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서 그렇게 한참을 발악하다 와구와구 먹어대는 탓에 더부룩한 속을 잠재우려 후줄근한 츄리닝을 대충 꺼내입고 집 앞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려 집을 나섰다.
그 때 때마침 그 편의점 그 편돌이가 퇴근을 하는 모양새로 딸랑- 소리와 함께 걸어나왔다. 아이씨 난 왜 자꾸 처음보는 사람한테 이런 추하고 후줄근한 모습만 보이는지..
그래도 한 번 봤던 사람이라고 난 또 반가웠다. 그래서 또 혼자 촐랑거리며 달려가 인사를 해버렸다. 난 바보다.
"어? 아까 봤죠? 지금 퇴근하나봐요?"
"네"
또 여전한 단답형 대답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아까보다 덜 민망했다.
"전 운동하러 가는데 그쪽은 어디가세요?" 라고 말하며 내가 한걸음 발을 옮기니 같은 방향인지 내가 가는쪽으로 같이 걸어갔다.
"전 집 가요"
"아 퇴근이 늦네요~ 아 근데 혹시 나이 물어보면 알려줄 수 있어요?"
라고 나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18살이요"
헐 18살이란다 18살. 이건 뭐 애기잖아? 나이를 듣고 충격을 받은건지 놀라웠던건지 난 그 자리에 우뚝 섰고 그 편돌이 놈은 어리둥절 하다는 듯이 몇걸음 앞에 서서 날 쳐다봤다. '뭘 봐 나이도 어린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넌 왜 나보다 어린데 오빠같니? 라는 한심한 생각도 해보았다.
"제 생각보다 어려서 당황했어요^^; 전 24살이예요"
"아 네"
"제가 누난데 말.. 놔도 돼죠?"
저 말을 하는데 왜 이렇게 두근두근 거리지? 안 됀다고 하면 어쩌지? 수많은 생각이 지나쳐갔다. 다행스럽게도 말을 놓으라는 대답이 이어졌고 난 그 때부터 입풀린 유재석마냥 종알종알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학교는 안 다니는거야? 알바는 왜 하는거야?"
"학교는 다니는 중이고 알바는 돈 벌려고 하는거예요"
"아~ 맞다! 근데 너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돼..?"
"그건 왜요?"
그러게, 내가 그깟 집 앞 편돌이 이름이 뭐라고 궁금한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 아이 이름을 알고 싶었다.
"아.. 아니!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난 너 오기 전에 있던 알바생하고도 친했고! 또! 집 앞 편의점이라 자주 갈 것 같고 또..!!"
"구준회요"
왜냐고 물어오는 그 아이의 물음에 이것저것 답변을 찾으며 횡설수설 하는 도중에 툭 내뱉어진 그 아이의 이름은 구준회 라고 했다. 분명 똑똑히 들었지만 그 뒤에 돌아왔으면 하는 그 아이의 물음을 괜히 기대했고 기다려졌다. 한 번 더 물어보면 그 다음 물음이 돌아올까?
"뭐라고? 구준, 뭐..?"
"구준회요"
"아... 이름 예쁘네"
역시 그 물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심 실망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누나는 이름 안 알려줘요?"
누나랜다. 지금 내 동생보다 어린 18살 편돌이가 나보고 누나랜다. 거기다가 이름을 알려달랜다. 아싸!!!
한편으로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다가도 이미 내 입은 움직이고 있었다.
"내..이름? 아, ㅇㅇㅇ! ㅇㅇㅇ이야!"
"ㅇㅇㅇ... 누나도 이름 되게 예쁘네. 저희집 여기예요. 안녕히가세요"
"응 그...래 잘가!"
말 한마디 휙 날려놓고 옆에있던 낮은 건물로 들어가버린 구준회라는 그 편돌이에 등 뒤에 대고 한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에잇 오늘 운동은 글렀다 하고 집으로 돌아서 집에 오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이게 뭐지? 나 지금 고작 18살인 어린 애기한테 두근거리는 중인건가?' 라는 생각 속에서도 편돌이가 남기고 간 이름 예쁘다는 한마디에 또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많은 생각 속에 집에 와서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다크서클이 얼굴의 반쯤은 차지하고 있는데다 머리는 잔머리가 이리저리 삐져나와있고 옷은 목이 반쯤 늘어난 티셔츠에 반찬국물 튄 자국이 사방에 퍼져있는 무릎나온 츄리닝이라니! 가히 절망적이다.
"내일은 좀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ㅠㅠㅠ"
다 늦은 밤에 냉장고와 화장대는 다 뒤져서 겨우 찾은 팩을 얼굴에 살포시 올려놓고는 옷장을 다 뒤져 나름 예쁜 옷을 찾아 고이 모셔두고 내일은 또 어떤말을 건넬까 고민하다 잠 들었다.
우엥ㅜㅜ 어떻게 노력해봤는데 많이들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