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쟤 13살 차이나는 아저씨랑 연애한대
재욱이 석류를 따라 나왔고, 석류의 손목을 잡아 돌려 세운 재욱에 석류가 눈물이 고인 채로 재욱을 바라보았다.
"어디 가는데, 왜 그냥 가."
"좀이따 보자면서요. 친구분 있길래 그냥 나온 거예요."
"…기분 나쁘구나 너."
"…여자랑 있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어요."
"기분 나쁠 거 없어. 이번에 촬영 일 있고, 카페 로고 만들어준다고 도와준다고 온 거야.
단순하게 일 때문에 만나는 거고."
"그냥 그게 싫다구요."
"알았어. 미안해."
"…안 그래도 요즘 계속 나한테 차갑고, 평소처럼 웃어주지도 않아서 불안한데.
이런 모습 보이면 저는 기분 나쁘죠. 너무 기분 나빠서 아저씨랑 얘기 하기도 싫은데."
"미안해. 피곤해서 그랬어. 요즘 일도 많고,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잠도 잘 못자서 그래서."
"맨날 아저씨 보러가면 밤이고, 밤에 보면 잠만 자고. 관계 하고나선 무슨 권태기 온 사람처럼 바로 잠 들고."
"권태기는 무슨 권태기.. 그런 거 아니야. 진짜 피곤해서 그런 거야. 그렇게 느끼게 해서 미안해.. 응?"
"나랑 섹스하려고 만나요?"
"…뭐?"
홧김에 한 말이었다. 석류의 말에 재욱이 잡고있던 석류의 손목을 놓고선 인상을 쓴다.
달래주려고 무릎 굽혀 눈을 맞추고 있었던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다.
"너랑 자려고 만나다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맞잖아요. 섹스, 잠, 출근.. 섹스, 잠, 출근. "
"참... 진짜."
"애초에 자고 싶어서 만난 건 아니에요? 권태기 온 것 같다고 느끼게 만든 아저씨 잘못 아닌가."
"너 진짜 말을.. 사람 비참하게 만든다."
"……."
"좋아하고 사랑해주다가, 잠깐 피곤해서 너한테 솔직한 감정으로 티냈던 게 너한텐 그렇게 느껴졌어?
조금이라도 이해 해주기는 커녕, 몸 때문에, 잠 때문에 만나냐고?"
"……."
"자고 싶어서 만난 거 아니냐고? 넌 여태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그렇게 느끼게 행동을 했잖아요. 아저씨가."
"힘들었냐고, 괜찮냐고 한 번 물어봐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
"……."
"만나면서 서로 신뢰가 깨지는 말은 절대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
"너 생각해서 하루종일 신경썼던 나만 바보 됐네. 네가 그런 생각 하는 줄도 모르고 난.. 진짜.. 등신같다."
재욱이 석류를 뒤로한 채 뒤돌아 카페로 향하면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검정색 케이스를 꺼내 쓰레기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린다.
석류가 눈물이 고인 채로 똑같이 뒤돌아 택시 탈 생각도 없이 무작정 어디론가 걸어가며 참던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 다시 만나겠지. 재욱이 걔는 좀 욱하는 게 있어서 그래."
"아니 욱하는 건 둘째치고,석류가 자기랑 섹스 하려고 만나냐고 말했대요."
"어머."
"뭔 어머야."
"그 말은 서로에게 상처인데."
"그러니까. 그냥 서로 쌓인 게 많으니까 홧김에 내지른 거겠지.
평소라면 다시 붙겠구나 싶었는데 이번엔 좀 다르단 말이지.. "
"근데 이 정도면 오래 간 거 아닌가 싶은데. 재욱이 봤을 때 항상 차분하고, 자기 뜻만 따라주는 사람 만나다가.
석류같이 밝고 솔직한 애 만나길래 얼마 못 가겠구나 싶었거든. 근데 꽤 오래갔네."
"흠.. 성격 보면 안 맞는 것 같은데, 맞아."
"원래 그런 연애가 재밌는 법이로다."
"그래서 둘 연애에 대한 조언은?"
"알아서 하겠지. 그런 거 간섭 하는 거 아니야. 밥이나 먹어."
"다이어트."
"아싸 개이득. 내가 다 먹어야지."
"에라!!!"
"어, 재욱이 왔나? 이게 얼마만이야?"
"아, 안녕하세요. 작은아버지."
"그래그래. 네 카페 요즘 흥하더만..그 잘나가는 연예인이 네 카페에서 인증샷 많이 찍었다고.
우리 조카가 자랑 자랑을 하던데?"
"아, 네."
"장가는? 결혼은."
"아직요. 가야죠."
"더 늦기 전에 가야지. 내일 모레면 마흔인데.. 하연이는 벌써 애가 둘인데."
"하연이가 스물일곱에 시집 갔죠?"
"그래."
가족들 모이는 자리가 싫다. 이런 자리는 피하기 바빴는데. 하필이면 오랜만에 집에 들린 날에 작은 아버지가 있다니.
바쁘다는 핑계로 먼저 자리를 뜬 재욱은 나오자마자 차에 기대어 담배를 핀다.
"그놈에 결혼.. 지겨워 죽겠네."
카페 앞에서 그 일이 있고나서 그 다음 날..
석류가 먼저 재욱에게 연락을 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던 재욱은 그래도 석류의 부름에
군말 없이 석류를 데리러 학교 앞까지 가주었고, 차에 탄 둘은 한마디도 없다.
재욱의 집에 도착해 석류는 식탁 의자에.. 재욱은 옷을 갈아입으로 방으로 들어간다.
이 뻘쭘하고 어색한 상황이 처음이라 석류는 짜증이 나면서도 긴장을 한 채, 한숨을 내쉬고선 재욱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저녁 먹었어?"
"대충 먹었어요. 아저씨는요."
"속이 별로라, 안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아."
원래 같았으면 왜 속이 안 좋냐며 약을 찾아주기 바빴을 텐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또 싸우게 될 것 같아서 말을 아끼게 되었다.
"그때 하던 얘기는 마저 해야 될 것 같아서요."
"……."
"자려고 만나냐고 한 건 제가 너무 무례했어요. 아저씨 피곤한 거 이해 못 해준 것도 미안하구요."
"……."
"내가 제일 화가 났던 건.. 그 상황에 또 그 여자가 있는 게 너무 싫어서 그런 거예요.
그 여자랑 그냥 안 만나면 안 돼요? 아무리 카페 일로 도와주는 게 많다고 해도.. 너무 신경 쓰이고, 안 좋은 생각까지 하게 된단 말이에요."
"네 뜻 잘 알겠어. 근데."
"……"
"사적으로 다른 문제로 만난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만난 거잖아.
그 친구 덕분에 매출도 많이 오르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들도 꽤 많이 늘고있어. 다른 것도 아니고 일 문제인데,
석류 네가 조금만 더 이해를 해주면 안 될까."
"이해 해주고 싶어요."
"……."
"근데 싫다구요."
이게 뭐라고 또 짜증을 내게 되었다. 석류가 조금 인상을 쓴 채로 재욱을 올려다보았고, 재욱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인데도 그것도 싫어?"
"싫다구요.."
"그럼 난 너랑 만나는 동안에는 사업하면서 여자들은 만나면 안 돼?"
"……."
"일을 하게 되면 남녀 안 가리고 만남이 있어야 해.그냥 일이 아니고 개인 사업이면 더."
"내가 없을 때, 만나도 되는 거잖아. 항상 내가 볼 때 보이니까 그러죠."
"그건 무슨 또 뚱딴지 같은 소리야.."
"나 아저씨랑 싸우기 싫어요. 왜 자꾸 공격하듯이 말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리 이 얘기는 하지 말아야 돼."
"그럼 어떡해요."
"서로 의견이 하나도 맞지가 않잖아, 지금."
"왜 화를 내요."
"하.."
"왜요. 말이 하나도 안 통해서 답답해요? 내가 너무 어려서 이런가 싶고 그렇죠."
"말이 안 통하는 거랑, 나이랑은 상관없어. 그냥 사람 생각 차이일 뿐이지."
"그렇게 보였어요."
"자꾸 네가 그렇게 보였다고 해서 생각한대로, 보이는대로 바로 내뱉지 마."
"그럼 난 내 생각 말하지도 못해요?"
"생각을 하고 말을 하라고."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요."
"안 그럼 우린 계속 쓸데없는 말다툼이나 하게 될 거니까."
"아저씨가 한 번은 져줘도 되잖아요."
"난 계속 너한테 져주기만 하면 돼?"
"계속? 아저씨가 나한테 계속 져줬어요? 나 아저씨가 가끔가다 욱해서 짜증 내는 것도 보면서 티 안냈어."
재욱이 할말은 많지만 더 말하면 큰 싸움이 될 것 같은지 입을 꾹 닫았다.
그냥 내가 조용히하면 상황이 끝나겠지 싶어서였다. 하지만..
"근데 아저씨는 오히려 나한테 더 짜증내고, 대답만 예쁘게 해주면 되는 걸 한마디 더 얹혀서 말하니까 나는 기분 나쁘잖아요."
"그만해."
"뭘 그만해요. 아직 할 말 남았는데."
"그만하라고."
"…싫어요."
"김석류."
"왜요. 화 내게요?"
"진짜 넌.."
"……."
"이럴 때 보면 나랑 참 안 맞는다."
"그럼 헤어지고 싶겠네요."
"……."
"헤어지던가요."
"그러던가, 그럼."
하나 느낀 건... 우리 정말 바닥까지 왔구나.. 였다.
석류가 '그래요'하고 화난듯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겨 그냥 나가버리자, 재욱은 답답한듯 한숨을 크게 내쉬고선 담배를 찾는다.
/점심/
'선물 받는 분 나이대가 어떻게 되나요?'
'스물넷이요.'
'음.. 요즘 이십대 초중반 여성분들이 많이 보는 제품이.. 이거예요.
달 모양이고, 눈에 많이 띌 것 같지만 많이 띄지 않는..'
'네, 이걸로 주세요. 잘 어울리겠네.'
'다른 제품은 안 보시겠어요?'
'네. 대충 봤는데 이게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얼마인가요?'
'아, 이건.. 62만원이에요.'
'아, 네 주세요.'
가격 따위 신경쓰지않고, 석류에게 잘 어울릴 목걸이를 사들고 가버린 재욱에
직원 두명은 '오 뭐야..'하며 서로 부러워하기 바쁘다.
예쁜 상자는 석류가 부담스러워 할 테니까. 검은 케이스에 담긴 목걸이를 보던 재욱은 주머니 속에 넣고선 기분이 좋은지 휘파람을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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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뭔가 느낌이 온다.
마지막화까지 2화 정도 남은 것 같애;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