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여름, 집안사정으로 수도권의 왜 곽지역으로 이사하게 된 성규는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아닌 낯선풍경에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 성규야, 첫날인데 같이 못 가줘서 미안하다 ”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성규에게 다가온 엄마가 낯선타지에 혼자 적응도 못한 아들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에 가방끈을 잡고 예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 괜찮아 엄마, 바쁘다며 마중안나와도 돼 ”
“ 혼자 괜찮겠어? ”
“ 괜찮다니까 내가 몇살인데..... 그럼 진짜 간다 ! ”
자신만만하게 문을 닫고 나온 성규는 말과 다 르게 기분이 축축 쳐진다 밖에만 나오면 소심 해지는 성격탓에 혼자 교무실로 찾아가 담임선생님과 일대일 대화를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렇다고 집안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바쁜 부모임을 억지로 데려올 수 도 없은 노릇이었다
골목골목 사이엔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곳곳에 매미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약간 늦게 출발한터라 등굣길은 한산했지만 여전히 빨리갈 생각은 없는듯 성규의 발걸음은 느리기만 하다, 그렇게 땅을 바라보며 발을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데, 순간 옆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누군가에 흠칫 놀란다 다시보니 같은교복을 입고있는 남학생이다 그는 달리던 속도를 천천히 줄이더니 뒤로 홱 돌아보곤 성규를 쳐다봤다
영문도 모른채 두눈을 깜빡이며 땀을 삐질 흘리던 성규는 이시간에 등교라면 ,혹시 학교에서 주의깊게 관찰하는 문제아인지, 길을 가다 자신이 맘에 안들어서 괜히 폭력을 휘두르 는건아닌지, 따위의 생각을 하다 그가 제앞에 도착했을 땐 잔뜩 긴장한 채 얼어붙어버렸다
“ 저,저기..... ”
“ 저기요, 가방문 열렸어요 ”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가버리는 뒷모습에 성규의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가 떴다 가만히 서서 그 뒷모습이 없어질때가지 멍하니 보다 곧 허탈함이 밀려와 긴장이 다 풀린다 급히 가방을 잠근 성규가 다시 앞을 바라보는데 괜히 큭, 웃음이나온다
혼자 얼어선 잔뜩 쫄아있는꼴이라니...
어쩌면. 혼자 교무실을 들어가는 일도 담임선생 님과 면담하는 일도 전학생이라는 타이틀때문에 또래들한테 받을 시선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을 크게 휘며 큭큭 웃는다 뭐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 성규는 홀가분한 기분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게 그녀석과 나의 첫만남이였다
“ 김성규 일 안해? ”
“ 어....어 아뇨 지금 갑니다! ”
지나가던 선배직원이 건물 뒤쪽 그늘에 쉬고있는 성규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생각에서 빠져나와 당황하며 뛰어가다 벌써 점심시간이 끝났나 금방가는 시간에 아쉬워한다
매미가 울고 푸른입사귀가 무성 해지는 여름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저편 작은 방, 꼭 닫아 두었던 문을 열고 조금씩 새어나오는 추억에 가슴이 시큰하다
또 여름이 되었다, 아니면 벌써 그렇게 된건가, 그때가 이맘때쯤이였는데
“ 너 무슨 좋은 일있어? 왠일로 입꼬리가 올라 가 있는데? ”
“ 네? ..제 상황에 좋은 일은 무슨.. ”
“ 하긴..... ”
수긍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옛 추억에 웃음을 비실비실 흘리던 것을 동료 직원이 본 모양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신없이 군대까지 마친 후 1년하고 3개월,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했지만 어떻게 된게 계속 불합격이다 엎친데 겹친격으로 자취방 월세는 계속 밀려 아르바이트를 한개 더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였다
사회에 이리저리치이며 살아온 성규의 피부는 예전의 생생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웃음또한 메말라갔다 그렇기에 성규 ,본인도 자신이 웃고있었다는 소릴듣고 내심 놀란다
그냥 철없던 지난일이다, 추억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미약하게 남아 가슴한 켠 자리잡은 그것이 시리게 쿡쿡 찔러온다
이젠, 몸도 마음도 다커버린, 쓰라린 추억 밖에 남아있지않은 여름이었다
적어도,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