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307869_returnll조회 8825l 12
많이 스크랩된 글이에요!
나도 스크랩하기 l 카카오톡 공유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이동진 칼럼) | 인스티즈



터널을 지날때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어느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에 놓인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헤어지고 위안이 되는 글이라 가져와봄 ㅠㅠ

추천  12


 
😥
13일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팁·추천 내 웨딩 드레스 취향은 실크파다 vs 비즈파다267 NCT 지 성5:5277003 5
유머·감동 블라인드) 바람핀거 걸리고 회복중에 있는데198 담한별0:3282281 33
유머·감동 둘째 아이한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는 엄마.jpg215 +ordin2:5083704 27
이슈·소식 SH에서 반지하라는 단어 대신 쓰려고 했던 명칭.JPG99 우우아아10:3752392 1
이슈·소식[단독] 공원 산책하던 노부부, 전동킥보드에 치여…부인 사망96 새벽달밤15:5014281 2
역대급인 것 같은 게이 연프 출연자 서사...jpg 디한 07.11 16:20 4889 1
무한도전 주작 레전드.jpg16 큐랑둥이 07.11 16:20 16634 3
갓 태어난 송아지가 길바닥에 버려진 이유6 언더캐이지 07.11 16:16 10773 2
송강 보고 주접 폭발한 구교환 쇼콘!23 07.11 16:16 2294 1
한국의 도시를 디스하는 일본녀.jpg7 우Zi 07.11 16:13 10116 0
집순이 필수템 빔프로젝터 알라뷰석매튜 07.11 16:10 1707 1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한국 가수 최단 기간 일본 4대 돔 투어 개최… 오늘(10일) .. JOSHUA95 07.11 16:10 444 1
'79세' 선우용녀, 여유로운 말년 근황 "벤츠500 끌고 호텔 뷔페에서 식사"10 베데스다 07.11 16:07 21278 5
mbti별로 갈리는 가장 극혐인 순서13 배진영(a.k.a발 07.11 16:06 3835 0
결국 부가세보다 더 커진 배달의 민족 수수료.news 더보이즈 영 07.11 16:06 2349 1
러바오 러미안이 너무 좋은 나머지..2 서진이네? 07.11 16:06 2049 0
결국 바닥 철거하는 러미안1 아야나미 07.11 16:06 1555 0
colde(콜드) -your dog loves you (feat.crush) 실리프팅 07.11 16:04 32 0
피프티 피프티에 이어 미국 라디오 차트 1위했다는 신인 남돌.jpg26 나연-abcd 07.11 15:59 25226 2
[단독] '252만' 유튜버 '침착맨' 딸 칼부림 예고 글…경찰 수사201 왈왈왈라비 07.11 15:49 136074 17
벌써 다음주 파이널 앞둔 MA1 16인...jpg 잡덕이 죄야. 07.11 15:48 460 0
마라탕? 그럼 탕후루는?ㅋㅋㅋㅋㅋ 기믄징 07.11 15:39 1202 0
전 럭비국대가 강간상해후 보낸카톡21 구구굴 07.11 15:33 19136 0
허리 디스크에 안좋다는 한국인 소파 사용법9 누눈나난 07.11 15:30 20644 0
호불호 갈린다는 조식 스타일.jpg10 가리김 07.11 15:21 10370 0
전체 인기글 l 안내
7/16 17:30 ~ 7/16 17:32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유머·감동 인기글 l 안내
7/16 17:30 ~ 7/16 17:32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