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이 불어 들었다. 벌써 장마다. 온연한 여름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거센 장대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창문을 두드린다. 적막한 집 안이 빗소리로 가득 찼다. 똑딱거리는 시계의 시침이 열한 시를 가리킨다. 경수는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채였다. 밖이 캄캄했다. 주말엔 나가는 일이 없었는데, 찬열을 만나겠다며 이렇게나 비가 쏟아지는 날에 기어코 나가버린 경수다. 혹여나 어디서 미끄러져 넘어진 건 아닌지, 우산이 고장난 건 아닌지. 늦은 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초조해진 종인이 애꿎은 손톱을 물어 뜯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경수의 전화번호 11자리를 썼다가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몇 번을 더 고민하다가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빗소리와 섞여 들렸다.
“ 어디야. ”
“ 응? 나 지금 정류장. ”
“ 갈게. ”
“ 어? 야, 잠깐…. ”
가차 없이 전화를 끊어버린 종인이 손에 얇은 가디건을 하나 들고 현관을 나섰다. 원래 나갈 생각 까진 아니었는데, 경수의 목소리를 듣자 마자 당장이라도 얼굴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부리나케 뛰어 가는 바람에 옷에 잔뜩 물이 튀었지만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분명 우산을 쓰고 왔음에도 머리칼이 잔뜩 젖어버린 종인이 헥헥 숨을 몰아쉬며 정류장의 지붕 아래에 섰다. 종인의 몰골을 본 경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 뭐야, 너…. ”
“ 하아…. 일찍일찍, 안 다니지…. ”
“ 내가 애도 아니고 뭐하러 나왔어. 꼴은 이게 뭐야, 또. ”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종인이 이런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다. 나 때문에? 고작 내가 늦게 들어온 것 때문에? 자신의 잔뜩 젖은 옷과 머리칼은 보이지도 않는지 종인은 경수의 몸에 얇은 가디건을 걸쳐 주었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종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잔뜩 휩싸였다.
“ 너 옷, 다 젖었어. ”
“ 알아. ”
“ 너 왜…. ”
“ 걱정돼서 나왔어. ”
“ …. ”
“ 친구잖아, 우리. ”
그것도 10년이나. 친구. 그러니까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는 거잖아 경수야. 종인이 애써 쓴웃음을 보이며 뒤의 말을 삼켰다. 경수의 작은 우산을 접어 제 손에 들고 집에서 가져온 큰 우산을 폈다. 그래도 남자 둘이 쓰기엔 좀 작은 지라 경수의 어깨를 감싸 자신의 쪽으로 끌어 당겼다. 비록 우산이 두 개 있었지만, 따로 걸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렇게 조용히 길을 걸었다. 경수는 오늘따라 이상해 보이는 종인 때문에, 종인은 이런저런 복잡함에 서로 딴 생각을 하기에 급급했다.
집에 들어가 씻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경수는 아까 종인의 눈빛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보는 자신이 더 복잡해지는 눈동자였다. 무언가 힘들다, 라고 말하는 눈빛이었다. 뭐가 그리도 널 힘들게 했을까. 대체 무엇이. 경수가 옅은 숨을 쉬며 잠든 종인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올렸다. 내일 저녁은 종인이 좋아하는 파스타를 해줘야 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몇 시간을 뒤척이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꿈을 꾸었다. 높디 높은 성 안이었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아득한 곳에 종인이 있었다. 올라와, 라고 말했지만 종인이 고개를 저었다. 난 올라갈 수 없어. 왜? 네가 너무 높은 곳에 있으니까. 난 갈 수 없어, 하고 종인이 뒤를 돌았다. 어두컴컴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지마, 가지마 종인아. 소리쳐보지만 이미 그는 저만치 사라진 뒤였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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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미지가 뭐죠..? 하고는 싶은데 컴맹...^^ 아 일단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다음 편이나 다다음 편에서 끝날 예정이에요..... 연재라기도 하기도 민망한... 연재 바라시는 분들 죄송합니다ㅠㅠ 저번 편에 댓글이 생각보다 많이 달려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과분한 칭찬들도 다 감사드립니다ㅠㅠ 그럼 조만간 다음 편에서 또 찾아 뵐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