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1화는 http://instiz.net/writing/9372 가래떡님이 친절하게 써주셨네요.
눈을 떴다. 주위에서 북적거리는 소리가 그제서야 들려왔다. 어디선가 많이 봐왔을법한 소품들이며, 분주하게 옷가지를 들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을때야 난 정신을 차렸더랬다. 그래도 아직 죽진 않았다고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이성열을 살짝 째려보고선 제게 다가오는 작가-로 보이는 사람이었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 성규씨, 반가워요! "
아, 예, 저도 반갑습니다. 엉거주춤 내민 손을 붇잡고 있으니 손에 힘이 들어가는게 어딘가 압박을 주는 것 같기도 하는 묘한 느낌에 인상이 찌푸리지면, 그걸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눈이 세모꼴로 변하는 꼴이 여간 웃기지 않을수가 없다. 같이 작업하게 될 것 같다며 방방 뛰어대는 이성열이 다가와서는 '야, 작가가 너 좀 싫어하는 눈치다?' 라고 하는데 그걸 누가 몰라서 이러고 있겠는가. 알아, 지도 남자라고 경계하나보지. 게이라는데. 괜히 태연한 척 말하기 무섭게 낄낄 기분나쁘게 웃는 녀석의 머리를 저 멀리 밀어버리고선 한숨을 푹 내쉬어버렸다.
"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저질렀길래. "
애써 태연한 척 해봐도, 역시나 신경쓰이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눈치를 보니 조금만 실수를 해도 바로 물어뜯어버릴 기세라 그런가 더 부담이 된다 이거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입술만 꽉 깨물어버린다. 벌써 머리도 해서 이건 뭐, 쥐어뜯을수도 없는 꼴이고. 아. 나도 모르겠다.
* * *
벌써 몇 번째 컷 소리가 나는 지 귀에 딱지라도 앉을 기세다. '성규씨, 똑바로 안할래요?' 하고 톡 쏘아붙이는 목소리는 얼마나 높던지 듣기 거북할 정도라고 해야하나. 예전같았으면 자리를 박차고라도 나갔지 날 꽉 붙잡고는 '너 여기서 진짜 인생 쫑낼래?' 라고 말하는 성열이의 목소리에 다시 자리에 앉아버렸다. 얼른 사과하라며 옆구리를 쿡쿡 찔러오는데, 결국엔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뻔히도 들려오더랬다. 아, 서럽다. 김성규. 너 왜 이러고 사니.
" 성규씨. 오늘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해. "
내가 누구때문에 이러고 있는지는 뻔히 잘 알면서 모르는척하는 솜씨가 아주 연기를 해도 되겠다. 그치? 작가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리는 나나, 작가 말 한마디에 꼼짝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저 감독이나, 뭐가 또 신이 난건지 잔뜩 흥분한 이성열이나.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 하나도 없다. 하나도. 성규씨, 이번이 마지막 기회예요. 우리 한 번 확실히 해봅시다, 네? 짜증이 한껏 담긴 얼굴로 말을 건내는 작가에게 예의상의 미소를 보여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쓸데도 없는 게이 받아줬더니, 시간만 빼앗기고 이게 뭐야. "
작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저렇게 크게 들려오는건 내 착각인가 싶다. 썅. 내가 니 꼴 보기가 싫어서라도 겁나 열심히 한다.
* * *
화보 촬영의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작가의 콧대를 잔인하게 꺾어버리겠다는 다짐은 사라져버린지도 오래라, 이거다. '커밍아웃 김성규, 이번엔 같은 동료 모델?' 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가진 기사를 필두로 하나 둘 올라오는 이성열과의 사진에 어안이 벙벙하다.
" 아. 기분나쁘게 왜 얘랑 엮여? "
" 누군 좋은 줄 알아? "
장난끼가 다분한 말투로 명수의 허리를 꽉 끌어안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한번 기사를 보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이거다. 그러니까 사건의 요점은 얼마 전 찍었던 화보 촬영이 문제였다. 단지 요구하는 포즈에 맞춰서 몸 한 번 움직였을 뿐인데도 여기선 뭐가 어떻다, 저 사진엔 또 뭐가 어떻다 왈가왈부를 해대며 별 이상한 소리가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근데 성규야. 왜. 너랑 성열이랑 잘 어울리는데. 아. 진짜 뭐래.
" 김명수. 그런 말은 하는거 아니야. "
" 뭐 어때. 근데 어울리긴 어울린다, 너희 둘. "
그러다 이성열 삐질라. 한껏 비웃음 담긴 목소리로 명수에게 말하자 움찔 거리는게 거기 까지는 생각 못한 듯 싶다. 훽 고개를 돌려봤자 벌써 저 소심남이 안 삐졌을리가. 김명수가 이성열을 보며 베실베실 웃어보이는 걸 보고 있자니 속을 게워낼 것 같은 기분에 인상을 한껏 찌푸리다가 결국엔 베란다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서럽다. 내 집인데 저 사람들 연애질에 왜 내가 자리를 피해야하는가에 관해 한참을 생각하다가 슬슬 추워져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역시나 욕이 나오는건 어쩔수가 없는 일.
" 아, 씨발. "
말이 끝나기 무섭게도 쏟아지는 빗줄기에 깜짝 놀라 뒷걸음을 치다 창문에 그대로 박아버렸다. 아, 이런. 오늘은 날씨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물아홉 인생 이렇게도 무너지는 것인가. 이젠 뭐 먹고 살아야하나 한참을 고민하는데 뒤에서 갑작스레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온다.
" 궁상떨지 말고 들어와, 김성규 . "
하여간 이성열, 저 인간은 무드를 몰라요. 무드를. 내가 뭘바라나.
공지입니다. (가래떡님 필수로 봐주세요.) |
안녕하세요. 라우입니다. 제가 지금 무척이나 화가 나 있습니다. 제 글이 표절을 당했거든요. 그것도 글 하나 전체를요. 혹여나 이 글을 올림으로써 제가 퇴출을 당한다거나 1년 정지를 먹는다고 해도, 억울한건 꼭 풀고 사과를 받아야 겠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저 대신 힘들게 1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과문 꼭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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