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빈궁과 무엇을 하였느냐."
"같이 겸상을 하신 뒤 큰화원에서 잠시 산책을 즐기셨습니다."
"... 결국 보고야 마는군."
한빈에게 있어서 원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가장 위험한 상대였다. 특히 빈궁 문제로는 더더욱. 몇 달전 ○○이 세자빈으로 간택되었을 때 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한빈은 제대로 잠을 이룬 적이 없었다. 그야 사람을 워낙 좋아하며 배려심이 넘치던 원은 한빈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빈궁이 원에 대해 알게되고 자신보다 원을 더 원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에. 누가보기엔 애들 소꿉놀이로 보일지 모르나 한빈에겐 위험한 일이였다. 원의 힘이 더욱 세질수록 자신의 시간영역을 더 빼앗길것이 분명했다. 빈궁 앞에서는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했지만 결국 한빈이 우려하고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몇 시인가."
"해시이옵니다."
"오늘은 일찍이 침전에..."
*해시: 오후 9시~ 11시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길고도 피곤한 하루였기에 한빈은 일찍 잠에 들 준비를 하려 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머릿속에서 아까 빈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원이,'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찾아오겠다했습니다.'
젠장. 한빈은 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치더니 이마에 손을 짚고는 눈을 감았다. 빈궁, 빈궁. 그녀에게 관심을 끊고 싶어도 이미 원에 대해 알아버린 빈궁이 떠올라 미칠 지경이였다. 평소 빈궁에 대해 알고싶지도, 신경쓰지도 않던 그가 처음으로 진환에게 빈궁에 대해 물었다.
"빈이 이번 해에 열아홉이 되는 것이 맞느냐."
"그, 그러하옵니다"
그리고 또 이어서,
"... 빈은 주로 몇 시에 침소에 드는가."
"... 해시서 축시 사이에 침소에 드시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해시: 오후 9시~ 11시
*축시: 새벽 1시~ 3시
진환 또한 한빈이 처음으로 세자빈에 대해 묻는 것에 당황스러울 따름이였다. 간택 후 가례를 올릴 때 까지 한번도 세자빈에 대해 묻지 않았던 한빈이였다. 오죽하면 진환이 가례날까지 아무 말이 없던 한빈에게 세자빈마마가 궁금하지 않느냐며 소문으로 듣자하니 아주 아름다운 분이라 하셨다 라며 궁금증을 자극하도록 말해보았지만 그 말에 돌아온 한빈의 대답은,
*가례: 왕세자의 성혼식 (혼인식)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이냐."
... 이렇게 답할 정도로 세자빈에 관심이 없던 한빈의 지금 모습은 진환을 놀라게하기에 충분했다. 진환의 대답에 한빈은 잠시 또 고민하더니 이내 결심한듯 자리서 일어났다.
"저하, 어딜 가시려..."
"오늘 빈궁과 밤을 보낼 것이다."
"... 예, 예?"
아직 놀람과 당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진환이 한빈에게 다시 한번 묻자, 한빈은 그 차가운 눈빛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진환을 쳐다보았다.
"부부가 한 방에서 자겠다는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인가."
"아.. 아닙니다 저하."
"지금 당장 빈궁을 이곳으로 데려오게."
"..예, 저하.."
한빈의 태도에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멍하니 몇 초간 서있던 진환에 미간을 찌푸리던 한빈이 소리쳤다.
"지금 무얼 하는건가? 내 말이 안들리는가, 얼른 데려오라!!!"
"예, 예!!!"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마마, 마마!!!"
오늘 밤 안에 원이 찾아올 때 까지 밤을 지새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그동안 못보던 서책들을 보고있는데 밖에서 조상궁이 다급한 모습으로 날 불렀다. 원, 그 이가 온건가. 괜히 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느냐."
"저, 저하께서..."
"저하께서 왜, 이 곳에 찾아오기라도 하신..."
"합, 합방을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응?
...뭐?
"... 지, 지금 뭐라..."
"합방을... 하시겠다고..."
"..."
잠시 멍하니 있다 이게 한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조상궁에 물었다. 정말, 정말 세자저하께서 그리 말하셨냐고.
"예, 정말입니다. 지금 당장 처소로 마마를 모셔오라 명하셨습니다."
"저하께서 좀 이상하지 않으셨는가, 지나치게 다정하시던가, 혹..."
"방금 김내관에게 소리치며 명하셨다하옵니다. 얼른 데려오라!!! 고..."
소리친다.. 그것도 김내관에게.
한빈, 한빈이구나.
"... 지금 가면 되는 것이냐."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저하, 세자빈마마 오셨사옵니다."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는 그의 처소로 발을 조심스레 내딛었다. 그의 방에 오고싶어도 함부로 가기엔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였기에 나 또한 조심했던 곳이였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모란꽃 향기가 그의 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모란, 모란을 좋아하나.
"..."
"..."
온전히 그의 방에 들어오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내 쪽으로 고개를 들고있는 한빈이 보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무슨 생각으로 날 부른건지.
"..."
날 흘깃 쳐다보던 그는 나즈막히 손짓으로 자기 옆 쪽을 가리켰다. 웬일이래, 자기 옆으로 오라하기도 하고. 그의 곁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으니 또 그러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이 어색함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하는건가.
"저,"
"빈,"
말하려다 말고 눈치를 보다보니 그렇게 침묵.
"저하먼저.."
"빈궁먼저..."
또 이어진 침묵.
그렇게 약간의 고요가 일고 나서 한빈이 잠시 이마를 짚는 듯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곤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와 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습니다. 그대도 알다시피 원은 정말 그대를 보기 위해 나올지도 모릅니다."
"자는 도중에 원이 나오더라도 그대를 보고 안심하며 다시 잠에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그 생각에 빈궁을 부른 것입니다."
한참을 잠잠히 듣고 있던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다.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야 말았다. 숙인 고개로 한빈의 손이 보였다. 주먹을 쥐락펴락 하다가, 내 쪽으로 손을 뻗으려고도 하다가. 그 모습을 보고선 다시 고개를 천천히 들어 한빈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나 대신 시선이 아래로 향한 채로 힘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빈이였다.
"... 제가 무얼하면 되겠습니까."
"... 그런건 없습니다. 단지,"
"단지...?"
"단지 ... 제 곁에, 머물러주시면 됩니다."
더보기 |
한빈, 원의 매력은 한 회가 거듭될 수록 더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한빈이와 세자빈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죠? 이제 원이 나와주면 되겠네요) 어제도, 오늘도 조별내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암호닉 초록프글 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