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어도 분명 느낄 수 있었다. 새벽 5시의 하늘이 이리도 밝았던가. 창문 밖의 풍경은 조용하기만 하다. 밝은 빛에 혹여나 깊이 잠든 경수가 깰까 봐 종인이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왔다. 창문에 달려 있는 하얀색의 프릴 커튼을 쳤다. 흰색이라 그런지 빛을 다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주 소용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막 둘이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 경수는 어디서 이런 커튼을 샀는지 낑낑거리며 집에 들고 왔었다. 남자 둘이 사는 집에 레이스 커튼이 왠 말이냐며 투닥거리던 때가 생각났다. 하여튼 도경수, 특이해.
별다른 생각 없이 생각한 동거였다. 아주 어릴 때도, 그리고 학창시절에도 가족처럼 꼭 붙어 지냈으니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독립을 해서 같이 살자, 그 둘에겐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남들 눈엔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감정이 이렇게 변해버릴 줄은 몰랐다. 그저 한낱 우정에서 시작한 감정은 어느새 겉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변해버린 자신의 문제였다. 10년 친구를 보고 이상한 감정이나 느껴버리는 자신의 문제였다. 경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있지만, 종인은 쉽사리 경수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눈치 없는 상대방의 문제였을까. 경수는 동화 라푼젤에 나오는 공주처럼 고고한 성같은 것에 둘러싸여 있는 듯했다. 차이라면 그녀는 왕자를 위해서 자신의 기다란 금빛 머리카락을 내려 주지만, 경수는 그저 그 성 안에서 밖을 내려다보기만 한다는 것일까. 아무 것도 없이 오르기에는 너무 높은 성벽이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너는 저만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다. 경수야, 하고 불러 보지만 들리지 않는 거리다. 종인은 항상 애타게 경수를 좇는다.
“으음….”
경수가 뒤척였다. 한참이나 침대에 앉아서 자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종인이 화들짝, 놀랐다. 종인아아ㅡ하고 경수가 눈을 감은 채로 제 옆자리를 더듬거린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경수의 작은 손에 종인이 살포시 자신의 손을 올렸다. 경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대로 다시 잠에 든다. 나는 어떻게 자라고, 도경수. 종인이 고민하다 경수가 잠에 깨지 않게 조심스레 다시 침대에 누웠다. 물론 잡은 손은 절대 빼지 않고. 절대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새벽이지만 그래도 설레이는 기분이 마냥 좋았다.
“…경수야.”
“….”
“좋아해.”
“….”
“많이.”
아마 평생 경수에게는 닿지 않을 소리를 하고선, 마주 잡은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평생 몰라줘도 좋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아마 저는 경수에게 조금은 남들보다 특별한 존재일 테니까.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아직은 경수의 고고한 성에서 그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제가 그곳에 올라서려 하면 분명 겁을 먹을 터였다. 그러니까 아직은…. 아직은 그의 아래에서 호위무사처럼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항상 경수의 곁에서 맴돌며.
너는, 영원한 나의 라푼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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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알렉스와 호란이 부른 '라푼젤' 이라는 노래 아세요? 요즘 그 노래에 푹 빠져있던 지라 갑자기 라푼젤을 소재로 글을 써보고 싶어서 어제 노래를 들으면서 썼던 짧디 짧은 조각글이에요^^ 원래는 그 노래로 배경음악을 첨부하려고 했는데 글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같아서요..ㅠㅠ 이 글은 연재를 할까 말까 생각 중이에요.. 끈기 있는 성격이 아닌 지라 절대 연재는 하지 않을 테다, 했지만 또 연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하하 아무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찾아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