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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그냥 날 놓아주면 돼 09 


 


 

2년 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꿈에 그리던, 수많은 추억들이 함께한 코펜하겐 지점이 오픈을 함과 동시에 연일 최고 실적을 달성하며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느껴질 정도로 바빠졌다. 


그러나 그와의 연애는 여전히 아주 순조롭다. 


어쩌다 그가 시상식에서 말실수를 한 덕에 부끄럽지만 공개연애를 하게 되었고 살가운 그의 성격 덕에 아버지에게는 아들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겨울이 가고 내년 봄이 돌아 올 때,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그는 벌써부터 내게 드레스며 턱시도를 보러가자며 졸라댔고 쉬는 날이면 못이기는 척 그를 따라 가주곤 했다. 


간간히 민비서를 통해 김대표의 소식을 듣는다. 


우리의 파혼기사가 난 후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파트너였던 연상의 사업가와 열애 중, 지난 해 결혼을 했다고 한다. 


불행하기만 했던 우리들은 또 다른 인연과 행복을 만들어 가는 중인 듯 했다. 


 


“바빠?” 


 


서재 문이 열리며 그가 고개를 내밀었다. 


집에 와서도 여전히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때문에 매일 밤 혼자 있던 그가 오늘은 웬일인지 나를 찾아 서재로 왔다. 


 


“미안. 심심하지?” 


 

“참을 만 하긴 한데……. 보고 싶어서.” 


 

“그건 나도 그래.” 


 


책상 앞까지 다가와 멀뚱히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에 일어나 그를 안았다. 


떨어지기 싫은 마음에 그를 꽉 껴안으며 품에 파고들자 그가 나를 의아해 했다. 


 


“무슨일 있어?” 


 

“아니. 그냥 떨어지기 싫어서.” 


 

“괜히 왔나보다. 일하는데 방해만 했네.” 


 

“방해는 무슨. 이번 일만 끝나면 바쁜 것도 끝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생각해서 적당히.” 


 

“응. 그럴게.” 


 


그가 볼에 입을 맞추곤 다시 힘내라며 서재 방을 나갔다. 


매일 그와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일 때문에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도 고문이었다. 


얼른 일들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속상해도 다시 책상에 앉았다. 


 


 


* 


 


 


가끔 김닥터와 만나는 날이면 옛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이제는 약을 먹지 않아도 몸도 마음도 편안한 게 지난 시간들의 괴로움은 마치 거짓말 같다. 


그와의 결혼이 가까워 오며 나에게도 고민이라는 게 생겼다.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아닌 유산한 아이에 대해 그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걱정이 많았다. 


김닥터는 솔직하게 있는 사실을 전하라고 했지만 마음 여린 그가 내 이야기를 듣고 받을 상처와 충격 따위가 더 걱정스레 다가왔다. 


 


“언젠가는 꼭 해야 될 이야기라면 지금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겠죠.” 


 

“나는 탄소씨 응원해요.” 


 

“태형이가 많이 놀라겠죠? 안 그래도 마음여린데…….” 


 

“탄소씨도 잘 견뎌왔잖아요. 태형씨도 자신의 몫만큼 잘 감당해 낼 거에요.” 


 

“고마워, 오빠.” 


 

“뭐야. 오빠 소리도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네.” 


 

“정말 고마워. 오빠 아니었으면 나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 


 

“나 믿고 여기까지 와줘서 내가 고맙지. 잘 살아줬잖아.” 


 

“태형이 만난 것도 오빠 덕분이고……. 살면서 오빠한테는 미안한 것도 고마운 것도 너무 많다.” 


 


내가 그에게 오빠라고 불러보는 게 몇 년 만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언제나 내 곁에 있던 그를 홈닥터의 아들과 고용인의 딸로 인식했던 그 어느 날부터 서로에게 존대를 하며 어른들의 모습처럼 거리를 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며 내 일이라면 한 걸음에 달려와 주던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로인해 나는 태형이를 처음 알게 되었고 지금은 아픔을 견뎌내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내 편이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내어 그에게 더 늦기 전 아이에 대해 말을 할 참이다. 


 


“다음에는 건강하게 아이 가져 봐. 태형씨랑 너 닮으면 진짜 예쁘겠다.” 


 

“그럴게.” 


 

“응원한다, 김탄소.” 


 


 


* 


 


 


그와 처음 만났던 1104호를 찾았다. 


여전히 그때의 그 모습을 간직한 채 창밖에는 눈부신 야경이 펼쳐져있다. 


그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라디오 디제이를 그만둔다. 


마지막 방송이라며 아쉬워하며 떠나던 그를 안아주며 출근길을 배웅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의 라디오 부스로 내가 보낸 깜짝 선물도 함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설레면서도 라디오 스케줄이 끝나고 이리로 올 그를 생각하니 긴장도 된다. 


오늘 드디어 그에게 그동안 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저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랑해주고 아껴주신 한밤 가족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배우 김태형으로서 한밤 지기 태디로서 많은 사랑 받을 수 있게 해 주셔서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후임 디제이도 많이 사랑해 주시고 아껴주세요. 


 


그가 청취자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목소리가 떨리는 걸 보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우리 김탄소씨. 라디오로 보내준 선물 잘 받았어요. 안울려고 많이 찾았는데 당신 때문에 자꾸 눈물이나... 진짜 책임져요. 

탄소씨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고맙고 내게 와 줘서 감사해요. 

내년 봄이면 결혼 할 텐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후회 없게 내가 잘 할게요. 

나랑 결혼해 줘서 너무 감사해요. 끝나고 봐요. 내가 정말 많이 사랑해. 


 


그가 울먹이는 목소리가 진심이 담긴 말들과 잘 어우러졌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 또한 눈물이 나려는 듯 마음 한편이 울컥거렸다. 


지난 3년, 우리에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 할 거고 잊히지도 않을 것 같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언제인가처럼 소리 내어 울면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의 마지막 인사가 울음소리에 묻혀 흩어져 간다. 


겨우 진정을 하고서 시계를 보자 곧 그가 올 시간이었다. 


거울을 보며 지워진 화장을 고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자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울었어?” 


 

“옛날 생각나서.” 


 

“내가 괜한 말을 했나보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인데.” 


 

“미안해. 혼자 울게해서.”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둘이 나눌 수 있는 기억들이 많다는 것, 서로의 변화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함께하는 가장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저 어리게만 느껴지던, 천진난만한 모습들로 기억되는 그의 모습은 이제 꽤나 의젓한 어른이 되어 있다. 


나는 이전의 그도, 지금의 그도 너무나 사랑한다. 


우리의 결혼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함께할 날들이 더 많이 남아있기에 덮어두려했던 지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너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무슨 얘기인데 이렇게 심각해...” 


 

“우선, 미리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서 미안해. 차마 입이 떨어지지가 않더라.” 


 


분위기가 가라앉고 그의 표정마저 굳어버렸다. 


나는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 2년 동안 차마 내 입으로 내 놓지 못했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나에게도 그에게도 또 한 번의 힘든 시련일 것이다. 


 


“나한테 아이가 생겼었어. 2년 전 쯤 에.”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라니.” 


 

“김닥터가 그러더라. 내가 임신을 한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이미 오랫동안 약을 먹어왔고 그래서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으니까.” 


 

“우리 아이야?” 


 

“응. 우리 처음, 그때 생긴 아이야.” 


 

“왜... 왜 아무 말 안했어.” 


 

“시간이 좀 지나면 말하려고 했어. 그때는 상황이 복잡했잖아.” 


 

“바로 말했어야지. 난 여태껏 아무것도 모르고……. 그때의 널 얼마나 많이 원망했는데.” 


 

“너무 초기였고 내가 너무 약해서 아기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처음엔 나도 어쩔 줄 몰랐어. 그냥 아이만 지키고 싶었어.” 


 

“탄소야…….” 


 


그가 힘이 빠진 듯, 내게 쓰러지듯 안겨왔다.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그런 그를 보니 애써 담담하려 했던 마음이 점점 무너진다. 


이내 그가 흐느끼며 울기 시작한다. 


 


“미안해. 혼자 감당하려 해서.” 


 


그가 더욱 서럽게 운다. 


그동안 그와 만나오면서 이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본다. 


우는 그를 위해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말을 이어갔다. 


 


“결극 못 지켰어. 기적 같은 그 아이를…….” 


 

“미안해. 그때 그렇게 혼자 두고 가버려서. 이럴 줄 알았으면 돌아오지도 않았어. 

혼자 얼마나 힘들었겠어. 많이 아팠을 텐데 나는 네 말만 듣고 너만 원망하고 미워했어. 돈 때문에 사랑도 버렸다고…….”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신이 잘못했다며 그때의 자신이 나에게 품었던 감정들을 말하며 후회했다. 


행복만 남았을 줄 알았던 우리에게 이제 정말 마지막 아픔까지 모두 털어냈다. 


나의 짐을 그에게 나누어지게 한건 아닌지 걱정스럽지만 그에게 꼭 말하고 싶었다. 


그와 나에게도 아이가 찾아왔었다는 걸. 


 


 


 


 


 


 


 


 


 


 

주말에도 찾아온 웨이콩 입니다:-) 

어제는 글을 쓰고 잘 준비를 하고 딱 누웠는데 늦게까지 잠이 들지않아 늦은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지만 

그도 오래가지 않아 아침일찍 눈이 떠져 강제 기상... 

아무튼 그래서 오늘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지네요! 

오늘까지 총 9화로 달려왔네여! 

처음에는 3편으로 끝나야 했지만 중간에 시행착오를 겪고 새드엔딩은 해피엔딩으로 바꾸면서 9화까지 왔습니다. 

아쉬운 이야기를 하자면 10화에서 이야기는 끝날 것 같아요! 

더이상 더 끌었다간 진짜 산으로 올라갈 것 같아서 완결은 보고 특별편으로 올 예정입니다. 

후 그래도 지난 주말을 제외하고는 저 매일왔어요! 

비상하지 못하고 창의력이라고 1도 없는 머리로 여기까지 온 웨이콩 칭찬해 ㅜ 

아무튼 여러분 내일 다시만나요! 


 


 


 

+암호닉+ 


 

자색고구마라떼 


 

여름 


 

단무지 


 

연지곤지 


 

+ 프리지아 

 

+푸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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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제가 왜 이제봣을까요
ㅠㅜㅠㅜㅜ 완죤 글 짱이에요 !!
혹시 지금도 암호닉등록이된다면 푸른바다 로 등록하고싶어요

5년 전
웨이콩
푸른바다님 어서오세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의 애정을 먹고 사는 웨이콩 오늘도 힘이 납니다💜 결말이 다가오지만 완전한 끝은 아니니 함께해요!
5년 전
독자2
단무지입니당!! 탄소랑 태형이뿐만아니라 남준이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된 것 같아 다행이네요 다음편이 마지막이라 아쉽지만 그래도 특별편이 있으니까 좋아요!!ㅎㅎ
5년 전
웨이콩
단무지님 어서오세요💜 남준이를 외면하자니 각자의 상처가 잇는 만큼 다들 행복했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을 잔뜩 담아 보았습니다! 마지막과 이어지는 특별편에서 다시 만나요🙏🏻
5년 전
비회원3.173
여름이에요!!! ㅠㅠ마지막 ㅎㅎㅎ 다행이에요 행복하게 모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거 정말 탄소랑 태형이 내내 행복했음 좋겠어요!
5년 전
웨이콩
여름님 어서오세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된 탄소와 그 삶속에 있는 태형이가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도록 제가 노력 하겠습니다💜
5년 전
독자3
자색고구마라떼에요 작가님💜
달달한 스타트~ 키야~ 탄소앞날에 버진초드깔릴일만 남았구나~~ 남준이 도 행복하고~~ 키야~~
아 맞네.. 유산 아가... 아니 작가님.. 저 이번엔 진짜울어요.. 태형이가 서럽게 운다고 표현한 부분이 저번 오흘해의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고 마마에서 울던 모습이 생각나서 울어요.. 진짜.. 잘 견뎌줬으면 해요 그렇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늦은듯 늦지 않은듯 잘 앓고 지나가니 다행이네요ㅠㅠ 아ㅠㅠㅠ 제 눈물버튼..ㅠㅠ

5년 전
웨이콩
저도 태형이가 우는 건 잘 못본 것 같아 올해의 아티스트 상 장면을 몇번이나 돌려보며 썼어요! 늦었지만 태형이는 또 태형이의 몫 만큼 알아야 할 일들이라 행복 사이에 작은 아픔을 책갈피처럼 살짝 담아봤어요!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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