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작
감정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덮친다. 그것은 한 순간이기도 하고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길들여지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렇게 풍선껌처럼 불어난 감정은 우리를 자기 멋대로 휘두르다가 예고 없이 폭발한다는 것이다. 그 정확한 때를 알 방법은 없다. 주체할 수 없던 감정이 터져버렸을 때 우리는 그 뒷일을 수습할 수 없다. 그저 손을 놓고 시간이 흘러 어떻게든 되기를 기다리는 일뿐.
“종인아.”
“응?”
“……나 물어볼 거 있어.”
그래서 누구를 좋아하든, 사랑하든, 미워하든, 질투하든. 어느 감정을 가진 우리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만약 어른이라면 좋아하는 감정을 억제시키고 하기 싫은 것들을 억지로 하고, 이따금 길을 잘못 들어 스스로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도 몰랐던 채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소년은 소년일 뿐. 어리고 약한 소년들은 절대로 완벽한 어른이 될 수 없다. 가끔은 길을 잃고 때때로 뒷걸음질 치면서 걸었던 길을 되돌아가고 걸어야만 했던 길을 뜀박질하며 어른인 듯 하지만 여전히 아이인 채로 살아간다.
두 소년, 김종인과 도경수. 이들은 어쩌면 가장 아이다우면서도 어른 같은 청춘이라는 시기에 걸쳐 있다. 어른일 수도 없고 아이일 수도 없는 이 애매모호한 시기에서 두 소년은 각자의 감정을 갖고 방황한다. 사랑 혹은 우정. 질투 혹은 집착같은 치졸한 감정까지. 그들은 애매한 관계의 미로 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헤매인다.
“뭔데?”
비가 내렸다. 지긋지긋한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 나란히 걷고 있는 우산 속에 종인의 왼쪽 어깨가 어쩐지 잔뜩 젖어 있었다. 경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오돌토돌 소름이 돋은 경수의 팔을 본 종인은 살포시 경수의 어깨를 감쌌다. 그 체온에 온몸이 타들어가듯 뜨거워지고 입술은 바짝 마른다. 덥고 습한 공기, 질식할 것만 같은 습기.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방울과 우르르 쾅쾅 울려대는 천둥소리. 온통 여름이다. 찌릿찌릿한 감정까지 모두 다. 뭔데, 말해 봐. 달래는 듯한 종인의 시선이 경수를 옭아맨다.
“넌 날 좋아해?”
종인의 걸음이 우뚝, 하고 멈춰섰다. 대답을 재촉하듯 경수의 눈빛이 종인을 향한다. 말해줘. 날 좋아하는 지. 난 잘 모르겠으니까, 이 아릿한 감정이 뭔지 난 모르겠으니까. 니가 말해 줘. 경수의 눈가에 슬쩍 눈물이 고이고, 종인의 눈빛이 잔뜩 흔들렸다. 우산이 철퍽ㅡ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연하지, 라고 대답할 수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의미로 물은 것이 아닌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아니ㅡ라고 말할 수도 없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이 없다. 침이 바싹 마른다.
“대답…해줘.”
하늘은 점점 어둑해지고 둘 뿐인 골목길은 더 짙은 침묵으로 가득해진다. 굵은 빗방울들에 머리와 교복이 잔뜩 젖어간다. 종인이 한 걸음, 두 걸음.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심스레 경수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경수의 젖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감기 들겠다.”
“….”
“…좋아해.”
이젠 더이상 숨길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아주 많이ㅡ”
길고 길었던 장마와 유난히도 뜨거웠던 그들의 여름은 이제서야 막을 내리기 시작하고,
“좋아하고 있어.”
얼키고 설켜 복잡했던 그들의 관계는 새롭게 시작된다.
→ |
짧고 솜씨 없는 글이라 민망하네요... 언젠가 또 글이 쓰고 싶어지면 찾아 올게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