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눈을 떠, 아무 곳이나 이끌리는 정류장에 내렸다.
분면 모르는 길이어야 하고, 모르는 길 인건 맞는데, 군데군데 낯익은 상점이 보인다.
기분탓인가…….
길을 따라 걸으니 사거리가 보이는데,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여기가 거기구나,
평일에 잠깐 나와 호원이가 출판사와의 미팅을 끝내면 사무실에서 내려와 근처의 카페에서 와플과 커피를 먹던 곳,
두 번째로 싸운 곳,
호원이의 옛 여자 친구와 마주친 거리.
모양은 다르지만, 같다.
그때와 다른 가게지만, 같다.
나는 혼자지만, 같다. 생생하다.
"으아 보고 싶다……."
툭툭, 소리와 함께 또 비가 쏟아지고, 어쩔 도리 없이 그나마 처마가 있는 가게 앞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꼭 내가 집에서 나오기만 하면 비가 오냐…….
제각각 우산을 펴든 사람들이 지나가고, 멍하니 사람들의 발만 구경하는 사이 해가지고, 가로등이 켜졌다.
이제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거리.
한숨을 내쉬다가, 손을 보며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다가,
손에 있던 반지를 빼어내 바닥에 놓았다.
괜히 얄밉게 느껴지는, 새초롬해 보이는 반지.
"짜증나, 꼴 보기 싫어, 싫어...진짜 제일 싫다고……."
멍-하게앉아 반지주위에 떨어져 튀는 물방울을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더 이상 뭘 해야 하는지...착잡한 마음만 든다.
그래, 내가 뭘 하겠다고... 내가 무슨 지구를 지키는 용사거나 뭐 그런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백투더퓨처의 마티 마냥 지켜야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기 와서 나만의 반짝반짝 로맨스를 만들 것도 아니고.
내 삶의 목적이 재밌게 학창생활의 로맨스를 만끽하는 호원이를 구경하는 건 아니잖아.
쟤는 지 삶 사는 건데 나 혼자 매번 실망하고 서운해 하고 속상해하고 애타고…….
그때, 어째 빠르게 걸어온다 싶더니, 박력 넘치게 내 앞을 지나가는 아저씨 한분.
틱, 땡그랑, 땡땡…….
고사지내듯이 앞에 두고 말을 걸던 반지가 그대로 발에 채여 날아간다.
그때서야 눈에 들어오는 하수구 구멍.
"으어억!!!!!!!"
흙탕물이 튀어 눈에 들어가 눈을 감고 거의 슬라이딩하다시피 몸을 던졌다.
눈에 흙이 들어가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눈을 깜빡이니 이물감에 눈물이 주룩주룩 나온다.
으....아프어....그리고 결국 고생 끝에 눈을 떠 손을 보니 아슬아슬하게 검지손가락에 걸려있는 반지.
왠지 다 까진 것 같은 쓰라린 무릎을 두드리며 일어나 원래대로 제자리에 끼우다가, 웃음이 났다.
내가 막, 혼자 자빠지고, 혼자 실실 웃고 있으니 이제 이상하게 보기 시작한 맞은편가게 주인아저씨.
이제, 다시 가야할 때네,
내가 그렇지 뭐…….
"반지를, 놓쳤으면 좋았잖아."
/
"나 왔어, 으어, 깜짝이야!"
"....."
"뭘 그렇게 쳐다봐, 찾으러갔는데, 못 찾았어..흐핫"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문 앞에 서있는 호원이에 깜짝 놀랐다가 대충 변명을 하고 거실으로 들어왔다.
베란다 창에 비치는 모습이 진짜 딱 거지꼴...버스기사아저씨가 깜짝 놀랄만하네,
샤워나 해야지..어제 새로 샀던 바디클렌저를 어디 뒀더라…….
"내 여자친구 어때?"
".....이-쁘더라! 착하고! 어리고! 흐하하항....왜?"
기껏 진심으로 웃으며 말해줬는데도 표정이 묘-한 호원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뭔가 찝찝한 듯한....음....왜 그러냐.....뭐가 문젠데요 뭐가..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호원이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음날, 깨어나 보니 어제 반창고를 찾는 걸 포기하고 그냥 방치해두고 잠들었던 양쪽 무릎에 커다란 대일밴드가 붙여져있었다.
/
"아, 진짜. 미쳤어? 어? 좀, 들어보라고!!"
"시끄러워"
"이거 좀 놓고, 어? 야, 솔직히 말이 돼? 나 졸업했다니까 고등학교! 졸업한지가 1년이 다 되가는데, 진짜!"
"그럼, 우리담임선생님이 나한테 얘기한 건 뭔데, 우리 쌤이 학생가지고 장난칠 만큼 젊은 선생님은 아니거든?"
이상한일이다. 내가 여기, 과거로 와서 뻘짓하고있는 것만큼이나 요상한일이 일어났다.
어제, 호원이네 반 담임선생님이 나를 데려오라고 하셨댄다.
왜 학교를 안 나오냐고.
장난해?
나 올해 초에 고등학교 겨우 졸업했거든?
"나 고등학교 졸업했다니까!스무살이라고!스무살!이십!"
"그럼 졸업장 가져오든가"
"아, 내가 지금 졸업장이 어딨어! 나 진짜 아니라니까-..인창고등학교 2012년 졸업앨범에 보면 내 사진이..."
".........."
".......아 진짜 아니라니까!!이건 말도 안 된다고 진짜!!!"
아 몰라, 지금 이게 뭐야...덕분에 아침부터 츄리닝차림으로 학교까지 질질 끌려왔다
오는 내내 오해하신 거라고 이렇게 나 끌고가봐야 너만 쪽이라고,
나 스무살이라고 빠득빠득 우겨봐도 뭐가 그렇게 확신이 넘치는지 막무가내로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전진.
그래 내가지금 졸업장이 있어 주민등록증이 있어. 그럴만하긴하지.
이거 봐, 차라리 애초에 비행청소년인척 했어야 됐다니까?
그렇게 어찌어찌하다보니, 진짜 어느새 교무실 앞이다.
"어, 그래. 니가 동우니?"
"네? 네……."
이호원은 담임선생님도 꼭 지같아서, 170cm정도 돼 보이는 남자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건다.
어, 근데 잠깐만, 동우라고? 동우? 나? 뭐야 내 이름 어떻게 알아!
/
"거봐"
"............"
내가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으니 호원이가 와서 내 손에 들린 재학증명서를 쏙, 빼간다.
그리고는 대충 들여다보며 팔랑팔랑.
내가 무릎을 감싸 안고 고개를 묻으니 괜히 픽 웃으면서 내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아니 말이 되냐고, 내가 왜 전학수속이 돼있는데, 누구 맘대로!
내가 여기에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는데, 하나밖에 더 있냐고…….
고개를 들어 호원이를 쳐다보니 자기도 어떻게 된 건지 짐작이 안 되는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 당황스럽겠지........
길에서 주워온 애가, 갑자기 같은 학교학생이고…….
내가 형이라고 그렇게 우겼는데-…….
근데 분명 전학처리도 보호자가 있어야 뭐 되든가 말든가 할 텐데,
아무리 끼워맞춰보려해도 도통 연결이 안 되는 인과관계에 머리만 어지럽다.
등본은 떼 봤자 나밖에 없을 거고,
학교에 전입신고서내고 학기 바뀌면서 자동적으로 전학처리된거 보면 주소는 여기어디로 되어있는것 같은데…….
근데 그걸 누가 바꿨냐고, 도대체 나는 몇 년생으로 되어있는 것이며........
"뭘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해"
"이상해......."
"모르는 친척분이 있었겠지, 이렇게 된 거 그만 신경 쓰고, 가자."
"뭘 그만 신경 써 이게, 사람 신상은 아무나 못 바꾸는 건데……."
"아, 아무튼-"
"그래, 지금 고민해도 뭐........근데 진짜 뭐야 이게……."
"장동우"
갑자기 진지하게 부르는 내 이름에 고개를 들어 호원이를 봤다.
맨날 야, 거, 너, 그, 저기, 로 부르다가, 웬일로 이름을 다 불러준대.
근데 내가 형인데............
"가자고"
"어? 어디? 너 수업은? 아니 나는?"
"진짜 정신없네..아까 우리 쌤이 너 내일부터 오라고 했잖아. 교복은, 내꺼 입을래? 키도 작아가지고……."
"아.........너는 그럼"
"땡땡이"
"어, 야, 그러면……."
"됐어-"
"어,이호원! 야 너이새끼, 너 왜 여기 있냐, 으하하하"
"이제 오냐, 양아치새끼야"
"그러는지는, 집에가?"
갑자기 교문 쪽에서 튀어나온 길쭉한 남고생이 호원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나를 흘끔, 본다.
호원이친군가........끼리끼리 논다더니 까만 머리를 단정하게 쳐놓은 게 참 잘생겼다.
"어쨌든, 이따가 올게, 민지한테 전해줘"
"알-겠습니다. 아무튼, 여자친구는 존나 챙겨요,"
별로 신경 안쓰는건지 친구의 빈정거림에도 그냥 대꾸 없이 손을 흔들고 교문 쪽으로 걸어간다.
"내 친구, 양아치."
"아......어..응……."
근데 그걸 나한테 왜 말하는 건데, 그래서, 친구하라고?
근데 양아치라며, 넌 니네집 객식구가 양아치였으면 좋겠냐....
여전히 머릿속으로는 내 전학수속의 미스터리를 생각하며, 교문을 지나 호원이를 따라 가고 있는데,
문득보이는 호원이의 손가락에, 반지가 하나 걸려있는 게 보인다. 커플링인가, 치.
"나 그거 반지 잠깐만 구경해도 돼?"
"어? 어....?아, 아니"
"왜-잠깐만 본다는데,"
"싫어"
"아, 그 커플링 한번 보겠다는데, 뭐 닳아?"
"어, 닳아"
"이씨……."
끝까지 보여줄 생각이 없는지, 빠른 걸음으로 먼저 걸어가 버린다.
뭐가 더 이쁜지 내꺼랑 비교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좋냐,
내가 커플링하자고 했을 때는 끝까지 안하면 안 되냐고 왜, 굳이 해야겠냐고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따져서 날 울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그러지 말자고 속으로 생각해놓고
또 서운한마음이 커져서 느리고 발을 옮기며 호원이의 뒤통수만 보고 있으니
그게 느껴지는지 갑자기 뒤로돌아 나에게 걸어온다.
"아직도 그 생각이냐, 잘 모르는 친척분이 너네 집 정리하는 김에 처리해주셨나보지, 너 갈데없다며.
그게 뭐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거나, 그런 거 아니었어?"
"어....응……."
뭐 정확히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그 후로 일부러 잊고, 묻어두고 있었는데 순간 죽기직전, 엄마의 목소리, 표정이 떠올랐다.
아, 어지러워....
잠깐 머리가 띵해서 눈을 감는데 호원이가 왜인지 모르게 두 손으로 내 눈을 덮어 감싼다.
"뭘 그렇게 불안해해. 내가 친구사귀는 거 도와줄게"
....그거 아니거든?
/
"그럼, 간다?"
"가-"
호원이는 진짜 정직하게 교복만사주고 다시 학교로 사라졌다.
뭐, 민지랑 약속을 했다나뭐라나…….
교복사준게 어디야,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
엄청 생색내긴 했어도-...그래도 같이 사는, 생계와 거주지가 곤란한 학생으로는 생각해주니까-…….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상하게 내가 전학처리 되어있다는 나도 납득이 안 되는 일을 쟤는 왜 별 감흥 없이 받아들이지?
그렇게 현실적인 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 뭐, 지금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호원이를 보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씻고 교복을 입어보니, 나름 그래도 오랜만에 입은 거라고 되게 어색하다.
우리학교교복이 아닌 탓도 있을 거고…….
남색이 호원이가 입었을 때는 되게 다리가 길어 보이고 딱 스마트해보였는데,
내가 입으니 왜 이렇게 호원이 빵사다줄 것처럼 보이는지…….
이거 봐, 역시 옷은 옷걸이가 관건이라니까.
그래도 교복을 입고 이렇게 서있으니 느낌이 이상하다. 뭔가, 2년 어려진 느낌?
호원이 말대로, 어째서가 문제가 아니라 현실은 이미 벌어졌으니.
하긴, 내가 여기 과거에 있는데 더 이상할일이 뭐가 있겠어.
괜히 볼에 바람을 넣으며 교복을 걸어놓았다. 호원이 교복 옆에 나란히-흐흐.
호원이와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다니, 괜히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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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반가워요
이번편은 쓰면서 되게 고민이많았어요..ㅠㅠ..
수정할때도 혼자 계속 스크롤을 올렸다내렸다하면서 첨삭첨삭....근데 어쩔수있나요....
제가 쓰는글이다보니 제눈에는 이게 최선같아보이네요...이제 더이상의 피드백은 여러분의 몫인듯ㅋㅋㅋㅋㅋㅋ사랑해요..
이번편 이상하죠? 어허이상하네요 이상한전갤세 왜이렇게되는걸까요 이상하죠? 이상해요
이상하지만 뭔가 느낌이 오지않나요...^^...;
아니라면 저의 똥손탓이예요.....ㅠ^ㅠ..ㅋㅋㅋㅋㅋㅋㅋ
호원이번외를 썼는데 도무지 어디끼워넣어야할지를 모르겠네요..ㅠㅠ..
고민고민해보고 빠른시일내에 들고오겠습니다!ㅎㅎㅎㅎ
늘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좋은오후되세요 물결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