 깔끔하셨어요. 정말로, 오늘 입었던 옷은 절대 내일 입지 않았어요. 진료실도 매일 청소하셨구요……."
"김종인은 흡연을 했습니까?"
"……아니요, 절대 담배같은 건 피지 않으셨어요. 오랫동안 치료 받으면서 담배 피는 모습은 물론, 담배 냄새를 한 번도 맡은 적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했던 말들 모두 확실합니까?"
"네, 확실해요."
"감사합니다."
세훈이 하는 질문에 긴장한 듯 대답했지만, 마지막에 확실하다는 말은 단호하게 말한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경수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고, 그건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세훈이 발걸음을 돌려 판사와 배심원 쪽을 보며 말했다.
"김종인이 죽어있던 욕조 안에는 가슴께까지 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종인은 머리와 얼굴까지 젖어있었습니다. 김종인은 매우 깔끔한 성격에 매일 청소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김종인이 죽어있던 욕실에 김종인의 지문조차 발견되지 않았던 샤워기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김종인의 몸에 남은 지문을 지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백현이 눈을 돌려 판사와 배심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대부분이 찬열을 살인자로 보고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백현은 세훈이 말을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자신은 찬열을 믿는다는 생각 하나로 찬열을 변호하기로 했지만, 찬열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증거가 많지 않았다. 백현이 초조해하고 있는 사이, 세훈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피고인, 제가 조사해본 결과, 피고인은 최근 몇일동안 담배를 피운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찬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자신도 몰랐던 찬열의 흡연 사실에 놀라 눈을 크게 떠 찬열을 바라봤다. 하지만 찬열은 고개를 들지도 못한채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세훈이 종이 한장을 꺼내들더니, 판사와 배심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은 피로 가득한 욕조의 사진이었다.
"여기, 자세히 보시면 핏물 위에 담뱃재가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김종인은 비흡연자 입니다. 그렇다면 이 담뱃재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판단은 배심원분들께 맡기겠습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찬열이 살짝 고개를 들어 백현을 봤다. 찬열을 바라보던 백현과 눈이 마주치자 찬열이 곧바로 시선을 피한다. 그런 모습에 백현은 또 다시 마음이 아파왔다. 세훈이 자리에 앉았고, 백현은 찬열만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제가 찬열을 지켜줄 차례였다.
"저희 변호인측은 증인 먼저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증인, 올라와 주세요."
백현이 말하자 한 남자가 증인석에 올라와 앉았다. 남자는 증인석에서 선서를 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인 김,준면."
"증인은 죽은 김종인과 관계가 깊은 사람이죠."
"네, 종인이……, 친 형이에요."
"그런데 증인은 왜 검찰측이 아닌, 피고인의 변호측에 증인이 되었죠?"
"죽은 종인이를 위해서라도 이 오해를 푸는데 도움이 되고싶었어요. 종인이와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찬열이를 저 또한 오래 봐왔습니다. 제가 몇년동안 봐 온 찬열이는 절대 그럴리가 없어요. 찬열이는 종인이를 위해서 학교도 자퇴할 만큼 정말 마음으로 종인이를 생각해주는 친구였어요."
준면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똑똑히 말했다. 잠시 감정을 누르는 듯 보였던 준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종인이도 그런 찬열이를 위해서 수화를 배우고, 찬열이의 실어증을 낫게 해주고 싶다며 정신과 의사까지 꿈꾸게 되었어요. 그런 둘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찬열의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숙여졌던 고개가 더욱 숙여졌다. 백현은 그런 찬열의 모습을 보며 한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몰래 눈물을 닦아냈다. 종인이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꼭 고쳐주고 싶은 친구가 있어. 그래서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다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더라고. 근데, 그 친구 고쳐주려면 아직 멀은 것 같아…….
"…죽은 김종인과 피고인의 평소 모습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종인이가 요새들어 울적해했어요. 저는 그냥 일이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찬열이는, 평소에 벌레 한마리 죽이는 것도 꺼려하는 애였어요. 그런 애가, 어떻게……."
준면이 결국엔 울음을 터뜨렸다. 많은 사람들 앞이라는 것을 잊었는지, 그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찬열 또한 울기 시작했다. 백현은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고 증인,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찬열에게 눈을 돌렸다.
"피고인, 김종인은 죽고나서 1일 후에 발견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4일전 오전에 죽은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시간, 피고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죠?"
찬열이 좀 생각하나 싶더니 눈물이 맺혀 떨리지만 단호한 눈으로 백현을 바라보며 손을 움직였다. 해석가가 그 손을 보고 말했다.
"…집 주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어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준비한 증거자료 제출 해도 되겠습니까?"
"인정합니다. 제출하세요."
백현이 법원에 있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영상을 틀었다. 그 것은 마트 CCTV 영상이었다. 영상의 왼쪽 맨 위에는 4일 전 날짜와 오전 시각을 증명해주는 숫자들이 쓰여있었고, 멀리 보이는 과일코너에 과일들을 비교해보고 이것 저것 사는 찬열의 모습이 작게 보였다.
"피고인은 김종인이 죽은 시간, 분명히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다음 영상 하나 더 보시죠."
백현이 리모콘을 움직여 다음 영상을 틀었다. 그 영상도 마찬가지로 CCTV 영상이었다. 역시 날짜와 시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는 영상에 사람들은 더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찬열의 차가 저택으로 왔고, 주차를 마친 찬열이 운전석에서 내려 트렁크에 있는 봉투를 꺼내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백현이 손을 움직여 영상을 정지시켰다.
"피고인은 장을 본 후 곧바로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까요."
배심원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백현은 조금이나마 안심했고, 판사가 의사봉을 두드리며 정숙하세요, 라고 하자 다시 법원 안이 조용해졌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찬열이 떨리는 손으로 침착하게 수화를 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 때문에 해석가가 좀 더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울음을 터뜨린 찬열이 울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저 흐느끼는 소리만 내며 계속 손짓했다. 보고있던 백현도 결국엔 눈물을 터뜨렸다.
"저는 여러분들께 저의 무죄를 애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종인이를 죽였다고 판결이 나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 뿐입니다. 종인이가 단 한번만이라도 제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너와 같은 사람 만나지 못할 거라고,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살아있을 때 말 못했지만 정말 사랑한다고……. 말 하고 싶어요."
"여러분, 제가 준비한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진심을……, 짓밟지 말아주세요."
이제 판결만이 남았다. 찬열의 유죄, 무죄 여부는 배심원들에게 달려있다. 백현은 마음 속으로 기도 하기 시작했다.
"피고인 박 찬열."
"……."
"무죄 확정."
판사가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백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고, 찬열 역시 눈물을 꾹 참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백현이 운전석에 앉고, 찬열이 보조석에 앉아있는 차는 납골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종인을 보기 위해서였다. 백현의 오른손과 찬열의 왼손이 꽉 붙잡고 있었다. 둘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꽉 잡은 서로의 손이 대신 마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납골당에 도착해, 백현과 찬열이 차에서 내리고 종인을 찾아 갔다. 종인의 자리에는 종인의 사진과 백현과 종인 둘이 찍은 사진, 이렇게 두 장이 있었다. 백현은 그 앞에 섰고, 찬열은 백현의 뒷쪽에 섰다. 백현이 사진들을 보며 혼잣말처럼 작게 말했다.
"종인이……, 왜 그랬을까."
찬열이 백현의 뒤에서 백현의 어깨와 목 쯤을 껴안았다. 백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진만을 보고있었다. 그 때, 찬열이 손을 뻗어 종인과 백현이 둘이 찍은 사진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백현의 눈 바로 앞에서 사진 속 둘을 갈라놓기라도 하듯 반절로 주욱― 찢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
"백현아."
백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곳에는 찬열과 자신 뿐 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부르는 이 목소리는…….
"종인이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해?"
"……."
"내가 죽였는데."
백현은 이제 몸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심지어 웃음을 머금고 말한다.
"니가 종인이를 못 놓겠다고 해서,"
"……."
"내가 널 도와준거야."
"……."
"이제서야 넌 온전히 내 것이 되었구나……."
달콤한 목소리로 행복하게 말하는 찬열의 목소리에 백현은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찬열은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처럼 백현을 더 꽉 껴안고 또 다시 달콤하게 속삭였다.
사랑해, 백현아.
아..안그래도 마지막이 이상했는데
다 썻던 완결편이 날아가서.......................... 더 형편없어진거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드디어 녹턴 본편의 연재가 끝낫네요!!!!!!!
찬열이 번외는 조만간 올라옵니닿ㅎㅎ찬열이의 아픈 과거를 알수 잇게끔 열심히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