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로망, 클리셰
W. 백빠
오세훈; Play Boy
" 어서오, 어…. 오랜만에 왔네요? "
" 응, 좀 바빠서. "
새벽 3시 42분, 오세훈이 왔다. 거의 한달만인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잘생겼고, 멋있고, 섹시했다. 내가 이곳에서 2년간 바텐더를 하며 봤던 남자들 중에 가장 잘생긴 남자. 얼굴도 하얘서 어두컴컴한 바에 들어오면 괜히 더 돋보인다. 물론, 밝은 곳에서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는 끝에서 두번째 자리를 가장 좋아했다. 그곳은 다른 자리보다 조금 더 어두웠고, 그래서 더 아늑한 느낌을 주었으며 눈에 제일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오세훈은 역시 오늘도 그 자리에 앉았다.
" 뭐 줄까요. 그때 킵 해둔거? "
" 킵 해뒀었나. 뭐였지? "
" 글렌리벳 세븐틴일걸. "
" 응, 그거 줘. "
한달 전에 와서 27만원짜리 위스키를 킵 해놓곤 기억 못하는 남자. 나는 연갈색의, 황금색처럼 보이기도 하는 술이 찰랑거리며 담겨있는 병을 들어 위스키 잔에 쪼록, 따랐다. 예쁘게 구(球)모양으로 조각되어있는 얼음을 넣는 것도 잊지 않고. 황금색의 위스키가 담긴 잔을 오세훈의 앞으로 살짝 밀어주는데, 내가 내미는 잔은 쳐다보지도 않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항상 오세훈이 날 빤히 바라볼때면 기분이 간질거린다. 워낙 잘생겨서 그런건지.
" …. "
손님이 없는 시간에 맞춰온건지, 아님 우연히 이 시간에 손님이 없는건지 바에는 오세훈과 나 뿐이었다.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나도 그를 마주보고 앉았다. 길다란 테이블이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가까이 느껴졌다. 가까이서 보니 …진짜 참 잘생겼다. 잘생겼다는 말 밖에 안하고 있는 거 아는데, 그 말 밖에 나오질 않는 걸 어떡해. 반듯한 이마, 날카로운 콧날, 부드러운 선을 지닌 입술, 깊숙한 눈매. 거기에 하얀 피부까지. 나도 그를, 그도 나를,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는데 오세훈이 갑자기 낮게 웃으며 잔을 입술에 가져다댔다.
" ..왜 웃어요. "
" 그냥. 말 없이 마주보는게 웃겨서. "
위스키로 축인 그의 입술이 조금 반짝인다. 잔을 내려놓은 그는 정장 자켓을 벗어 한 쪽에 놓는다. 하얀색의 와이셔츠 위, 그의 넓은 어깨가 여실히 드러난다. 항상 무슨 일이 있을 때, 그게 즐거운 일이던 슬픈 일이던,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은 사실이 있을 때 사람들은 여길 찾았다. 세훈도 그 중 하나였고. 오늘 얼굴로 봐선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을 겪은 듯 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까, 말까 하는데 위스키 잔을 만지작대던 그가 먼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 당신은 날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
" …음, 세훈씨를 보면… 잘생겼다? "
" 또. "
" …음, 또… "
" …. "
" 사랑을 잘 모르는 사람. "
오세훈은 여자가 많았다. 아주 많았다. 그러나 그 중 의미 있는 여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바에는 여자를 한번도 데리고 온 적이 없지만 그동안 해왔던 많은 이야기들을 상기시켜보면 오세훈은 완벽한 플레이보이에, 카사노바에, 나쁜남자가 확실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오세훈은, 여자란 그저 욕망을 푸는 도구이며 사랑이란 어리석은 자들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그래서 빈틈 없는 이 남자에게 유일한 가장 큰 단점은 사랑을 모르는 것, 이라고 단정지은지 오래였다. 사랑을 모른다는 건, 어느 누구에게나 치명적인 단점이니까.
세훈은 나의 말에 턱을 괴곤 다시 위스키잔을 만지작댄다. 얇고 곧은 손가락이 위스키잔의 둥근 입구을 배회한다.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오늘따라 분위기가 축, 가라앉은게 심상치가 않다. 말해주기 전까진 물어보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 그저 가만히 오세훈의 손을 쳐다보고 있는데, 얼마 이어지지 않은 침묵 끝에 그가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난 사랑이 싫다고 생각했어. "
" …. "
" 싫어서 안하는거라고 생각했어. 쓸데 없는 감정소모 같은거 질색이라서. "
" …. "
" 두려워서 못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 "
담담히 고백해오는 오세훈의 얼굴은 내가 알던 오세훈이 아니었다. 뭐랄까, 처음보는… 그의 상처 받은 얼굴. 게다가 사랑을 모르는게 아니라, 두려워서 못하고 있었다는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원히 '사랑 같은 건 쉬운거야' 라고 말하며 살 줄 알았는데 뭔가를 깨달은 듯 싶다. 쉽게 가고 오는 관계에서 상실감이나 회의감을 느꼈나. 나는 다정하려고 노력하며, 그에게 말했다.
" 사랑은 원래 누구에게나 두려워요. "
" 당신에게도? "
" 그럼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정말 커다란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중요한건, "
" …. "
" 내가 그 두려움을 안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붙잡아야한다는거에요. "
"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벌써 다 놓쳐버렸는데. "
" 붙잡을 사람은 또 와요. 이제부턴 잡으면 되고. "
그를 바라보며 싱긋, 웃자 오세훈도 나를 따라 작게 웃는다. 어쩌면, 그에겐 사랑이 당연히 가볍게 느껴졌을거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번듯한 직장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왠만한 모델보다 잘생겼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가오고. 너무나도 쉬워서, 그냥 팔 한번 뻗으면 잡히는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거다. 그래서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거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오는 그들을 존중해줄 필요도 못느꼈겠지. 너네가 아니어도 그에겐 또 다른 여자들이 있었으니까. 여기서 문득 드는 궁금증은, 어쩌다 사랑이 두렵다는 걸 깨달았을까? 였다.
" 근데, 그걸 어쩌다 알게 됐어요? 사랑이 두렵다는걸. "
" …. "
" 아, 물론 말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요. "
" 어떤 여자를 만났어. "
" …여자? 어떤 여자? "
"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여자. "
" …세훈씨한테 그런 여자도 있었어요? "
" 응.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여자야. "
과거형. 꽤나 슬프게 느껴지는 과거형이다. 그나저나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라. 누굴까. 그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는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이 꽤나 심기에 거슬렸다. 물론 오세훈이 지금까지 내게 언제나 진실한 이야기를 털어놓지는 않았겠지만, 그래서 그에게 진짜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하더라도 나는 그걸 몰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중요한 사실을 몰랐다는게 기분이 묘하게 상해왔다.
" 그 여자가 누군데요? "
" …. "
오세훈이 조금 뜸을 들인다. 가만히 위스키잔을 내려다보다 입을 한번 축이고는 나를 쳐다본다. 정말 오늘은, 평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그가 날 쳐다보는 눈빛은… 내 가슴 한구석을, 왠지 모르게 찌릿거리게 만든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연다.
" 엄마. "
" …. "
" 엄마를 만났어. "
엄마. 그 여자는 엄마였다. 예상할 수 없던 그 주인공은, 절대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오세훈은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그리곤 다시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 어떤 것보다 진실한 본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대한민국에서 한 때 가장 잘 나갔던 여배우였고, 아버지는 거물급 기업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한 채 그를 키우고 가정에 충실했지만 아버지는 가정에 무관심했고 결국은 다른 여자를 집에 끌어들였다. 그가 중학생이 되던 해, 집에서 쫒겨나듯 이혼을 해 어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그는 그저 이유도 모른 채 어머니를 잊어야했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그땐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고 사랑한 만큼 증오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을 멀리했던거구나. 사랑을 주면 그만큼 아플거라는 트라우마 때문에.
" 그래서 사랑을 주기도 싫었고, 받기도 싫었어. 끝날 때 그게 얼마나 아플거란 걸 잘 아니까. "
" …. "
" 피했지. 내게 진심으로 사랑을 준 사람들도 바보처럼 겁나서 피했어. "
" …. "
" 난 두려웠던거야. 또 다시 아프고 싶지 않아서. "
그 날 이후, 집에서 엄마가 나간 이후로 단 한번도 엄마를 볼 수 없었어. 아니, 내가 안봤어. 그런데 어제 그냥 문득… 이름도 생각 안나는 여자랑 관계를 가지다가, 정말 문득 엄마가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냥 갑자기. 그래서 내가 찾아갔어. 엄마가 있다는 곳을 찾아갔어. 옛날보다 많이 늙어버린 엄마는 날 보자마자 안았어. 날 안고는 미안해, 미안해 세훈아, 하면서 울더라고. 내 가슴팍이 축축히 젖어가기 시작할 때 쯤 나 혼자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나 지금까지 뭘 했던걸까, 하는.
" …. "
" 내가 지금까지 어리석었… 뭐야, 울어? "
" …아니에요, 계속해요. "
" 뭐야, 당신이 왜 울어. "
오세훈, 그쪽이 슬픈 얘기를 했으니까 울지! 그의 이야기에 바보처럼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물을 흘려내고 말았다.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오랜 시간 다른 이에게 찾아헤맸지만 결국은 메꿔지지 못한 공백을, 돌고 돌아 긴 세월 이후 잠깐 만나게 된 엄마의 눈물로 채워졌다- 는, 불쌍한 한 남자의 이야기잖아. 그 동안 사랑 받지 못한 외로움은 누가 보상할거고, 사랑을 주지 못한 불행은 누가 보상해줄건데에…. 아이처럼 훌쩍이니 오세훈은 진짜 미치겠네, 중얼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여자는 많이 만났어도 우는 여자 상대해 본적은 없어서 그래. 울면 다 무시했을 당신 모습이 뻔히 보여.
" 왜 울어, 내가 뭐 잘못했어? "
" 이야기가… 흐으… 너무… 흐어… 슬퍼어어… "
" …. "
" 세훈씨… 그동안, 얼마, 흐, 얼마나…흐엉…힘들었어…. "
사실 거의 알아듣지 못했을거다. 세훈씨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지, 힘들었을지 생각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오세훈은 울고 있는 나를 어떡하지, 하는 얼굴로 보고있다가 파르르 떨려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토닥,토닥, 나를 진정시킨다. 울어야할 건 오세훈인데 왜 내가 울고 있는지.
" 뚝 해, 얼른. 누가보면 내가 그쪽 울린 줄 알겠다. "
" 흐엉… 세훈씨가 울린 거 맞잖아요… "
" …. "
그래,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울지마, 응? 서툴지만 꽤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달래주는 바람에 조금씩 눈물을 그쳐… 가는게 아니라 더 엉엉 울어재꼈다. 원래 달래주면 더 우는거 몰라요?! 그렇게 한참을 울고나니 겨우 진정돼 자꾸 떨려오는 횡경막을 꾹꾹 누르며 제 호흡을 찾아갔다. 호흡이 균일해질수록 느껴지는… 쪽팔림…. 다 진정 됐는데도 두 손에 얼굴을 묻고는 가만히 있자 오세훈이 웃음을 참는 목소리로 내 어깨를 두드려왔다.
" 다 울었으면 고개 들어봐. "
" …싫어요. "
" 싫긴. 얼른 들어봐. "
" 싫다니까요. "
" 셋 센다. 하나. 둘. "
결국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울어서 빨개져있을 눈가가 민망해 아래만 쳐다보고 있는데 오세훈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바에 아무도 없었다는 거. 누가 있었으면… 아마 꿇어앉고 아래로 숨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울지도 않았으려나. 하여튼, 오세훈을 바로 바라볼 수 없어 손가락을 꼼지락 대며 아래만 바라보자 그가 내 앞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똑똑, 두드린다.
" 뭐해, 나 봐. "
" …싫다니까요. "
" 또 셋 셀까? "
" …울어서 부었을텐데. "
" 괜찮아. "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들어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부어서 웃길텐데... 눈두덩이를 차가운 손으로 꾹꾹 누르며 오세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세훈은 턱을 괴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고 난 어쩐지 부끄러워 눈을 함께 마주치진 못하고, 그의 앞에 놓인 위스키잔을 봤다가, 그의 머리 위를 봤다가, 옆 테이블을 봤다가 이리저리 시선을 고정하지 못한채 움직였다. 오세훈은 그런 내게 말했다.
" 울어줘서 고마워. "
" 에? "
" 나 대신 울어줘서 고맙다고. "
" …. "
" 너가 안 울었으면 내가 울었을지도 몰라. "
오세훈은 그대로 손을 들어 볼 위 눈물이 흘렀던 자국을 닦아주었다. 온기가 따스히 도는 손가락들. 내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오세훈을 말 없이 바라보다 돌연히 드는 생각에 그에게 물어보았다.
" 그럼 엄마를 만난게 오늘인거에요? "
" 응. "
" 그 후로 바로 여기에 온거고? "
" …지금까지 내 얘기를 해온게 너 밖에 없어서. "
" …. "
" 너한테 말하고 싶었어. 너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
울컥. 다시 한번 울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가며 참았다. 진짜 모성애 자극 제대로 하네. 나는 그냥 오세훈을 가만히 쳐다봤고, 그도 나를 그저 말 없이 쳐다보았다. 그냥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어요, 나는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하는 눈빛을 각자 보내면서. 그때, 그 사이 묘한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 오세훈은 입이라도 맞출 듯, 순식간에 내게 가까이 다가왔고 한쪽 손은 내 뒷통수를, 그리고 한쪽 손은 내 턱선을 쓸었다. 나 또한 본능은 본능인지라 눈을 감았는데 어쩐지 한참이 지나도 입술이 닿을 기미가 없다.
" …? "
뭐지, 하고 눈을 뜨니 내 뒷통수에서 손을 떼곤 다시 멀어지는 오세훈이었다. 그러더니 곧 죄책감에 휩쌓인 얼굴로 내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시작일까봐 못하겠어. …푸핫.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자를 물로 알고 아무나 만나 섹스했던 천하의 플레이보이가 키스 한번 맘대로 하지 못하다니.
" 그래도 키스는 좀 심한거 아니에요. 요즘은 술 마시면 아무나랑도 하는게 키슨데. "
" 못하겠어. 쉬운 것 같아서. "
" 그럼 제대로 시작해봐요. 쉽지 않은 방법으로. "
오세훈은 잠깐 고민한다. 그리고 나도 고민한다. 지금 막 사랑을 알고, 사랑의 아픔을 딛고 다시금 처음부터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나는 적절한 사람일까. 그의 애정결핍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온전히 안아줄 수 있을만큼 나는 괜찮은 여자일까. 나보다 고민을 먼저 끝낸 그는 내게 말했다.
" 오늘은 싫어. 여기도 싫고. "
" …에, 여기가 뭐 어때서요? 여기서 탄생한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
" 싫어. "
오세훈은 옆에 벗어 놓은 자켓 안 쪽에서 만년필을 하나 꺼내더니 앞 냅킨통에서 냅킨을 한장 빼내 내 앞에 놓는다. ? 물음표를 달고 쳐다보니 전화번호를 적으란다. 휴대폰은 어디두고 왠 냅킨. 일단 만년필을 들어 냅킨에 삐뚤빼뚤 내 번호를 적으니 고이접어 만년필과 함께 자켓 안 쪽에 넣어놓는다.
" 휴대폰 없어요? "
" 차에 놓고왔어. "
" 아. "
" 내일 전화할거야, 바로 받아. "
" 명령은. 싫으면 어쩔거에요. "
" 진짜 싫어? "
" …누가 그렇대요. 그러면 어쩔거냐고 했지. "
밀당은… 진짜 잘하게 생겼는데. 근데 생각해보면 이거 내가 손해보는 연애 아니야? 물론 나도 그동안 세훈씨에게 호감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덥썩 미끼를 물긴 했지만 그동안 사랑은 아니었다고 해도 여자를 엄청나게 만나본 남자잖아? 뭐, 그만큼 잘생기기도 했지만…. 여튼 난 매일 밀당 당하고 기다리고, 뭐 이런 처지 될 수도 있다는거지. 벌써부터 불안하기도 하고.
" 근데,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손해 보는 거 같애. "
" 뭐가. "
" 뭐, 아무리 사랑은 아니었다해도 여자는 많이 만나봤잖아요. 어떻게 다루는 진 잘 알거 아냐. "
" 몰라. 난 한번도 걔네 잘 다뤄준 적 없어. 지들이 좋다고 난리쳤지. "
" …어우. 사실이긴한데 되게 얄미운거 알아요, 지금? "
그러니까 당신 말은, 자기가 잘 다루든 못 다루든 여자들이 그냥 달라 붙었다는거 아니야? 명백히 사실인 건 알겠는데 엄청 얄미워요, 지금. 눈을 흘기자 그가 푸하, 웃는다. 그러다 어딘가 야릇한 얼굴을 하고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한다.
" 그래도 잘 다루는거 하나는 있는데. "
" 뭔데요? "
" 여자 몸. "
" …. "
" 니가 손해보는 건 아닐걸. "
갑자기 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듯, 화끈화끈 거린다. 뭐, 뭐에요! 말을 더듬자 오세훈은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막 웃는다. 사실 그게 부끄러울 나이는 아닌데, 뭔가 저 얼굴에 그런 얘기를 하니까… 부끄러울 수 밖에…. 나는 얼른 화제를 돌리려 다른 주제를 생각했다. 음…, 뭘 말하지… 돌아 돌아 결국 생각이 미친 곳은 아직 끝내지 못한 나의 고민이었다. 내가 그에게 적절한 여자일까, 하는.
" 세훈씨, 그런데. "
" 응. "
" 만약에, 세훈씨가 나랑 사랑이란 걸 하다가, 내가 좋지 못한 기억을 안겨주고 끝나버리면 어떡해? "
" 뭐? "
" 그러니까… 좋은 기억이 아닌 아픈 기억만 줘버리면… 그래서 다른 여자를 또 만나 사랑하기 싫어지면 어떡해. "
오세훈은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조금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가 어, 정말 그런가? 하고 생각할까봐. 나처럼 그럴지도 몰라, 라고 생각할까봐. 어쩌면 아냐, 그렇지 않아- 라고 완고히 생각해주었으면 했다. 오세훈은 그렇게 얼마간을 생각하다, 그냥 뭐랄까, 별거 아닌 말투로 내게 말했다.
" 글쎄. 난 당신이 붙잡을 사람은 또 오고, 이젠 붙잡으면 된다고 해서 붙잡은거 뿐인데. "
" …. "
" 그거야 만나봐야 아는거잖아. "
" …. "
" 당신이 내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일지도 모르지. "
순간, 진심이 어린 세훈의 말에 찡- 하고 가슴이 울렸다. 나는 언제나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인생이라고. 공부하다가 맘처럼 잘 되지 않아 바텐더 자격증을 따 강남 구석에 있는 바에 취직을 한 게 전부인 내 인생에 너무나도 특별함이 넘치고 흘리는 당신이 들어온다는 것. 여자를 수없이도 많이 만나봤지만 아직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남자는 아주 조금 만나봤지만 사랑을 아는 여자의 만남.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만남이 아닐까. 세훈은 내게 은근한 웃음과 함께 커다란 손을 내민다.
" 그럼 잘 부탁해. 난 잘 모르니까 세심히 좀 가르쳐주라. "
일단 세훈씨의 손을 잡았는데 갑자기 푸흐흐, 하고 웃음이 났다. 그는 내게 왜 웃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아니에요, 하며 대답을 피했다. 사실 왜 웃었냐면, 난 오세훈이 항상 바에 올 때마다 나쁜 새끼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랑을 모르는 게 측은하기도 해서 아- 내가 한번 제대로 알려줘보고 싶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 그래도 저 남자랑 내가 사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우니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버리니까 웃기네. 내가 저 남자에게 사랑을 알려줄 사람이 된다는게.
나는 목을 큼큼, 가다듬곤 나 또한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나도 잘 부탁해요. 제가 사랑 한번 잘 가르쳐드릴게요.
▼
BGM - Show me love 0.5
오세훈 같이 생긴 분들 중에 플레이보이가 있다면 그들은 정부에서 관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여자들과 현재 알콩달콩 이어가는 커플들을 위협하는 존재니까여...
댓글 달고 포인트 가져가셔요~♡
+ 암호닉은 따로 받진 않고 있지만 그래도 적어주시면 기억은 해두겠습니당. 제가 은근히 기억력이 뛰어나거든여 호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