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In mysterious 12
WRITTEN BY. 키드
*
시간은 흘렀다. 창문 밖 풍경을 감흥없이 바라보는 눈동자위로, 눅눅하게 메마른 낙엽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여름의 성근초록잎들이, 어느새 땅위로 떨어져내렸다. 가을의 변화를 목전에 두고 경수는 문득, 그날을 떠올렸다. 그때……그러니까 그때 말이다.
경수가 카이의 품안에서 눈을 떴을때, 엘리스 아일랜드에서의 무도회와 배 안에서의 있었던 일 모두는 이미 제 손을 떠난뒤였고. 자신은 카이와 함께, 그의 품에 안겨 카이렌궁에 도착해있었다. 고작 반나절만에 다시 돌아온 카이렌궁은, 변함없이 화려했고, 그만큼 불편했다. 카이가 억지로 먹인 수면제덕에 꼬박 하루를 더 잠들었던 경수는 다음날 그의 품에서 눈을 떴다. 잠에서 일어나 가장먼저 바라본 카이의 눈은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경수, 잠들었던 제 얼굴을 향해있더라. 그리고, 그 눈빛이 마치. 꼭 자신을 꽁꽁 묶어두는것만 같다고, 막 잠에서 깨어난 몽롱한 생태에서- 경수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잠에서 일어난 제 얼굴을 마주한 카이가 손을들어 제 뺨위를 덮었다. 뭉근한 온기가 혈관을 타고 퍼져흘렀다.
'이제 넌 혼자야. 리어는 죽었을테니까.…아마도.'
'…'
'썬포그도 곧 없어질텐데. 이제 널 어떡한다.'
카이는 짐짓 제게 무서운 어조로 백현이 죽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경수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변백현은, 고작 총알몇방 따위에 총알이 아닌 뭐가됬던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므로.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보스는. 썬포그는 네 뜻대로 되지 않을거야.' 진실을 목전에 마주한 사람만이 가지는 확고함을, 그런 경수의 대답을 카이는 단순한 패기라고 치부했는지 입술을 끌어올렸다. 그는 웃으며 제 머리칼에 가려진 이마위로 입을 맞췄다. 눌렀던 입술을 뗀 카이가 고개를 숙여 어느때보다 진지한 눈빛을 하고서 입을열었다. '돌아온걸 축하해.' 뺨을 쓸어내리는 온기와 다정한 말이 섞여 제 귓가를 맴돌았다. 그리고…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상하게도 이 남자는, 카이는 경수제게 자꾸만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대답대신 눈을 감아버리는 경수를 카이는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지독한 잠에서 깬 뒤에 맞는 카이의 목소리가, 카이의 품이, 카이의 온기가- 여느때와는 다르게 싫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고 부정할 수 없는 상념이되어 제 목을 조를지도 모르겠다고, 경수가 생각했다.
'경수야.'
'난 널 기억하는데…왜 넌 날 잊어버렸을까.'
'…하긴,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이제, 넌 내곁에 있을텐데.'
귓가에 대고 어르듯 말해오는 그 음성이, 그때는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는지. 제 뺨위로 맞닿은 카이의 뺨이, 자신과 같은 온기를 내뿜으며 마치 제게 말을 거는 것만같았다. 꼭, 그 행동이 어색하지만은 않아 가만히 있는 제게 카이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경수야…라고 뭐라 했던것 같은데…기억나지않는 그의 말을 되짚으며 경수가 눈을 감아내렸다. 뭐라 했더라. 기억을 되짚는 머리칼위로 가을바람이 내려앉는다. 계절의 옷을바꾼 풍경너머로, 어지러히 흘러드는 노을빛에 눈앞이 벌겋게 물들어간다. 이내 곧 눈을 뜬 경수가 어느새 방안을 물들인 붉은 노을빛에 가만히 그 주위를 바라봤다. 경수야…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카이의 목소리가 들릴것만 같다. 마치, 그때 자신을 향해 데이트신청이라며 손을 내밀면서. 이제 '경수야'라고 자신을 부르는 카이를 떠올리며, 경수가 조심스레 손바닥을 펼쳐 천천히 뒤집었다. 붉은 보석이박힌 반지. 단 한순간도 빼본적이 없는 반지가, 제 시선을 고정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는데.
"반지가, 그렇게 마음에 드나봐-"
제 손등위로 겹쳐오는 손길에 고개를 든 경수가 카이를 마주했다. '언제온거야?' 제 손등을 가만히 두드리던 손가락이 손목을 타고 올라간다. 카이가 '방금.' 이라고 말하는데, 제 어깨위로 올라온 손이 가만있지를 못한다. 어깨를 탁탁- 두드리는 손가락을 경수가 잡아쥐었다. 그 모습에 카이가 웃었다. '재밌네-' 재밌긴 무슨. 대답대신 무섭게 눈을 굳힌 경수를 향해 카이가 손을 뻗어 눈가옆을 문질렀다. '눈 풀어, 무서운데.' 제 손길을 받으며 엉성하게 풀리는 눈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카이가, 경수를 향해 되물었다.
"반지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기는…무겁다니까. 몇 번을 말해."
"근데 안빼잖아. 라고 몇 번을 대답했더라- "
"억지로 끼운사람이 누군데. 됐으니까, 왜 왔어? 또 심심해서 놀러왔어?"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넌 짐작도 못할거야."
설마 그걸 모를까봐…목언저리까지 차오른 대답을 삼킨 경수가 어색한지 시선을 돌리자, 카이가 자신을 따라 고개를 튼다. 그 모습이 왠지, 웃기기도, 민망하기도 해서 고개를 숙이는데. '고개 들어봐.' 제 턱을 손가락으로 밀어올리며 카이가 경수를 마주했다. 꾹 다문 입술위로 카이가 옅은 웃음기를 내보였다. 지금처럼, 카이는 유독 제게 지금과도 같은 웃음을 보여준다. 그 웃음이 뜻하는 바가, 종종 제 입술을 향한 시선을, 경수는 제 앞에서 모습을 내비치는 카이의 감정을 애써 밀어냈다. 엘리스 아일랜드에서 강제로 당한 입맞춤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겪어보니 알것도 같더라. 그래서 더 밀어냈다. 어느 누구보다 제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카이를, 경수는 감히 그의 감정을 알아내려고도, 받아낼 엄두는 더더욱 생각조차 못했다. 맞닿은 콧등위로 카이가 나즈막히, 긴 숨을 내쉬다- 입을 열었다.
"…기다리는 중이야."
"…"
"내가. 세상에서 가장 공들이는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는데. 그는 짐작조차 못하고있어."
"…"
"그래서 답답해. 아주 많이."
이세상 누가 짐작이나 할까. 카이렌의 검은용이, 이렇게 간절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임을. 대답대신 입술을 깨무는 경수를, 카이는 엄지로 그의 입술위를 메만졌다. '깨물지마. 아파.' 그 목소리에, 경수가 더욱 입술을 앙다물었다. 카이의 손가락이 경수의 입술을 조심스레 열었다. 다문 입술이, 힘없이 열린다. 자꾸만 제게 마음을 요구하는 이 남자를,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그의 진심을 알면 알수록, 그를 벼랑끝으로 밀어내는 행동에 죄책감을 느낀다. 밤마다 제 머리를 어지럽히는 상념을, 그저 착각이라 치부하는것도 한계가 있었다. 입술위로 불어오는 입김에 경수가 눈을 감았다. 더럽다고 치부하던 키스를, 남녀의 행위라 여기던 그것을. 자신이, 남자와 나누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못했는데.
맞닿은 입술위로 온기가 퍼진다. 셔츠깃을 잡은 손등위로, 그를 다독이는 또다른 손이 겹쳤다.
*
카이렌궁에 다시 돌아온 뒤로, 카이와의 위태로운 관계속에서 경수는 꽤 바쁜 나날을 보냈다. 더 이상 자신은 가만히 있을 필요도, 조용히 숨죽여 카이렌궁의 동태를 살필 필요도 없었다. 카이렌의 정보를 빼돌리는 일은 제 목숨을 담보로 했으나, 그만한 성과가 있는 일이었다. 제3국가에 포진해있던 로렌스맨하탄의 주식상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배후에는, 경수가 썬포그에 건낸 카이렌의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주일 전, 카이렌의 향후 3개월 재무재표를 빼돌린, 그 탓에 카이렌에서 눈에 불을켜고 찾아다닌다는, 겁없는 해커가 바로 경수였다. 암호명 셰익스피어로 배당받은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썬포그의 오필리아는 여전히 건재하다.
자신이 바빠진것과 함께, 한 가지 더 달라진 사실은. 이제 웬만한 곳은 감시자없이 홀로 움직이는것도 가능해진것. 예전같았으면 꿈도 못꿨을 일이지만, 어느샌가 은연중 자신을 향한 날선눈초리 들이 거둬졌음에 경수는 안도와 동시에 불안감을 느껴야했다. 아직은 좀 더 두고봐야 하겠으나, 이대로라면 제 탈출도 가능할 수 있겠다고- 하지만 철두철미한 카이는 이런 제 생각을 꿰뚷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두 복잡한 감정을 느낀것이다. 하지만 탈출과 카이라는 두 무게추 사이로 점점 기우는것은, 전자에 가까웠다. 요새들어 눈에 띄게 바빠진 카이는 전보다 자신을 찾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식사뒤 의무반, 강제반으로 향하던 장미정원의 미로가 이젠 잘 생각나지도 않는걸 보면, 게다가 요 며칠사이 함께 식사를 하지않는걸 봤을때. 어쩌면 경수가 탈출을 염두하는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자진해서 카이의 곁에 남은것에, 경수는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 덕에 백현을 보스의 품으로 돌려보냈고, 로렌스맨하탄의 약점을 얻을 수 있었으며, 카이가 말한 과거…를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카이와 함께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으나, 언제고 그와의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몇일전 제게 내려온 상부의 지시가, 카이의 모든 약점을 얻어내라는 것이었으므로. 손안에 쥐고있던 만년필을 조심스레 탁자위로 내려놓은 경수가, 턱을 괸채 눈을 감았다. 카이의 약점이, 과연 제 기억속에 있기는 할까-. 그렇게, 7년전의 기억들 사이로 카이를 찾으려는데.
"경수씨-"
[똑똑-]귀에 익은 목소리와 뒤이은 노크에 고개를 돌린 경수가, 이내 곧 굳어있던 얼굴을 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방해한건 아니지?' 문 안으로 내민 고개를 향해 그가 손을 내저으며 방 안으로 루한을 이끌었다. 평소와 달리 깔끔한 베이지색 면바지에 긴팔 티셔츠를 걸친 모습이 꼭 그 나이 또래의 대학생 같아, 경수가 '오늘 좋은데 가나봐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냈고, 대답대신 탁자위로 올려진 접시위 컵케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국은 컵케익의 나라잖아.' 냅킨위에 가지런히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들리는 대답에 곧 웃었지만.
시나몬향이 나는 머핀을 집어든 경수에게 루한이 탁자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요즘 카이가 많이 바쁘지? 경수씨만 심심하게 생겼네."
"…어쩔 수 있나요 뭐. 그리고 하나-도 안심심 합니다."
"하하- 설마. 지루한 얼굴인데? 카이한테 말해봐. 나 심심해, 혼자 있기 싫다고. 놀아달라고 해봐."
"농담이라도, 살벌한 농담만 골라서하네요. 루한은."
'한번 해보라니까?' 우스개소린지, 진심인지모를 소리를 흘려들으며 머핀을 한 입 베어문 경수가 대답대신 엄지를 치켜들었다. '맛있어?' 아래위로 끄덕여지는 고개에 루한이 당연한거라며 웃었다. 그리고는 '리어라면 아마 뒤로 넘어갔을거야. 깜짝놀라서.' 라고 덧붙이는데 그게 꼭 상상이 되는터라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큭큭-'. '감동받아서 울걸요 아주-' 일에 치여 잊고있던 백현이, 문득 생각나 곧 경수가 씁쓸하게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울상은 뭐야. 한창 잘 웃고서는."
"루한도 친구랑 떨어져봐요. 혼자 남은게 얼마나 서러운데요."
"서러워도 할 일은 많아서 좋겠어.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갈텐데?"
"…할 일도 뭐…별로 없는데요 뭘."
"뭐가됬던, 너 편할대로 해. 널 위해 24시간 컵케익을 배달할 요리사도 있으니까."
어느새 비워진 접시를 제 손위로 올려놓은 루한이 다정한 목소리로 경수를 위로했다. 달그락-소리를 내며 포크와 나이프까지 올린 루한은 곧 경수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섰다. '방안에만 있지말고 산책도 좀해-' 문밖을 나서며 짐짓 충고하는 목소리에 경수가 옅게, 탁자위에 고이 놓여져있던 만년필을 다시 손에 쥐며 웃었다. 사람을 만나고, 진심을 얻는 행위는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가는 제게 여전히 힘든것이지만, 때때로 제 걱정을 해오는 루한을 통해 그것이 마냥 어려운것만이 아님을. 조금씩 깨닫는 중이었다.
*
아시아, 고작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건너온 한 조직이 뉴욕에 이름을 떨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SUNFORG] 흑사회나, 야쿠자, 신의안같은 조직명도, 그렇다해서 한국어도 아닌 영이름의 조직은 점점 미국주식시장을 기점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시작은 로렌스맨하탄의 약점을 틀어쥐고 주주들을 암암리에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 월가에서 내노라하는 투자의 귀재들이 절로 구미가 당길만한 조건들을 제시해 그들조직의 일원으로 포섭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것은 첫째도, 둘째도, 마지막도 돈임을. 썬포그는 그것을 잘 알고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돈으로 사람을 사고, 돈으로 돈을 뺐었으며, 그들이 가진 화폐의 가치는 날이갈수록 높아졌다. 그것은, 로렌스맨하탄의 제3세계 주식상장을 가로막은게 썬포그라는 소문이 비일비재하게 퍼짐에따라, 곧 썬포그의 재력과 능력을 원하는 이들이 제발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썬포그의 대표를 찾아 알음알음 미국 전주(州)에 퍼져있던 조직들이 뉴욕으로 모여들었다. 썬포그의 협력을 통해 제 세력들을 키우려는 그들은 저마다 젊은 대표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썬포그의 젊은 대표는 그런 그들을 향해 너그러이 손을 내밀었다. 주식의 한귀퉁이를 내어주며 그는 당부하듯 덧붙였다. '돈에, 목숨까지 걸지는 말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무시의 댓가는 끔찍했다. 썬포그에서 받아낸 주식들이 점차 휴지조각으로 변해가는것을 보며 그들은 뼈저리게 후회하며 다시 썬포그를 찾았다. 대부분의 조직들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고, 젊은 대표는 그들을 향해 다시금 기회를 줬다. 그 기회는 무섭도록 달콤한 것이기에, 어느 하나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것이, 점차 제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을보며 썬포그의 젊은 대표는, 그저 웃음지을 뿐.
"첸이 도착했습니다."
썬포그. 뉴욕 본사. 차분한 비서의 음성에 찬열이 읽던 책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최근 들어 일에 치이고 치여 정신이 없었다. 그 중 7할은 백현을 신경쓰느라, 나머지 3할은 카이렌의 카이때문에. 다행스럽게도 백현은 빠르게 회복하는 중이었고, 요새들어 얼른 경수를 찾으러가자며 제게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기에 찬열은 백현을 어르고 달래기만 할 뿐. 책상 앞, 소파위로 걸어가며 찬열은 어깨위로 내려앉은 피곤을 떨치고자 허리를 뒤로 크게 젖혔다. 우드득- 눌려있던 뼈들이 제자리를 찾아 움직인다. 젖힌 허리를 다시 세운 찬열이 소파에 앉았을때, 마침 열린 문 사이로 반짝거리는 에나멜 구두가 불빛에 빛났다.
"조슈아- 오랜만이야. 요즘 돈벌이가 쏠쏠하다며?"
"일단 앉아봐. 오늘 패션코드는 아주 미국으로 잡았냐 정신사나워 미치겠네."
아래위로 통일한 붉은 자켓에 레드진은 고사하고, 한쪽은 흰색, 한쪽은 파란색 셔츠는 어디가면 구하는건데. 앞서가도 너무 앞서가는 첸의 옷차림을 못마땅한 눈으로 훑어내린 찬열이 반대편 소파를 가리켰다. 그 위로 앉은 첸이 찬열을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즐거운듯 한껏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찬열, 꽤 일을 잘하는데-' 칭찬같지도 않은 칭찬이라, 찬열이 대답대신 탁자위의 찻잔을 첸쪽으로 밀어냈다. 첸이 좋아한다는 중국보이차가 잔 안에서 흔들거린다.
"센스있는데? 내가 이차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고- 오비서가 기억력이 좋아."
"누구비선데 그걸 까먹어. 됐고, 내가 부탁한건 알아봤어?"
"…음, 니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던데."
뜨거운 차를 몇번씩 나눠마시던 첸이, 제게 물어오는 찬열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 태도에 찬열이 미간을 찌푸리다, 곧 입을 열었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그때 장의사를 찾아봤는데, 이미 죽었더라고. 하다못해 묫자리를 알아보던 풍수지리사,
장례를 주관하던 집사까지 장례식과 닿아있는 사람은 다 찾아봤어."
"그래서."
"다 죽었어. 심지어 그녀의 장례식을 참관한 샤오위의 여동생까지."
이미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고 첸이 덧붙이듯 말을 이었다. 반쯤 비워진 찻잔위로 찻물을 부어내리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박찬열이 실망하기엔 이르니까.
"…단 한명만 빼고 말야."
"누구. 다 죽었다며, 산 사람이 있어?"
"샤오위. 샤오위는 살아있어. 그녀의 죽음을 목전에서 봤다는 사람이 샤오위라고, 은연중에 들었던게 기억이나서.
조만간 뉴욕에 들른다니까, 네가 만나보는것도 좋을거야."
"…샤오위가 뉴욕에는 왜? 카이라면 치를떠는 노인네가."
"카이와 담판을 지을모양이야. 얼마전 카이가 중국흑사회의 하부조직을 건드렸거든."
사실, 건드렸다기보다는 아예 쓸어버렸다고 하는편이 맞을 것이다. 샤오위의 둘째딸이 운영하는 조직이 카이렌의 마약유통을 전면에서 방해하고 나섰기때문에. 중국마약유통을 주관하던 흑사회에서 카이렌의 마약밀매를 막은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문제는 카이의 통솔하에 이뤄지던 것임을,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함에 있었다. 그일로 샤오위의 딸은 제 손에 꽉잡고 있던 마약유통망을 카이렌에 일부분 넘기듯 뺐겨야했고, 샤오위는 멍청한 둘째딸을 집에서 내쫓았다지. 짐짓 재밌다는 어투로 설명하는 첸의 말을 들으며, 찬열은 '콩가루집안이야 그집은.'라고 덧붙였다. 샤오위가 화날만도 했겠네. 누군들 제 밥그릇 건들면 열받기 마련인데, 그 양반이 가만있을리가 있겠나.
"조만간 자리를 마련할게. 샤오위는 아마 알고있겠지."
"눈앞에서 죽었다는데 뭘 알고말게있어. 약속지켜, 자리 꼭 마련해."
"알았다니까, 걱정은. 근데 조슈아-"
다 비워진 잔을 손안에서 여유롭게 굴리던 첸이 짐짓, 궁금한 표정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그를 향해, 찬열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왜.' 제 물음에 첸이 입을 여는것을 보며, 찬열이 몸을 뒤로 젖혔다. 찬 소파가죽이 셔츠안으로 냉기를 뿜는다.
"왜 그녀를 찾는걸까…그것도 갑자기."
"누굴. 그녀가 누군데."
"카이의 모친. 이미 옛날옛적 죽은 사람을."
"…"
"왜 지금와서 다시 찾는건지. 난 그게 너무 궁금해. 파트너쉽을 맺었으면 비밀이 없어야지,
무턱대고 일감만 던져주는게 어딨어. 나 섭섭해."
끝에가서 짐짓 엄한눈을한 첸을, 찬열은 대답없이 바라보았다. 손안에서 돌고있던 찻잔이 찬열의 움직임을 쫓아가듯 제 몸을 굴렸다. 이윽고, 침묵뒤에 열리는 목소리가,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는. 감히 예상하지 못할것임에, 첸의 손 위에서 노닐던 찻잔이 힘없이 바닥위로 추락한것은 아주 잠깐 뒤의 일이었다.
12화를 보내며. |
여느때와 다름없이 달려온 12화입니다. 쓰다보니 상념이 길어져 이렇게 내용을 바꿨네요. 가볍기로한 내용이지만, 조금은 진지할때가 필요한것 같아서^^
(음. 그전에 우리 그냥 이렇게 정해버려요. 제가 온다고 정한날은...그냥 담날이 되는겁니다...지금 12시 넘겼네.. 무슨수로 독자님들을 뵈어.... 휴우....)
전 11화 스포와 조금은 다른가요..? 하하;;; 날고뛰는 종대가 사라졌나...하지만 종대 사랑해요.
큐인미쓰면서 이제 1부도 거의 중반에 다왔네요...이런...2부는 언제 시작한담.
이번화는 경수와 카이의 감정선을 다듬고 찬열이의 안정적인 미국눌러앉기 그리고 끝부분즘에 드러나는 복수극의 서막... 무엇보다 첸과 찬열사이의 대화겠네요. (덤으로 카이에게 흔들리면서 그를 배신하는 경수가...가장 놀라워요.)
그럼, 각설하고 다음화 스포.
1. 흑사회의 샤오위(이분이..카이 할아버지 되십니다) 2.종인 과거... 3.차..찬백행쇼?
그리고 가장 중요한거
짜파게티 쏘울 싸막여우 찬사 돼지 이티 에이크 오탁구 나트라 컬밋 가젤 서랍장 우리집(반가워용) 로니 쁘띠첼 스티치 됴경수역 미겠 탐라 동동 링세 실 나쵸(반가워용)
이번편 읽고 우리..다음주 화요일봅시다. (한가지 덧붙여서, 큐인미. 회원공개로 돌릴까요? 여러분 의견을 먼저 물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