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지하철을 타다보면 기분이 좋아졌었다. 철컹 철컹 소리에 맞추어 뛰는 내 심장의 느낌도 좋았고 밖을 바라보며 나대신 바람을 느끼는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에 내 머리카락에도 바람 때문에 흩날리는 듯했다. 그 때는 그랬다. 교복을 입고 지하철에 서있는 것 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유희였다.
-미국, 뉴욕
“진, 호출이야.”
“또 무슨 일인데?”
“난들 알겠냐. 어쨌든 얼른 가봐.”
오늘 만해도 벌써 세 번째 호출 이었다. 아직 출근한지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불러댄 셈이다. 나는 투덜거리며 직원 사무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제부터 질리도록 불러내면서 나의 조기 퇴근의 꿈을 좌절시킨 빌어먹게도 잘생긴 금발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라일러,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오, 진 빨리 왔네?”
“무슨 일로 호출한거냐고 묻고 있잖아.”
“그러니까 아ㄲ.”
“혹시라도 이번에도 아까처럼 넥타이가 제대로 안 매졌다거나 저번처럼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옷에 튀겨서 얼룩이 졌다거나 단추가 풀러졌다거나 그런 거라면 난 나가볼게.”
“...”
“또 그런 이유였군.”
어제부터 라일러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먹이면서 말이다.
“그럼 난 나가봐도 될까?”
“잠깐, 진.”
바로 뒤돌아 가려던 나를 라일러는 다급한 목소리로 붙잡았다.
“왜?”
“...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뭔데?”
“내일 내 스케줄 알지?”
“내일이라면...선상파티 말인가?”
“그래 그거, 거기서 내 파트너를 해줬으면 해.”
“뭔 소리야?”
“파트너라고 해도 별거 없어. 춤도 안 춰도 돼. 그냥 내 옆에만 있으면 되는 거야.”
“어째서야? 어제부터 날 불러낸 이유가 그거야?”
“그래.”
“그렇게 날 귀찮게 한 이유가 고작 그거 부탁하려고?”
“그렇지.”
“....”
“내가 워낙에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이야.”
그 말에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얼굴을 보고도 라일러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대답은?”
“거절해도 돼?”
“당연히 안 돼지. 진, 네가 만약 거절한다면 나는 상사의 직권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그럼 나한테 선택권은 없는 거잖아!”
라일러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드럽게 잘생긴 얼굴로 말했다,“
“그걸 이제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