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기, 자?" "..." "... 프흐흐-. 자나보네. 난 네가 이렇게 옆에 있으니까 설레서 잠도 못 자겠는데..." 이건, 2012년 6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여름의 지금보다 조금 더 먼 미래의 이야기.
[장동우 빙의글] 잘 자, 좋은 꿈 꿔 20120607
W. 밤비 *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났던 그 날. 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 넌 내 친구의 지인이였고, 나는 친구와의 대화에 간간히 오르내리는 네 이름을 통해 네 존재를 어렴풋하게 나마 인식하고 있었고, 너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억수 같이 쏟아지는 장맛비에 들어간 홍대의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만났지. 그 때도 난 네가 내 친구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었어. 나중에 친구가 얘기해줘서야 그 사람이 너라는 사실을 알았지. 그리고, 약하게, 너와 다시 만나기를 바랐었어. 여름의 끝자락, 사장님과 매니져 형들 몰래 , 멤버들에게도 몰래 혼자 새벽에 한강가에 나왔어. 어쩐지 답답하고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도통 잠이 올 생각을 않던 날이었어. 당연히 사람이 보이질 않았고,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었어. 소리도 한 번 질러보고, 개운해진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저 멀리서 여자의 형체가 보였어. 솔직히, 무서웠어. 새벽 2시 반, 멀리서 보이는 까만 여자의 모습. 귀신인 줄로만 알았어. 근데, 귀신이 맥주 마시더라. 조금 웃었어. 갑자기 마음이 놓이더라고. "어?" "안녕하세요, 우리, 구면이죠?"
맥주를 마시며 한강을 멍하니 바라보던 네 곁에 가 어깨를 톡톡 치니 놀란 기색은 하나도 없이 내게 아는 체를 해왔어. "아, 예..." "여기서 뭐해요?"
나는 자연스러운 척, 네 옆에 앉았어. 순적히 '척'이었고, 실은 엄청 떨렸다는 건 여태까지 비밀이었지롱. "그냥... 이것저것이요. 고민도 있고, 잠도 안 오고... 동우 씨는요?" "저도 그냥..."
나는 평소처럼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어. 그게 너와 나, 우리의 시작이었지. 우리는 친구인 듯, 연인인 듯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갔고, 서로의 색으로 서로를 물들였어. 초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싶다며 빨간 자전거를 못내 아쉬운 손길로 어루만지던 네 모습에 나는 너를 이끌고 당장 한강으로 달려갔지. 나는 빨간 자전거에 너를 태우고 씽씽 달렸어. 처음엔 감기 걸린다며 말리던 너도, 일단 타고 나니 즐거워 보였어. 코 끝과 양볼, 귀가 모두 빨갛게 변한 채,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고, 나는 네 양볼을 감싸고 입맞추었지. 그리고 다음 날, 네 말대로 우리는 둘 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이불을 뒤집어 쓰고 통화를 했지. 정말 바보 같은 연애의 극치, 라던 네 말에 꼭 맞는 우리였지.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바보 같았던 짓은 네 집 앞에서 내가 너에게 큰소리를 냈던 일이었어. 네게 상처를 주려던 건 아니었는데 내 스트레스에 이기지 못하고 너에게 화를 내버렸지. 녹음이 새벽에 끝나고, 네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전화로 지금 가겠다고 통보를 하곤 자다 깨서 나온 너에게 정말, 정말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일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말았던 거야. 너는 울지도 않고 내 얘기를 끝까지 듣고는 굳은 표정과 낮은 목소리로 할 말 다 했지? 그럼 나 들어간다, 하곤 팔짱을 낀 채로 뒤돌아서 사라져 버렸어. 바보 같은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지. 어쩌면 이번에는 돌이킬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순전히 내 잘못이었지만 나는 엉엉 울며 겨울 바람을 맞으며 돌아갔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너는 네 버릇대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소리죽여 눈물을 흘렸었어. 그 때, 내가 너에게로 가 네 눈물을 닦아줬어야 했는데. 난 그걸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해. 아마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게 분명해. 음, 있잖아, 나 이젠 후회할 행동 안 하려고. 으음-...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할 말도 후회 안 하려고 하는 거야. 우리, 같이 살자. 앞으로도 평생. 어어... 그러니까, 결혼하자.
나는 곤히 잠든 네 얼굴을 보며 수줍게 말했어. 어두운 와중에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을 받은 네 매끈한 피부는 영원을 상징한다던 보석, 다이아몬드 같이 빛났어. 이렇게 예쁜 너를, 그토록 착한 너를, 도대체 사람들은 왜 너에게 상처입히고 싶어할까? 왜 널 울리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네가 내 하나 뿐인, 애틋한 연인이라서? 그렇다면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다... 아까 침대에 눕기 전에 봤던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게시물, 너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나를 슬프게 하는 그 이야기들. 네 눈을 나만 바라보게 해 그런 이야기는 보지 못하게 하고 네 귀는 내 목소리로 그런 이야기들을 듣지 못하게 하고 싶어. 너를 내 품에 꼬옥 껴안고 네가 맞을 돌들을 내가 대신 다 맞을게. 아픔이 극심한 밤과 새벽, 내가 널 내 품에 안고, 네 작은 두 손을 내 손으로 꼭 잡고 밤새 네 귓가에 사랑을 속삭여줄게. 이른 아침, 네가 눈을 뜰 때, 내가 네 옆에 있을게. 저런 이야기들, 듣지 말고, 보지 말고,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자. 나는 곤히 잠든 널 내 품에 꼭 껴안았어. 내일 아침, 동이 트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하진 않아도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마음으로 너에게 영원의 약속을 받겠다고 다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