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3부
20.
다시 돌아온 일상은 평화로웠다. 집을 떠나있던 며칠이 꿈처럼 느껴질 만큼. 아, 그러기엔 엄마한테 등짝을 너무 많이 맞았지만. 엄마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내 등을 힘껏 후려쳤다. 대학생 되더니 겁 없이 며칠을 연달아 외박을 한다며 그럴 거면 아예 집에 들어오지 말고 나가살라는 잔소리는 덤으로 따라온다. 지은 죄가 있기에 그저 묵묵히 쓰린 등을 문지르며 어색하게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학교를 가기 위해 나서는 길도 그대로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어서 그런 건지 날씨가 풀려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길가에 늘어져있는 가로수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무심코 스쳐 지났었던 가로수가 눈에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감성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평소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들어차는 걸 보니 마음의 여유가 참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 애와의 관계에서 안정을 느끼고 나니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 아직 모든 시련을 넘긴 건 아니지만 우리 둘 사이의 오해는 풀었기 때문일까. 전보단 많이 여유로워진 나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주변 풍경을 둘러보던 고개를 아래로 내려 액정을 바라보았다. 아, 종인이다.
“응.”
여보세요? 라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는 지금이 마냥 좋아서 웃음이 새어나온다.
ㅡ경수야.
“응, 종인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좋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도 네게 예민하다. 전화를 받으며 지었던 웃음이 사라지고 어느새 걱정을 가득 담은 내가 있다.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ㅡ…자다 일어나서 그래. 목소리 많이 잠겨있지?
“그럼 너 아직 누워있겠네?”
ㅡ응. 눈 뜨자마자 전화했어. 목소리 듣고 싶어서….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머리엔 까치집을 짓고 누워 핸드폰만 붙잡고 웅얼거리고 있을 그 애가 상상이 된다. 마치 그 애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펼쳐지는 모습에 웃음이 나서 길거리인 것도 잊고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ㅡ수업 들으러 가는 길이야?
“응. 넌 오늘 학교 안 가?”
ㅡ응. 난 오늘 수업 없어.
“아, 좋겠다..”
ㅡ좋기는. 공부 열심히 하고. 그동안 수업 많이 빼먹었잖아. 그치?
“응. 저…, 집에선 좀 괜찮아?”
집에 떡하니 버티고 있을 혜인누나가 생각이 나서 조심스럽게 묻자, 그 애가 내뱉는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각자의 집을 앞에 두고 한참동안이나 그 애의 손을 놓질 못했다. 혼자 보내는 게 걱정이 되어서. 안절부절 못하고 울상을 짓는 내게 괜찮다고 말하며 달래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보내고 말았지만. 차라리 당분간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말을 해볼까,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ㅡ그냥, 그렇지 뭐….
좀 전과는 다르게 확연히 기운이 빠진 목소리에 나 또한 기분이 가라앉고 만다.
“저기, 있잖아….”
ㅡ응.
“종인아.”
ㅡ응, 듣고 있어.
“…집에서 지내기 좀 그러면,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낼래?”
조심스럽게 꺼낸 내 말에 종인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애가 내 말에 따라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혼자서 끙끙 앓는 건 안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해본 거였을 뿐.
ㅡ아니야….
“…….”
ㅡ피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난 괜찮아.
역시나.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대답이다. 그러면서도 지치는지, 힘이 없는 목소리에 조금 씁쓸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나까지 힘든 모습을 보이면 그 애가 더 힘들어 할 것 같아서 부러 밝게 대답했다.
“응. 네 말이 맞아. 힘내자, 종인아.”
ㅡ그래, 수업 끝나면 연락해. 데리러 갈게.
“알겠어. 나중에 연락 할게. 푹 쉬어.”
통화를 마무리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힘내라는 말 한 마디뿐인 것 같아서.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시계를 보니 수업 시간 삼십 분 전이다. 그렇게 긴 통화도 아니었는데 종인이와의 전화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버스가 지나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마음먹고 학교에 가려는데 아침부터 일이 꼬이는 듯한 느낌이다. 그나저나 지각을 면하려면 버스가 얼른 와야 될 텐데. 언제 올지 모르겠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버릇처럼 또 한숨이 새어나온다.
[어디야.]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음에 액정을 확인했더니 오세훈의 문자였다. 내가 또 수업을 빼먹을까봐 확인 차 문자를 보낸 게 틀림없다. 아니, 나는 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버스가 안 온다니까요. 글쎄.
[나 지금 버스 기다리는 중. 버스가 안 와.]
[설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태하게 굴었으면 얘가 이렇게까지 믿질 않나 싶어서 재빨리 답장을 써내려갔다.
[인증샷이라도 찍어서 보내줘?]
[ㅇㅇ인증샷 보내봐. 아님 못 믿음.]
[미친 소리. 지금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집에서 퍼질러 자고 있으면서 버스 기다리고 있다고 말 할지 누가 아냐.]
[왜 내 말을 안 믿어?]
[넌 나한테 신뢰를 잃었어.]
[그 신뢰 회복하려면 얼마면 됨?]
[십마넌.]
세훈이와의 문자에 열을 올린다고 핸드폰을 잡고 씨름을 하는 사이, 차 한 대가 내 앞을 지나치다 갑자기 멈춰 선다. 오라는 버스는 안 오고 웬 차야. 투덜거리는 사이 조수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학교 가는 길이야?”
“…네.”
“수업 언제 부턴데.”
“삼십분…남았어요.”
“…….”
“…….”
“탈래?”
대답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언제부터 누나와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을까. 내려간 창문 사이로 보이는, 조금은 야윈 듯한 누나의 얼굴에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올랐다.
一
적막함이 흐르는 차 안. 차라리 싸늘했다면 누날 맘껏 미워했을 텐데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누나도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버스를 탄 것도 아니라서 돌아가는 길도 아닌데 학교로 향하는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 버스를 타면 2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도.
종인이와의 오해를 풀던 날. 누나가 우리 사이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뒤 처음 마주치는 거라서 그런 걸지 몰라도 유난히 어색하다. 누나는 내가 알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을까. 항상 나를 보면 웃으며 장난을 걸어오던 누나였는데. 차에 탄 이후로 굳은 얼굴을 하고서 앞만 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누나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진지하게 얘기를 꺼내야 하는 걸까. 생각지 못한 누나와의 만남에 입술만 바짝 타들어갔다.
“…….”
종인이는 어떻게 견뎠을까.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 그 애에게서 처음, 누나가 우리 사이를 알고 있다고. 반대를 한다고 들었을 때에는 덜컥 겁부터 났었다. 그 후엔 많이 힘들어하던 종인이의 모습에 누나가 원망스러웠고. 우리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다들 나쁘게만 보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일수록 옆에서 힘이 되어 줄 수는 없는 건지 마음이 답답했다. 마냥 어린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 날 백현이와의 대화가 생각이 났다. 그동안 잊고 지냈었던 어린 날의 그 일들이.
너희를 그만큼 아끼니까.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걱정하는 거라고. 눈앞에 펼쳐질 가시밭길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말리는 거라고. 그래서 무작정 누나를 원망 할 수도 없었다. 누나도 백현이와 같은 마음인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누나는 종인이의 가족이라는 이름에 묶여있는, 더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
말을 꺼내지도, 누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애꿎은 안전벨트만 꽉 쥔 채 스쳐지나가는 바깥 풍경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승차감은 버스보다 훨씬 더 좋았지만, 마음은 더욱 불편했다. 꼭,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것처럼.
익숙한 거리에, 익숙한 사람과 함께 하는 길이 이렇게도 어색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누나의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시렸다.
“…….”
“…….”
“누나, 저….”
그래도, 종인이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과, 누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한참의 정적 끝에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가 조용한 차 안을 울렸다. 앞만 보고 말없이 운전만 하던 누나가 그제 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마주한 두 눈은 전에 없던 색을 띠고 있었다.
“…경수야.”
깊은 한숨 끝에 내 이름을 부른다.
“내가 종인이만큼 너 많이 아끼는 거 알지?”
“…….”
왜일까,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닌 거 알잖아.”
“…….”
“너희 이제 어린 애 아니잖아. 이해받을 수 없는 거라는 거.. 누구보다 더 잘 알거 아니야.”
“…….”
“왜 가시밭길을 걸으려고 하니.”
“…….”
“이쯤에서 그만하자, 제발.”
“…….”
“부탁이야.”
누나의 말을 끝으로 차가 멈춰 섰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울컥해서 시선을 돌려 밖을 바라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정문 앞이었다. 시린 콧잔등을 손으로 몇 번이고 매만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나만큼이나, 종인이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우리 보다 더 고민이 많았을 누나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종인이 많이 좋아해요.”
“…경수야.”
“종인이가 옆에 없는 것 보다, 더 큰 시련은 없어요.”
“…….”
“그 애만 옆에 있으면, 다 괜찮아요 저는.”
“…….”
“죄송해요, 누나. 먼저 내릴게요.”
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누나의 눈을 똑바로 보고 솔직한 마음을 말한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나의 말대로 누나가 얼마나 나를 아꼈는지 알기 때문에. 누나에게서 종인이를 빼앗아 온 것 같은 묘한 느낌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누나에게 말한 건 모두 사실이었다. 그 애가 내 옆에 없는 게 더 큰 시련일 거라고, 그 애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괜찮다는 말은.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아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오랜만에 강의실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반긴다. 내 목을 휘감으며 그동안 왜 안 왔냐고 묻는 동기들에게 웃어넘기며 눈으로 세훈이 녀석을 찾았다.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로 걸어갔다.
“진짜네. 진짜가 나타났다.”
“뭐가.”
옆자리에 둔 제 가방을 치우며 내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 자리에 앉으면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팠던 날 죽 사러 나간다던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네. 그 이후로는 녀석과도 처음 만나는 거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은 못하고 머리만 긁적였다.
“왜 또 죽을상인데. 해피엔딩 아니었냐.”
“응, 맞아. 해피엔딩.”
“근데 왜 또 우울하게 들어오는 건데. 무슨 일 있냐?”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세훈이 녀석한테까지 이 걱정과 근심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민폐 끼친 것만으로도 차고 흘러넘치는데 누나 일 까지 어떻게 말해.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말하고 싶지 않는 걸 눈치 챈 녀석이 곧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곧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 꺼내 나에게 내민다.
“자, 이거.”
내밀어진 노트를 받아들며 뭐냐고 물었다.
“뭐긴 뭐야. 연애하시느라 바쁜 도경수씨 대신에 열심히 필기한 노트지.”
미안함과 고마움에 아무 말도 못하고 손에 쥐어진 노트를 한번, 고개를 들어 녀석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감정을 읽어냈다는 듯 녀석이 되레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어간다.
“다음 주까지 과제 있으니까 그거 복사해서 봐라.”
“…….”
“난 무식한 새끼 친구로 안 키워. 알았냐?”
내가 한 것에 비해서 과분할 정도의 믿음으로 내 옆을 지켜주는 녀석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에게서 받은 노트를 가방으로 넣지도 못하고 빤히 녀석을 바라보았다.
“왜.”
“…….”
“뭐.”
“…고마워.”
진심어린 내 말에 녀석이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가 픽 웃으며 말한다.
“안하던 말 하니까 네가 더 소름끼치지?”
“조금?”
“몸은 괜찮냐.”
“응. 덕분에.”
“개새끼. 한번만 더 아파봐. 그땐 죽이 아니라 연장을 들고 가줄테니. 몸 관리 알아서 잘해.”
“응.”
“변백현이랑 박찬열한테도 연락이나 해라. 그 새끼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응.”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너희 둘의 평화가 곧 우리의 평화야. 알았어?”
“알겠어.”
“앞으론 싸우지 말고.”
“네.”
“에라이, 바퀴벌레 같은 것들. 밥이나 사라.”
“조만간 다 같이 모이자. 그때 살게.”
“콜. 그날 거덜 날 줄 알아.”
一
무슨 정신으로 수업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냥 앉아있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거다. 간만에 술이나 한 잔하자는 동기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그냥 웃음만 나왔으니까.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내 쥐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어 그 애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고 싶어.]
전송버튼을 누르자마자 답장이 도착했다. 마치, 내 연락만 기다린 것처럼.
[어디야. 지금 갈게.]
가방을 챙기지도 않고 액정만 붙잡고 실실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세훈이 쯧쯧, 혀를 찼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답답한 버스 안의 공기가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 같아 창문을 조금 열었다. 그러자 열린 틈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새어 들어와 내 머리를 흩날린다. 종인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다가도 누나를 생각하면 이내 답답해지고 만다. 누나의 반대가 시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큰 시련을 막기 위한, 우리를 향한 애정일 테니까. 조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든든하게 우리 옆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한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온 등굣길처럼 너를 만나러 가는 하굣길도 마냥 길게만 느껴졌다. 그 마음은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바깥으로 보이는 고층 건물을 바라보며 한숨 쉬었던 지난날을 기억한다. 너를 믿지 못해서 생긴 오해와 네가 겪었던 고통들도 떠오른다. 그땐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아팠는데 지나고 보니 별 거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생각도 안 나는 아주 사소한 일들로 많이 싸웠고, 많이 아프고, 많이 웃었다. 너와 함께한 지난 시간동안 마냥 행복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모든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일 테고. 그래도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교복을 입고 마음을 확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기억.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떨리고, 네 손이 스치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하던 그 어린 날의 기억이. 한 때 네 넓은 어깨가 참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나는 네 어깨에 얼굴을 괴고서 말했었다.
「너 어깨 넓어서 좋겠다.」
그러자 그 애는 말없이 웃는다.
「있잖아,」
「응.」
「나중에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사이가 되어 있을까, 우리?」
내 말에 대답은 않고, 그 애가 어깨 위에 있던 내 얼굴을 잡아 내린다. 그러고서도 한참을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조용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하지.」
「…….」
「난 언제까지나 네 옆에 있을 거니까.」
치이익, 버스가 멈추고 뒷문이 열리면.
“왔어?”
나를 향해 웃어주는 네가 있다.
자연스레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얼굴 마주보고 거짓말처럼, 동시에 말했다.
“사랑해.”
어떠한 시련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너만 있으면 나는 괜찮아.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우리가 군대를 가고, 취직을 하고, 배가 나온 아저씨가 되더라도.
언제까지나
너와 나만의, 우리 둘만의 시간 속에 있기를.
너와 나만의 시간
3부 끝.
***
***
늦게 찾아와서 갑자기 완결을 투척합니다.
똥을 드린건가요???
조금은 급한 완결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저한테는 이게 최선이었어요.
혜인이와의 갈등도 다 풀리지 않았고, 3부 들어서는 백현이도, 찬열이도 자주 등장하지 않았고,
늘 옆에서 카디를 도와주던 준면이 형도 언급없이 끝나서 완전하지만은 않은 엔딩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사실은 의도했던 완결은 아니었어요.
어떻게든 혜인이에게서 인정을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며칠을 고민했는데
어느날은 문득, 제가 혜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카디를 인정해주는 게 더 말이 안된다는 걸 알았어요.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루지도 못했고 마냥 행복하게 끝낼 수도 있었지만
결국엔 이렇게 끝내는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요.
그동안 못했던 말들. 마지막이니까 다 털어내겠습니다.
사실은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너와 나만의 시간은 1부에서 끝이 났어야 했어요.
하지만, 쓰면 쓸 수록 카디의 달달한 애정행각이 보고 싶었고, 그래서 2부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제 욕심이 결국엔 3부까지 끌고 와버렸구요.
구체적인 계획도, 사건도 없이 2부와 3부를 이끌어 나가다보니 1부를 쓸 때보다 많이 힘들었던게 사실이에요.
특히 3부를 연재할때가 제일 그랬던 것 같아요.
그저 막연하게 힘든 카디를 그려내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시작하다보니 엉성하고, 감정은 과잉되고.
쓰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조급하게 완결을 내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수습하고자 골머리를 앓았는데도요.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모든 면에서.
3부를 연재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일들이 많았는데 여러분의 댓글로 많은 힘을 얻었어요.
무책임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지만, 연재 중단에 대해서도 정말 많이 고민했지만 책임감 하나로 여기까지 왔네요.
앞으로는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반성 많이 했어요.
정말 길었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올해 봄까지. 함께 달려주시고, 항상 응원해주시고, 늘 기다려주셨던 분들께 감사 인사 전하고 싶어요.
덧붙여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이다보니 사족이 길어지는 것 같네요.
괜히 뭉클하고, 찡하고, 시원 섭섭합니다.
앞으로는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번외는 없을 예정입니다^^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