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쓰레기 형
왁자지껄, 닫혀있는 자신의 방문 밖으로 서로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눌 친척들이 눈에 훤했다. 문을 잠궈도 틈새로 들어오는 기름진 음식냄새에 절로 미간이 구겨지고, ' 떡국' 거리면서 울리는 메신저 알림음도 맘에들지 않았다. 정신없이 울리는 단체카톡방엔 친구녀석들이 제주도로 여행을 가서 찍은 단체사진, 음식사진따위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원래같았으면 그 단체사진속의 송민호 옆에서 같이 포즈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어야할 자신은 냉기가 도는 방안에 쳐박혀있다는 사실이 짜증이났다.
〃왜 하필 우리집이 큰집인거야 ‥.〃
설날? 별로 반갑지도 않은 친척들이 자신의 집을 어지럽히고 시끄럽게 한다는것, 징징거리면서 자신의 물건을 만질 사촌동생을 생각하면 너무도 싫었다. ' 나 설날에 친구들이랑 제주도갈래.' 당연히 허락해줄거라 믿었던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 너 곧 서울로 올라가잖니. 집에 좀 있어라. ' 말을 마치고선 한숨쉬는 엄마때문에 반항한번 못하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기름냄새가 퍼지지않게 켜놓았던 아이스블루민트향초의 시원한 향이 방에 그득해질즘,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 나와서, 인사좀 해,태현아. ' ' 싫어! ' 침대깊숙히 몸을 묻고있던 나를 강제로 일으켜, 기여코 방밖으로 내보낸 엄마가 호들갑스럽게 웃으면서 친척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 엄마!
〃 태현이 많이 컸죠? 〃
설날때마다 집에있지않고 이곳, 저곳 쏘다니느라 보지못했던 친척들의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하자니 영 어색하기 짝이없었다. 누가 누군지 가물가물해서 자신을 붙잡고 아는척하는 친척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했다. ' 어이구, 더 잘생겨졌네.', ' 태현아 너 가수한다며? 제정신이니? ', ' 오빠, 거기가면 나 지드래곤 싸인 받아주는거야? '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이래서 집에있기 싫었던건데.
〃 어머, 제가 꼴지에요? 〃
한참 북적거리며 자신에게 쏟아지던 관심을 힘들게 받고있는데, 벌컥하고 열리는 현관문소리에 친척들의 이목이 현관으로 쏠렸다.
나는 그제서야 친척들에게 멀찍이 떨어져앉아 현관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꽤나 많이바뀌어서 못알아볼뻔했지만, 예전에 자주 놀곤했던 사촌누나였다. ' 차가 밀려서 늦었어요 ~ ' 여전한 하이톤 목소리의 사촌누나가 현관에 짐을 내려놓으며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친척들은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 그래도 오랜만에 이렇게 다 모였네. 이제 더 올 사람도 없죠? ' 엄마가 주방에서 다과를 들고나오면서 신이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또 다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아직 더 올사람이 있나? ' 하며 웅성거리는 친척들을 뒤로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과를 챙겨서 방에 들어갈 참이였다.
〃 안녕하세요. 〃
다과를 담을 접시를 찾기위해 주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거실쪽에서 별안간 들려오는 남자목소리에 사촌누나가 남편감을 데려왔구나. 하고 짐작했다. 하긴, 결혼할 나이가 되었긴했지.
적당한 크기의 접시와 식혜를 챙겨서 거실로 나왔더니 사촌누나와 낯선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평소 살가운 성격은 아닌지라,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접시에 다과를 덜어내고있는데 사촌누나가 그런나를 발견한건지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내왔다.
〃 남태현, 오랜만인데 섭섭하게 인사도 안하구! 〃
〃 뭘, 또 섭섭해하고 그래. 〃
〃 센치하게 구는건 여전하네. 승윤씨, 얘가 태현이야. 〃
사촌누나가 내쪽을향해 뒤돌아 앉자, 넓찍한 등짝만 보이던 낯선남자도 누나를 따라서 뒤돌아 앉았다.
〃 태현아, 이쪽은 나랑 결혼할 사람이야. 〃
카키색 코트가 제법 잘어울리는 남자에게서 내가 가장 먼저 눈이간건 빨갛게 물든 손이였다. 무슨 손이 저렇게 터질듯이 빨갛지? 하고 생각하는데 그 빨간손이 내게 건내지는걸 보고 서둘러 나도 손을 들어 맞잡았다. 맞물린 손을 한 번보고, 고갤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쭉찢어진 눈매에, 오동통한 입술. 어딘가 익숙한 그 얼굴에 고갤 갸우뚱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지?
〃 강승윤! 〃
내가 외치고서도 놀라서 한손으로 입을 막자, 남자가 작게 웃어보였다. 사촌누나는 ' 너보다 형인데 버릇없어, 남태현. ' 하면서 장난을 쳤다.
〃 아, 죄송해요. 너무 놀래서 … 그, 그 강승윤 맞죠? 〃
그러고보니 여태 맞잡고있는 손에서 땀이베어나왔다. 왜 안놓아주는거지? 따위의 의문이 들새가없었다. 내 앞에있는 남자가 ' 그 ' 강승윤인지 아닌지가 우선이였다.
〃 응. 〃
〃 … 〃
〃 맞아요. 그 강승윤. 〃
와아, 대박! 모처럼 흥분한 내가 두눈을 반짝거리자, 친척들이 나와 강승윤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 승윤씨가 예전에 유명한 오디션에 나온적이 있거든요. 지금은 프로듀서로 유명하기도 하고. ' 누나의 말에 친척들은 ' 민희가 능력이있었네. ' 따위의 반응을 보였고 누나는 기분좋은듯 웃어보였다. 나는 더이상 축축해진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있는게 민망해져서 먼저 손을 놓았다. 맞닿았던 온기가 사라지자 왠지 아쉽다고느껴졌다. 땀범벅인 손을 바지자락에 대충닦아내고 조심스럽게 승윤을 바라보자, 나를 계속보고있었는지 시선이 마주쳤다. 꽤나 만나고싶었던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인 그 앞에서 허름한 차림세로 있다는게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시선을 피해버렸다. 보나마나 내 얼굴은 빨갛게 물들었을테고 ‥
〃 태현씨. 〃
예,예! 내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자 그게 또 웃겼는지 환하게 웃어보인다. 사촌누나는 때늦은 저녁준비를 하기위해 주방으로 들어간 엄마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자기, 나 저녁준비하고올게. ' 익숙하게 '자기' 라고 부르는 그 애칭에 미간이 구겨졌다.
〃 만나보고싶다고 생각했어요. 〃
〃 저,저를요? 〃
병신같이 말이 계속 더듬거리면서 나갔다. 떨리는걸 어떡하라고 ‥.
〃 응. 민희말 듣고 태현씨를 상상했었는데. 〃
〃 …. 〃
〃 생각했던것보다 … 〃
' 자기야, 차에 갈비 재어두었던거 가져와줄래? '
침까지 삼켜가며 승윤의 다음말을 기다리는데, 주방에서 들려오는 사촌누나의 외침에 승윤이 뒷말을 마저하지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하는 표정으로 승윤을 바라보자 그는 웃기만할뿐, 뒷말을 더 해주지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서 덜어놓은 다과와 식혜를 거실에 그대로 둔채 방으로 들어왔다. 시원한 방의 향기에 기분이 더 내려앉았다.
* * *
〃 어? 신경쓰지말고 계속해요. 〃
어떻게 신경을 안쓰냐구요.
귀에 꽂아넣었던 이어폰을 빼고서 곤란한 표정으로 승윤을 쳐다보았다. 더 이상 음악이 들려오지않는 고막으로 시끄럽게 떠드는 친척들의 말소리가 들려왔고, 승윤에게서 희미하게 술냄새가 풍겨져왔다.
내가 노래녹음을 하던 컴퓨터를 멈추자, 승윤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더 가까이 다가와서 가사가 쓰여져있는 종이를 가져갔다.
나도 이노래 좋아하는데 - 하면서 침대에 앉은 승윤이 처음엔 들릴듯말듯하게 허밍하더니 자신을 쳐다보고있는 나의 눈을 피하지않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는 사실보단, 그의 매력적인 음색에 절로 감탄하게되었다. 오래전 텔레비전속 승윤의 음색보다 더 단단해진 보컬에 새삼 부럽기까지했다.
얼마지나지않아서 승윤이 노래를 다 불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못하고 나는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 태현씨? 〃
〃 … 〃
〃 뭘 그렇게 빤히봐요. 사람 부끄럽게. 〃
능글맞게 웃으면서 어느새 가까워진 얼굴에 나는 불에 데이기라도 한것처럼 화들짝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요한 방안에 승윤과 나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뭐라도 말을 해야할것만 같았다.
〃 꿀,꿀물 타드릴까요? 〃
그리고 고작 생각해낸 말이라곤 저거였다.나는 일단 이방에서 나가고싶어졌다.
〃 꿀물? 〃
〃 술 … 드셨잖아요. 〃
〃 아 … 〃
멍한표정으로 아무말도 안하길래 긍정의 표시라고 생각한 내가 승윤에게서 등을지고 방을 나서려하자 그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승윤에게 붙잡힌 내 손목을 바라보자 하얀 내 손목위로 터질듯이 빨간 손이 여전히 눈에 띄었다.
〃 그거 필요없겠는데? 〃
〃 …. 〃
〃 여기있잖아요. 〃
에? 내가 되물을 타이밍조차 주지않고 내 손목을 끌어당긴 승윤이 내게 입을 맞추었다. 너무 놀라서 아무행동도 하지못한채 눈만 커다랗게 뜨고있자, 그가 웃으면서 손목을 붙잡지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 내눈을 가려주었다.
승윤과의 입맞춤이 더럽다고 느껴지지않았다. 닫힌 방문밖으로 사촌누나의 웃음소리에 묘한 짜릿함과 황홀감에 젖어버렸다. 뭐, 황홀감?
남태현 너가 미쳤구나! 뒤늦게서야 내가 있는힘껏 승윤을 밀어내자 그가 순순히 내게서 떨어져나갔다. 오동통한 입술에 잔뜩 침이 묻어있는걸 보자 열이올랐다.
지,지금 미쳤어요? 뭐하는 짓이에요! 내가 버럭화를내도 웃기만하는 그 얼굴에 욕짓거리가 나올려는 찰나 밖에서 승윤을 찾는듯한 사촌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희미하게 구겨지는 승윤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둘이 결혼할 사이라면서요.
여전히 감정을 추스리지못한 내 가시박힌 말투에 그가 다시 웃어보였다. 그 말간 낯짝이 가수지망생들의 존경대상인 강승윤이라는게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 결혼은 할거야. 나도 민희가 좋으니깐.〃
〃 허 … 〃
〃 근데 태현씨가 상상하는만큼 우리, 찐한사이도 아니고. 〃
내가 뭘 상상했다고 그래요! 불같이 화를내자 그가 표정을 굳히면서 몸을 가까이해왔다. 왠지모르게 그에게서 '어른의 향' 이 났다. 후각으로 느껴지는 향이 아니라, 온 몸의 감각으로 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어른의 향'은 내가 승윤에게서 좀 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 그리고, 나 오늘 술안마셨어요. 〃
〃 …! 〃
〃 그러니깐, 방금한 행동. 〃
〃 …. 〃
〃실수아니야. 〃
앞으로 흘러내린 내 앞머리를 귀뒤로 넘겨주던 승윤이 굳게 잠겨있던 문을열고 나가버렸다.' 뭐야, 태현이랑 같이있었어? ' ' 응, 친해지고 싶어서. ' ' 태현이 까탈스러워보여도 착한얘야. ' ' 그럴거 같아. ' 시끄러운 거실에서 선명하게 들리는 승윤과 사촌누나의 대화에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가슴께는 쉴새없이 쿵쾅거리고, 화끈거리는 입술은 방금전의 상황이 꿈이아니라는걸 일깨워주었다. 강승윤이 술도 먹지않았고, 저의적인 실수도 아니랜다.
〃 노래 또 듣고싶다. 〃
모르겠다. 그가 왜 나한테 그렇게 행동한건지. 나는 애초에 머리아픈일은 질색이였다. 지금은 그냥, 듣기좋게 울려퍼지던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 * *
서울에서의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고나서 승윤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낯선 서울생활에서 나는 본의아니게 승윤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되었다. 음악적으로도, 생활면으로도 그는 내가 존경할만한 멋진어른이였다.
〃 남태, 어디가. 〃
〃 약속있어서요. 내일 일찍 연습하러올게요. 〃
〃 아, 강승윤씨? 〃
〃 응. 〃
〃 좋겠다 ― 내일보자 . 〃
네, 형.
승윤은 가끔씩 내 소속사로 날 찾아오곤했다. 그것때문에 처음엔 영문모르는 연습생들사이에서 눈엣가시가 되기도했지만, 이젠 어떤관계인지 알게된 연습생들은 대놓고 부러워했다. 나는 그럴때마다 잠시 우월감에 젖기도했다.
소속사 로비앞으로 근사한 세단이 세워져있었다. 나도 모르게 슬핏웃음이 흘러나왔다. 로비를 나서자 몇몇의 여자애들이 나를 아는체하며 선물을 건내주었다. 예의미소를 지으며 그 선물을 받아들고 세단에 올라탔다. ' 일찍왔네요. ' 웃으면서 인사를하자, 어딘가 뾰로퉁한 그가 내 손에 쥐어져있는 비타민을 바라본다.
〃 태현씨. 〃
〃 네에. 〃
〃 그거 몸에 안좋아, 먹지마요. 〃
되도않는 그의 말에 내가 넘어갈듯이 웃자, 차에 시동을걸고서 모른채 운전을 하기시작했다. 그의 손처럼 귓가가 빨개져있었다.
승윤은 여전히 나에게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말투로 이야길했다. 자신은 그것이 편하다며 신경쓰지말라고 하기에 알겠다고했다.
설날에있었던 헤프닝에 대해서 둘다 딱히 언급하지않았으나, 내가 느끼는게 있다면.
〃 내가 더 좋은거 사줄게요. 먹지마. 〃
승윤이 은근히 자신에게 마음을 주고있다는것, 그것이 꽤나 진심같이 진지하다는것.
나는 창문을 열어 그 틈새로 비타민이 들어있는 종이백을 멀리던져버렸다. 밖에서 뭐라소리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다시올리고서 승윤을 바라보자, 올라갈듯 말듯 입꼬리가 씰룩이고있었다.
승윤의 마음을 알면서도 거부하지않는 나.
팔을괴고서 대놓고 승윤쪽으로 고갤돌렸다. 잘생겼네. 서른을 앞둔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뽀얀피부하며 오똑한 콧날, 그리고 가장 매력적이라면 매력적일 통통한 입술. 저 입술과 맞닿았을때 어땠었더라.승윤은 왜 그 날이후에 나를 건들이지않는걸까. 난 그걸 바라고있는걸까?
생각에 생각을 물고 넘어지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멤돌았다. 머리아픈건 질색이다. 나는 승윤의 뺨에 들러붙어있는 머리를 떼어주었다. 내 손길이 닿자마자 움찔하는 그에게 오늘따라 짖궃게 굴고싶어졌다.
〃 오늘은 형 작업실가요. 〃
〃 작업실요? 〃
〃 네, 자작곡 하나 만들어왔거든요. 들려줄게요. 〃
〃 응, 그래요. 그럼. 〃
어디로 가고있었는진 몰라도, 내 말 한마디에 차를 돌려버리는 그를 나도 꽤나 좋아하는것 같기도해서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그는 내가 작업실에 놀러오는 날이면 내가 좋아하는 향의 향초를 켜주었다. 아직 밖이 화창한 오후에 블라인드를 죄다내리고서 향초까지 켜는 내 이상한 취향을 승윤은 맞춰주었다. 미리 챙겨놓은 MR파일이 들어있는 USB를 승윤에게 넘겨주고 난 녹음부스안으로 들어갔다.
깜깜한 공간, 은은하게 켜져있는 향초, 녹음부스의 방음벽을 사이에 둔 둘밖에 없는 이 작업실. 승윤은 지금 많이 떨려하고 있을까?
끈적한 재즈풍의 반주가 흘러나오자 승윤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이 노래가 그의 마음에 들지않는것이 분명했다. 그는 ' 멋진어른 '이였지만, 나에게만 허용될지도 모르는 그 솔직한 행동들이 아직 ' 미숙한 청소년 ' 인 내가 더욱 그에게 짖궃어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오늘따라 그를 안달나게 만들고 싶어졌다. 물론, 받아줄 생각도 없으면서.
부러 깊은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로 노랠 불렀다. 그가 언젠가 나에게 말했던 ' 도도하고 앙칼진 고양이 ' 같은 표정을 하고서, 끈적한 반주에 퇴폐적인 가사, 마이크지지대를 쓸어넘기는 내 손짓에 그가 반주를 멈추었다. 슬쩍 감았던 눈을 뜨고서 승윤을 바라보았다.
- 태현씨.
〃 네. 〃
- 나 더이상 이노래 듣고싶지않아요.
〃 왜요? 〃
- 몰라서 물어?
〃 글쎄요. 〃
그는 분명히 화가나있었다. 화가난듯한 승윤은 무서웠다. 근데 순순히 고개숙이긴 싫어서 일부러 모른척 그를 도발했다.
MR 틀어줘요. 노래 아직 안끝났어.
내말에 어이없다는듯이 웃어보이던 그가 하는 수 없다는듯 MR을 다시 재생시켰다. 노래를 만들면서도 생각한거지만 가사는 퇴폐적이면서 쓰레기적인 가사였다. 나를 좋아하는 여자앞에서 다른여자와 사랑을나누고, 그 여자가 지쳤다싶으면 기회의 여지를주는 나쁜남자의 가사.
노래 마지막즈음 신음과도 같은 허밍을 했다. 그리고 승윤을 정확히 바라보며 제3자가봐도 야하다고 생각할법한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MR을 멈추지도 않은채 승윤이 녹음부스안으로 들어왔다. 다짜고짜 입을맞추는 승윤때문에 무게중심을 잃은내가 바닥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딱딱한 대리석바닥에 등을 부딫혀 고통의 신음을 내며 입을벌리자, 그 틈을 놓치지않은 승윤의 혀가 내 입안을 휩쓸었다.
처음의 입맞춤의 느낌이 생각나질 않아서 상상하노라면, 부드러웠고 황홀했다. 근데 지금은 아프고 무서웠다. 지금의 승윤은 확실히 위험했다. 내가 그를 위험하게 만든것이였다.
입안에서 피맛이 맴돌았다, 찢어진 입술이 아파왔고 대리석에 부딫힌 어깻죽지가 쓰려왔다. 아,아프! 더 사나운 기세로 내 몸을 쓸어내리는 손에 미칠지경이였다. 미안, 미안해요. 내 말이 듣기싫다는듯 다시 거칠게 입을 맞쳐왔다. 그의 손안에서 달아오르는 몸에 내 자신에게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멈추지않을것같은 그의 질주는 나도 모르게 터져버린 눈물에 멈추었다.
〃 ‥ 남태현. 〃
〃 흐으,흐 … 〃
승윤이 몸을일으키면서 자조적으로 웃어보였다. 어쩐지 그 미소가 상처받은 얼굴이여서 마음이 이상해졌다.
〃 재밌죠? 내가 우습지? 〃
〃 … 〃
〃 애초에 받아주지 못할꺼면, 이런 장난치지마요. 〃
그리고 내 공간에서 나가.
내게 등돌리고 녹음부스를 나가는 승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꼴사납게 눈물이 멈추질않았다.
내가 만든 이 노래의 가사속 여자를 승윤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있을까? 그건 승윤이 아닌데,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면서 내게 마음을 주는 승윤에게 혼란을 느끼는 내가 그 여자라는걸 승윤은 알고나 있을까.
* * *
승윤과 연락이 닿지않았다. 둘 다 상처뿐인 마지막이였다. 그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친건 분명한 내 잘못이였으나, 일방적으로 끊긴 연락에 애가탔다. 나도 승윤에게 가지고있던 마음이 진심이였다는걸 깨달은건 그가 작업실을 아예 나서던 순간이였다.
〃 어머, 태현아. 갑자기 왠일이야. 〃
그냥, 배고파서. 말도안되는 내 대답에 사촌누나가 웃으면서 일단 들어와. 하고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결국 내 발로 다시 그의 공간에 들어섰다. 사촌누나를 봐도 죄책감이 느껴지지않는게 내가 단단히 돌았구나 싶어서 슬핏 웃음이 나왔다. 거실에서 책을 읽던 그가 불청객의 등장이 마음에 들지않는지 미간을 구겼다. 자기야, 태현이왔어. - 어 -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답하는 승윤에 온 몸에 힘이들어갔다. 무미건조한듯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리고있다는걸 알아챘기때문에.
오랜만에 손님왔는데 대충 때울수없다며 장을보러간 사촌누나덕분에 집안에 승윤과 나 둘뿐이였다. 그는 이 자리가 불편한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문이 굳게 닫히지않고 살짝 열려있기에 나도 그의 방에 들어갔다.
〃 나가요. 〃
뒤도 안돌아보고 이야기하는 승윤이 야속하게느껴졌다. 나는 아랑곳하지않고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내 걸음소리에 몸을 내 쪽으로 돌린 그의 뒷목을 끌어당겨 깊에 입맞추었다. 처음엔 미동도안하던 승윤은 나의 달뜬 신음소리에 언제 피했냐는마냥 자기가 더 진득히 입을 맞추었다. 단단한 그의 손이 내 허리께를 쓸어내리고, 허벅지 안쪽을 농도짓게 지분거렸다. 꽤나 길게 이어지는 입맞춤에 숨이막힌 내가 그의 가슴께를 아프지않게 두드리자 아쉽다는듯 떨어지는 그 모양새에 웃음이났다. 그리고 승윤도 나를 따라 웃어보였다.
〃 나, 외면하고있었는지 몰라요. 내 감정을. 〃
〃 …. 〃
〃 형이 너무 좋아요. 좋아서 미치겠어. 〃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입맞춤, 전보다는 더 조심스럽게 달콤하게.
〃 하으, 있잖아요. 나 민희누나한테 죄책감 하나도 안느껴요. 미쳤죠? 〃
〃 …흐흐. 〃
〃 근데 형이 더 미친거같아. 근데 그런 형을 난 좋아해요. 〃
그가 웃는다. 환하게. ' 태현아. '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배로 달콤했다.
〃 나도, 나도 니가 좋아. 좋아서 미치겠어요. 〃
승윤의 방 밖으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촌누나의 총총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부시럭거리는 비닐봉투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그는 지금 똑같은 생각을 하고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우리는 둘다 미친게 확실하다는게 내 생각이였다.
* * *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밑으로 하얀 대리석바닥과 화려한 조형물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멋들어지게 미소짓고있는 강승윤.
교복보다 불편한 수트가 갑갑하게 느껴져 넥타이매듭을 살짝잡아당길때, 승윤과 눈이마주쳤다. 어딘가 모르게 들뜬얼굴. 기분이 나빠져서 아는체도 안하고 신부대기실로 향했다. 예쁘장한 외모인건 알고있었지만 하얀드레스를 입은 누나는 정말 예뻤다. 승윤도 누나의 이런모습에 반했겠지.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누나에게 대충 축하한단 말을 건내고 서둘러 눈에 보이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속에 비쳐진 내모습이 버림받은 기집애같이 꼴사나웠다. 눈 한번 깜빡이면 떨어질것 같은 눈물에 고개를 천창을 향해 젖혔다. 그리고 내 눈을 덮는 손길에 화들짝 놀란 몸이 휘청거렸다.
〃 미쳤어요? 여긴 왜 왔어요. 〃
〃 여기서 왜 이러고있어. 〃
〃 지금 나 신경쓸때가 아니잖아요. 사람들 기다릴꺼아니야, 빨리가요. 〃
〃 내가 어떻게 너한테 신경을 안써요. 응? 〃
강승윤, 완전 짜증. 결국 쏟아지는 눈물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말은 왜 저렇게 다정해, 정말!
손 좀 치워봐, 태현아. 웃음기를 감추진 못한 그 목소리에 ' 싫어요. ' 짜증을 부렸다.
〃 받아.〃
승윤이 얼굴을 가리던 내 손을 힘주어 잡아당겨 무언가 건내주었다. 이게 뭐 …?
〃 여권, 비행기표. 〃
〃 응? 〃
내 여권과 그 사이에 끼워져있는 비행기티켓, 목적지는 하와이. 출발시간은 오후2시였다.
승윤의 신혼여행지가 하와이였고 오후 4시 출국이였다는걸 내가 모를리가 없었다. 와, 강승윤.
여권과 비행기티켓위로 또 다시 얹어지는 문서에 내가 서둘러 문서를 살펴보았다. 호텔 바우처였다.
〃 스위트룸. 〃
〃 와 …. 〃
〃 마음준비하고있어요. 〃
그리고 형말고 승윤씨는 어떠냐니깐? 능글맞게 웃어보이는 이 남자와 턱시도가 무척이나 어울리지않았다.
〃 나 오늘 남태현이랑 첫날밤이니깐. 〃
흘러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못하고 허리를 꺾어가며 웃었다. 그 와중에 놓치지않고 꽉 붙잡은 여권과 티켓, 호텔 바우처.
승윤이 즐거운듯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허밍하며 밖으로 나섰다.
〃 와, 쓰레기 형. 〃
우리 둘 다 정말 쓰레기야. 나는 손에 쥐고있는것을 수트 안주머니에 넣고서 결혼식장을 나섰다. 애초에 보고싶지도 않은 예식이였다.
서둘러 바깥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늦지않게 출국할 생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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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존대하는 강승윤을 쓰고싶어서...상상대로 세쿠시..0<-<
흐름이 어색하거나, 오타는 차차 수정하겠습니다:)
제 글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분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세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