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은 한꺼번에 듣는 것을 추천드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화살까지 명중시킨 한빈은 곧 그곳을 나서 자선당으로 향했다. 자신의 처소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냉랭함에 빈궁이 돌아갔다는걸 알 수 있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갈아입으려하는데, 자신의 상 위로 빼곡히 쓰여져있는 편지 한 장이 보였다. 빈궁의 글씨를 본 적은 없지만, 그녀일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저하께서 안계신 이 곳이 참으로 차갑기만 합니다.
밤에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젯밤 원군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하께 그 생각들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은게 너무나 많았는데 저하께서는 아침 일찍이 어디를 가셨던겁니까?
혹 이 편지를 보게 되신다면 빈궁전으로 와주실 수 있으실런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빈, 저하께. ○○ 빈궁 드림.-
"..."
그 안에 쓰여진 내용을 천천히 읽어내려가던 한빈은 마지막줄에 쓰여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는 말을 보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씁쓸하게 실소를 터뜨리던 한빈은 빈궁의 편지를 대충 아무렇게나 접어 자신의 서랍에 넣었다. 그리곤 그의 습관인 이마를 짚곤 눈을 감았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
'... 원...원군...'
그렇게 애타게 불렀으면서. 그렇게, ... 애절하게 그리워했으면서.
'그 누구의 빈도, ... 아닌, 저하의 빈이옵니다.'
"... 우리 빈궁은... 참 솔직하지 못하십니다."
'저하께선 왜...'
'.....'
'... 저를 바라봐주시지 않으시는겁니까.'
'... 정녕 몰라 묻는 것입니까.'
'모르니... 이렇게 묻는 것 아니겠습니까.'
'...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만 돌아가세요, 취하셨습니다.'
'기다리면, ...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까.'
간택되고난 후 몇 달쯤 지났을 때 였다. 어디서 술을 먹고 취한 것인지 내 처소 마당에서 날 불러달라 애원하던 빈궁이였다. 그 소리에 나갔더니 하염없이 울던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바로 이 말들이였다. 왜 바라봐주지 않냐며, 기다리면 되는 것이냐며. 통곡했던 빈궁이였다. 물론 그 날 밤의 일을 지금까지도 빈궁은 기억치 못한다. 그 날의 일을 절대 빈궁에게 사실대로 고하지말라했으니까.
'저하, 김내관이옵니다. 안에 들어도 되겠습니까.'
이마를 짚던 손을 내리곤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오는 한빈이다.
"... 들라."
한빈의 말과 동시에 급하게 들어온 진환은 한껏 걱정이 서린 얼굴로 한빈을 바라보았다. 느낌이 심상치 않자 한빈 또한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 중, 중전마마께서..."
"... 왜그러느냐, 얼른 말해보.."
한빈의 말이 멈춰짐과 동시에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안그래도 좁혀졌던 미간이 더 푹 패이기 시작했다. 김내관도 동시에 그녀를보곤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한빈은 그 자리에, 그대로. 그녀를 주시했다.
"... 세자, 어미를 이렇게 반기는 것입니까."
"......"
중전, 그녀가 이 곳에 왔다.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 이 곳엔 무슨 연유로 찾으신겁니까."
"그야, 우리 세자를 보러 찾은 것 아니겠습니까. 교태전에 들리질 않으니... 이렇게 어미가 제 발로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교태전: 왕비가 거처하던 침전
"....."
붉게 칠한 입술이 찻잔에 붙었다 떼진다. 붉게 묻은 찻잔 입구가 한빈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저 입으로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어미라 칭할 수 있을까.
주먹쥔 한빈의 손이 떨려왔다.
"합방 소식을 들었습니다. 빈궁과 절대 가까워지지 못할거라던 세자아니였습니까. 역시, 사내 마음이란 여인에게 달린 것이겠지요."
"....."
"... 곧 빈궁의 탄신일입니다. ..모르실 것 같아, ... 말씀드리는 겁니다."
가볍게 미소짓는 중전을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바라보는 한빈이다. 차를 한모금 다시 마시다, 다시 말을 잇는다.
"아, 그래서 말인데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 무엇입니까."
"... 이상궁, 들게."
중전의 말에 상궁 한 명이 경대와 보석함을 들곤 방 안으로 들어왔다. 중전 옆에 하나씩 놓자 만족한다는듯 다시 또 그 특유의 입꼬리를 올리는 중전이다.
*경대: 거울을 세우는 대. 일종의 화장대.
"여인의 마음은 여인이 가장 잘아는 법. 여인을 잘 모르는 세자를 위해 준비한 내 작은 마음입니다. 빈궁 또한 몹시 좋아할 것입니다."
"..... 고작 이것을 전해주러 이곳까지 오신 것입니까."
"... 설마 이것 뿐일리가요."
다시 차를 한모금 마시던 중전은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 설마 화원이 죽었을거라, .. 생각하시는겁니까."
"... 지금 무슨 소리를..."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혹... 세자의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했습니다!!!"
"워워. 진정하세요 세자. 이러다 밖에 있는 나인들까지 다 알겠습니다."
중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짚는 한빈이다. 약간의 어지러움에 눈을 질끈 감는다. 중전, 중전 앞이다.
"... 세자, 왜그러십니까."
"..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게 좋겠습니다."
"....."
간신히 정신을 붙잡으며 중전을 흘기며 말하는 한빈에 아무 말도 못하곤 헛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전이다.
"다음번엔 세자가 교태전에 들렀으면 합니다. 어미가 자식보러 이리 발걸음해서야 되겠습니까."
"..... 일국의 세자가 얼마나 바쁜지는 중전마마또한 너무 잘아는 일 아닙니까."
"끝까지, ... 어마마마라고 부르지 않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 내가 왜 당신을 그리 불러야하는 것 입니까."
"......."
"제 어머니는 한 분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기분 나쁜 듯 허, 하고 웃던 중전은 그렇게 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고서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마는 한빈이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는 것이 미칠 것만 같았다.
"..... 하... 하아..."
호흡이 또 가빠지기 시작한다. 정신을 놓으면 안된다, 놓아선 안된다.
"...하......"
점점 시야가 흐려지고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아직 원에게 시간을 줄 수는 없는 일이였다. 목을 옥죄오는 느낌이 들 때 쯤, 누군가 내 두 손을 살포시 잡곤 등을 쓸어주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니, 빈궁. 빈궁이였다.
"... 저하, 천천히... 천천히 숨을 들이쉬세요."
"....."
"걱정 마세요. 어마마마께서 나가시는 걸 보고 들어온 것입니다."
"... 이제 괜찮은것입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임에 한숨을 깊게 내쉬는 세자빈이다. 아차, 하며 잡고 있던 내 손을 슬며시 놓음에 다시 그 손을 붙잡았다.
"..... 저, 저하."
"..... 잠시 곁에 있어주겠습니까."
"....."
"그대가, 지금... 곁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 그래주면 안되겠습니까."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어쩌다... 온 것입니까."
"편지 때문에 온 것입니다."
"보시기는.. 하신겁니까."
내 말에 아무 말도 안하는 한빈을 보니 읽기는 한 듯 싶다. 읽었으면 오기나 할 것이지. 여기 있다가 중전마마 만난거잖아. ... 그렇게 싫어하면서.
"... 마마께서는 어인 일로 찾으신겁니까."
"... 빈궁 탄신일 얘기를 하러 오셨습니다. 제가 모를 것 같다면서."
"아.....생일..."
그러고보니 곧 내 생일이구나. 궁에 들어와 맞는 첫 생일. 작년만해도 본가에서 가족들 다 같이 즐겼었는데. ... 어머니는 무얼하시고 계시려나.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겁니다. 궁에서도 빈궁의 가족들을 부를테니까요."
"아, 아 그런 걱정한 것 아닙니다!"
"그러시겠지요."
꼭 저렇다니깐.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쯤 어색함을 깨기 위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 ... 저하."
"..... 예."
"혹, ...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라는 서책을 아시는지요."
"민간서책인 것입니까. 웬만한 책은 다 읽었어도 그런 책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 아 그러십니까?"
"원이 알려준 것입니까."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거짓을 말할 순 없으니 고개만 끄덕였다. 원.. 원. 혼자 중얼거리던 한빈이 살짝 눈이 풀린 채로 내게 물어왔다.
"빈궁"
"예."
"그대가 보기엔 원군은 어떠합니까."
"...예?"
"내가 원군을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가 원군을 묻는 것에 갑자기 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 됐습니다."
".... 송구합니다. 아니 그런 질문을 하시면 제가 어찌..."
"빈궁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갑자기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장단점이라니. 설마 또 꼬투리 잡는건가.
"장점 하나는, 솔직하다는 것입니다."
"또, 단점 하나는."
"...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묻기도 전에 다시 한빈은 말을 이어갔다.
"... 그대가 좋아하는 꽃이 장미라 했지요."
"내가 장미를 싫어하는 이유 또한 빈궁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 그에게 장미란, 자신의 미에 미혹되게 만들어 가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 그런 꽃.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한빈은 싫어하지만, 원은 좋아하는 꽃이였으니.
"난 지금 그 꽃이 더 싫어집니다."
"... 내가 그 미에 미혹되어,"
"..... 그 가시에 찔려 죽을 것만 같으니까요."
그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한번 보곤 시선을 아래로 향하는 그다.
"... 조심할 것입니다."
"그대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 조심, 또 조심할 것입니다."
한빈은 그 말을 남기곤 아침과 같이 또 이곳에 날 두곤 방을 나가버렸다. 조심하겠다. 미혹되지 않겠다.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였는데. 아직, 아직 난.
"..... 그대에게 내 마음하나 전하지 못했는데."
그가 없던 아침보다도 더, 쓸쓸하고 차가운 오후의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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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물이 두둥 등장했죠? 앞으로를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조별내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ㅠㅠ 항상 감동받고 있습니다ㅠㅠ (역시 날이 추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훌쩍.) 암호닉! (암호닉은 계속 받고 있습니다!) 초록프글 님 ♡ 뀰지난 님 ♡ 달빛 님 ♡ 몰랑이 님 ♡ 별 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