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마지막 시즌입니다. 아직 시즌 1을 안보셨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 시즌 1을 먼저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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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hmello(마시멜로), Anne-Marie(앤 마리)-FRIENDS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후회로 남았다.
그때 그 아이를 못 본 체 했더라면.
그때 그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삶을 포기했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텐데..
#56 연기
아가에게 부탁했던 연기는 아주 간단했다. 최승철 대신 순영이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거. 근데 아가가 곧 죽어도 거짓말은 못 하겠는지 자꾸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영혼 없이 내뱉는다. 그게 귀여운 한 편으론 불안했다. 이런 식이면 죽도 밥도 안 되는데... 지금도 그렇다.
"...최승철. 나. 다른 남자. 생겼어."
"와, 연기 진짜 꾸준히 못하신다.."
"하.. 나 무서운 척 연기하는 것도 진짜 못하더라고."
"아니 대사가, 딱 마녀님이잖아요. 이걸 내가 어떻게 해요?!"
"그럼 아가 말대로 바꿔서 해봐."
"그냥 전화 오면 알아서 할게요. 대충 다른 남자 생겼다고만 말하면 되는 거죠?"
"응응! 스피커폰으로 하자!"
"...예.."
"이제 곧 연락이 올 거야. 사실 지금도 엄청 늦은 거긴 해."
그렇지. 전화가 너무 늦긴 하지. 이러다 집으로 직접 찾으러 오는 거 아니야? 지가 갈증 조절 못해서 아가 위험하게 만들어 놓고 낯짝도 두껍게 찾아온다면 나도 좋은 말은 안 나갈 것 같은데. 나의 불안함을 눈치 챘는지 내 어깨를 감싸 토닥여주는 순영이다. 제발... 전화로 와라. 폰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귀신 같이 폰이 울렸다. 세상에! 기쁜 마음에 핸드폰을 들어서 아가에게 건네주니 아가가 내 쪽으로 다시 밀었다. 어어? 이제 와서 안 하면 곤란하지.
"좀비 죽여?"
"아니, 뭐, 네 놈 여자는 내가 데리고 있다. 바꿔줄 테니 통화 해 봐라. 뭐 이딴 말없이 대뜸 내가 받아요?"
"...역시."
크으, 우리 아가 똑 부러지네. 엄지를 치켜세워주는 칭찬을 해주고 전화를 받아 스피커폰을 눌렀다. 동시에 여우 목소리가 들렸다.
'감당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지.'
이 여우가, 또 심기를 거스르네? 괜히 아가 앞에서 험한 말을 할 것 같아 순영이를 툭 쳤다. 알아들었는지 순영이가 말했다.
"자신 있으니까 최승철이나 바꿔."
'위아래 없는 건 지옥에서나 하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빨리 바꾸기나 해."
'전부를 앗아가 놓고 제 정신이길 바라? 염치도 버릇도 없이 건방지게.'
전원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네가 먼저 자극을 했으니 감당도 네가 할 몫이겠지. 흘러가는 분위기상 순영이가 전원우를 말로 이길 순 없을 것 같았다. 전원우 쪽으로 기세가 넘어가면 아가가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아가의 입부터 막아야했다. 무엇으로? 일단 더 말하려는 순영이를 막아서고 칼을 능력으로 가져왔다. 내가 가장 잘 연습했던 거니 세심하게 조절이 가능한 칼이 그나마 낫다고 판단되었다. 화가 나 참을 수 없으면서도 내 마지막 이성의 끈을 다잡으며 칼등 쪽을 아가의 목에 댔다. 하... 그래도 이번엔 꽤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원우 이 새끼때문에 결국 나쁜 사람이 되는구나.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머리를 쓸어넘겨 혹시 아가가 다치진 않았을까 확인을 하곤 말했다.
"되바라진 원우야. 악역 자처한 김에 살인사건 한 번 내볼까?"
'오만한 마녀야. 악역을 자처했더라도 적어도 그쪽, 이번엔 우리 인간 절대 못 죽여."
"......"
'처음 인간 본 날 놀랐지? 왜 최승철이 이번에 이렇게까지 그 아이에게 목매는 건데. 절대 모르지 않잖아.'
"......"
'최승철 정신 차리는 대로 그 아이 데리러 갈 거니까 기다려. 걔한테 잘 보이는 게 좋을 거야. 걔 한마디에 너희들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
'인간 조금만 기다려!♡'
거북한 말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우선 칼부터 아가의 목에서 치웠다. 칼 손잡이를 잡아 아무 곳에나 던져버렸다. 분개했지만 그의 말에 틀린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만하다는 표현마저 맞았다. 완벽한 내 패배였다. 자꾸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전부를 앗아가 놓고 제 정신이길 바라냐고? 건방진 게 누군데. 시작은 너였어, 최승철. 너만 없었어도 이따위 지독한 인연 만들 필요 없었다고. 머리가 아파온다. 하... 짜증나. 우선은 아가가 중요했다. 이왕 아픈 거 이마를 짚고 능력을 써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혹시 모르니까 아가 살펴보고 조금 쉬어야겠다. 후... 표정관리하자. 고개를 숙이고 입꼬리를 한 번 올려본 다음에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긴 후 아가 옆으로 가 앉았다. 혹여나 다쳤을까 조심스럽게 확인해보니 전혀 다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그 화나는 와중에 조절 잘 했네."
"잘했어, 야옹아. 후회 없는 게 중요한 거 알잖아."
"응.. 피곤하다. 쉴래."
자리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핑 돌았다. 잠깐 균형을 잃어서 누군가가 잡아줬지만 쳐냈다.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나쁜 말 나갈지도 몰라. 괜히 다른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필요는 없었다. 아... 나 들어가면 아가 혼자겠다. 아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널 위해서 난 버티는 거야. 아까 그 일 때문에 겁을 먹은 듯 눈을 피하는 아가에게 말했다.
"아가 너는 내 방에서 자. 갈아입을 옷은 옷장에 많을 거야. 알아서 입고 싶은 옷으로 갈아입어."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아, 순영이 방으로 가야겠다. 계속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 들어 넘어지지 않으려 천천히 걷는 도중 아가가 나를 불렀다. 멈춰 서서 아가를 돌아보았다.
"왜, 위협할 거면서, 칼등으로 겨눈 거예요..?"
"후회 없는 게 중요하니까."
후회 없는 게 중요한데, 난 항상 후회할 짓만 해.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후회로 남았다. 그때 죽은 어미 곁에서 떠나가라 울던 너를 못 본 채 했더라면, 너를 죽인 최승철에게 복수하려 순영이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아기 늑대가 나 때문에 죽었을 때 그냥 나도 따라 죽었더라면, 후회로 얼룩져 절망뿐인 내가 없었을 텐데.
#57 아가는 포기를 몰라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저런 후회 중인데 문이 열리고 순영이가 들어왔다. 그대로 문을 닫고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은 순영이가 말했다.
"무슨 생각 중이야?"
"후회 중이었어. 왜 아가를 만났을까, 왜 너를 찾아갔을까... 뭐 이런 저런."
"너는 그게 후회구나."
"응?"
"난 네가 날 찾아왔던 그 날이 너무 좋은데, 넌 그게 후회였구나..."
"아..."
"00야. 나는, 네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쓰고 버려져도 좋은데, 나와 함께했던 날이 후회스럽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
"......"
"아, 미안. 너 힘들 텐데 너무 애처럼 말했다. 내가 이렇게 어른스럽지 못해서 우리 야옹이가 날 자꾸 애처럼 보나."
"아닌데. 너 애처럼 안 보는데."
그냥,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꼬물꼬물 기어가 순영이 다리에 머리를 베고 누워 그대로 순영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머리를 천천히 쓸어주는 순영이가 나긋하게 말했다.
"난 무조건 네 편이야. 네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도 그게 다 맞아."
"흠, 순영이는 귀여워."
"안 귀엽거든?"
"다 맞다며~ 거짓말쟁이네~"
"아, 이거랑은 다른 거지!"
"흐흫 귀여워. 우리 순영이 너무 귀여워."
허리를 감았던 팔을 풀러 순영이 양 볼을 감쌌다. 말랑말랑한 순영이 볼을 만지며 놀고 있는데 밖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뭔 일이야. 빠르게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잔뜩 굳어있는 아가와 찬이가 보였다. 흐음~? 무슨 일일까. 일단 재료선반에 있던 빈병이 깨져있었다. 명호를 슬쩍 바라보니 알아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다 정리를 시작했다. 그것이 아이들 사이의 땡이 됐는지 둘이 동시에 말했다.
"아니, 전 그냥 신기해서 보려고만 한 건데!"
"마녀님이 만지지 말라고 한 건데 자꾸 선반 재료들을 만져서요..!"
하, 짜증날 정도로 귀엽네, 우리 애기들. 나오는 웃음을 흘리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곧 아이들이 나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또 나는 거였다. 그런 우리를 빤히 보던 준휘가 겁을 줬다.
"마녀가 실성했네. 너희 이제 죽었다."
"아! 잘못했어요!"
"마녀님 저 청소랑 빨래 더 열심히 할게요!"
"쓰읍 문준휘. 애들 놀리지 마. 이거 만지지 말라고 한 건, 몇 개는 위험해서 만지지 말라고 한 거야."
"위험해요? 왜요?"
"음, 애기들이 잡기엔 다소 위험한 것들이 있지. 다른 종족의 물건이라."
"아... 그렇구나. 이건 뭔데요? 색이 예뻐요."
"요정가루인데, 잘못해서 눈에 들어가면 바로 실명이야. 그러니까 만지면 되겠어, 안되겠어?"
"아... 그런 식으로 위험한 거구나. 세상에나. 그럼 다른 재료는 어디다 보관해요? 예를 들어 짚 인형이라던가..."
"아, 그건 준휘 방... 아가 너, 음흉해~"
"아, 들켰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쪽으로 아가가 다가왔다. 나한테 오다니! 조금만 더 오면 아예 나란히 서는 거였는데 눈치 없이 폰이 울린다. 난 진짜 전화랑 안 맞아. 그냥 해지시켜 버릴까. 극단적인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 확인했다. 홍지수...? 홍지수가 전화를 한다고? 의아하지만 새로워서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야, 네가 전화를 다하고?"
'어... 언니. 전데요...'
아, 아기늑대였구나. 아... 맞다. 아기늑대한테 전화했어야 했는데... 어물쩍 넘어가야겠다.
"아! 아기늑대였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소문이 생각보다 늦네... 벌써 아가는 여기 온 지 음... 3시간이나 지났는데!"
'.....왜, 그러셨어요?'
"얘기하자면 긴데. 들어보니까 지금 최승철 갈증이 절정이라며. 걔네 집보다 우리 집이 훠어어얼씬 안전하다는 판단 하에 납치해왔어."
'네...?'
"걱정 마, 걱정 마! 아주 지네 집이야. 지금 구경한다고 내 재료선반 앞에서 이건 뭐냐, 저건 뭐냐 묻고 있단다. 정 걱정되면 바꿔줄까?"
'아... 아니에요. 언니,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안 그래도 발바닥 다쳐서 찬이가 치료해줬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밖으로 나갔다. 혹시라도 많이 걱정되면 놀러 와도 된다고 말하는데 아가가 또 음흉한 표정으로 준휘의 방에 접근하고 있었다. 아니, 아가 그거..! 전화를 끊으며 아가에게 다가갔다. 또 아쉽다며 허탈해 하는 아가에게 준휘가 말했다.
"짚 인형 찾는 거면 네가 잡아채기 전에 권순영이 불태워버릴 거야."
"맞아. 나 그럴 땐 잽싼 편이야."
"오, 다신 안 건들겠습니다."
으휴 진짜. 귀여워...!!!
#58 저녁먹자!
인간의 3대 욕구는 흔히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들 하는데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먹고, 자고, 싸고. 이 얼마나 본능에 충실한 일인가. 아무튼 저녁을 먹기 위해 준비 중이다. 도와주겠다고 한 아가는 식탁에 잘 앉혀놓고 그간 갈고 닦은 나의 솜씨를 발휘하기 위해 손부터 풀었다.
"음식이랑 싸우시게요?"
"아가, 내가 이 순간을 위해 400년을 노력했단다."
"...밥 먹기 위해 사시나 보네요."
"안 먹으면 죽잖니?"
"아...!"
"한식? 중식? 양식? 말만 해."
"저는 오랜만에 한식이요!"
"순영아 김장독 묻어둔 거에서 묵은지 한 포기만 가져다줄래?"
"응."
자고로 한식이라 함은 마늘과 김치면 다 되는 것이지. 뭣도 몰랐을 때 내가 마늘이란 마늘은 죄다 최승철한테 던졌었는데 처음엔 효과 좀 있더니 나중엔 그걸 받아먹더랬지. 후... 짜증나는 뱀파이어 녀석. 내가 그 놈 마늘 내성에 한 획을 그었을 거야. 아참, 김치찌개 좋아하나?
"아가 김치찌개 어때?"
"뭔들이죠~"
"내가 기막히게 만들어줄게!"
"네!"
"이게 납치범과 피해자가 할 대화인가."
"문준휘는 가서 시를 하든 화를 하든 해."
"또 옛말 나오지.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시를 읊고 그림을 그려."
"와! 조선시대도 겪으셨겠네요?!"
"조선시대가 뭐니~ 고려도 겪었지~ 아, 고려하니까 생각나네. 전원우가 말 없었니? 걔가 반말하는 이유?"
"오? 몰라요. 뭔데요????"
"같이 고려를 겪었대."
"와... 역시 전여우는 보통이 아니었네요."
"걔가 그래. 말도 안 되는 것 같다가도 묘하게 설득이 돼."
아가도 뭔가 생각할 게 있는지 갑자기 질문이 끊겼다. 마침 순영이가 김치를 가지고 들어오기도 했고 이 틈에 김치찌개에 몰두해서 만들 수 있었다. 아가에게 처음 선보이는 나의 요리인데 실수할 수는 없지.
김치찌개는 사실 금방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 그래서 같이 먹을 밑반찬을 만들려고 했는데, 딱히 없더라... 저번에 준휘가 구워줬던 고기가 조금 남았는데, 그거라도 먹어야 하나.
"삼겹살도 구울까...?"
"오, 좋아요! 저녁은 든든해야죠!"
"그럼 이것도 굽고, 순영, 아니다. 누구 나 좀 도와줄 사람~?"
"제가 다녀올게요. 말씀만 하세요!"
흠, 아가랑 같이 뜯어올까 싶었는데 순간 비닐하우스에 묶어놨을 종족 생각이 났다. 어휴, 큰일이 날 뻔했네.
"아가는 그냥 앉아있어. 음, 명호야! 비닐하우스 가서 쌈채소 좀 뜯어올래?"
"네."
"조심히 다녀와, 명호야. 다치지 말고."
"네. 걱정마세요."
명호가 나가고 다 끓인 김치찌개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숟가락을 아가에게 건네며 맛 좀 봐달라고 뚜껑을 열었다. 아가는 나름 신중하게 맛을 볼 참인지 냄새를 먼저 맡아 보더니 흡족한 듯 끄덕였다. 마른 침을 삼키며 이제 막 떠서 후후 불어 입으로 넣는 아가를 살폈다. 그럼에도 뜨거웠는지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던 아가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대존맛."
"응? 그게 무슨 뜻이야?"
"진짜 너무 맛있어요. 세상에... 김치찌개 마스터세요?"
"앗, 정말? 노력한 보람이 있네~"
"와 빨리 먹고 싶다! 솔직히 이걸로도 한 공기는 그냥 비우겠어요."
히히. 아가한테 인정받으니까 더 좋아.
#59 네가 잘못했네
저녁을 다 먹고 귤도 까먹고 조금 놀고 나니 시간이 애매했다. 다음엔 시간 맞춰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해줘야겠네. 놀 시간이 부족해.
"이제 자자, 아가야."
"아아... 좀 만 더 놀면 안 돼요? 나 궁금한 거 엄청 많은데..."
"어허 일찍 자야 키 커. 씻고 자자."
"성장판 닫힌 지가 언젠데..."
"내일 놀면 되지. 오늘만 날이 아니란다~ 내일 더 놀자!"
"네에..."
"옷 편한 거 많으니까 아무거나 꺼내서 입어도 돼. 진짜야."
"편한 거요...? 다 명품이던데요...?"
"명품은 안 편하다니? 괜찮으니까 갈아입고 자~"
아가를 내 방에 밀어 넣고 나니 나는 갈 곳을 잃었다. 닫힌 내 방문을 빤히 보다가 앞을 보니 순영이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 또 저러면 놀리고 싶은데. 순영이를 살짝 흘기며 말했다.
"소파에서 잘 수 있지? 난 너 방에서 잘래."
"......"
"저런 면을 보면 마녀가 맞는 거지."
"내가 뭐? 나 굉장히 착한 편이야."
"아, 그러시구나..."
"그 반응은 뭐야, 찬아? 나에 대한 도전장인가? 저번엔 최승철 편들더니."
"앗..! 아닙니다!"
"내가 소파에서 잘게, 야옹아. 내 침대 넓으니까 편하게 자..."
"그러면서 지 침대 넓다고 어필하네."
"문준휘 빨리 네 방 안 들어 가냐? 삐딱하게 서서는 시비 걸고 지랄이네."
"권순영."
"...미안."
또 쀼루퉁하게 입술을 내민다. 귀여워 진짜.
"장난이야. 같이 자."
"저 음흉한 악마랑 같이 자겠다고?"
"뭐 어때. 나 쟤 꼬실 때 안 해본 게 없는데. 선물도 주고 찔러도 보고 아양도 떨고 옷도 벗고."
"크흠...! 전 들어가 자겠습니다..."
"야옹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떡해... 그래봤자 걸치고 있던 코트 벗어서 나 준 거잖아..."
"내가 틀린 말 했다니? 코트도 옷이야."
"하, 영양가 없어. 서명호 너도 들어가 자라."
준휘와 명호가 방으로 들어가니 남은 것은 나와 순영이었다. 붉은 귀를 숨기려 고개를 숙인 순영이가 가마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약 다 됐어..."
"아, 고마워. 지금 먹이고 자야겠다."
"만지지마. 내가 할 게."
혹여나 나에게 저주가 스밀까 날 지나쳐간 순영이가 가마솥 째 들었다. 하긴, 그 녀석에게는 약병에 담아줄 필요가 없지. 대충 국자만 챙겨서 비닐하우스로 향하는 순영이를 따라갔다. 졸졸 쫒아가니 지친 듯 축 쳐진 그가 보였다. 입에도 뭘 물려놨네... 재갈처럼 물려놓은 굵은 밧줄을 푸르니 그가 정신이 든 듯 나에게 달려들며 포효했다. 그 모습에 순영이가 가마솥을 내려놓더니 그의 목을 한손으로 잡으며 제압했다. 이마에 핏줄이 서는 그를 확인하고 순영이의 팔을 쓸었다. 손아귀의 힘을 뺀 덕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에게 말해주었다.
"해독약이야. 공짜로 해주는 대신 소문 좀 내주렴.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너의 경험담을 널리 퍼뜨려줘."
순영이가 내 손에 들린 국자를 가져가 해독약을 떠 그에게 먹였다. 꿀떡꿀떡 잘도 받아먹는 그를 확인하며 말했다.
"난 먼저 들어가서 씻을 게 순영아. 얘 대충 약 기운 도는 거 같으면 밧줄 풀어줘."
"알았어."
뒷일은 순영이가 해줄 테니 비닐하우스를 나서 집으로 들어왔다.
#60 또 싸우네...
집으로 들어가니 준휘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곧 나를 보더니 나에게 볼일이 있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나 또 뭐 사고 쳤나...? 급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뜻밖의 말을 한다.
"인어한테 전화 왔었어."
"네가 받았...니...?"
"응. 근데 그냥 대답 안 했어. 듣기만 했어."
"아, 그래...? 고생했어. 힘들었을 텐데."
"...별로."
"근데 왜? 다시 전화달래?"
"아니. 뭐, 인간 데려간다고 자기한테는 말을 해주지 그랬냐고 성내더니 벌로 늑대 화장품 사다달라던데."
"아!!!! 화장품!!!! 내일 사서 줘야겠네..."
"잊은 거 같더라. 그럴 줄 알고 내가 아까 사왔어."
준휘가 소파 옆에 있는 쇼핑백을 가리켰다. 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감동적이야...
"흑... 문준휘 똑똑한 거 너무 좋아..."
"이건 똑똑한 게 아니라 잊을 수가 없는 거야. 일처리 제대로 못하면 신경 쓰이는 거고."
으이구 날 위해 사온 거면서. 칭찬하려 머리로 손을 뻗는데 아주 부드럽게 빠져나가더니 비웃어 주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하하.. 문준휘 진짜... 너무 사랑스럽네. 억지웃음을 지으며 소파에 앉아 쇼핑백을 주웠다. 내용물을 확인해 볼까나.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이거, 나 다 떨어진 건데! 어, 이거 내가 저번에 이쁘다고 한 블러셔다. 헐, 내가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신상 아이섀도... 그 외엔 그냥 기본적인 화장도구들과 기본적인 화장품이었다.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당장 문준휘 방앞으로 가 문을 벌컥 열었다. 침대에 누우려 이불을 들추던 준휘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 준휘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니 침대 위로 올라가 반대쪽으로 넘어서선 커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계속 도망다닐 것 같으므로 가만히 서서 엄하게 말했다.
"이리와 봐, 문준휘."
"뭔데. 거기 서서 말해."
"아, 빨리 와 보라고."
나의 진지함에 못 이겨 침대를 둘러서 최대한 천천히 내 앞으로 왔다. 그런 준휘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으며 말했다.
"그 동안 속으로 너를 욕하던 나를 용서하렴. 너의 큰 뜻을 내가 헤아리지 못했어."
"앞에 말 빼고 다시 말해."
"문준휘가 최고야."
"뭐 때문에 그러는 건데?"
"저거 내가 사고 싶었던 화장품들이잖아. 너 최고야, 진짜."
"하... 알겠으니까 나가. 권순영 들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최고야. 그 사실 잊지말아줬으면 해. 문준휘가 최고다!!!"
"아 좀!!! 저기 권순영 좀 보라고!!"
준휘의 말에 천천히 뒤돌아보니 거실 소파에 기대듯 앉아서 이곳을 보고 있는 순영이가 보였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일단 준휘 손부터 놓았다. 그러나 순영이는 이미 화가 잔뜩 난 것 같았다.
"왜? 더 해. 다 해. 아주 끝까지 해봐."
"아니 순영아... 그게 아니고..."
"더 해보라니까?"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빨리 나가서 악마 좀 달래. 난 자게."
"어디서 같이 외도해놓고 빠져나가?"
"마녀가 날 꼬셨나? 감사 인사를 좀 거하게 한 거지."
"어쭈. 야옹이 던져놓고 지는 쏙 빠지는 거 보게? 내가 야옹이를 혼낼 것 같아?"
"아 거참!!! 잠 좀 잡시다!!! 아니 뭔 밤낮 할 거 없이 싸움질을 하세요?!!!"
아가가 방문을 열며 소리쳤다. 아!!! 아이고, 우리 아가 잘 시간에 내가 무슨 짓을.
"미안해, 아가야. 어여 자. 조용히 할게."
"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일단...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니 정적이 돌았다. 준휘는 내 어깨를 밀어 날 방 밖으로 내보내곤 문을 닫아버렸고 순영이는 나를 빤히 보다가 명호 방으로 들어갔다. 아... 삐졌다... 오늘 명호 방에서 잘 건가봐... 아... 어떡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순영이가 방밖으로 나왔다. 명호의 겉옷을 입고 나온 순영이가 의아했으나 그렇게 심하게 삐진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곧 순영이는 쇼핑백을 들며 말했다.
"이거 늑대 거지?"
"응? 응... 왜?"
"갖다 주고 올게."
"어, 거기에 내 것도..."
"야옹이 건 내가 사다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문준휘가 사다준 것보다 더 비싼 거 더 좋은 것도 추가해서 사줄게."
"그.. 그래... 지금 가게?"
"응. 누구 때문에 열 뻗쳐서 식힐 겸 지금 다녀올게. 이지훈이 부탁한 것도 있고."
"잘 다녀와... 그... 아기 늑대한테... 아가 잘 있다고... 전해주고..."
"어."
"꼭이야..."
"어."
최악으로 삐쳤네... 하...
***
오늘은 [시즌1 15 #72 연기자 데뷔]부터 보시면 이해가 잘 되실 겁니다!
[#60 또 싸우네...]는 [시즌2 12 #56 의문의 분홍빛 물약]으로 이어집니다.
괴기동 시즌1, 2, 3을 통틀어 아픈 손가락이 3명 있어요.
최좀비, 윤인어, 마녀...
우리 아픈 손가락들... 행복만 해...
뷔버셉 3주년 특집을 쓰면서 생각한 건데요...
괴기동 완결나고 한참 후에 원우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든지,
한 100년은 더 지난 후에 민규, 아기늑대, 지훈이가 담소를 나누며 같이 밥 먹는 내용이라든지,
마녀가 승철이를 데릴사위로 들여선 인간이랑 편먹고 구박하는 거라든지...
뭐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았으나 하아아안참 후의 이야기겠죠?^0^/
아참, 댓글 잘 읽고 있어요8ㅁ8
그대들의 댓글이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답니다8ㅁ8
11편에 추천 2개도 감사해요8ㅁ8
항상 애정해주시는 만큼 열심히 쓰겠습니다!!
*암호닉입니다*
(가장 최근 편에 신청해주시면 추가해드리겠습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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