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마지막 시즌입니다. 아직 시즌 1을 안보셨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 시즌 1을 먼저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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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hmello(마시멜로), Anne-Marie(앤 마리)-FRIENDS
괴물들과의 기막힌 동거 Ⅲ 15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후회로 남았다.
그때 그 아이를 못 본 체 했더라면.
그때 그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삶을 포기했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텐데..
#71 다 포기할까
아가는 나에게 있어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버티던 1000년의 인생 중 아가와 함께 했던 20년의 시간은 단 1분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400년이 지난 지금조차도 몇 번을 곱씹어 선명한 기억으로 살아가는 중이니 삶이자 전부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말을 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우울감에 사로잡힌다. 인간들은 삶을 죽어가는 거라고 표현하던데 나는 죽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아가느라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 진짜, 다 포기해 버릴까...
"마녀. 할 말 있다고 세 번째 말하고 있어."
"아, 아... 어. 말해."
언제 들어온 건지 내 책상 의자에 앉아있는 준휘가 한숨을 내쉰다. 길어지는 한숨에 미안해져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준휘가 검지를 자신의 입 앞에 댄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또 새롭네. 항상 다른 방식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구나. 결국 사과도 못하고 준휘를 기다렸다.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있던 준휘가 드디어 입을 뗐다.
"나에겐 가정이 있었어. 안사람과 두 명의 자식이 있었지."
"뭐?!! 그걸 왜 지금 말해?! 세상에..."
준휘는 강시였고 벌써 900년이 넘는 세월을 살고 있다. 한 번도 말없이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던 준휘라, '있었다.'라는 표현을 쓰는 준휘라 생각을 끝마쳤을 땐 나도 모르게 준휘에게 걸어가 그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웬일로 내치지 않은 채 내 손을 꼭 잡아오는 준휘에 내가 더 슬퍼졌다. 넌, 이 말을 왜 지금에서야 하는 거야... 나와 아가를 보며 넌 얼마나 슬펐겠냐고... 선뜻 어떠한 위로도 해줄 수가 없었다. 준휘도 그런 나를 알았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눈앞에서 잃었어. 인어가, 아주 잔인하게도. 인간이었을 적 기억은 희미한데, 푸른 바다가 붉게 변하는 순간과 그 인어가 붉은 바다 속에서 웃고 있던 모습은 아직도 잊지 못해."
"......"
"강시가 되어 그 인어에게 복수를 하러 갔음에도 내 팔 다리가 굳어 있었기에 몇 번이나 죽었어. 그런 나에게 나타난 게,"
"나구나. 그래서 그 인어는 죽였니? 죽여줄까?"
"복수는 했지. 덕분에.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문제지만. 아무튼 덕분에 내가 복수를 했다는 게 요지야."
"...갑자기, 그건 왜?"
"400년간 괴로웠을 마녀를 위해 가장 원하는 것 하나는 내가 이뤄주겠다는 거지."
준휘가 미소를 짓는다. 망각이 없는 너희는 아직까지도 괴로울 텐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걸까.
"내가, 찾아줄까? 환생 했을 거야."
"다 뿔뿔이 있겠지.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나아."
"......"
"나 지금은 즐거워. 목적이 있잖아. 일단은 그 인간의 영생만 생각하자."
"그 다음은?"
"......"
"너, 절대 못 죽어. 내가 너 죽게 안 놔둘 거야."
"그래. 그렇게 노력해 봐."
저 똑똑한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일단, 가장 쉽게 죽을 수 있는 방법... 당장 수납장을 열어 즉사의 물약을 꺼내 들었다. 준휘가 아주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에게 다가왔지만 그보단 물약을 바닥에 던져버리는 내가 더 빨랐다. 약병이 산산이 부서지며 낸 큰 소리가 귀에서 메아리치듯 울렸다. 입을 막은 채 부서진 약병을 바라보던 준휘가 관자놀이를 짚을 쯤 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찬이었다.
"그렇다고 병으로 내려치시면 어떡해요?!!!"
"응? 찬아, 너에게 난 얼마나 개차반인 거니?"
"괜찮으세요? 제, 제가 구급상자를!!"
"아냐. 피 냄새 안 나. 뭐 떨어뜨린 거야, 야옹아??"
"내가 봤을 때... 마녀는 미쳤어."
"뭐?! 이 강시 새끼가!!!"
"저게 얼마짜린 지 알아? 저거 값을 못 매겨. 경매로 나갔으면 그 돈 좋아하는 종족들이 전 재산을 갖다가 바쳤을 거라고!"
그제야 난 내가 한 짓이 얼마나 무모하고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지 깨달았다. 그치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잖니. 난 이걸로 너를 살렸으니 됐어."
"내가 그까짓 인간 하나 살리는 걸로 살아있는 것 같아? 내가 마녀야? 애초에 죽을 거였으면 이거 만든 당일 날 마시고 죽었겠지!"
"......"
"하... 이게 내 보험이었는데... 망했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준휘가 문을 막고 서있던 아이들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아... 상대는 준휘였지... 내 돈... 우리 아가 집, 차, 건물 사줄 내 돈...
#72 귀여워...
한 순간에 돈을 잃은 거지가 되었다. 통장에 든 돈은 깨져버린 약값의 극히 적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러게, 저거 어차피 지훈이 줄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있다고만 하고 팔 걸 그랬네... 하하.. 나도 참... 상대는 준휘였는데...
"야옹아, 쇼핑갈까?"
"아냐, 나 거지야."
"마녀님, 빵 만들어 드릴까요...?"
"그것도 다 돈이란다... 우리 손가락이나 빨고 살자."
"아악! 미치겠네!! 아 그러게 문준휘 걔가 쓸데없는 말을 해선!!!"
"준휘는 쓸모 있는 아이란다..."
내 옆에 앉아 힝 소리나 내며 치댈 뿐 순영이도 딱히 부정하지는 못했다. 준휘는 무슨 생각인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찬이는 나와 순영이를 번갈아 보며 미소 짓고 있다. 그럼, 명호는...? 고개를 돌려보니 명호가 통장을 보고 있었다. 응? 쟤가 저걸 왜?
"명호야, 뭐해?"
"마녀님, 이 정도 돈이면 집, 차, 건물 다 살 수 있고도 남아요."
"그러니...?"
"그러니까 나가서 기분 전환 좀 하고 오세요. 맨날 나갔다가 혹 달고 들어오지 마시고 둘이 같이 나가서 놀고 좀 오세요."
명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영이가 신나게 일어서며 나에게 손을 건넸다. 입이 귀에 걸려 웃는 순영이의 귀여운 재촉에 마지못해 손을 잡으니 힘을 줘 날 일으켰다. 바르게 서서 순영이를 바라보았다.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은 채 차키를 챙겨 현관으로 이끄는 동그란 뒤통수가 누가 봐도 신나 보였다. 현관 앞에 다다라 이제 신발을 신기 위해 상체를 숙이는데 순영이가 쭈그려 앉더니 내가 신발을 편히 신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내가 해주려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능숙하게 신발을 신겨 준 순영이는 그제야 자기 신발을 신었다. 한없이 조심스럽게 내 신발을 신겨 주었지만 제 신발을 신을 땐 바닥에 신발코를 맞부딪히며 대충 구겨 넣을 뿐이었다.
#73 x고집..
아가가 명품을 좋아하지 않아 시장에서 옷을 사려고 했는데 마땅히 맘에 드는 게 없어서 백화점으로 다시 들어왔다. 시장부터 잡아온 손은 이제 놓을 만도 한데 어느새 익숙해져 놓는 게 더 아쉬웠다. 순영이 손을 더 꽉 잡자 나를 돌아보며 웃은 순영이는 곧장 내가 자주 가던 브랜드 쪽으로 발을 돌렸다. 난 그런 순영이를 따라 걸었다. 얘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나봐.
"이거 딱 야옹이 스타일이다. 그치?"
"응. 이쁘네."
"이것도, 저것도 예쁘지? 아니다, 이거 진짜 잘 어울리겠다."
나에게 이것저것 대보다 다 잘 어울린다며 박수를 친다. 못 말린다, 진짜... 박수 소리에 다가온 점원에게 아까 나에게 대봤던 모든 옷을 다 주더니 내 카드를 내밀면서 이걸로 긁어달라고 한다. 자기가 더 신났지, 아주. 순영이는 계산을 하러 가고 난 나대로 옷을 마저 봤다. 난 워낙에 편한 옷을 추구하는 편이라서 박시하게 입는 편이지만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은 왠지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싶은 그런 날. 그날이 오늘인지 평소라면 거들떠도 안 볼 팽팽한 옷을 구경했다. 와, 이런 게 다른 사람은 들어가긴 해? 이거 아동복 아니야...? 아동복... 아기 늑대 성인된 김에 선물이나 사줘야겠다! 이왕이면 지훈이 눈 돌아갈 화끈한 걸로. 마침 계산을 끝낸 순영이와 점원이 다가와 점원에게 물었다.
"여기서 제일 야한 거 보여주세요."
"입게???"
"아니, 선물로 주게."
"누구?"
"정한이 딸."
옆에 점원도 있는데 아기 늑대라곤 할 수 없어 그리 말하니 순영이도 늦게나마 이해하곤 아아, 하며 의사를 표했다. 웃으며 끄덕여주는데 점원이 그나마 이게 노출이 있다며 보여줬다. 이거네. 이거야. 우리 아기 늑대 화끈하게 지훈이를 유혹할 수 있겠네. 만족하며 포장해달라고 하니 카드도 작성하겠느냐 묻는다. 음, 명색에 선물인데 좋지. 점원을 따라가 건네주는 하얀 카드에 뭐라고 적으면 좋을지 잠깐 고민했다. 고민 중에 포장할 상자를 골라달란 말에 깔끔한 검정 상자를 골랐다. 정신 사납네. 고민해봤자 쓸 말은 뻔하지. [아가늑대야 언젠가 너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샀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카드를 점원에게 건네주니 흰 천으로 감싼 옷 위에 올리고는 상자뚜껑을 닫았다. 빨간 리본이 포인트로 들어간 포장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받고 감사하다 인사를 하며 그곳을 나오니 그제야 순영이가 나에게 물었다.
"이걸 걔한테?"
"일종의 성인이 된 선물 같은 거지."
"입긴 하겠어?"
"걔도 늑대야~ 늑대는 본능에 충실하지. 아마 자기가 직접 사 입지는 않겠지만 막상 보면 입지 않을까~?"
"똑똑해, 우리 고양이. 이리 줘. 내가 들게."
순영이에게 상자를 건네려는데 이미 순영이 손엔 가득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저거 다 내 건데...
"내가 들래."
"하나도 안 무거워."
"그래도, 내가 들게."
"괜찮아, 진짜."
"반만 줘. 손잡고 싶어서 그래."
"...반칙이야."
"그러니까~ 이리 줘~!"
"아니다! 내가 한쪽으로 다 들면 되겠다."
어휴 저 고집 누가 꺾겠어...
#74 무조건 무조건이야~
집으로 돌아오니 명호와 준휘, 찬이가 거실 테이블에 모여앉아 있었다. 슬쩍 다가가보니 마침 잘 왔다며 앉으란다. 일단 앉으라니 앉았다. 곧 준휘가 서두를 꺼냈다.
"약속을 했으니까 인간을 데려올 계획을 좀 짜봤어."
"와! 기특해!!"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하게??"
"좀비를 이용할 거야. 무슨 생각인지 얘도 우리에 대해 발설을 안 하니까 이용가치가 충분해."
"......"
"좀비로 그 인간을 따로 불러낼 거야. 천사의 깃털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고 없으면 다시 저주를 걸 거고, 있으면 얘가 잡아서 가져올 거야."
"찬이?"
"얘가 유령이라 가장 순수한 상태야. 어떠한 저주에도 반응이 없기도 하고."
아, 그랬구나. 어쩐지 찬이는 항상 무사하다 했어... 그게 유령이라 그런 거였구나.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궁금함에 준휘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순영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 어쩐지. 저주를 걸어도 별로 반응이 없더라니."
잠시만. 뭐라고? 저주를 걸었었어? 찬이한테?!
"권순영!!"
"작은 거야! 작은 거!!"
"너가 거는 저주는 작지 않다며!!!"
"야옹이 기억력이 끝내주네."
"당연하지. 아무튼 또 그러기만 해. 나 화낼 거야."
"응..."
금방 또 풀 죽어서 어깨가 처지는 순영이었기에 더 화를 못 내겠다. 그것에 대해서 마녀가 퍽이나 화를 내겠다며 준휘가 혀를 찼다. 나도 화나면 무서워. 너희가 몰라서 그래. 괜히 빈정 상해 고개를 돌리는데 찬이가 눈에 띄었다. 방금 상황이 아이에게 충격이었는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아, 진짜... 아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너무 눈치 보지 마, 아가. 넌 우리 식구야."
"네..!"
"순영이가 또 그러면 나한테 바로 말해. 내가 따끔하게 혼내줄게."
"아... 따끔해..."
"이게 혼낸 거니?"
"이미 혼난 거 같다고..."
슬금슬금 붙는 거 봐. 하여튼 틈을 내주면 안돼요. 단호하게 째려보고 찬이 쪽으로 더 붙으니 아예 등 돌려 앉아서 씩씩거린다. 우리 순영이는 언제 어른이 될까... 내가 평생 책임져야 하나... 이건 뭐 아들 넷 키우는 기분이네.
"됐고. 언제 할까?"
"내일 하고 싶지만 내일까지 좀 더 계획을 수정하자. 완벽해야 해."
"그래. 그럼 생각 조금 더 해보고 내일 다시 말해보자."
"응."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한 후 방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보이는 쇼핑백. 아, 순영이가 내 방에 넣어줬나 보네. 나 진짜 집중한 거 외엔 신경을 못 쓰는구나. 심각한 수준이네.. 고쳐야겠다. 방 안쪽으로 쇼핑백을 밀어 넣고 들어와 문을 닫았다. 정리해보자면, 일단 좀비로 아가를 따로 불러내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가와 따로 이야기를 나눠...? 아 이렇게 되면 딱 깃털만 묻고 싶지는 않은데... 혹여 여우가 괴롭히지는 않는지 최승철이 허튼 짓을 하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조금 오래 걸리겠네. 조금이 아니라 며칠 밤을 새도 모자라겠네... 빨리 성공해야겠다. 약을 만들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또 신경 써서 만들어야 되잖아. 와, 앞당겨야겠다. 일단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제각기 앉아있던 아이들이 돌아보았고 난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모레! 모레 무조건 할 거야."
"혼자 또 뭔 생각을 하고 온 거람. 이래서 마녀 혼자 두면 안 돼."
"준아 나는 진지하단다. 약을 만들려면 또 일주일이 걸려. 난 지금이라도 당장 아가를 쟁취하고 싶다고."
"어련하시겠어. 그럼 모레 한다."
준휘를 향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주었다. 내 눈빛을 다 받아내지 못한 준휘가 고개를 돌렸고 그런 준휘에게 또 섭섭해 가재 눈을 뜨고 바라보니 순영이가 나를 불렀다.
"야옹아."
"응?"
"너 늑대 주려고 산 건?"
"아! 아... 그거 전해줘야 하는데..."
순영이는 가봤자 막말할 테고 준휘는 인어를 싫어하고 명호는 지훈이를 무서워한다. 아니 이 아이들 왜 이렇게 정한이네 식구들이랑 사이가 나빠? 이거, 이거 이웃 간의 정이 모자라. 이웃이라 치기엔 굉장히 먼 곳에 살고 있지만, 아무튼! 그럼 남은 건... 찬이네...?
"찬아, 혹시 정한이네 아니?"
"어, 네. 그, 저승사자...분 뵈러 한 번 갔었어요."
"아, 그랬지. 그럼 찬아, 내일 이거 아기늑대에게 전해줄래?"
"네!"
"그거 꼭 아가늑대만 열어봐야 해. 그쪽 애들이 좀 보수적이라..."
"아, 네! 또 전할 말씀 있으세요?"
"아마 지금 꼭 필요할 거라고? 그렇게 전하면 되려나~"
"네!"
귀여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아주 죽일 듯이 찬이를 째려보는 순영이 얼굴을 쓸어준 뒤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 모레, 무조건 깃털이 있기를.
#75 잘 자라 우리 아가
결전의 날이었다. 그 생각이 스미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쁜 징조일까? 가지말까...? 고민이 됐으나 지체할 시간 따위 없었다. 처참하게 저무는 하루는 나에게도 유효했기에.
민규의 귀가 예민해 들어오면서부터 수정구슬을 작동시켜놓아 아마 그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심호흡을 크게 쉬고 뒷좌석에 앉아있는 준휘를 돌아보았다. 나의 말에 준휘가 짚 인형을 들고 눈을 감았다. 오래걸릴 줄 알았지만 준휘는 금방 눈을 떴다. 차 안엔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준휘가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준휘는 짚 인형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혼자 방에 있나봐. 지금이 기회야. 당장 가자."
"자, 잠깐만. 만약에 아가가 깃털을 나한테 안 주면?"
"무력으로라도 가져와야 돼. 당장 그 인간 걱정은 집어 쳐. 미래를 봐."
"다치는 건 죽어도 안 돼."
"알아."
진지한 준휘의 모습에 일단 아가의 방 창문 밑으로 갔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침대에 엎드려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아가가 보였다. 일단 그냥 문을 열면 아가가 놀랄 수 있으므로 핸드폰으로 아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쭈그려 앉아서 아가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릴 줄 알았지만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아가가 작은 목소리로 받았다.
'여보세요..?'
"다행히 아가가 딱 받았네. 우리 운명인가 봐, 아가야."
'아.. 어쩐 일이신데요..?'
"창문 열어 봐."
내 말에 잠시 조용하던 아가가 후다닥 창문을 열어주었다. 벌떡 일어나 아가를 마주보았다. 반가운 얼굴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넘어가지..? 밑을 내려다보니 순영이가 웃으며 한쪽 무릎을 세워주었다. 눈으로 감사를 표하고 무릎을 밟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아가는 나의 등장이 꽤나 불안했는지 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 아가에게 가방 속 수정구슬을 꺼내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범위 안에 있으면 기척 및 말소리 쟤들한테 안 들려. 걱정 마."
"아, 그래요. 그건 그렇고. 내가 안 받았으면 어쩌려고..!"
"그쪽 좀비가 우리 애 거라니까. 아무튼 아가, 너 혹시 빛나는 천사의 깃털 있니?"
나의 대답에 아가가 망설였다. 있긴, 있네. 우리 아가 거짓말은 못하네. 솔직함이 아주 좋지. 아주 좋은 미덕을 갖추고 있어. 흡족해 하는 중 아가의 고민이 끝났나보다. 나에게 되물었다.
"그건 왜요?"
"비밀의 레시피 재료인데, 지수한테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싫어요."
"오, 이건 좀 의외의 대답인데~"
단호해. 우리 아가 홍누구누구처럼 이상한 다단계에는 안 걸리겠네~ 일단 천천히 대화하면서 풀어야지. 아가의 방을 둘러보았다. 가장 중요한 아가의 잠자리! 침대는 푹신한가 앉아보았다. 뭐, 그런대로 괜찮네. 다음으로 눈에 띈 건 화장대였다. 화장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머머 화장도 해?"
"저거 장식품인데요?"
"옷은 좀 많니...?"
"그냥, 일주일을 돌려 입을 만큼...?"
"책상에 필기구는? 뭐 읽은 책은?"
"보시다시피 휑합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지내니...?"
"솔직히 마녀님네가 조금 더 재밌긴 한데, 여긴 최뱀파도 있고 우리 한솔님이 있어서 괜찮아요."
"우리 한솔님... 그렇구나..."
고작 80년 된 좀비주제에 우리 아가에게 좋은 호칭으로 불리고 있구나. 부럽다. 그나저나 최승철 얘는 불합격이야. 애를 이렇게 휑한 곳에 두고 말이야. 난 옷장 가득 옷도 사주고 화장대 넘치도록 화장품도 사줄 거야. 책도 왕창 사주고 필기구고 종류별로 사주고 해달라는 건 다 해줄 거야. 또 화가 뻗쳤으나 이제는 진짜 깃털을 찾아야했다. 눈에 띄는 곳에 두진 않았을 텐데, 막 뒤지기도 그렇고... 순간 믿기지 않는 것이 보였다. 침대 옆 협탁 위에 무슨 무드등마냥 빛나는 깃털이 얹혀있었기 때문이다.
"저거 저렇게 막 뒀어??"
"왜요? 안돼요?!"
"당연하지! 저게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 건데!!"
"엥?!"
"아가야 저게, 우리 같은 마녀들 사이에서 시가가 족히 십억 단위를 넘나드는 진짜 레어템이야..!"
"헐, 전 몰랐죠.. 그냥 쑥쑥 뽑아 주던데..?!"
"쑥쑥 뽑아? 이게 보통 천사들은 뽑지도 못할 뿐더러 뽑고 나서 저렇게 빛을 유지할 줄 아는 천사는 내가 아는 선에서 일단 지수 밖에 없어."
"아무튼, 싫어요. 제 거예요."
역시 우리 아가. 너무 단호하네. 이럴 땐 살살 구슬려야지.
"그럼 잠깐만 쓰고 줄게."
"가능해요?"
씨알도 안 먹히는 구나! 아, 이러면 진짜 무력으로 가져가야하는데... 협박이라도 해볼까?
"으앙 들켰다. 이럼 무력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데.. 알다시피 우리 관계는 웬수잖아~"
"난 친구라고 했잖아요.. 계속 이런 식이면 진짜 웬수할 거예요. 증오하고 미워할 거야."
"윽, 마음 아파.. 나 아가 도발에 약하다니까."
"됐어요. 나가요, 빨리. 괜히 들켜서 일 나게 하지 말고."
아가는 나보고 친구라고 한다. 그런 내가 아가에게 할 짓은 웬수같은 짓인데... 마음이 아프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진짜 어쩔 수 없었다. 재촉하듯 나를 내쫒으려는 아가에게 난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나의 진심이 닿아도 너는 날 미워할 테지만, 내 욕심이 많아서, 다시 한 번 미안해. 나의 말이 신호가 된 듯 찬이의 투명해지는 능력으로 안에 들어와있던 준휘가 아가의 뒷목을 가격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아가에게 달려가 내 몸으로 아가를 받쳤다. 아가를 고쳐 안으며 준휘에게 소리쳤다.
"너!!!!!!"
"다치진 않았어. 잠깐 기절이야."
"너 진짜!!!!"
"아님 뭐 여기서 다 들키고 다 죽고 끝내던가. 그게 마녀가 원하는 결말인가?"
"넌 진짜... 너는..."
너는 진짜 나쁜 아이야. 우리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 찬이가 깃털을 챙겼다. 다행히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그게 다행이냐. 하... 아가를 조심히 침대에 눕혔다. 흐트러진 아가의 머리를 넘겨주곤 이불을 덮어주었다.
편안한 꿈 꿔, 아가야.
***
마녀의 소심한 성격으로는 이렇게 공격적인 계획이 나올 리가 없죠.
모든 것은 준휘의 계획대로...!
[#75 잘자라 우리 아가]는
[시즌 1 18 #87갑작스런 연락]을 보시면
인간의 각도에게 보실 수 있으십니다~
이건 시즌 1 18편 링크예요
찬이가 옷 배달 가는 건 [시즌 2 16편 #79안돼]를 보시면 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시즌 2 16편 링크예요
정주행 하면서 느낀건데 직접 찾아가는 거 번거롭더라구요~!
아니 뭐 그대들 편하라고 링크 주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구요.
*암호닉입니다*
(가장 최근 편에 신청해주시면 추가해드리겠습니다^0^/)
성장통, 유한성, 유레이드, 호시탐탐, 0917, 후아유, 봄유, 루미너스, 아몬드봉봉, 뿌랑둥이,
쿠조, 도도, 뿜뿜이, 11230, 전주댁, 하늘빛, 나나, 오링, 한콩, 씨씨,
사미, 016326, 쿠마, 츄러스, 냐옹(찬이), 바람개비, 오솔, 이슬, 앨리스, 호접지몽,
로블링, 호굼, 버밀리온, 소보루, 아움, 호빵, 모찌모찌, 웬디, 치킨팝, 미키,
프레이그런스, 순주, 선쿱, 필소, 순찌, 푸르던, 문홀리, 호시시해, 쿠쯔, 체셔,
진투, 제이, 구팔, 율, 콩유레베, 눈누, 붕어, 뀨사랑, 플루토, 시옷
애정, 저너누복덩어리, 윰윰, 도담, 귤멍찌, 잠시, 뿌뽀뿌뽀, 팔시, 댕, 메론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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