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우리의 FM |
07
W. 담녀
버스 정류장에 선 우현은 제 핸드폰을 꺼내 손에 쥐고는 30초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했다. 아씨, 김명수 그 놈의 연애얘기에 빠져있는게 아니었는데. 며칠 전과 똑같이 성규와의 약속시간 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려 명수의 작업실을 찾은 우현이었다. 평소와 같이 명수의 일도 좀 도와주고 자신도 조언을 받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순간 떠오른 기억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선물'의 출처를 물은 게 화근이었다. 평소 자신이 관심 있는 일을 제외하고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명수의 최근 주요 관심사를 콕, 찔러버린 것이다. 그리고 콕, 찔려버린 명수는 장차 2시간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써버렸고.
"으아, 김명수!!!"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는 핸드폰 시계에 우현은 절망하며 제 머리를 헤집었다. 방송국으로 가는 버스는 10분 째 코빼기도 안보이고, 시간은 자꾸 가기만 하고. 그래, 내가 뭐 힘이 있겠냐. 기다려야지……. 완벽한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한 우현은 결국 힘없이 털썩,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고는 두 손을 모아 버스가 제발 빨리 오게 해달라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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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오후 방송이 끝난 후, 잠시 집에 들려 가방을 가볍게 비우고 다시 방송국으로 온 성규는 광장 근처의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를 조그맣게 따라 부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얼굴에 띠고 있던 성규는 카페에 붙어 있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4시 50분. 여유로운 시간에 만족스럽게 웃은 성규가 조금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가방 안에 책을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안 늦겠다!"
가방 끈을 앞으로 당겨 맨 성규가 활짝 웃으며 광장 쪽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너 시계탑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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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다행히도 50분이 조금 넘자마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탄 우현은 광장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광장 입구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4시 59분. 1분밖에 남지 않았건만 마침 광장에서 행사라도 벌어지고 있는 지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모두 비슷한 색의 옷을 입고는 서로 얘기하며 천천히 광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홀로 청재킷을 입고는 빠르게 달려가는 우현의 얼굴이 땀으로 흥건해 졌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잰걸음으로 걷고, 조금 틈이 있는 곳에서는 뛰기를 반복하며 시계탑으로 향하던 우현의 눈에 순간 한 아주머니가 꽃을 팔고 있는 간판대가 보였다. 처음에는 아무생각 없이 지나치려고 했지만 계속 눈을 사로잡는 붉은 색의 튤립에 우현은 결국 빠르게 걷던 발걸음을 돌려 가판대로 향했다.
"저, 이 튤립 얼마인가요?"
"3송이에 7000원. 왜, 여자 친구 주려고? 여기 커플들 많이 온 것 같은데, 그 중에 하난가 봐?"
"아, 아니에요! 그, 그냥 꽃이 예뻐서……."
"으이그, 부끄러워하긴. 총각도 저기, 커플 달리긴가 뭔가 하려고 온 거지? 내가 다 알아! 거짓말 안 해도 되!"
아니라니까요……. 아주머니의 말에 열심히 자신을 변호하는 우현이었지만 이미 얼굴이 빨개진 상태에서 그런 말이 상대방에게 통할리가 없었다. 연신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빠르게 만 원짜리 지폐를 내미는 우현을 보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던 아주머니는 가장 상태가 좋은 튤립 3송이를 고르고 골라 정성스럽게 포장을 했다.
"자, 여기 꽃하고, 4000원. 총각이 예뻐서 깎아 주는 거야! 내가 눈치를 딱, 보니까, 사귀는 건 아니고 그냥 기류만 흐르는 것 같은 데. 꼭 잡길 바라! 내가 응원할게!"
화이팅! 두 주먹을 꽉 쥐고는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차마 또 아니라고는 할 수 없던 우현은 그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돌아서 한숨을 쉬었다. 아니, 대체 내가 지금 어떤 얼굴이 길래. 괜히 제 볼을 한 번 잡아 늘여보고 또 찔러보던 우현은 눈을 도르륵, 굴리다 눈에 띠는 시계탑에 아차, 하고는 순간 확 정신을 차렸다. 5시 15분. 경악에 찬 얼굴로 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우현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시계탑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제발, 기다리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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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10분. 시계탑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성규가 입구 쪽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는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언제 쯤 오시려나. 봄맞이 커플들을 위한 이벤트라고 하는 커플 달리기 대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몰려있었지만, 그 중에서 우현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불안해 지는 마음에 벤치에 앉아 무릎에 올려놓은 가방을 만지작거리던 성규가 계속해서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직접 자신이 찾으러 나가기에는 길이 엇갈릴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불안하고. 눈썹을 축 늘어뜨린 성규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고민에 빠졌다.
"아, 어쩌지……."
제 머리카락을 다 뽑아 버릴 듯 세게 움켜 쥔 성규는 이젠 발을 동동 구르기 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모르는 척, 다시 머리를 정리하고 새침이 앉아 눈만 도르륵 굴렸다. 몇 분을 또 멀뚱히 앉아 있던 성규는 결국 벌떡 일어나 가방을 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근처 지하철역에서 전화라도 해봐야지."
가는 데 10분은 걸리겠지만……. 에잇, 뛰면 빨리 갈 수 있겠지! 결심에 찬 눈으로 가방 끈을 꽉 쥔 성규는 가까운 지하철이 있는 출구 쪽을 향해 최대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탑 주위를 떠나기 전 힐끗 봤던 시계바늘은 5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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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이게 몇 번째 몰아쉬는 숨인지. 부족한 호흡에 우현의 머리가 띵하고 울리며 눈앞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 때문에 성규가 벤치에 앉아 있는 지 어쩐지도 확인을 못한 우현은 시계탑을 한 손으로 턱, 짚고는 눈을 감고 나머지 숨을 마저 몰아쉬었다. 잠시 후,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고 하는 다리를 힘겹게 끌고는 벤치에 털썩, 하고 주저앉은 우현은 더듬더듬 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5시 20분……."
평소 때는 2분이 걸릴까 하는 거리였건만 오는 길을 꽉 채운 사람들로 인해 뛰어서도 5분이나 걸렸다. 시간을 보고는 한숨을 내 쉰 우현은 혹시, 성규가 있을 까, 하며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생김새도 모르고 아는 것은 오로지 목소리뿐이었지만, 왠지 느낌이 끌리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는데. 성규가 없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느낌이 믿을 만한 게 아닌 건지, 이 곳 저 곳 혼자 서있는 남자들 모두 성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마, 벌써 간 걸까. 저번에는 자신이 일찍 왔었고, 얼마나 기다렸었는지 상대방은 모를게 분명한 상태에서 성규가 집으로 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생각은 아니었다. 다시 나오는 한숨을 크게 쉰 우현은 버릇처럼 반대 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성규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연락와라……."
눈을 감고는 중얼거리던 우현이 제가 보기에도 자신이 한심해 보였는지 힘없는 웃음을 피식, 짓고는 바지를 툭툭 털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언젠가는 연락이 오겠지. 오늘도 회사에서 일이 많아 늦을 수 도 있잖아, 남우현.
"…그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괜히 아파오는 머리를 두어 번 손가락으로 톡톡 친 우현은 한 손에 든 튤립은 축 늘어뜨리고 다른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깊숙이 집어넣고는 터덜터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출구 끝에 거의 다 왔을 쯤, 갑자기 성규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우현은 무의식적으로 성규의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을 휙 빼냈다. 순간 힘이 풀려 핸드폰을 놓칠 뻔 한 것을 겨우 몇 번 튕겨 두 손으로 잡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우현은 지금 울리고 있는 것이 성규의 핸드폰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재빨리 방향을 돌려 시계탑으로 걸어가며 통화키를 눌렀다.
"여, 보세요?"
'아, 우현씨! 저 김성규에요!'
"아, 네, 성규씨."
'제가 5시에 맞춰왔는데, 시간이 지나도 안 오셔서……. 혹시 오늘 못 오시는 건가요?'
"아, 하하. 아니요. 사실 제가 오늘 좀 늦게 출발을 해서……."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성규의 목소리에 빠른 걸음을 멈추고 얼굴에 웃음을 띤 우현은 이내 천천히 다시 걸으며 성규의 질문에 답했다. 그런 우현의 대답에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금세 밝아진 목소리를 내는 성규에 우현은 더욱 활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휴, 귀여워라.
'사실, 제가 지금 근처 지하철역이거든요. 여기서 광장까지 10분 정도 걸리니까, 그 때 까지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네, 당연하죠. 천천히, 조심히 오세요, 성규씨."
네! 성규가 전화를 끊은 것을 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5시 35분. 어느새 다시 시계탑 앞에 선 우현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제 손에 든 튤립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맡았다. 아까는 미처 맡지 못한 향긋함이 온 몸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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잰 걸음으로 지하철역부터 걸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광장의 시계탑 앞에 도착한 성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기다린다고 했는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우현의 모습에 성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제가 앉아 있던 벤치로 다가갔다.
"어, 이게 뭐야."
벤치 위에 놓여 있는 튤립 3송이와 그 위에 붙어있는 노란 포스트잇. 분명 자신이 지하철역으로 갔을 때만 해도 없었던 것들이었는데, 그 사이 누가 올려놓기라도 한 건지 갑자기 생겨난 것에 성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예쁘게 포장 된 튤립 꽃을 집어 들었다.
'이게, 성규씨 손으로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성규씨, 저 남우현입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가야 할 듯해요. 오늘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집에 도착해서 꼭, 전화주세요.'
아. 포스트잇에 쓰여 있는 편지를 읽은 성규는 아쉬운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아, 오늘은 만나는 가, 했더니. 작게 한숨을 쉰 성규는 튤립을 들어 자세히 살펴봤다.
"…이런 건 또 언제 샀데?"
어제 성열에게 왔던 꽃사진들과 고백이 생각 나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른 성규는 튤립을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열심히 부채질을 해댔다. 아휴, 올해는 봄부터 더우려나. 한참을 열심히 얼굴의 열을 식히던 성규가 튤립에 얼굴을 묻고는 향기를 맡았다. 제게는 달달하기만 한 꽃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눈을 감고 한참을 꽃향기에 빠져있던 성규가 이내 눈을 뜨고는 튤립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언젠간, 널 산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
조그맣게 중얼거린 성규가 살짝 미소를 띠고는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눈길을 느끼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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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은 제 앞에 선 남자의 말에 얼굴 가득히 난처함을 띠었다. 아니, 그니까…….
"즉석, 커플이요?"
"네. 주최 측에서 마련한 막간 이벤트입니다. 참여하시던 하지 않으시던 우선 광장에 계신 분 들 중 혼자 계신 남, 여 모두 저기 본부에 모여 계셔야 되세요."
"아, 근데, 제가 지금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아주, 잠깐이면 되요. 이게 방송에도 나가게 되는 거라, 주최 측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아보이게 하는, 그런 효과도 있어야 해서……."
아……. 우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잠깐 가서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데, 10분이면 도착한다고 한 성규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저를 간절히 쳐다보는 남자의 눈빛을 보고 슬쩍 눈을 피한 우현은 아까부터 계속 손에 쥐고 있던 성규의 핸드폰에 뜬 시간을 봤다. 5시 40분. 성규가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고, 자신이 남자를 따라가게 된 다면 다시 엇갈릴게 뻔 한 시간이었다. 평소 사람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는 성격이지도 않아서 제가 처한 상황이 심하게 난처했다. 아직도 저를 바라보며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남자를 다시 힐끗, 본 우현은 살짝 울상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오늘은 꼭 보고 싶었는데.
"…알겠습니다. 그냥, 지금 그 쪽을 따라가면 되는 건가요?"
"네! 이벤트는 10분 뒤 시작이고요, 방송 녹화하는 것은 20분에서 30분 정도 밖에 안 걸릴 테니까 귀가시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전 그게 아니라 성규씨 얼굴을 못 본다는 게 더 걱정이고, 짜증나는데요. 턱밑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뱉지 못하고 억지로 사람 좋은 웃음만 띤 우현이 신나서 앞서 나가는 남자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흠, 근데 뭔가 잊은 게 있는 것 같,…
"…저, 저기 혹시!"
"네?"
"포, 포스트잇이랑 펜 좀, 빌릴 수 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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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인사한 성규가 바로 들려오지 않는 동우의 목소리에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고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왔다. 6시. 흘끗, 거실에 붙어있는 시계를 확인한 성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나 역시나 아무도 없는 부엌에 혹시 어디 동우의 메모라도 붙어있나, 이쪽저쪽을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데……."
꼼꼼한 동우가 집에 늦게 온다면 핸드폰이 없을 저를 위해서 어딘가에 메모를 적어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면,
"아직, 집에 있다는 건데……."
입을 쭉 내밀고는 고개를 갸우뚱한 성규가 닫혀있는 동우의 방문을 쳐다봤다. 조심히 방 앞으로 간 성규의 귀에 드디어 동우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대화소리인 것 같은데. 혼자 대화를 할 리는 없고. 전화하고 있나? 너무 작게 들리는 소리에 귀를 문에 바짝 댄 성규가 눈을 감고는 집중했다. 오…! 들린다!
"아, 잘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너무 달까봐 걱정했는데……. 에? 아니에요, 그냥 취미로 만들어서 힘들진 않았어요! 헤헤."
…뭐야, 저 애교스러운 말투는. 눈썹 한 쪽을 슬쩍 올렸다 내린 성규가 더욱더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동우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네, 네. 아, 그럼 지금 끊으셔야 하는 거죠? 문자하세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피디님."
에이, 뭐야, 통화 끝? 동우의 목소리 톤이 상기되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대화내용에 실망한 성규가 쳇, 하고 혀를 한 번 차고는 동우의 방에서 멀어져갔다. 근데, 얘가 아는 피디님이 있었나? 동우의 마지막 말에 의문을 품은 성규가 잠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어제부터 은근히 기분이 좋아보이던 호원. 그리고 마찬가지로 어제부터 들떠보이던 동우.
"에이, 설마……."
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 성규는 이내 자신도 우현과 전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 까지 손에 쥐고 있던 튤립 3송이를 다시 눈앞으로 가져와서는 빤히 바라봤다. 코를 대지 않아도 광장에서 맡았던 달달한 향기가 나는 듯 했다. 괜히 얼굴을 슬쩍 붉히며 작게 웃은 성규가 거실에 놓인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방금 무슨 연애하는 사람처럼 통화하던데, 솔로가 무슨 커플행세야. 라고 동우를 떠올리며 투덜거리는 건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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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썩-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자신의 몸을 던진 우현은 지친 듯 축 처지는 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솔직히 촬영이랄 것도 없어서 예상시간 보다 일찍 끝나서 그 것 때문에 힘들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우현을 더 힘빠지게 하는 게 있다면 바로, 성규를 또 만나지 못한 것. 이번에는 자신이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서 더 아쉬웠다. 에이, 남우현 멍청이. 그거 거절하는 게 뭐라고. 제 머리를 주먹으로 콩콩치며 자책한 우현이 다시 한 번 침대에 널브러졌다.
사실, 계속 집합장소로 걸어가면서도 혹시 성규의 옆모습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 까, 계속 뒤를 돌아봤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시계탑 옆자리에 점점 포기해 갈 때 쯤, 어떤 남자가 급하게 걸어와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유난히 제 눈에 쏙 들어오는 갈색머리에 앞을 봐달라는 PD의 말도 듣지 못한 채 제가 놓고 온 튤립을 집어 든 남자를 바라봤더랬다. 분명, 성규씨였을텐데. 또 다시 밀려오는 아쉬움에 한숨을 쉰 우현은 이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근데, 그 갈색머리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힘없이 축쳐져있던 우현의 몸이 튕겨지듯 세워졌다. 갈색머리.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눈을 크게 뜨며 바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 우현은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며 전원을 켰다. 분명, 몇 주 전에 찍은 그 사진에 있던 갈색머리남자와 오늘 멀리서본 성규의 머리색이 우현의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이젠 손톱까지 물어뜯던 우현이 컴퓨터가 완벽히 부팅되자마자 사진을 저장해놓은 파일을 들어가려 마우스를 움직이려할 때 였다. 갑자기 우현의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잠시 화면에서 눈을 땐 우현은 신경질적으로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빼내고는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은 채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우현씨, 저 김성규입니다.'
아, 성규ㅆ……. 헐? 그제야 제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이 성규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우현이 놀란 눈을 하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핸드폰을 받쳐 받았다.
"아, 성규씨! 집에 잘 들어가셨어요?"
'네! 우현씨도 일 다 끝내고 잘 들어가셨어요?'
"아, 저야 뭐……. 아참, 늦은 거 죄송해요. 그것만 아니었다면 오늘 핸드폰 받을 수 있으셨을 텐데."
'아, 아니에요! 못 뵌게 아쉽지만, 그런 면에서는 제가 더 죄송한 걸요. 계속 번거롭게 해드리네요.'
"아뇨. 번거롭긴요. 그럼 우리 다시 만날 날짜를 또 정해야하는 건가요?"
우현이 버릇처럼 다음 약속을 잡으려 성규에게 말을 건넸다. 음, 다음 주에 확실히 만나서 핸드폰을 전해주고, 그리고 나서 서로 평범한 일상으로…돌아가? 무의식적으로 성규에게 핸드폰을 전해 준 후의 생활들에 대해 정리해보던 우현이 순간 드는 생각에 멈칫했다. 항상 시계처럼 똑같이 돌아가기만 하는 자신의 생활에 잠시나마 따뜻함을 안겨줬던 사람이었다. 의미모를 설렘도, 작은 것에 행복하게 만들던 자신도,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어, 저는 다음 주 월요일에 시간이 될 것 같은데……. …우현씨? 듣고계세요?'
"아, 아, 네."
본능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꽉 쥐며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우현이 성규의 말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다음 주 월요일 날 시간 되세요?'
"아, 네…가 아니라, 새, 생각해보니까 오늘 이후로 며칠 동안 조금 바쁘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당분간은 잘 못 만날 것 같은데……."
말끝을 흐린 우현이 괜히 땀이 차오른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순간으로 끝날 지도 모르는 인연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고 싶어 거짓말을 하긴 했는데, 체질에 맞지도 않은 짓을 하려니 목소리도 떨리고 더듬기까지 해버렸다. 혹시, 들킨 건 아니겠지?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성규는 아무것도 눈치 못챈듯 했다. 사실, 성규는 조금 실망한 듯 조그맣게 '아, 그래요…?'라고 했지만 이미 제 정신을 추스르기에도 바쁜 우현이 그 것을 구분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거짓말이 통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쉰 우현은 슬쩍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아까 열어보려고 했던 자신의 사진 폴더를 클릭했다.
"그래도 성규씨, 심심하시다거나 힘든 일 있으시면 연락하세요."
'…네?'
"저, 이래봬도 사람들 말 하나는 잘 들어주거든요. …아, 너무 오지랖인가? 사실, 성규씨하고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데."
'아, 아니에요! 오지랖은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헤헤.'
그럼, 자주 전화하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분 좋게 통화를 끝낸 우현이 화면으로 보이는 그 남자의 사진을 빤히 바라봤다. 익숙한 갈색머리, 비슷한 체격. 역시…….
"…성규씨구나."
사진 속 인물이 정말 성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우현은 마우스 옆에 놓여있던 성규의 핸드폰을 눈높이로 집어 들었다. 오늘도 성규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그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또다시 웃음이 실실 나와 버렸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 후로도 한참, 성규의 사진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던 우현은 7시가 다 되어서야 이미 때가 훌쩍 지나버린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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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영화를 모티브로한 팬픽입니다:)
안녕하세요! 담녀입니다.
아이고, 원래 토요일날 찾아오려했는데, 늦어버렸네요ㅠㅠㅠ 죄송해요ㅠㅠㅠ
흑흑, 분량도 적은것 같아ㅠㅠㅠㅠㅠㅠㅠ미안해요ㅠㅠㅠㅠㅠ
게다가 다음주는 시험준비땜시 못올것 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
나왜이래ㅠㅠㅠㅠㅠㅠㅠㅠ
항상 나에게 너무 고마운 독자 그대들!
일주일만 기다려줘요. 시험끝난 날 휴식을 핑계로 열심히 써서 다시 갖고 올게요!
다음주 수요일날 봐요!뿅!☆
암호닉 |
콩/강냉이/새우깡/모카/삼동이/우유/텐더/미옹/사인/써니텐/감성/빙구레/단비 레몬/이노미/몽림/케헹/키요/내사랑 울보 동우/규밍/꿀꿀이/샐러드/사랑해/봄
항상 댓글이 힘이되요! 하나하나 답글 못 달아줘서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