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우리의 FM |
[현성] 우리의 FM
W. 담녀
11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한 우현은 잠을 못 자 무거워진 눈꺼풀을 겨우 뜨곤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는 창문을 바라봤다. 점점 여름이 다가오면서 짧아진 밤에 새벽6시 부터 해가 떴지만 그 보다는 좀 더 강렬한 느낌에 그저 오후 때가 다 됐구나, 하고 짐작을 할 뿐이었다. 한참을 햇빛이 쏟아지는 창문을 바라보던 우현은 눈을 몇 번 끔벅거리고는 몸을 일으켜 시간을 확인했다. 9시 30분. 징하게도 많이 잤네.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인 우현은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원래 새벽에 늦게 깨어있으면 배가 고프다고 하는 데 복잡한 머리를 갖고 끙끙 대다보니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늦은 아침인 김에 점심때가 될 때까지 그런 상황이면 좋으련만. 꼬르륵. 자꾸만 울려대는 배에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배를 슥슥 쓰다듬은 우현이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저번에 먹던 쌈 채소에 김치에 어머니가 보내주신 각종 나물 무침에…….
"…죄다 풀이네."
파릇파릇한 제 냉장고 속을 보고는 한숨을 내쉰 우현이 며칠 전 명수가 달랑달랑 들고 왔다가 깜박하고 놓고 간 식빵으로 눈길을 옮겼다. 평소 빵 종류를 그다지 즐겨먹지 않는 우현에게 공짜로 생긴 먹음직스러운 식빵은 그저 휑한 부엌의 장식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아침식사를 거창하게 해먹기도 뭐하고, 당장 찌개를 끓일 사정도 안 된다. 제 상황을 파악한 우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냉장고에 간신히 남아있던 계란들 중 한 개와 식빵 크기에 맞을 만한 채소들을 꺼내고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아침부터 토스트라니."
은근 한국적인 입맛으로 매 식사에 꼭 밥을 챙겨먹었던 우현에게 오늘의 아침은 정말 곤란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쩌겠어. 먹고 살아야 되는데……. 입을 삐죽 내민 우현은 곧 능숙하게 가스 불을 켜고 올려놓은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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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과의 약간은 섭섭한 전화 통화를 끝내고 우울한 마음에 빨리 잠을 청했던 성규는 개운한 몸으로 잠에서 깼다. 하지만 아직 개운하기는커녕 무겁기 만한 머리에 말똥하게 뜨여진 눈을 다시 감았다. 그깟 전화가 뭐라고. 한심하게 구는 자신을 속으로 구박한 성규는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어제의 우현과의 전화를 재생시켰다.
'아, 그게, 오늘 조금 일이 있어서요.'
'그냥, 옛날 여자 친구 결혼식에 갔다 와서, 조금 마음이 싱숭생숭한가봐요.'
옛 여자 친구라……. 우현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갈 수 있었던 터라 가끔 그녀에 대해서도 말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락처도 모른 다는 우현의 말에 깊게는 알려고 하지 말라는 뉘앙스가 섞여있었기에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제가 수년간 (호원의 눈치를 보며)쌓아온 직감으로는 둘은 그렇게 좋은 상황에서 헤어지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만약 아직까지 미련이 있다면 그 것을 가진 쪽은 우현이라는 것도 너무 뻔히 보였다.
아직 난 끼어들 자리가 없는 건가. 갑자기 싸해진 가슴 한켠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제 몸을 더움 이불 속으로 파묻은 성규는 다시 우울해 지는 기분에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계속 저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우현과 관련된 생각들에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성규는 한껏 신경질을 내며 침대에서 몸부림을 쳤다.
"남우현, 이 나쁜 놈."
아직도 씩씩 거리며 저 혼자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중얼거린 성규가 별안간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옷장에서 속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씨, 열도 받는 데 오랜만에 거업나 일찍 출근해서 일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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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
"…에휴,"
"……."
"으ㅎ,"
"한번만 더 한 숨 쉬면 입을 아예 꿰매버린다."
이게 진짜, 친구가 고민을 하고 있는 데 위로는 못해줄 망정. 명수의 살벌한 말에 눈을 흘긴 우현은 계속 답답하기만 한 마음에 소파에 누워 온몸을 휘적거리며 으아악!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런 우현을 잠시 매섭게 노려보던 명수가 손에 들고 있던 사진집을 탁, 하고 신경질 적으로 앞에 놓인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저 망할 나무가 왜 나 한테 와서 또 꼬장이야. 짜증난다는 듯 한숨을 쉰 명수는 아직도 소파에 널브러져있는 우현을 바라보았다. 저번처럼 우울함을 온몸에서 풍기고 있으면 걱정해줄 맛이라도 나겠구만, 무슨 일인지 말을 해주지도 않고 저 혼자 몸부림을 치며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 점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말고 후딱 말해."
"아, 그게, 에휴……."
"아오, 한숨 쉬지 말라고!!! 앞에 있는 사람은 니 입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로 같이 갑갑해 죽겠거든?!"
"야!! 이게 얼마나 된다고 잘하지도 못하는 과학얘기를 들먹거리면서 승질이야?!"
"뭐?! 너 지금 내 학창시절을 무시하는 거임?! 그리고 니가 지금 큰소리 낼 군번이야?!!"
"군~번~? 군~번~? 얼씨구 군대 면제되신 분이 제대한 사람 앞에서 군대얘기야?!"
"닥쳐!!! 너 이따 구로 혼자 끙끙 앓을 걱정거리 잔뜩 들고 말하지도 않을 거면서 내 작업실에 오랬어, 오지 말랬어?!"
"그거야 당연히! …오지 말랬지……."
"얼씨구?! 기억하면서 잘도 기어들어 오셨겠다? 주거 침입죄로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당장 말해!! 또 무슨 일이야?!"
주, 주거 침입죄라니……. 친구 작업실에도 멋대로 못 오나……. 명수의 말에 혼자 조그맣게 반항의 목소리를 낸 우현은 슬슬 명수의 눈치를 보며 잔뜩 흐트러져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사실, 저 말들이 그저 말로만 하는 협박인 것도, 모두 자신이 걱정돼서 하는 말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편하게 기댈 사람이 세상에서 명수 한사람 밖에 없다보니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어린 아이 같은 생떼를 부리게 되었다. 명수 역시 그런 우현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며칠이 지나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게 뻔하다보니 일부러 더 오버해서는 화를 냈던 것이다.
여전히 저를 매섭게 쳐다보며 눈빛으로 재촉하는 명수에 우현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 그러니까…….
"하연이 결혼식 갔을 때……."
"왜, 여전히 좋아서 손잡고 도망치고 싶어지디?"
"아씨, 아니거든?! 존나 쿨하게 보내주고 왔거든?!"
"어, 그래 그렇다고 치자."
아옼! 아니라고! 어, 알았어. 그러니까 이어서 말해. 순간 제 앞 테이블 위에 있는 탁상시계를 잘난 명수의 얼굴에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은 우현은 입술을 쭉, 내밀고는 퉁명스럽게 툴툴 거렸다.
"어쨌든, 가서 하연이 보기 전까지는 솔직히 많이 흔들렸다? 막, 가슴도 답답하고, 당장 거기서 나오고 싶고. 근데, 그래도 하연이 부탁이니까, 하고 좀 느지막하게 신부대기실 가서 인사를 했어. 그리고 잠깐 얼굴보고 나오려는 데 하연이가 그러더라. 미안하고 고맙다고."
"……."
"막 손까지 잡고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
"……."
"…엄청 편해졌어."
"…그게 고민? 겁나 잘 된 거네."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 뭐야, 그 뒤가 문제야? 지겹다는 둥, 사내새끼가 무슨 걱정이 이렇게 많냐는 둥, 중얼중얼 불만을 토하는 명수였지만 진지한 우현의 얼굴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때…….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는 거야."
"…목소리? 얼굴이 아니고?"
"응. 목소리. 내가 그 사람 목소리 밖에 모르거든."
"설마……. 그 균가 귱인가 하는 그 라디오…?"
"아오! 아냐! 잠깐 의심한 적은 있지만……. 아, 하여튼! 아니야!"
어, 그래. 존나 서론만 긴 한국산 나무님, 마저 이야기 하시지요. 자꾸만 흐름을 끊는 명수에 밉지 않게 눈을 흘기던 우현은 에효, 하고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조금 더 명수에게 몸을 기울였다.
"뭐, 우연하게 알게 됐는데, 목소리밖에 몰라. 근데 그 사람 목소리가 자꾸 듣고 싶고, 하는 거야. 근데 마침 그 사람한테 전화가 왔어. 그래서 전화를 받았는데 막, 기분이 좋아지고……. 아, 하여튼. 막 느낌이 이상해서 좀 내가 멍하니 있었다? 그러는 데 상대방이 되게 아쉬운 목소리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면서 전화를 먼저 끊어버렸어."
"……."
"근데, 막, 아쉬워지고……. 목소리가 더 듣고 싶고……."
"…내가 노래하나 추천해 줄게."
"뭔 뜬금없이 노래야."
"내가 작사 작곡함.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나무는 남우현이다.'"
"뭐, 임마?"
"큼, 세상에 멍청이 딱 한 명 있데~ 두비두밥~ 사실은 나무라며? 두비두밥~"
개새……. 썩은 표정으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명수를 노려보던 우현은 제 옆에 놓여있던 쿠션을 집어 들어 명수의 얼굴에 있는 힘껏 던졌다. 에라이,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지만 그런 우현의 분노에 찬 공격에도 꿋꿋이 일절을 완창한 명수는 제 얼굴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쿠션을 집어 다시 우현에게 던졌다.
"악!!! 야!!!"
"쯧쯧, 멍청한 놈아. 넌 어떻게 니 감정을 그렇게도 모르냐?"
"뭐?"
"좋아하는 거잖아. 너 하연이 좋아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나한테 상담 받았던 건 기억도 안 나지? 하긴 저 숙맥이 뭘 알겠어."
쯧쯧, 하고 계속 혀를 차는 명수에 잠깐 욱한 우현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봤다. 성규와 전화를 할 때마다 떨리고, 더 목소리를 듣고 싶고……. 정말 좋아하는 건가? 근데, 상대방은 남자인데…? 딱히 동성애에 대해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막상 제 앞에 다가오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 감정이외에는 어느 것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상황에 우현은 다시 혼란 속에 빠지고 말았다.
멍하니 저 혼자 생각하다가 멘붕상태에 빠져버린 우현을 가만히 바라보던 명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주위에 무관심하면서 유한 성격 때문인지 어떤 상황이 닥쳐도 쉽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던 우현이었다. 그런 우현이 저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깊게 생각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뜻했다. 신중해야 하는 거라……. 손으로 턱을 괴고는 우현을 따라 한참을 생각하던 명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남자를 좋아하나? 나처럼?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지워버렸다. 최근에 우현이 관심을 가지는 남자를 찾기도 힘들었거니와, 저 준 히키코모리와 같은 성격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남우현, 딱 한마디만 할게."
"…어."
"옛날부터 사람의 이름에는 힘이 들어있다고 했어."
이름? 갑작스럽게 꺼내어진 명수의 말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띤 우현이 고개를 들어 명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이름을 갖기 위해서 작명소에 찾아가 이름을 짓기도 하고, 커서 개명을 하기도 해."
"……."
"그리고, 어떤 시인은 자신의 시에 이런 말을 쓰기도 했어."
"……."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 꽃이 되었다.'"
"아……."
"니가 지금 무슨 이유로 네 감정에 대해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까지 혼란스럽다면 한번 상대방에게 부탁해봐. …이름을 불러달라고."
"…여태껏 불러왔는데?"
"존댓말 말고, 반말. 딱 보니까 네 성격상 나이를 알아도 쉽게 말을 놓지는 않았을 거고, 그런 너의 마음에 들 정도면……. 상대방도 쉽게 말을 놓는 타입은 아닐 것 같은데."
…도사 김명수세요? 팍팍? 혼자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한 우현이 피식,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고는 여전히 저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명수와 눈을 맞췄다.
"존댓말과 반말은 달라. 앞이 누구나 처음 만난 사람과 할 수 있는 거면, 뒤는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거지. 그리고 넌 특히 그 울타리의 범위가 좁아. 그런 상태에서 상대방의 반말을 듣는다? 게다가 너의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을?"
"……."
"그때 여태껏 너를 헷갈리게 했던 감정보다 더 큰 감정을 느낀다면,"
"……."
"넌 게임오버. 그게 사랑이야."
아……. 우현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명수의 작업실에서 나와 집으로 와서는 버릇처럼 라디오를 들은 우현은 사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것처럼 느꼈다. 제가 어떻게 집에 찾아왔는지, 오늘은 라디오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머릿속에서는 명수의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라고? 그것도……. 반, 말로?
침대에 누워서 성규의 핸드폰을 계속 바라보던 우현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니, 언제 전화를 할지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결심하고 말 하냐고……. 울상을 지은 우현은 옆에 핸드폰을 놓고는 등을 돌려 옆으로 누웠다. 머리가 안 좋고 고지식하면 몸이 고생을 하는 구나……. 갑자기 제 자신이 한심해진 우현은 주먹을 들어 제 머리를 아프지 않게 콩, 하고 때렸다.
"이놈의 머리가 문제야, 문제. 자꾸 텅텅 비기만 하고. 가끔은, 뭐야,"
지이잉-
"그래, 지이잉하고 울리,…?"
갑작스레 들려오는 진동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킨 우현은 제 옆에서 우렁차게 울리고 있는 성규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버릇처럼 핸드폰을 잡아 빠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 보세요?"
'아, 우현씨. 저 김성규에요.'
"아, 네. 성규씨."
'어제……. 기분 안 좋으셨던 거는 괜찮아 지셨어요?'
"네? 아……. 아, 네. 멀쩡해요."
아, 다행이다. 조심스럽던 성규의 목소리가 가볍게 변했다. 그런 작은 변화에 덩달아 웃음을 지은 우현은 좀 헐렁하게 잡은 핸드폰을 고쳐 잡았다.
"성규씨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네? 아! 저야 항상 멀쩡하죠!'
"음, 오늘은 그 무서우신 상사께 안 혼났나 보네요?"
어, 그건 아니죠. 오늘도 얼마나 깨졌는데요. 아니, 오늘은 한 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조잘조잘. 마치 유치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보고하듯 자신의 말을 늘어놓는 성규에 우현은 오늘도 가볍게 웃으며 같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느새 명수가 했던 말들은 잊어버린 후였다. 항상 상대방까지 즐겁게 해주는 성규의 목소리에 표정을 찌푸릴 일이 없었다.
'-그래가지고서 오늘도 얼마나 열받았, 어? 아, 잠시 만요, 우현씨. 친구가 갑자기 불러서.'
"아, 네. 편하게 대화하세요."
아, 그럼. 전화를 끊지는 않고 자신의 친구-이름은 동우 인 듯 했다.-를 부르며 나간 성규에 우현은 잠깐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들고 있는 핸드폰에서 아무소리도 나오지 않는 다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밀려오는 뻘줌함에 머리를 살짝 긁적인 우현은 살짝 고파져오는 배를 문지르며 부엌으로 향했다. 정신이 없었던 탓에 미쳐 마트에 들리지 못했더니 텅 빈 부엌의 상황은 아침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바보. 한숨을 내쉰 우현이 아침에 쓰고는 한 쪽으로 치워놓은 토스트기를 끌어당겼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어깨와 얼굴사이에 끼어놓고는 전기콘센트를 꽂아 빵이 구워지도록 하고는 냉장고에서 계란과 나머지 재료들을 꺼내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근데, 내가 뭣 때문에 정신을 놓고 있었지?
빠르게 손을 놀려 빵 사이에 끼워 넣을 것들을 만들 던 우현의 손이 크게 움찔하고는 멈춰 섰다.
"반말……."
'이름은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어.'
얄밉게 제 머릿속에서 계속 조잘대고 있는 명수의 목소리에 머리를 헝클어뜨린 우현이 울상인 표정으로 완성된 토스트를 접시위에 올려놓고는 주변을 정리했다. 아,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무슨 핑계로 반말을 시켜봐?! 삐죽 내민 입술을 하고는 툴툴거리며 명수를 욕하던 우현이 신경질적으로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여보세요? 우현씨?'
"여, 여보세요?"
아, 아직 안 끊으셨구나. 죄송해요. 친구가 리포트 쓰는 것 좀 도와달라고 해서……. 아, 아니에요! 급한 일이 먼저죠. 마치 성규가 앞에 있는 듯 크게 손을 휘저으며 말한 우현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우현에 이상하게도 성규는 바로 말을 잊지 못했다. 그런 성규가 이상했던 우현은 성규씨? 하고 계속 되물었다.
"성규씨?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그게 아니라……. 사실, 친구 일이 좀 많이 남아서 전화를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서요…….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음에 다시 전화하면 되죠."
'그래도…….'
"…음……. 그렇게 미안하면, 나 소원하나만 들어줄래요?"
소원이요? 갑작스러운 우현의 말에 당황한 성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우현도 툭 하고 말을 던져놓고는 당황해서 눈을 도르륵 굴리고만 있었다. 아, 내가 뭐하자고 이런 말을 꺼낸 거야……. 또 다시 자신을 자책하던 우현은 괜찮다며 말해보라고 하는 성규에 결심을 한 듯 무릎에 놓여있는 주먹을 꽉 쥐고는 입을 열었다.
"어, 저……. 바, 반말로 제 이름 좀! 불러 주실래요...?"
'…아?'
"그, 그냥 갑자기 듣고 싶어서요. 저보다 형이시잖아요. 그-은데 계속 존댓말을 하시 길래……."
'아, 어, 근데 저 반말 잘 못해요…….'
"괜찮아요! 그냥 한번 듣고 싶어서 그런거에요."
아, 그, 그럼……. 간절한 듯 말하는 우현의 목소리에 잠깐 고민을 하던 성규는 이내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그런 성규에 더욱 긴장을 하던 우현은 꽉 주먹을 쥔 손에 땀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 우현아.'
"……."
'어, 우현아. 듣고 있니? 괜찮아?'
"네……. 저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고. 와, 반말 되게 어색하다. 하하. 작게 웃는 성규의 목소리에 이미 손에 힘이 풀려서는 멍하니 앞만을 바라보고 있던 우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두근두근.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하연을 처음 봤을 때도 이렇게 까지 두근거리지는 않았는데.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쥐고 있지 않은 손을 가슴에 대고는 계속해서 뛰고 있는 심장을 느껴보았다.
"고마워요, 부탁 들어줘서."
'아, 아니에요. 소원인데 당연히 해야죠.'
짧은 시간에 금세 존댓말로 돌아온 성규에 작게 웃음을 지은 우현이 아직 많이 남은 토스트를 랩으로 싸서는 냉장고에 넣었다. 조금 전 만해도 미친 듯이 고파왔던 배가 꽉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아, 지금 급한 일 있는 거죠?"
'그…렇죠.'
"시간이 좀 늦었네요. 열심히 친구 분이랑 일하시고, 일찍 자요."
'아, 네.'
"그럼, 잘 자요, 성규형."
성규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손끝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바로 전화를 끊은 우현이 가벼운 발걸음을 제 방으로 옮겼다.
오늘로서 제 감정이 확실해졌다는 것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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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끊어진 전화를 멍하니 귀에 대고 있던 성규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갑자기 반말을 해달라고 해서 했더니, 돌아오는 게…….
'잘 자요, 성규형.'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성규는 재빨리 수화기를 내려놓고 열이 오른 얼굴에 부채질을 해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분명 상대방은 자신이 저를 좋아하는지 모르고 한 행동이겠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에 낮은 웃음까지. 아주그냥 심장어택을 제대로 받아버렸다. 손을 머리에 올리고는 멘붕자세를 취하며 바닥에 주저 않은 성규는 자꾸만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고개를 휘휘, 저어가며 머릿속에 맴도는 목소리를 지워내려 했다.
"그냥 호기심이었을 거야. 그니까, 괜한 기대 갖지 말자……."
그래. 마음은 좀 쓰리지만, 빨리 동우 리포트나 도와주고 자야지. 성규가 혼자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음, 빨리 리포트 좀 도와주고 씻고서 자야겠다. 오늘 잘 자야, 내일…….
'열심히 친구 분이랑 일하시고, 일찍 자요. 그럼,'
"아……."
'잘 자요, 성규형.'
"…으아, 씨발!!!"
갑자기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얼굴이 빨갛게 된 성규는 잡은 문고리를 놓치며 머리를 감싸 안고 소리를 질렀다. 떨쳐내려 해도 잘 안 되는 우현의 목소리에 절망한 성규는 급하게 자신을 찾으러 온 동우가 제 몸을 흔들며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를 칠 때까지 그 상태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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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영화를 모티브로 한 팬픽입니다:)
안녕, 그대들? 담녀에요.
오랜만에 야자를 안하고 집에 온김에 11화를 올려요ㅎㅎ
이제 우현이도 자기 감정을 알았으니까, 행쇼! 만 남았지요?
하지만 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 편하게 만나게 해주지 않을 거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현성행쇼는 약속하지요!ㅎㅎㅎㅎㅎㅎㅎ
이제 한 편만 남았네요. 아쉬워라ㅠㅠㅠㅠ
그런 의미에서 혹시, '우리의FM'에 대해서나 (저에 대해서나) 궁금한거 있어요?
만약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마지막 화 끝나고 Q&A 하고, 아니면, 저 혼자 짧게 후기 올리고 끝내고...허허...
암호닉 |
콩/강냉이/새우깡/모카/삼동이/우유/텐더/미옹/사인/써니텐/감성/빙구레/단비/레몬/이노미/몽림 케헹/키요/내사랑 울보 동우/규밍/꿀꿀이/샐러드/사랑해/봄/샌드위치/야호/모모/노랑규
그대들,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