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살아낸 무수히 많은 시간.
우리는 그 시간들을 함께 공유한다.
내가, 그대가 살아 온 그 각자의 삶에 접속한다.
방탄소년단의 접속, 라이프
11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해를 넘겨 다들 나이를 먹었다.
그들의 활동도 끝이 나고 8회 분량의 방송도 연일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다 종영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지 못했다.
'얼마 전 종영한 방탄소년단의 접속, 라이프의 일반인 출연자 김씨에 대한 의혹들이 인터넷 곳곳에 올라오며 4년 전, ㅇㅇ대병원의 의료사고 인턴이 아니냐는…….'
방송이 나간 후 잊고 지내던 동기에게서 메시지가 왔었다.
티비에, 그들과 함께 나오는 사람이 내가 맞느냐고.
그때 예견했어야 했다.
잊고 싶은 나의 치부가 이렇게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거라는 걸.
[인턴의 독단적인 의료행위로 발생한 사고로 환자가 사망하다.]
그 당시의 주요 기사 내용이 다시 올라왔다.
나의 실수로 사람이 죽었고 나는 의사 자격 없는, 자격 미달의 인턴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인자가 되었고 병원을 그만뒀다.
나는 내가 감당해야 할 일에 대해 겁이 많았고 그 상황을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은 도망치는 게 유일했다.
‘누나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요 제발 한 번만 받아줘요 🐰 03:57pm’
그의 간절한 부탁에도 선뜻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하루 종일 모르는 번호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전화며 문자에 손이 떨려와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그의 문자를 확인하고 있는 와중에도 전화는 계속 울린다.
전화가 끊기고 또 다른 전화가 올까 얼른 그의 번호를 누른다.
“정국아.”
-왜 하루 종일 연락이 안돼요…….
“미안. 자꾸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
-지금 티비에서 하는 얘기들, 사실이에요? 내가 모르는 일이에요?
그는 답답하다는 듯 내게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는 거냐며 물어온다.
혹시나 그가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요. 네?
“정국아, 난…….”
-전정국, 형 얘기부터 들어보라니까.
정국이의 목소리 뒤로, 화가 난 듯 한 남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내 남준씨가 전화를 받은 듯 내게 말한다.
-여주씨 미안해요. 정국이는 내가 잘 알아듣게 설명 할 테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해요.
그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하고픈 말은 그에게 단 한마디도 전해지지도 못한 채 끊긴 전화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왠지 4년 전의 지옥문이 다시 열린 듯, 무섭다.
그때의 그 기억들이 다시 나를 조여 온다.
듣기 싫은, 기억하기 싫은 그 말들이 내 귓가를 울린다.
귀를 막고 또 막아보지만 더욱 선명히 들려온다.
그날의 소리가.
*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김씨의 의료사고에 대해 무혐의를 주장하는 글이 전해져 왔습니다.
제보자는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로, 병원 관계자들과 수술을 집도했던 담당의가 인턴이었던 김씨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는 주장인데요.’
며칠 만에 뒤집힌 상황에 가만히 눈을 감고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막혀오는 숨을 겨우 몰아쉬는 중이다.
왜 그때는 용기를 내지 못하셨나, 그런 원망도 해본다.
억울함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그저 원망에 겨운 울음이 날 뿐이다.
‘왜 내가 모르는 얘기를 남준이형은 알고 있어요?’
지난 밤, 그가 술에 취해 내게 전화를 해 왔다.
그도 속상했는지 원망 섞인 말들을 내게 쏟아냈다.
왜 자신에게는 미리 말하지 않았는지, 왜 자신이 모르는 얘기를 남준씨가 알고 있는지, 내 얘기를 왜 그에게 대신 전해 들어야 했는지.
술기운에 투정 부리듯 내게 서운함을 쏟아내던 그가 떠올랐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밖은 이미 어둠이 가득하고 거리에는 가로등만이 유일하게 빛을 낸다.
바깥이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에 앉아 가만히 책을 펼쳤다.
이번 사건으로 아직 출간도 되지 못한 인쇄본 상태의 책을 어루만진다.
'내 삶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포기하며 버려진 것들이 무수히 많다.
어린 날의 내가 살기위해 소중했던 기억들을 잃었고 성적표에 쓰일 숫자 몇 개를 위해 친구를 포기했다.
또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희망이 되고자 나를 포기했지만 다시 내 삶이 버려졌다.
자유롭게 바라는 것 없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일까 긴 어둠과 걷히지 않는 그늘 속이던 내게도 햇빛이 닿기 시작했다.
너라는 사람은 내게 그 무엇보다 따뜻한 햇살이었다.'
그에게 선물하려 애써 만들던 책이었다.
애정이 깃든 이 책도 이제 세상의 빛 따위는 보지 못할 생각에 그저 괴로웠다.
눈은 여전히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같은 구절을 반복, 또 반복하고 있다.
목구멍을 맴도는 몇 개의 말 따위가 결코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진 못했다.
-누나, 듣고 있어요?
몇 번이고 울리던 전화였고 나는 받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부재중이던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걱정이 되는지 연신, 나를 불렀다.
돌아오는 대답 없는 무의미한 전화를 그는 결코 끊을 수 없다는 듯 가만히 다시 나를 부른다.
-김여주 작가님. 누나. 어제는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누나도 힘들 텐데 내가 어리광부려서…….
내 햇살은 오늘도 따뜻하게 내 곁을 머문다.
그의 목소리에 울컥, 눈물이 쏟아 질 뻔 했다.
이내 괜찮다는 말만을 반복하던 그의 목소리 뒤로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이어져 온다.
-걱정 하지 마요. 우린 언제나 여주씨 편이니까. 누가 뭐래도 여주씨 좋은 사람인거 우리가 알아.
-나도 있잖아요. 사람들이 무서워서 내 사람 모른 척 할 만큼 비겁하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여주씨. 우리 한번 믿어 봐요.
“정국아, 남준씨.”
-어, 드디어 대답한다.
“나는, 내가 한 잘못이 없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때 내가 나서지 못해서 그래서 죽은 거예요, 그 사람.”
-여주씨. 깊이 생각 말아요. 그냥 우리는 진실, 팩트만 보자고요.
“너무 괴로워……. 죽을 것 같단 말이야…….”
결국 목 놓아 울어 버렸다.
나는 그동안 기댈 곳이 없었다.
어리광부릴 부모도 없었고 그 흔한 친구도 없었다.
나를 아끼던 교수님은 지난 의료사고 이후 내게 등을 돌렸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도 내가 찾을 사람도 없어 지난 시간을 혼자 도망치며 살았다.
죽어가는 나를 그들이 자꾸 살라고 부추긴다.
세상은 나를 구석으로 한 없이 몰아넣은데 그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선다.
혼자가 편했던 내게 자꾸 내편이 생긴다.
*
긴 꿈을 꿈 것 같다.
무서움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나를 때리고 욕하기도 했고 웃으며 내 손을 잡아끄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작 내 모습은 한 없이 초라하고 볼품없고 웃지를 못했다.
'무엇인가 마음에 쿵 하고 들어왔다. 잔잔하던 물결에 파동이 일고, 떨림인지 설렘인지 모를 그 아련함이 마음을 간질거리게 한다.'
'우리의 청춘은 빛났고 또, 한바탕 울음의 난장이었다. 저마다 잘 살아보자고 아등바등. 그렇게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 갈 예정이다. 해 진 어스름, 우리의 청춘 그 뒷면. 화려함 뒤에 고요한 그 밤은 치유의 시간이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책을 읽고 있는 듯, 아직 출판도 되지 않은 인쇄본을 가만히 읽어낸다.
“잠을 왜 이렇게 오래 자요. 내 목소리 듣고 있어요?”
아직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가 하는 말이 듣고 싶었다.
“나는 누나가 수줍게 입 가리면서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순수해 보여서 그 웃음이 우리 작가님 책보다 더 행복해 보여.
근데 요즘은 매일 울기만 해서 내가 다 속상해요. 자기 잘못 아니잖아. 그동안 왜 혼자 끙끙 앓았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누나 힘든데 왜 말 안했냐고 어리광이나 부리고…….”
그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그가 나 때문에 운다.
나를 위해 울어준다.
사랑만 주어도 부족할 그에게 내가 슬픔을 주었다.
떠지지 않는 눈에 그저 그가 잡고 있는 내 손에 작은 힘을 실어 주는 것 외에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어디에도 없다.
"나 혼자 남겨두고 떠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제발 내 손 놓지 마요.“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이 떨려온다.
그도 나처럼 괴로움 속을 유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때문에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
퇴원 후 집에만 있는 날들이 늘어 갔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 문턱이 닳도록 오간 그의 모습에 의료사고에 대한 말들보다도 그와 나의 열애설 기사로 바깥세상은 진절머리가 나도록 떠들어 댔다.
이제는 밖으로 나간 다는 것 자체가 내겐 두려움이 되었다.
진실이 밝혀져도 여전히 나는 오래 전 그 사건의 중심에 있고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경멸이 가득하다.
그런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를 탐했고 나를 옹호하는 그들의 행동은 불 속에 기름 붓기와 다르지 않았다.
조용한 집 안에 초인종이 울린다.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일순간 사건 이후 나를 찾아왔던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한 번 초인종이 울린다.
인터폰을 확인하자 나를 찾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화면에는 윤기씨가 있다.
문을 열자 그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넨다.
“여긴 어떻게…….”
“정국이한테 물어봤어요.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할 말.”
“나는 괜찮아요…….”
“미안했어요. 그때는 무례하다 생각하면서도 묻고 싶었어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면 꿈도 포기하고, 오랜 시간 잊히지 않는 기억 속에서 괴로워 할 수 있는 건지.”
“이제 궁금증이 전부 해결 되셨겠네요.”
“진실도 밝혀졌죠.”
“그런가요……."
"내가 경솔했어요. 미안해요."
"윤기씨는 잘못 없어요. 나는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요."
괜찮다는 내게 힘을 내라며 그는 죽이 든 종이가방을 건네고서야 돌아갔다.
식탁에 종이가방을 내려두곤 또 다시 눈물에 주저앉은 나를 보았다.
요즘은 하루라도 눈물 없이 보내는 날이 없다.
그날들보다 더 괴롭고 아픈 날들의 연속인 것 같다.
나를 지나는 모든 것들이 내 목을 잡고 흔든다.
*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면 침대 위다.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고개를 돌리면 나를 안은 채 침대 헤드에 기대 잠이든 정국이가 있다.
또 어디선가 기절해 집안 어딘가에 누워있었을 나를, 정국이는 무슨 생각으로 침대에 옮겨 두었을까 생각한다.
“왜 벌써 일어났어요...”
나의 뒤척임에 잠이 깬 건지 잠긴 목소리로 나를 더욱 껴안으며 물어오는 정국이다.
“언제 왔어?”
“지금 몇시 에요?”
“새벽 1시.”
“저녁에요.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걱정 되서 왔어요.”
“미안.”
“아프지 마요. 누나가 전화 안 받을 때마다 무서워. 집에 찾아오면 또 어딘가 정신 잃고 쓰러져 있는 거 보면 울고 싶어져요.”
“우리 정국이 울면 안 되는데.”
“여기서 지내는 거 힘들면 말해요. 어디든 같이 가 줄 테니까.”
“괜찮아.”
“거짓말.”
이번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자주 쓰러지곤 하며 그는 내게 한국을 떠나고 싶냐고 물어왔었다.
부쩍 나에 대한 걱정도, 무서움도, 두려움도 많아진 그 이기에 처음 내가 쓰러지던 날, 병원에서 울면서 남준씨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가 바라본 나는 꼭 죽어가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자신과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그에게 큰 존재가 되었나 보다.
일찍 오겠다고 해 놓고 12시 직전에 돌아온 웨이콩입니다 ㅜ_ㅜ
우에에엥 계획에 없던 약속이 생겨서 다녀왔더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되었네요...
그래도 좀 써뒀던 이야기라 빨리 쓸 수 있어 다행입니다.
어느덧 11화, 앞으로 몇번만 더 오면 이 이야기도 끝이 날 텐데 또 차기작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건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피곤해 도망갑니다!
+ 암호닉 +
연지곤지
얄루
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