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야 너 또 왔어?"
"넌 왜 또 반말이야."
너도 반말 쓰잖아, 요. 어제보다 누그러든 반박에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
왜 왔냐고 짜증을 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꾹 참는 모습이 또 귀엽고.
오늘은 허니버터칩 찾으러 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말하곤 가벼운 발걸음으로 먹을 걸 고르러 가는 내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어.
어지간히 억울했나 보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줄까.
시원한 음료수 몇 병하고, 과자도 몇 봉지 골라서 계산대에 내려놓았어.
바코드 리더기를 집어 드는 손길에 투정이 한가득하더라.
"때려치우신다더니,"
아무래도 편의점 알바가 천직이신가 봐요. 어제 그렇게 난리를 피워놓고도 멀쩡히 바코드 찍는 거 보면.
근데 이상하게, 장난 어린 말투로 놀리는 대도 부들부들 떨면서 이를 앙 물고만 있는 거야.
내가 너무 심했나. 사과라도 하려고 입을 열려는 찰나에, 알바생이 빽 소리를 질렀어. 장전하고 있었나.
"너 어쩔거야, 요!"
"아, 갑자기 소리는 왜……!"
너 때문에 나 알바비 까이면 어떻게 할 거예요. 나 어제 점장님한테 완전 깨졌어.
친한 건 사실이었나 보더라고요. 거짓말인 줄 알았더니. 씨씨티비 보면서 나만 된통 욕먹었어요. 단골 손님한테 그게 무슨 버르장이냐고.
아니 그게 버르장이에요? 따지고 보면 손님이 먼저 나한테 시비, 아니 시비는 아니더라도.
아, 억울하다. 억울해. 어쩔 거에요. 나 알바비 까이면 손님이 채워줄 것도 아니고.
울먹거리면서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는데. 할 말이 없어지더라.
어쩌라는 거지. 멀뚱히 쳐다보는 나를 보던 알바생은 얼굴이 빨개져선 다시 묵묵히 먹을 걸 계산하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왜 승산도 없는 게임을 걸어. 측은해라.
봉지에 담아준 먹을 거 중에 음료수를 하나 빼주자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길래.
오다 주웠다, 스타일로 말한 건 아니고. 그냥 어제 미안하다고 하면서 우물쭈물하다가 말하니까 씩 웃는 거야.
역시 잘생긴 사람은 뭔가 달라 하면서 나도 따라 웃으니까 또 정색을 하데.
"이거 뭐에요, 뇌물?"
뇌물이면 저 안 받을래요. 삐죽거리며 다시 내 쪽으로 슥 밀길래, 민망해져서 음료수를 다시 알바생 쪽으로 밀었어.
뇌물 맞으니까 받아요. 나 너 알바비 채워 줄 능력은 없으니까.
그리고 비싼 것도 아니니까 그냥 이걸로 퉁 치자구.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은근, 이 상황이 재밌는 거야.
그래서 괜히 진지한 표정까지 지어가면서 둘이 상황극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알바생이 나를 쳐다보더니 망언을 터트렸어.
그렇게 말하니까 꼭 손님이 남자 같네요. 기분 나빠.
너 지금 나한테 남자 같다고 그런 거지. 알바비 대차게 까여볼래?
오늘도 또 투닥투닥.
너 자꾸 그러면 나도 저주 내릴 거예요. 무슨 저주.
전 학기 에프. 미쳤네. 사람이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거지.
"그나저나, 기껏해야 중학교 1학년인 줄 알았는데 대학생이었다니."
"14세는 고용노동부에서 취직 인허증 떼와야 하거든요?"
"누가 그거 물어봤어요?"
어이가 아리마셍. 엿 먹어라. 과자 한 봉지를 던지는 내 행동에 소리를 또 버럭 지르며 몸을 피하는 알바생.
아 진짜 나한테 왜 그래여! 쓸데없이 유식한 척 한 게 누군데 지금.
사과 안 받을 거면 말라고 그래. 나도 기분 상해서 그냥 그대로 나가려는데, 알바생이 날 잡아 세웠어.
근데 어제부터 왜 자꾸 어깨를 잡는 거지.
"삐쳤어요?"
네니요. 툭툭 내뱉는 내 말에 알바생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나를 쳐다보더라.
떨어진 과자도 주워주고 음료수를 다시 내 쪽으로 밀어주면서,
"음료수는 내가 사주는 걸로 할게요."
대신, 앞으로도 자주 놀러 와. 나 좀 그만 놀리고.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으면서 그제야 어깨를 놔주더라고.
뭔데 나보고 오라 가라야. 내가 멍멍이도 아니고. 음료수를 다시 들어서 봉지에 넣고 양손을 패딩 주머니에 넣었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서, 알바생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어.
"스무 살, 김태형이에요."
원래 사람 다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라던데 우리도 인제 그만 싸우고 친해집시다.
너 완전 패기 넘쳐. 내 스타일. 마음에 들었으니까 음료수 선물로 주는 거야.
입이 웃을 때 조금 하트 모양인 것 같기도 하고…….
괜한 바닥만 신코로 툭툭 치는데 대답 안 하냐고 또 징징거리더라.
날도 춥고 귀찮아 죽겠는데 내가 편의점에 맨날 출석 도장 찍게 생겼네.
대충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다시 환하게 웃으면서,
그걸 보니까 또 장난을 치고 싶은 거야.
같이 웃으면서 이번엔 내가 말했어.
"근데요, 김태형아."
"응?"
"저 스물한 살인데요."
왜 반말. 사악하게 웃는 내 표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엄청난 동공 지진을 보이는 태형.
말을 더듬어가며, 아니 그럼 스물한 살이면 저보다 누나인 건가, 요.
역시 귀여워. 제어가 안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 못 하고 웃는데 그거에 반응하는 게 또 귀엽다.
농담이야. 말하자마자 다시 썩어들어가는 태형의 표정.
내일 또 올게요, 안녕. 즐겁게 편의점 문을 열고 나서는 내 뒤로 악하고 고함이 또 내리쳐졌어.
아 근데 뭔가 이상하네.
패딩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봉투 안에 들어있는 내가 산 먹을거리 들을 확인하는데,
'음료수는 내가 사주는 걸로 할게요.'
이거 내가 계산하지 않았나.
몹쓸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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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다음 편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