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간만 되면 고개를 기린마냥 내밀고 학연을 불러야할 재환이 도무지 보이지를 않았다. 계속 같은 곳만 쓸기를 몇십분째, 답답해보였는지 원식이 학연에게 뭐라뭐라 잔소리를 늘어놓아봤지만, 그역시도 학연의 근심앞에선 들릴 리가 없었다. " 아니, 아프시면 의원을 부르셨겠지. " " 아니야. 지금 시간이 몇신데. 벌써 진시가 다 되어간단말이야. 어디 아프신거 아니야? " " 넌 무슨 일개 노비놈이 그리도 참견할 곳이 많냐? " " 장남이시다. 대가 끊기면 " " 또 일장연설. 사람 불러와? " " 응.. " 결국 보다못한 원식이 급히 뛰어가 재환의 어머니를 불러왔고, 학연은 생전 처음보는 이집의 안주인, 즉 재환의 어머니가 의원과 여종들을 데리고 재환의 방으로 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 니가 학연이냐? 따라오거라. " 왠 낯선 사내의 호출을 받고 재환의 방으로 들어선 순간, 재환의 본래 향과 뒤섞인 온갖 한방약초 냄새가 골이 울릴 정도로 방안에 진동했다. 재환은 말 그대로 초췌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온 몸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핏기가 없는 마른 입술은 겨우 물만 받아 마시고 있었다. " 우리 환이가 아픈걸 어찌 알았느냐 " " 아, 그저 안보이시길래.. " " ……. " " 어머.. 니. " " 환아, 재환아. 이제 좀 괜찮아진것이냐? " " 괜찮.. 습니다. " " 어찌 이리 어미의 속을 태우는 것이냐. 이놈아 … " " 죄송합니다. " 제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은 재환의 하얗고 긴 손이 떨려왔다. 이내 재환의 손등에는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쉬고 싶습니다. " " 그래. 그래 푹 쉬거라. 이 어미가 괜히 널 귀찮게 했구나. 푹 쉬거라 재환아. " 그렇게 모두가 다 나가고, 끝으로 학연이 나가려는 차에 재환이 다시 학연을 불렀다. " 왜 그러십니까. 시키실 일이라도 " " 왜 말한 것이야. 그저 편히 가고 싶었거늘 … " " 도련님 " " 다음부턴 그저 편히 가게 놔두거라. 어차피 갈 거 살아봐야 뭐하겠어 " " 제발 그런 말씀 마세요. " " 고마워. 우리 연이. " 힘겹게 입꼬리를 올린 재환이 학연을 바라보며 시리도록 웃어주었다. 겨울은 그렇게 너무나도 모질게 둘을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