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In mysterious 13
WRITTEN BY. 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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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회의 샤오위가 미국에 귀국한지 일주일이 흘렀다. 썬포그와 흑사회의 긴밀한관계를 염두해두었던 찬열로썬,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긴 샤오위의 심중을 헤아릴수 없어 골치를 썩는 중이기도 했다.
아직 그는 어렸다. 제 할아버지의 자리를 어부지리격으로 받긴했지만 고작 스물후반의 보스가 하나의 조직을 끌어들이는데 있어 가장 걸림돌은. 경험이었다. 찬열에게 단 한가지 부족한것은 신의안의 첸이나, 카이렌의 카이와는 다르게 그가 실무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인데- 타고난 감으로 썬포그를 뉴욕에 안전하게 상륙시킨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가 문제였다. 썬포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결속시켜 카이렌의 목을 치기위해 흑사회의 샤오위라는 든든한 배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불과 한달전만해도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던 샤오위에서 몇일째 묵묵부답이니. 향후 상황을 염두해보면 충분히 애가 탈만한 일이었다.
"조만간 우리쪽에서 연락을 넣겠습니다."
낮은 목소리의 세훈이 찬열을 향해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테이블 위로 식어가는 커피잔을 들어 여비서에게 건낸 세훈이 대답없는 제 보스의 숙여진 고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생각과 상념으로 복잡하게 굴러가고 있을 보스가, 어떤 이유로 이처럼 초조해하는지 짐작하는 바였다.
"아니. 그럴필요없어."
얼굴위로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든 찬열이, 세훈의 예상과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의아한 눈을 한 세훈이 조심스레 '…괜찮겠습니까? 샤오위가-' 라고 입을 여는데, 찬열이 말꼬리를 끊었다.
"조만간 샤오위가 썬포그에 들릴거야."
"샤오위가…요?"
"방금. 전화가 왔는데, 내일 안으로 온다네.
오비서는 샤오위가 좋아할만한 전병이나 몇개 구해놔. 영감들은 단걸 좋아하잖아."
"…정확히 몇시쯤에 온다고 했습니까."
"오후 일곱시즈음. 식사는 알아서 먹고오라했어. 내가 영감님 식사까지 챙겨드릴 의무는없으니까."
나보다 돈도많은 사람을- 짐짓 퉁명스레 말을 이은 찬열이 여즉 서있는 세훈을 향해 '얼른 준비해, 뭐하냐 오비서.' 라고 말하자, 그제야 얼떨떨하니 있던 세훈이 음음- 목소리를 가듬곤 입을 열었다.
"설마…샤오위의 마음이 돌아선건…그럴 일은 없을테지만 말입니다. 첸이 다른말은 없던가요."
"아니. 별말 없던데, 최근들어 카이가 성격이 변했다는것만 빼면."
데스크 뒤로 의자를 돌려 커다란 창 밖, 뉴욕 시가지 아래로 감흥없이 시선을 움직이던 찬열이 곧 말을 이었다. 꼴에 가을이랍시고, 여섯시 겨우 넘겨서야 해가 저물어간다.
"로렌스 맨하탄이 제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니까, 꽤 골치를 앓나봐."
"경수의 도움이 컸습니다."
"응. 조만간 경수도 데려와야하는데. 하지만…아직 오필리아를 그곳에 둘 수 밖에 없어."
대답은 그리했어도 찬열은 얼굴을 굳혔다. 경수를 프로파일러겸 해커의 명목으로 카이렌궁에 두긴했지만, 여전히 걱정되기는 매 한가지였다. 아무리 '그 자'가 있다고 해도 그가 경수를 확실히 서포트해줄지도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카이가 경수의 위험한 행동을 알아챌 수도 있었다. 카이는 선천적으로 감이 좋았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자신을 향한 죽음의 손길들을 칼같이 예측하는 것이었는데, 자신은 카이의 그런점에 더 반감을 가졌다. 사람같지 않은 놈, 짐승이라 표현하는게 더 맞겠지. 화려한 야경아래로 무건조한 시선을 던지던 찬열을 향해 세훈이 입을 열었다.
"정확히 한시간 전, 서신이 왔습니다. '그 자'가 직접 와서 전해주더군요."
"직접? 쉽게 움직일 수 없을텐데."
"최근 감시가 소홀해졌는지, 웬만한 거리정도는 혼자서도 다닐수 있답니다.
…표정도 꽤 느긋해진것 같았습니다."
전과는 다르게 유하게 풀어진 그의 표정을 떠올리며, 세훈은 뒷말을 이었다. 찬열의 눈동자위로 색색의 불빛이 겹쳐올랐다.
"카이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자세한건 들어봐야 알겠지만,
최근들어 카이가 눈에띄게 바빠졌다는 군요. 조만간 첸을 만날거라고 합니다."
"이리줘봐."
갈색봉투안에서 만년필을 꺼낸 세훈이 찬열에게 그것을 건낸다. 겉으로는 온전한 펜의 형상을 띄고있는 그것은 사실, 썬포그 내에서 자체제작된 소형 녹음기였는데, 일반 사람들은 쉽게 구분할 수 없을정도로 그 모양새가 정교했다. 펜의 머릿부분을 가볍게 누른 찬열이 그것을 제 귓가로 가져간다. [치직- 보스-] 근 일주일만에 듣는 익숙한 목소리, 찬열은 옅은 미소를 그렸다.
*
"보스. 저 다 나았습니다. 보세요, 여기 팔에 상처- 다 없어졌다니까요?"
"하- 백현아."
"아니, 저기 보스. 제가 지금 멀쩡해요. 사지육신 생채기 하나 없는데, 왜 경수를 못찾으러 가는겁니까? 예?"
"내가 말했잖아. 경수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니까."
"아니, 아 그러니까. 그자가 그놈이 누군데요. 누굴믿고 도경수를 맏겨요? 세상에 믿을놈 하나 없는데?!"
'나도 날 못믿어서 이모양이꼴인데!?!' 결국 제 화를 못이긴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쾅쾅- 굴렸다. 재수없게 자동차 파편에 목뒤를 스쳐 꼬박 이주간 준면의 개인치료와 보스의 끔찍한 보살핌을 받은 자신이었다. 과분한 애정과 관심으로 이제 몸도 멀쩡하고, 몸에서 철철 흘러내리던 피는 수혈을 통해 완전히 채워졌는데. 자꾸만 보스는 제게 사건후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나가려는 제 손을 잡아왔다. 그때마다 경수와 보스를 사이에 두고 고민아닌 고민에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왔다며 툴툴거리는 자신에게, 오비서님은 이렇게 말하더라- '넌 복에 겨웠어. 똥강아지.' 모두 제가 알 수 없는 말들이었다. 다급하게 코트안으로 팔을 끼워넣는 백현을, 찬열이 그의 허릿춤을 엉성하게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야 야- 백현아, 경수 괜찮다니까?!"
"괜찮고 뭐고 일단좀 놔보세요- 아 진짜 보스 저 금방 다녀올게요!!"
"가는길도 모르는애가 어딜가?! 카이렌궁이 어딨는지도 모르면서!!"
"3박4일 미국횡단한다치죠 뭐!!"
제말에 한치도 지지않고 꼬박꼬박 받아치는 백현을 향해 찬열이 무섭게 인상을 굳혔다. 남들이 봤다면 두 남자가 대낮에 서로를 껴안고 있을 꼴이지만 실은 두 사람, 서로를 있는힘껏 노려보는 중이었다. '내말들어.' '일단 놔보세요.' '도망갈거잖아' '…' 대답대신 입꼬리를 내리는 백현을, 찬열이 그의 허리를 감았던 손을풀어 어깨위로 올렸다. 단 이주사이 말라버린 어깨위로 제 손가락이 감겨드는데, 마른 뼈마디가 고스란히 느껴져 방금전의 이유와 다르게 인상을 더 굳힌다.
"내가 뭐라고 했지."
"…기…억 안나는데요…"
설마, 기억이 안날리가. 눈동자를 슬금슬금 피하며 고개를 돌리는 백현에게 찬열이 짐짓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명색이 저격수가 네 감정하나 못 다뤄서 어떡할래. 총만 잘쏘면 되는것같아?
지금처럼 욱하는 마음에 저번처럼 나섰다가 너 어떻게 됐지? 온 몸에 붕대는 칭칭감고서 이주동안 병원침대에 누워있는거- 하,
지금 나보고 그 꼴을 또 보라는거야?!"
차분히 이성적으로 설득하자는 마음은 어디가고, 어느새 언성을 높인 찬열이 제 눈앞에 숙여진 정수리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백현은 찬열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내렸고, 찬열은 그런 백현의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 돌렸다. 잘근잘근 깨물던 입술위로 붉은기가 베여오른다. 입술옆, 멍들었던 붓기는 이제 거의 가라앉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정도였다. 찬열은 그 위로 제 손가락을 올려 살살-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후…어쩌다 보니……미안하다."
"아, 아닙니다 보스."
분명 제가 화를 내는게 당연한 상황인데, 왜 사과가 먼저 튀어나가는건지-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제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그는 백현을 달래기로 마음먹었다. 제 사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저 상황에 뻣뻣이 굳은 백현을 향해, 찬열이 옅은 웃음을 그려보였다.
"조만간 '그'와 만날생각이야."
"…혹시, 경수…를 도와준다는 사람말입니까? 그자가 선상에서부터 도와줬다고-"
"응. 믿을만한 사람이지. 경수가 직접 소개시킨 사람이거든."
"경수가요? 도경수가 사람을 소개해요?"
"그러니까 믿을수 있는 사람이야."
자신을 향해 안심하라는듯 어깨를 다독이는 찬열을 향해 백현이 입술끝을 몇 번 다물다 풀었다. 보스가 이렇게까지 평가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이긴 한데, 정작 그를 만나지 못했다는사실에 제 마음이 불편하다. 경수를 둘러싼 이런저런 생각에 가만히 서있는동안, 어느새 조심스레 자신을 끌어당기는 보스의 행동에, 백현이 눈을 크게떴다. '보,보스?-' 맞닿은 어깨위로 찬열이 얼굴을 묻었다.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뭐라뭐라 말하더니, 곧 얼굴을 옆으로 틀어 백현의 귓가 가까이 말을 꺼냈다.
"한 번더 말해두는데,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
"…"
"다음부턴, 그러지마. 내 명령없이, 절대 움직이지마."
제 품안에서 굳어버린 백현을, 찬열은 손을 좀 더 내려 그의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뒷말을 이었다. 간간히 움직이는 턱짓을 보아 백현이 입을 벙긋거리는듯 싶었다. 당황한 얼굴을 생각하자니, 말투에 웃음기가 베여들었다.
"확- 어떻게 해버릴까보다."
사실, 말보다야 행동이 확실하다만. 당황함에 숨소리조차 멎어버린 백현을 몇 번이고 더 끌어안은 찬열의, 얼굴위로 감출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두 사람, 아니 적어도 한 사람에겐 따스하면서도 가슴께가 두근거리는 포옹이라고, 그가 생각했다. 먼 훗날의 싸움보다. 당장 눈앞의 사람이 제겐 더 의미있게 다가왔으므로.
*
흰 붕대위로 핏물이 스며드는것을 보며 타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은거야?' 대답대신 가로젓는 고개짓에, 그의 상처가 꽤 심각한 상태임을 예감하고선, 핸드폰을 꺼내 주치의를 부르려는데.
"괜찮아. 어제 치료받았다고."
"내가 보기엔 아닌것같은데. 괜찮다는 상처가 또 피를토하나, 됐으니까 의사부를게."
"됐다니까."
하지만 제 대답은 듣지도 않은채 액정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타오를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카이가 곧 그의 핸드폰을 잡아챘다. 얼마나 됬다고, 그새 수신음이 걸리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행동에, 당황한것은 타오쪽이었다. 아픈놈이 대체 왜저러는거지? 몇일전, 뉴욕 소호거리를 걷던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든 행인 한명이 카이의 옆구리를 재빨리 찌른채 자취를 감췄다. 잠깐, 눈깜짝할 새에 카이의 옆구리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아올랐고, 카이를 찌른 녀석은 사람들사이로 제 몸을 감춰 아직까지도 찾아내지 못한상태였다. 주위에 포진되어있던 카이렌의 전문 가드들조차 못 찾아낼정도라면 그저 어디서굴러먹던 잔챙이는 아니란건데- 피가 새어나오는 상처부위를 다시 붕대로 감아올리던 타오가 인상을 굳혔다. 무리해서 소호만 안갔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꽉- 동여맨 붕대를 가위로 끊어내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소호는 왜 꼭 가야했을까. 네 피앙새가 네 마음을 알아주는것도 아닌데 말야."
"…꼭 경수때문인것처럼 말한다?"
"가만있는 경수씨를 내가 왜 들먹여. 바보같은 카이킴의 행동을 욕하는거지."
"…모름지기 선물은, 정성이니까."
"정성이랍시고 온종일 뉴욕을 헤집는건 아니라고봐. 경수씨가 퍽이나 좋아하겠어."
"그럴거야. 아마도."
꼬박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고르고 골랐다는 선물이- 하, 카이킴에게 이런날이 올때도 있구나, 싶어 타오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선물은 선물이고, 급하게 치료를 마친지 이틀이 지난 상처가 자꾸 힘없이 벌어지는게 영 마음에 걸리는 터였다. 조만간 닥터를 한번 불러들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타오가 반 쯤 남은 붕대를 칭칭-감아 서랍안에 넣었다. 자신과 카이, 그리고 몇 안되는 이들을 제외하고선 그 어떤 누구도 카이의 피습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샌가 발길이 뜸해진 카이를 그저 바쁘다고만 알고있는 경수를 떠올리며, 타오가 입을 열었다. 탄탄한 복근위로 메여있던 붕대가 내려진 티셔츠에 모습을 감춰있었다.
"경수씨는 카이킴이, 널 위해 다쳤다는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울면서 내 상처를 치료하겠지."
"설마. 도망이나 안치면 다행이게."
"그럴일은 없어."
단호한 대답에 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감히 도망칠 생각도 못할거다. 그사람은. 침대위로 흩어져있던 이불보를 카이의 몸 위로 끌어올린 타오가 화제를 바꾸며 말을 꺼냈다.
"샤오위가 귀국했어. 이미 한 주가 지났고, 오늘 내일안에 카이렌궁에 들릴거야."
"중국에서의 일 때문인가? 제 멍청한 딸년생각은 안하고 내게 따져들겠다?"
"충분히 열받을만한 일이었어. 마약루트는 그쪽에서 이미 독점권을 행사하고있었다고.
샤오위성격에 널 살려보낸것만 해도 대단한거야."
"…아니. 감히 날 건드리다니, 샤오위가 미치지않고서야."
거만한 어조로 고개를 주억거리던 카이가, 곧 말을 이었다. 지끈거리는 상처위로, 그는 제 손을 올려 그 위를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조슈아가 먼저일까. 그래도 명색이 손자놈이 우선일까."
등을받친 베게위로 깊게 몸을 묻으며- 생각하는듯 하더니, 제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아마도. 전자겠지."
"…"
"영감은 날 증오하니까. 끔찍하게."
*
찬열의 생각보다, 샤오위는 많이 늙어있었다. 언제고 몇 년전 중국에서 잠깐 흑사회에 들러 얼굴을 본 적은 있었지만. 고작 삼, 사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늙어버릴수가 있는지- 그간 흑사회에 폭풍이 몰아쳤나 싶을 정도였다. 천천히 찻잔위로 물을 부어 다선(茶筅) 으로 그 위를 저으니, 그때까지도 아무말 않던 샤오위가 입을 열었다.
"차는 꽤 타본 솜씨일세. 자네 할애비가 가르치던가."
"…눈동냥으로 몇 번 봤을 뿐입니다. 내세울만한 실력은 안됩니다."
"눈동냥 치곤, 폼이 그럴듯하네만."
대답대신 제 쪽으로 찻잔을 올려두는 찬열을 샤오위가 눈으로 한번 훑고는, 찻잔을 손위로 올려받쳤다. 천천히 찻잔을 입술위로 기울이며 그가 차향을 음미할동안, 찬열은 제 몫의 찻물을 저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을 바라보며 몇 번 고개를 끄덕인 샤오위가, 말을 꺼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힘든점이 무언지, 아는가?"
"…글쎄요.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아니. 아닐세. 사람은 다 똑같아. 늙은놈들은 더더욱."
"샤오위께서 답을 말씀해주시죠. 전 늙지않아 모르겠습니다."
당돌한 대답에 샤오위가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제 할애비를, 닮아도 너무 닮았다싶어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제 손주놈도 자신의 반만 닮았으면 적어도 그모양은 아닐거라고, 스치듯 생각을 떠올린 샤오위가 대답을 기다리는 찬열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급해지며, 쓸떼없는 겁이 많아지고, 알고 싶지않아도 눈치만 늘어나서는-"
"…"
"지금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게 되는법일세."
"…"
"카이에 대해서 궁금한가? 그게 아니라면, 내 대답을 확고하게 듣고싶은가."
짐짓 다 알고있다는 그의 어조에, 찬열이 짐짓 생각하는듯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다, 곧 시선을 들어 샤오위를 마주봤다. 굽힐것 없는 그의 시선에 샤오위가 느긋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과거에도, 이 눈은 지금처럼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었다.
"카이렌을 와해시킬 생각입니다. 그에 관해 흑사회의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지만,
아직 샤오위의 의중이 확실치 않아 결례를 무릎쓰고 다시 여쭈겠습니다."
"흠-"
"샤오위께서는. 카이렌을 저버릴수 있으십니까."
"…내가 자네를 선택한다는 확신하에 하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당돌하군. 겁이 없어. 어찌 그런생각을 하는겐가- 아무리 사이가 안좋은들 할애비라도 제 손주는 손주인 법인데."
"엄연히 친 손주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뿐인 아들, 그 아들의 아들은 패륜을 저질렀다. 찻잔을 내려놓는 샤오위의 행동을, 덤덤한 시선으로 훓어오르던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든것이 제 자리를 찾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는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직감이 떠나가기전에, 자신은 얼른 그것을 현실로 끌어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한치 헤아리기 힘든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샤오위를 향해- 찬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자네와 손을 잡겠네. 도움이 필요한 대로 연락하게."
"감사합니다."
"그전에, 한가지 확답을 받아야겠어."
가라앉은 분위기위로, 샤오위의 대답에 찬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식어버린 찻잔위로 가라앉은 찻찌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감흥없는 시선으로 그 위를 훑어내리던 찬열이, 곧 제게 들리는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카이렌을 자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내 손주는 다치게 해선 안되네.
그 아이를 곧장 내게, 일이 끝난 뒤 중국으로 보낼 수 있겠는가."
이거였나. 샤오위가 내거는 제안을, 찬열은 드러나는 표정을 숨긴채 생각하는듯 눈을 감았다, 떴다.
제 아비를 죽인 패륜아를 샤오위는 감싸려는 건가, 아니면 반대로 그의 손으로 벌을 내리려는 것인가. 심중을 알 수 없는 노인의 말을 곱씹으며 찬열은 생각을 이어나갔다. 카이렌을 치기 위해선 샤오위의 배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바, 그런데 샤오위는 카이의 안전을 요구한다. 마치 그 태도가, 카이렌은 뭐가 되던 좋으니 대신 카이는 건들여서는 안된다, 라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아 찬열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묘하게 압박해오는 샤오위의 심리전이 제 목을 죄어온다. 찬열은 다물었던 입을 열어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래야만. 협력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럴세. 자네의 대답은?"
카이를 잡기위해서 샤오위를 잡아야한다. 하지만 카이를 제 손에 쥐지 않으면 카이렌을 없애는 것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교묘하게 상황을 틀어나가는 샤오위를 향해, 찬열이 대답했다. 샤오위가 이렇게 나온다면야, 자신도 생각은 있었다.
"좋습니다. 카이의 향후거취는 흑사회에 맡기겠습니다."
제 대답에 만족한다는 듯, 소리없이 웃어보인 샤오위가, 얼마안가 의외의 말을 꺼낸다.
"카이를 왜 그리도 못죽여 안달인가."
"…사람 싫은데 이유없잖습니까. 그 뿐입니다."
"자네 어머니 때문이겠지. 허긴, 그 집안에서 카이를 살려둔 것도 용하네만."
"…"
"카이를 원망하는가? 그 아이를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을게야. 하지만, 나라고 내 손주를 죽게 놔둘수는 없잖은가."
"…"
"대신. 내 자네에게 한 가지 조언정도는 해 줄수 있네."
언제부터였더라. 카이를 증오하지않으면, 자신이 살 수가 없게 된 때가. 지독한 그 세월동안 찬열을 지탱한 원동력은, 카이였노라- 찬열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않았던 본심을 드러내는 찬열을 향해, 샤오위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꼬아버린 과거의 인연이- 오늘날 이런 파장을 갖고 올줄은, 전혀 예상한 바가 아니었음에 샤오위의 얼굴위로 깊은 수심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내 곧 얼굴을 굳히곤 차갑게 내려앉은 시선을 한 샤오위가 찬열을 향해 조언을 덧붙였다.
"세상에, 아비를 죽이는 그 따위 끔찍한 짓을 행하는 자식이 어딨단 말인가."
"…"
"내 손주는 정상이 아니야."
"…"
"그것만 알아두게."
감히, 자네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차마 뒤잇지 못한 말 너머, 피에 온 몸이 젖어내리던 손자가 떠올라, 샤오위가 눈을 감았다.
SRORY LINE | ||
앞으로 큐인미 내용에 무게감이 실릴것같습니다. 문체던 줄거리던, 뭐가 되었던 간에 말입니다. 적당히 가볍고 즐길수 있던 1~9화 까지였다면, 10~n화 까지는 진지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것 같아요. 지금 구상한 줄거리가- 앞으로 여러분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풀어낼 내용이 많네요...아직도, 앞으로도^^;;
최근들어 결말에 대해 여쭈시는 분들이 계신데...나름 긔뜸을 하자면. 카이는, 아마 카이에게 지옥이 있다면 그 끝을 맛보게 될것같습니다. 그렇다고 새드엔딩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2부까지 완결을 기준으로 말씀드립니다.
경수, 찬열, 백현- 그리고 다른 엠,케이 멤버들 모두 얽히고 설켜서 1-2부 내용에 따라 비중도 달라질 거에요. 카이의 가족사는… 그 부분은 1부 마지막에서, 2부시작과 함께 극을 이끄는 중요한 화두가 될겁니다.
1부는 20중반을 기점으로 끝맺을 생각입니다. 마음같아서야 30분량도 훌쩍 넘기고 싶은게 제 마음이지만, 정해진 분량을 건들여봤자 되려 엉망이 될것같아서;; 2부는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오늘 내용은
'그자'에 관한 백현과 찬열의 대화, 카이의 피..피습!! ㅜㅜ 샤오위...어르신과 찬열의 만남. 카이과거- 그리고..힌트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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