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민-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내가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지금 십대의 호원이를 능가할 정도로 이십대인 호원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덕분에 나는 탁구선수 해야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손목스냅의 대가가 되었다.
무슨 소리냐고?
잘 닦인 흰 바닥, 아이보리색 테이블, 그 위에 얌전하게 놓인 아메리카노두잔과 얼그레이치즈케이크.
그리고 맞은편에는 여성스럽게 늘어뜨린 연갈색 웨이브머리를 한, 갸름하고 흰 얼굴의 20대 여성분.
어떻게 저렇게 조막만한얼굴에 저 커다란 이목구비가 다 들어갈까.
나를 주시하고 있는 눈동자는 거부감이 들리만치 까맣고 아름답다.
물론 이런 여성스러운 아가씨와 마주보고 있는 사람이 훤칠한 애인이었다면 참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를 뚫을 듯 노려보고 앉은 건 달랑 열여덟밖에 안 먹은, 교복을 차려입은 남고생이다.
그리고, 공중에 보란 듯이 흩뿌려지는 물.
늘 내가하면서도 꼭 이천년대초 드라마마냥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빈 물 잔을 내려놓고 커피잔을 들어 목을 축인 뒤, 입을 연다.
"수치스럽나요? 그러게 애초부터 접었어야지, 주인 있는 나무는 오르는 게 아니랬어.
뭐, 워낙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상관이야 없지만."
그리고 손가락을 일부러 더 가늘어보이게 펴 커피 잔을 들고, 다시 한 모금.
이제 하이라이트.
여자를 보며 빙긋, 웃는다. 그리고 다시 정색.
"내 손이 닿았던 곳곳을 당신 같은 게 쳐다 본다는 게 기분 나쁘거든."
그리고는 옆자리에 놔두었던 백팩을 다시 집어 들어 매고 당당히 뒤로돌아 카페를 나온다.
그쯤 울리는 벨소리. 전화를 받으면 어떻게 됐냐고 묻는 왠지 모르게 들뜬 듯 한 이호원의 말투.
"잘했어? 내가 써 준대로했어? 안 울었어? 그 여자가 너더러 뭐라 그러지는 않았지?"
"아 그러게 이런 걸 왜 나한테 시켜어...."
자기 이미지 나빠지는 지름길인데 내가 당황하는게, 최대한 표정을 지우고 시킨 대로 또박또박 말하고 오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지 자기 좋아하는 여자만 생겼다하면 스크립트를 써댔다.
아니 뭐, 그것도 처음에 도저히 처리가 안돼서 나를 불러놨는데
내가 거기다대고 되레 울먹거리면서 빌듯이 말을 하니까 답답해서 그랬다지만…….
늘 그러고 나올 때마다 카페에서 내가 뿌린 물을 털어내고 있을 여성분을 생각하면 되게 미안해졌다,
그런데 지금, 나를 보며 말을 꺼내려는 민지의 표정이 꼭, 맨 처음 호원이가 하다못해 나에게 부탁했던 20대 후반의 끈질긴 여성분에게 내가 간절하게 부탁하던 때의 표정과 꼭 닮아서,
호원이 얘기를 꺼낼걸 먼저 예상해버리고 말았다.
하긴, 민지 니가 나한테 할 얘기가 이호원얘기 빼면 뭐가 있어.
"호원이가, 이상해. 변했어.."
그냥 가만히 앉아 듣고 있는데,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터질 것 같다. 참느라 입에 경련이 올 지경.
"호원이가 이제 당분간 나랑 집에 못간대....맨날 얼굴도안보고 먼저 사라지고.."
그래 당연하지, 너 줄 학접어야 되니까.
"휴대폰도 막 봐도 별말 안했는데, 시간 본다고 건드려도 괜히 뭐라 그러고……."
그래, 휴대폰에 너 줄 선물이 배송되고 있긴 하냐고 뻔질나게 전화건 흔적이 있을 텐데, 당연하지.
아까부터, 3주년이벤트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이제 곧 3주년인데, 너무 불안하다며 그래도 너는 같이 사니까 뭔가 느끼지 않았냐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참, 왠지 모르게 부러워진다.
넌 그래도 나와의 3주년에는 달랑 자기가 만든 케이크 하나 던져주고 불타는 밤을 보냈던 이호원이
그 천 마리가 넘는 학종이에 하나하나 메세지를 써넣을 만큼 정성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 건데.
뭐, 문제는 내가 그 케이크하나에 감동받아 질질 짰다는 게 문제지만,
아 그 후로도 새벽 내내 울긴 했다.
이유는 전혀 다르지만.
덕분에 3주년기념으로 울긋불긋 얼룩덜룩한 목덜미와
하루 종일 온몸이 쿡쿡쑤셔와 어쩔 수 없었던 결석을 선물받기도 했었지…….
민지의 얘기를 대충 들으며 이제 까마득해져가는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데,
얘기가 진짜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뭐...방금, 뭐?"
"나랑 있어도, 얘기를 하다가도 딴청을 부리고...."
"아니아니, 그전에."
"어느 날부터 뭔 반지를 끼고 다니기 시작하더니, 그걸 뚫어져라 보면서 생각에 빠져서는..불러도 못 듣고……."
"어? 그거 너랑 커플링 아니었어?"
"어? 나랑? 나랑 호원이 아직 커플링 없는데?"
내가 깜짝 놀라 묻자 되려 놀라는 민지.
아까부터 뭔가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싶더라니.
묻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는지 그 후로는 민지의 표정이 왠지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
그 반지를 묻고 싶었던 거였나. 그러면 그냥 대놓고 물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왜 굳이 흘려가면서 떠본 걸까…….
아무튼, 반지얘기를 듣자마자, 처음 고등학교시절의 호원이에게로 왔을 때 잠깐 떠올랐던 상상이 다시 생각났다.
그렇구나. 어째 계속 그게 마음에 걸린다 했더니.
/
"왔어?"
"이호원."
"왜, 나 학접는거 안보여?"
"일어나."
"왜, 바빠, 나중에 해, 학 개수부터 좀 세봐. 오늘 되게 많이 접었는데."
"일어나라고 당장!"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학종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다가 내가 소리치자 그제야 가만히 올려다본다.
손에 들린 학종이를 쳐내고, 손을 살피자 그제서야 짚이는 게 있는지 움찔, 손을 빼내려한다.
내가 잡고 놔주지 않자 작게 한숨.
저번에 커플링이라며 보여주지 않던 반지가 여전히 걸려있었다.
오른손에 걸린 투박한 스테인리스반지.
생각해보면, 커플링인 게 더 이상해, 약지도 아니고. 학생이고 어리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내가 하루에 몇 십번이나 고민하며봤던 반지와 똑같이 생긴데다가, 당겨 빼보려해도 빠지지 않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니 처음부터 아니었으면 했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최악이야.....
나는 어느새 일어선 호원이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미안해"
사실 민지의 말에 설마설마, 하며 집으로 오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같은 모양일수도 있잖아.
흔할 수 있는 디자인이잖아. 아니겠지, 설사 같더라도.
그런데, 그 희망마저 이호원은 한마디로 깨뜨렸다.
이게 그 반지가아니라면. 호원이가 그 반지의 의미를 모른다면, 이 손에 있는 반지로 내가 여기 있는 게 아니라면,
왜 호원이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온 걸까, 왜.
"내가, 2004년으로 온 것도, 갑자기, 고등학생이 된 것도, 다, 너지, 너때문이지,"
억울함인지, 분노인지, 서러움인지, 무언가가 넘쳐 눈물이 터져 나온다.
잡고 있던 호원이의 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며, 눈물은 닦지도 못한 채, 나머지 손으로 말없는 호원이의 어깨를 잡아 흔든다.
너무 소리를 질러대서일까, 머리가 띵하게 울려왔다.
이호원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해명도 변명도 없이 그저 나를 보고 있다.
"..나, 돌려보내. 지금 당장. 2012년, 왔던 곳으로, 당장!"
줄곧 표정 없이 그냥 보고만 있던 호원이의 눈이 커졌다.
내손을 쳐내고, 어깨를 잡아 거의 주저앉으려는 날 일으키고, 내 눈을 쳐다보며, 입을 열어 조그맣게 말한다.
"못해."
그리고는 그 자리에 넋을 놓은 채 선 날. 외면한다.
쨍그랑, 학을 센다고 쏟아부어버려 비어있던 유리병이 호원이의 몸에 걸려 바닥에 떨어져 깨어졌다.
"돌려놔, 당장 나 돌려놔!!"
내가 세 번을 다 써버린것 같은데, 내가 여기에 있다면 너에게도 세 번의 기회가 생겼다는 거 아니야.
막무가내로 호원이쪽으로 다가서다가, 깨진 유리병조각을 밟았다.
베란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학종이가 이리저리로 날려 이미 엉망인 바닥.
돌아갈 수 있다면, 아프지 않았다.
"난, 못해."
그리고는 빠르게 날 지나쳐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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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ㅏㅇ아ㅏㄱ 겁나짧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똥망....
사실 뒷부분도 써두긴했는데 뒷부분이 열종인데다가 중간에 우현이를 넣을지말지도 고민되고....
자를부분이 너무 애매해서...ㅠㅠ..
그걸 다 집어넣어서 한편으로 쓸수있으면 분량도길고 자연스럽게이어지고 참 좋을텐데...그게 안되겠더라구요.
변명은그만할게요 죄송죄송...^_^...;;
리턴을 봄부터 쓰기시작한것같은데 폭염과 태풍을넘어 벌써 가을인듯하네요...
겨울까지 끝낼수있을것인갘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스토리라인을 거의 다 잡았습니다!ㅎㅎ
그래서 이제 반지얘기가 나오기시작하죠~_~
동우는 돌아갈수있을것인가!
늘 재미있게봐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