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별의 수만큼 꿈이 이루어진다.
하교할 때처럼 저-만치 앞서가는 호원이를 열심히 따라가는데, 예상외로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대형문구사 앞에 멈춰 선다.
고작 여기 온다고 담 넘고 팔까지 까져가면서 나왔냐.
거침없이 들어가서는 문구코너로 직행.
학종이를 한 다발 집어 든다.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게 그려져있는 학종이의 표지를 흘긋 보더니 카운터로 간다.
"이거, 50매짜리가 얼마나 있어요?"
"네? 아..그건...얼마나 필요하신데요?"
"22개 정도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뭐? 50장씩 들어있는 건데, 스무 개나 산다고? 학종이를?
"뭘 스무 개 넘게 사. 아니면 차라리 100매짜리를 열개사든가……."
"이게 색깔이 더 예뻐."
단호하게 말하고는 점원이 재고를 보러간 사이, 유리병이 모여 있는 코너로 간다.
아, 이제야 대충 감이 잡히네.
"어떤 게 제일나아?"
"이거 골라 달라고 같이 오자고 한거야? 3주년 선물이야?"
"응, 민지랑 같이 올수는 없고, 이성열은 안 따라올 것 같고, 최승현은 너무 소녀감성이어서 오래 걸릴 것 같고....뭐, 아무튼."
"........이게 안 예뻐?"
"학 천 마리 넣어야 돼. 너무 작아."
"천마리이?"
"여기, 딱 스물두 개 있네요."
"아, 감사합니다."
학을 접어주겠다니, 참 이천년대초 답고 감상적인 발상이긴 한데, 천 마리라니,
설마 365x3해서 뭐 우리가 함께한 날들, 그런 건 아니겠지.
이왕 따라온 거고, 나도 요즘 할 거 없으니 뭐라도 해볼까.
적당히 조그만 별모양 유리병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까
학종이 개수를 다 확인했는지 다시 유리병을 살피던 호원이가 타박을 준다.
"그거 작다니까"
"니꺼 고른 거 아니거든? 나, 이거 사줘."
"보자보자 하니까 저번부터진짜, 내가 니네 아빠냐? 그리고 그건 어디 쓸 건데 니가."
"별 접을 거야!"
"별?....누구 주게?"
"글쎄-....뭐, 접고 생각해보든가...사줄 거야?"
"마지막이야,"
뭔가 뚱한 표정으로 또 마지막이라 하는 호원이, 히히.
얼른 가서 별접는 종이를 찾는데, 아직 유행을 안탄 건지, 없다.
나 어릴 때만 해도 있었던 것 같은데...종이 잘라서 접지 뭐.
그래서 컬러A4용지묶음을 또 몇 개 쥐고, 아직도 고민 중인 호원이에게로 왔다.
좀, 짜증나고 서럽긴 하지만. 도와줘야지, 한때의 추억 아니야, 어?
"이게 제일 예쁘지 않아?"
"그런가……."
"응, 크기도 제일 적당하고."
개중에 제일 나아보이는 병을 추천하니 자기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냉큼 가서 계산을 한다.
나에게 손짓을 해 내 것도 함께 계산. 역시 통이 크세요.
근데 저 학접는 아이디어는 누구생각이래…….
이성열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지만, 아닌 것 같다.
가자는 말에 나와 다시 터덜터덜, 담을 넘으러 걸어가는데,
호원이가 자꾸 나를 흘긋흘긋 보는가싶더니, 말을 건다. 나란히 걸으며.
"그거 누구 줄려고 진짜?"
"아직 모른다고요-..몰라 몰라-"
"너 그 A4용지는 뭔데?"
"그런 게 있어!―..근데 넌 학접으려고?"
"어, 1095개. 하나한, 다 메세지적고, 접어서, 줄 거야."
"너, 그거 나중에 또 해라. 나중에 애인생기면 또 해라 또? 어? 꼭!"
으 질투나!. 그런데 정작 3년 기념 선물을 챙기며 설레는 마음이 솔솔 피어야할 호원이의 표정은 애매하다,
뭔가, 생각이 딴 데 가있는 느낌.
"왜? 무슨 생각해?"
사람이 말을 거는데도 유리병만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쉰다.
뭐가 마음에 걸리는 거지? 사고나니까 좀 별로인건가?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멈춰 선다.
"저기, 들렀다가자"
"어? 어디? 약국? 왜? 너 어디 다쳤어?"
"너, 너 말이야 이 쪼다야. 보건실가서 이거 보여주면 어디서 다쳤냐고 할 텐데, 뭐라고 할래."
"아........"
그대로 붙들려 같이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갑게 맞아주시는 약사님.
딱 봐도 학교에서 몰래 빠져 나온 게 티 날 텐데, 친절도하시구나.
"이거, 팔. 소독약이랑 바를만한 연고 좀 주세요."
"으-..뭘했길래 이렇게 왕창 다쳤어요―"
어째 젊으시다싶더니 말투가 되게 귀여우시다.
그러면서 익숙한 움직임으로 소독약을 꺼내 내 팔을 닦아주신다.
호원이랑은 대충 아는 사이인지 학교는 요즘 잘 다니냐고 농담을 몇 마디 주고받기도 한다.
나더러 너는 누구냐고 물으시길래 대충 소개를 하고, 악수를 나누고, 그러는 사이 대충 치료가 끝났다.
근데 어느새 또 찝찝한 표정인 호원이.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뭐가 문젠데!
"자, 다됐다-음...워낙 시원하게 갈아먹었고, 피부도 좀 얇은 편이라, 약 줄 테니 매일소독하고 바르고- 알았죠?"
"네-"
"가자, 늦었어."
"진짜? 얼마나? 아, 감사합니다!"
얼른 약과 소독약이 든 봉투를 받아 들고나가려는데 갑자기 호원이를 부르신다.
"야, 잠깐만, 이호원"
어? 왜요,"
"너, 요즘 이상하다고 했던 거, 왜인지 알 것 같다. 너도 알고 있지? 부정하지 마."
"....가자."
"어, 가? 야, 같이 가!! 안녕히 계세요-"
얼른 따라 나와 같이 걷다가, 마음에 걸려 니가 뭐가 이상하냐고 계속 물어도 호원이는 끝까지 모르는 척, 못들은 척을 했다.
/
겨우겨우 시간 맞춰 들어오니 무료했던 듯. 햇빛을 받으며 자고 있는 이성열.
성종이는 아직 안 왔나........
오겠지 뭐, 했던 게 잘못이었는지 성종이는 저녁시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이 시대에 야자가 자율인 호원이네학교라 집에 가려고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맨날 종치자마자 뛰어나가던 성열이는 어쩐지 얌전히 앉아있다.
넌 가방도 없어서 몸만 나가면 되잖아, 왜 그러고 있냐, 곧 종칠 텐데…….
우리 반은 야자하는 반이 아니라 좀 있다가 문을 닫아야하는데..
주번인 종현이가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다. 호원이도 뒷문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내가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음, 호원이랑 민지 둘이 보낼 좋은 핑계가 생겼네.
호원이에게 같이 있다가 가겠다고 대충 자초지종을설명하니 영 찜찜한 표정.
마치 왜 그거 때문에 니가 학교에 남아있냐는 듯한...음... 어쨌든 열심히 둘러대 내보내고 성열이 앞에 섰다.
"너 왜 안 가고 이러고 있어,"
"아니, 뭐, 그냥, 어……."
그러면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데, 자꾸 앞자리 성종이의 책가방에게로 향하는 시선.
역시, 내 짐작이 맞구나, 기다려주는거야. 착한자식.
"종현아, 그거 내가 잠그고 갈게!"
"어? 응! 고마워!"
"잘 가-"
자물쇠를 받고 다시 내 자리로 오니 엎드려있던 성열이가 얼굴만 쏙 들어 날 본다.
자기가 괴롭혀서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은 하는지 표정이 웬일로 진지하다.
"언제까지 기다리려고, 전화라도 해보든가-"
"내 핸드폰 찾으러 간 거잖아, 근데 넌 어떻게 된 애가 휴대폰 하나도 없냐?"
"아, 그럴 수도 있는 거지!...근데 웬일이야 기다리기까지 하고."
"아니 뭐,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저녁에 밖에 보면 좋잖아, 음...또……."
"무슨- 너 , 그러고 보면 싫어하는척하고 괴롭혀도, 성종이 좋아하지?"
"너 미쳤냐? 뭘 가만있는 사람을 게이로 만들어,
나 여자 좋아하거든요? 니가 좋아하겠지 니가-어? 괜히 가만있는 사람한테 그래, 하, 나, 참, 그게 말이 되냐, 어?"
아, 아니 난 친구로서 좋아한다고...말한 건데-…….
내말한마디에 괜히 과민반응해서 또 랩 하듯 막 말을 쏟아내는걸 보면 느낌이 꼭…….
"어, 야!!너 왜이제와! 휴대폰을 만들어와도 이거보단 빠르겠다!"
내가 괜히 슬쩍 찔러보려는데, 교실문이 열리고 성종이가 들어왔다.
그걸 보자마자 성열이는 방금까지의 표정을 싹 지우고 또 뭐라 뭐라 쪼아대는데,
거기에 틱틱대며 반응해야할 성종이는 아무 반응도 없이 걸어온다.
그리고 성종이의 얇은 다리에 감겨있는 하얀 붕대.
"야, 너 다리는 왜 그래, 누가 그랬어."
얌전하게 책상에 기대 농담따먹기하듯 말을 하던 성열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 이제 본격적으로 의심이 된다.
뭐가? 성열이의 마음이.
성종이는 그대로 걸어와 성열이의 휴대폰을 책상위에 놓았다.
나 같으면 핸드폰을 성열이 얼굴에 냅다 던졌을 텐데.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도대체 그 몇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다.
특히 앞이 보일까 싶을 만큼 부은 눈.
이제, 성열이의 표정은 놀람에서 안타까움으로 바뀐다.
대충, 알 것 같다.
"승현이가 주워다줬어. 고맙다고 해. 내가 내려다가 굴렀거든."
".......어? 야, 너, 방금, 뭐?"
"한 달 동안, 한 달 동안 이러고 있어야 한다고,..."
그때서야 이해가 된다.
'한 달 있다가 큰 대회가 있거든'했던 성종이가 떠올랐다.
즐거운 표정으로 연습하던 브레이크댄스도.
어떡하냐고 하니까 또 괜히 억지로 웃으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도 다시 감정이 북받치는지 손을 들어 이미 다 부은 눈을 누른다.
아까부터 처참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던 성열이가 다가와 손을 뻗자, 탁, 소리 나게 쳐낸다.
그리고 자기자리에 걸려있던 가방을 들고, 교실 밖을 향한다.
"고마워 동우야, 내일봐"
"응, 힘내-.."
"..걸어, 걸어갈 수 있어?"
나름대로 조심하며 성큼성큼 걸어가던 성종이가 성열이의 걸어갈 수 있냐는 말에 우뚝, 멈춰 섰다.
뒤로 돌아서, 성열이를 무섭게 쳐다본다.
음...무섭게. 좀.
"니가, 싫어."
그리고, 성열이의 고개가 떨어졌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지금, 상처받은 거야.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성열이가 성종이를 쫓아 뛰어나갔다.
/
"이성열, 뭐야?"
"어, 너 집에 먼저 안 갔어?"
"응, 학접어야돼서, 민지더러 먼저 가라고 했지 며칠 동안만."
음, 나는 왜 안 갔냐가 아니라 왜 나를 기다렸냐고 물은 건데....음, 뭐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성열이랑 성종이는 어떻게 됐으려나..
생각하면서 집에 도착해 씻으려는데, 내 팔을 붙잡는다.
아야..잡아도 꼭 다친 팔을 잡냐.
내가 쓰려서 팔을 빼니까 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닌지 화들짝 놀란다.
"....왜?"
"아, 아니, 씻고나오면 약 발라준다고……. 그 대신 나 학접는거 가르쳐줘"
"...그래- 근데 너 그러면 학 어떻게 접는지도 모르면서 접는다고 그런 거야?"
"아니 뭐, 아니면 최승현한테 배우려고 했지."
그래서, 약을 발라준답시고 내 팔을 잡고 소독약을 치덕치덕 바르고 있는데, 팔을 잡고 있는 손이 뜨겁다.
팔 뒤쪽을 다쳐서 호원이를 볼 수는 없는데, 무슨 나 엿 먹으라고 손난로라도 갖다 대고 있는 건가.
원래 좀 따뜻한 편이긴 했다만..
커다란 반창고를 새로 붙인다고 가까이 와서 팔을 만지작거리는데, 느낌이 간지럽다.
어깨에, 잠옷위로 숨소리가 괜히 크게 들리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데 다 붙인 건지 호원이가 팔을 한번 탁, 때린다.
"아야, 아파-.."
"학접는거나 가르쳐줘."
"씨이.....이리 와봐,"
거실테이블에 앉아서, 학종이 하나를 꺼내들고, 마치 내가 호원이에게 피아노를 배울 때처럼 그냥 막무가내로 따라하라고 하니,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조심조심 학종이를 접는다.
손도 좀 큰 편인데, 조그마한 학종이를 들고 끙끙 거리는 게 왜 그렇게 웃긴지,
보고 있으니까 학교에서 있었던 복잡한 일들도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다.
호원이는 내가 막 삿대질을 하면서 웃으니까 내가 접은 학을 나한테 던져버린다.
물론 학종이의 종착점은 내가 아니겠지만, 낮게 가라앉아있던 호원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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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세요!!ㅎㅎ
금요일업뎃이네요!^~^
주말에 약속이있어서...미리 올립니다!ㅋㅋ
빼먹지는않을거예요 반드시..ㅠㅠ...끝날때까지 꼭....!
2. 야동 분량을 늘리고싶었는데, 흠....열종만 늘어난 느낌.
이번화는 진짜 뭐가 없네요 우리 야동님들은.
그래도 쪼끔쪼끔씩 나오는 호원이의 내적갈등이 보이시나요!!!!
안보이신다면 ...ㅠㅠ.....노력하겠습니다ㅋ.ㅋ....
3. 야동열종중심이어서 성규씨 분량이 제일 적을것같은 이런느낌....음....네...그러네요......ㅠㅠㅠ...제 능력의 한계일까요.
이것또한 고민해보겠습니다!ㅎㅎㅎㅎㅎ
4, 늘 재미있게읽어줘서고마워요!
언제쯤 야동은 서로를 좋아하게될까! 어쨌든 야동행쇼!!!!!!
제가 새벽이라 미쳐가는듯.
늘 재미있게 읽어줘서 고마워요 좋은새벽보내세요 물결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