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르(noir)
20대의 끝자락, 우리가 돌아본 시간은 모두 추억의 한 장면일 뿐이다.
우리가 기대한 청춘은 어둠이 아닌 빛이기를 바랐다.
찬란한 무대 위, 그리고 그 무대를 빛내기 위해 우리가 할애한 무대 아래 어둠 속에서의 시간들.
우리들의 성장 누아르
03 #
정식으로 이뤄지는 첫 연습이 있던 날은 갑작스런 추위로 세상이 온통 흰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추위에 떨며 이곳으로 오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히터를 튼다.
관객석을 통해 계단을 내려오고 있을 때, 지난 며칠 감기 몸살을 앓았던 탓에 힘이 빠진 건지 휘청- 넘어질 뻔 했다.
"아프면 나오지 말라니까."
"아, 선배 오셨어요?"
"젊은 애가 몸 생각 좀 해라."
"괜찮아요. 며칠 집에만 있었더니 찌뿌둥해서 그래요."
"거짓말은 연기로 좀 안되냐?"
"진짠데?"
"어휴 네 고집을 내가 어떻게 꺾겠냐."
선배의 잔소리에 웃으며 그냥 자리에 앉아버린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열이 오르내리는 몸은 입으로 하염없이 뜨거운 숨을 뿜어냈다.
"안녕하세요~"
하나 둘, 자리를 채우며 연기자와 연출팀이 모이기 시작했고 총 감독을 맡은 나는 무대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모인 것 같으니까 시작할까요?"
선배는 내게 마이크를 건네며 몸을 아끼며 일하라 말한다.
선배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곤 마이크를 그러쥐었다.
"연출팀은 그간 역할에 대해 배정 받았죠? 준비한 만큼 해 봅시다. 그럼 각자 영역으로 갈까요?"
이젠 내가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석 계단에 섰다.
배우들도 무대 뒤로 들어가 극본에 맞춰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다.
아직 아마추어라 어색한 느낌도 있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극본의 느낌과 그들의 지금이 많이 닮아있다.
처음이 낯선 우리의 청춘들이다.
*
개강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시작된 연극
새학기가 시작되면 후배들 저마다의 사정, 수업이 있어 오픈 런이 될 수는 없겠지만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차차 기존 단원들에게도 역할을 주어야 할 것 같다.
"자 오늘, 우리의 첫 공연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실전처럼 연습하고 또 연습했으니 오늘도 다름없이 잘 합시다.
실수해도 아닌 척 잘 넘어가고 멋지게. 마지막으로 화이팅하고 각자의 자리로 갑시다. 화양연화, 빅히트."
"아자, 아자 화이팅!"
공연이 시작한다.
첫 회차라서 그런지 표가 생각보다 많이 팔렸다.
대부분 연극동아리 후배들의 지인이나 가족들이었다.
개중에 그저 연극이 궁금해서 온 관객도 꽤있었다.
이제 첫 막이 오르고 나는 긴장이 풀린 듯 했다.
막이 오르고 무대가 한눈에 보이는 음향실에 앉아 무대를 봤다.
저마다 무대 위에서의 역할도, 무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수고로움도 다들 제 역할을 잘 해내는 중인지 연극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선배님 연극이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
“응?”
“선배님이 쓰신 극본이요. 연습할 때 매일 봤는데도 재밌어요.”
“재밌다니 다행이다. 고마워.”
전체적인 음향 컨트롤을 맡은 윤기의 보조를 하고 있던 지민이가 내 옆에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확신을 가지고 했던 시작이지만 매일이 고민되고 걱정되는 게 사실인데 지민이의 사소한 한마디 덕분에 좀 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극의 흐름이 정점을 찍고 곧 끝나가고 있음을 알렸다.
중도 이탈하는 관객 없이 저마다 집중하며 함께하고 있다.
[대학로 소극장의 ‘화양연화’]
연일 대박행진을 하며 얼마 전에는 신문사와 인터뷰가 있었다.
후배들의 무대 경험의 기회를 주고 내리 사랑을 실천하며 새롭게 내놓은 극본의 성공이 주제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 화양연화와 극본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저마다 인터뷰 잘 봤다며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동기들과 선배, 후배들이 가득했고 극장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탄소야 오늘, 내일 좌석 다 매진이다.”
단장님의 말에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매 회차 관객이 북적이긴 했지만 매진을 했던 적은 없는데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까지 매진이라니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이로 말할 수가 없다.
“와! 박수!!”
석진이의 말에 다들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박수를 받아 마땅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연극을 함께 해 주고 있는 우리 후배님들인데 부끄럽고 감사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다들 지금까지 너무 감사해요. 덕분에 매진을 보게 되네요. 앞으로 마지막 공연까지 열흘 남았습니다. 다들 수고했고 또 남은 시간 수고해 주세요.”
내가 지은 이름처럼, 우리내 인생에 화양연화가 찾아왔다.
평생 맞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빛나는 한 때가 함께하고 있는 모두에게 드디어 찾아왔다.
오늘을 평생 잊을 수 있을까.
*
시간이 흐른 뒤, 나의 예상대로 모든 것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못다 이룬 꿈을 끝까지 품고 있었던 보람을 느낀다.
스물아홉을 앞두고 술에 취해 술기운에 써 내린 극본은 대박을 쳤다.
연극 '나의 봄은 온통 그대라오'는 후배들에게는 꿈을 이루기 위한 도약이 되었고 큰 기회였다.
첫 예상 한 달의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에 소극장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국을 돌며 공연 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주연 배우로 무대에 섰던 아이들과 그 속에서 연출을 배웠던 아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빛을 내고 있다.
"제일 바쁜 사람이 어쩐 일이야?"
-누나 보고 싶어서
"스캔들 나기 딱 좋은 발언이다?"
-진심인데.
"그래서 용건은."
-술 한 잔 하자. 누나만큼 나랑 잘 맞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석진이는 어엿한 배우로 자리 잡아 요즘은 영화 섭외 1순위에 빛나는 천만 배우가 되었고 틈만 나면 만나자며 이렇게 전화가 오곤 한다.
"무대 구성은 괜찮은데 음악 소리가 좀 작은 것 같죠?"
"음향실, 소리 좀 높여주세요."
"참, 곡 작업은 잘 되고 있어요?"
"누나 덕에 좀 있음 완성 될 걸?“
표정을 보아하니 남준이는 윤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에 집중하느라 내가 온 줄도 모르는 두 사람을 위해 한마디 던져본다.
"내가 민윤기 뮤즈인거 몰랐어?"
"누나!"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다들 보고 싶어서."
남준이는 무대감독, 윤기는 음악감독이 되어 함께 하는 작업이 많아진 둘은 만나면 부쩍 내게 전화하는 횟수가 늘었다.
가끔은 어울리지 않는 앙탈을 부리며 예전처럼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그럴 땐 어찌나 소름이 돋는지.
"짠~ 연습 끝난 제가 왔습니다! 와! 누나도 있었네요? 누나 보고 싶었어요!"
"나도. 요 근래 우리 모찌 못 봐서 속상했는데."
"집에 가서 쉬지 여긴 왜 올라왔냐."
"형들 보고 싶어서 왔죠!"
지민이는 두 사람이 작업 중인 뮤지컬에서 남자주인공을 맡았다.
연출전공을 했던 지민이지만 연기도 춤도 노래도 다재다능했던 덕에 졸업 전에 교수님의 제의로 뮤지컬에 도전한 후로 줄 곧 뮤지컬 배우로 성장 중이다.
-어제는 방송국에서 정국이 만났어요. 저 이번에 음악방송 엠씨 맡았잖아요? 딱 첫 방송이 정국이 컴백이랑 겹쳐서 응원 많이 해줬죠.
"안 그래도 정국이랑 연락했어. 태형이형 만났는데 힘들었다고."
-정국이가 그랬어요? 힘들었데요?
"또 얼마나 치댔기에 애가 그렇게 학을 떼?"
-그냥 반가움을 좀 표현했을 뿐인데, 한두 번도 아니고…….
대세 배우라면 한번 쯤 거쳐 간다는 음악방송 엠씨가 된 태형이는 지난 작품이 대박나면서 남녀노소 누구라도 알아보는 국민배우가 되었고, 연기와 연출 전공에서 고민하던 정국이는 우연한 기회로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돌이 되었다.
어제는 그의 정규 2집 컴백이 있었고 우연히 태형이의 첫 방송이 겹쳤다.
"연극 '나의 봄은 온통 그대라오'의 각본을 쓴 김탄소 작가님을 무대 위로 모시겠습니다."
호석이의 마이크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오늘은 전국투어의 마지막 무대라 그를 응원하러 왔을 뿐인데, 막이 내리기 전 그가 나를 무대 위로 불렀다.
"다들 박수 부탁드려요."
"갑작스레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김탄소입니다."
"오늘 보신 공연은 작가님께서 스물아홉을 앞두고 쓰신 작품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다들 알고계시는 극단 화양연화가 이렇게까지 성장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김석진, 김태형, 박지민 배우와 음악과 무대 연출의 민윤기, 김남준 감독을 키운, 아이돌 가수 전정국군을 일찍이 알아봐 준 장본인이죠. 지금 제가 여기서 연기를 할 수 있게 해준 분이기도 하고... 오늘로 전국투어가 끝납니다. 모두 김탄소 작가님을 위해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호석이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인사를 드리고 무대는 막을 내렸다.
벌써 첫 공연 이후 몇 년이 흘렀는지, 스물 아홉 언저리의 나는 서른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20대 초반, 앳되어 보였던 애들도 저마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하고서 성숙해 가고 있고 학생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중이니 배고픈 예술을 하지 않았으면 하던 나의 바람은 이뤄진 셈이다.
요즘은 그 때처럼 글을 써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쉽지 않다.
그저 간절하게 바랐던 내 기도를 신이 단 한번 도와준 것이라 생각하며 조바심 내어 쓰지 않으려 한다.
나도, 아이들도, 극단도 충분히 성장했으니까.
저마다 살면서 솟아오를 기회라는 게 한 번씩 오는 것 같다.
나는 서른을 앞두고 딱 한번 찾아와 지금이 되었고 아이들도 그 기회 속에서 자신들의 기회를 찾았으니 나는 이제 더 이상 욕심이 없다.
어두웠던 우리의 청춘이 빛나고 있으니.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웨이콩입니다:-0
글을 안쓴지도 보름이 지났네요,, 그동안 이직하고 일에 적응하고 공부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사실 아직도 어렵고 힘든데 내일이 쉬는 날이라 잠깐 왔어요.
내일도 공부와 업무 익히느라 하루종일 책상에 있을 생각하니 끔찍한데
얼른 배워야 또 쉬는 날 글을 쓸 여유가 생기기 때문애 노력해 봅니다.
간단하고 가볍게 왔던 느와르는 3편으로 끝내고 다음에 올 때는 차기작으로 오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