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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런 고르기 02
독방의 고르기 글에서 파생된 글입니다 (설정은 조금 달라요)
당신을 사랑하는 빌런 김태형 썰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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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저주받은 아이 '
태형의 유소년시절은 그 한 마디로 함축시킬 수 있었다.
20여년 전 겨울 북한의 선제포격으로 대한민국은 전란에 빠졌다. 전쟁에 무방비했던 정부의 무능력은 여실히 드러났고, 그에 반발한 반정부 혁명군이 전국 각지에 생겨났다.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소리없이 죽어가는 것은 무고한 시민들이었고.
그리고 그 해, 태형이 태어났다. 무자비한 포화 속에서.
태형은 추운 겨울에 보육원 앞에 버려졌다. 제 앞날을 예감한 어미의 현명한 선택이었다. 불과 며칠후 정부에 의해 불순분자로 찍혀 희생된 제 어미를 태형은 평생 모를 일이었다.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홑이불 하나로 둘러싸였음에도 태형은 울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처음 그를 발견한 보육원의 교사가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몸을 의탁하는 곳마다 빈번히 화재나 폭격같은 재난이 일어났기에 태형은 수많은 보육원을 전전했다. 가는 곳마다 저주를 불러온다며 태형을 꺼려했지만,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보육원의 목사님은 이상하게도 그를 아꼈다. 주변에선 여자목사라서 별난 모성애가 있다느니 헛소리를 지껄였지만.
어릴 때부터 태형은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감정사고를 할 수 없었다.
슬플 땐 울고, 행복할 땐 웃는, 간단한 감정마저도 태형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으니까. 사소한 일에도 울고 웃는 사람들이 공감되지 않았다.
태형은 어떠한 감정의 기복도 없이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저 시간을 떼웠다. 슬플 땐 마음이 어딘가 쿡쿡 쑤시는 것 같았지만 눈물까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자란 태형은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싸이코패스, 저주받은 애, 그따위의 별명을 들으며 자라났다.
딱히 누군가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않았기에 괜찮았지만, 문제는 몸이 자라고 나서부터였다. 또래 남자아이들은 태형을 목사님이 없는 틈을 타 끈질기게 괴롭혔다. 갑자기 인정사정없이 걷어차거나, 얼굴에 물을 붓거나, 자고있는데 갑자기 명치를 세게 치는 등등 나날이 아이들의 가학성은 더해갔지만 태형은 입을 다물었다. 목사님이 속상하지 않길 바랐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아이의 입에서 목사님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가 튀어나왔고, 그에 눈이 돌아간 태형은 의자를 집어들어 그 아이의 머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아이의 얼굴은 또렷이 보였다. 흰자를 뒤집어까고 개거품을 물고 있는게, 꽤 볼만했다. 태형은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온 몸이 그 아이를 죽이라는 듯이 애원하고 있는 것마냥 활활 타올랐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동댕이쳐진 의자를 다시 들고 걸어간 순간, 세상은 암전됐다.
다음 보이는 장면은 제 얼굴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목사님이었다.
제 뺨위에 맑은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그게 아마도 태형의 인생에서 가장 가슴이 저렸던 최초의 순간.
그래서 태형은 제발로 보육원을 걸어나왔다. 열 다섯의 나이에.
보육원의 목사님은 떠나는 태형의 손을 잡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절대 죽지 말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제 십자가 목걸이를 채워주며.
태형은 그 뜨겁고 애절한 눈을 기억했다. 남들이 말하는 '저주' 그딴 말을 믿진 않았지만, 제 존재 자체가 목사님에게 저주가 될 거란 예감을 했다. 그래서 나가려는 결심을 한 순간부터 생존은 생각치도 않은 것이었다. 몸도 약하고 작은 자신이 전쟁통에서 살아남으리란 보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제 목에 그 십자가 목걸이가 채워진 순간, 태형의 삶의 이정표는 정해진 것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2.
자고 일어나면 몇 백에서 많게는 몇천몇만이 죽고 다치는 전란, 그 속에서 살아남는 건 쉬운 길은 아니었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태형이 배운 건 도둑질과 주먹쓰는 법.
사람을 죽이는 법.
3.
어느날 늦은 밤 길을 걷고 있던 태형의 눈에 어린 아이를 구타하고 있는 군인이 들어왔다. 아무리 많게 봐도 고작 열살 남짓해보이는 남자아이를 군복을 입은 남자가 사정없이 걷어차고 있었다. 갈수록 격해지는 구타에 아이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지만, 아이는 꿋꿋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태형은 그게 꼭 자기의 어릴 적 모습 같아서, 지나칠 수 없었다. 물론 아이에 대한 연민 혹은 정의감은 아니었다. 그저 제 모습같아 꼴보기 싫었을 뿐.
그래서 달려가 군인의 뒷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 남자는 힘없이 나자빠졌다. 사람 하나 사라지는 건 일도 아닌 전란 속에서 군인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지만, 태형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눈물을 참은 채 꾸역꾸역 입을 다물고 있는 어린 남자애가 제 눈 앞에서 꺼지기만을 바랐다.
" 이 씨발새끼가, "
나자빠진 남자는 비틀비틀 일어서서 그대로 총을 꺼내 개머리판으로 태형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둔탁한 소리가 골목길을 울렸고, 아마 태형은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도 같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총소리에 정신을 차린 순간 제 손엔 남자의 총이 들려있었고, 남자의 머리통은 뚫려있었다. 이마 정중앙에 선연하게 뚫려있는 모양새가 꽤 재미있게 느껴져서 태형은 비실비실 웃었다. 제 얼굴에 무자비하게 튀긴 피가 비릿한 맛이 나는 것, 뚫린 이마 뒷편에서 나온 피가 내리막길인 길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것, 무언갈 말하려는 듯 남자의 입이 우습게 벌려져 있는 것. 태형은 혀로 제 입가를 훔치며 그 모습을 머릿 속에 새겼다. 최초의 살인의 순간, 태형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처음 느껴보는 희열을 느꼈다.
반쯤 풀린 눈으로 웃음을 흘리며 뒤돌아보니 아이는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 입을 꾹 다물고 있는게 영 거슬렸지만 상관없었다. 태형의 기분은 최고조였으니까. 태형은 헤헤, 웃으며 얼른 꺼져.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태형의 음성에 어깨를 들썩이더니 빠르게 달음박질쳤다. 그 모습을 길게 보고 있던 태형은 뒷통수를 긁으며 총을 챙겨들었다. 그러다 축축한 느낌이 들어 손을 살펴보니 아까 개머리판으로 맞은 뒷통수에서 제 피가 흥건했다. 태형은 손에 잔뜩 묻은 피를 혀로 한 번 빨았다. 비릿한 피맛이 입 안을 적셨다.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태형은 웃었다. 원체 웃는 법을 몰랐기에 한쪽 입꼬리만 씰룩이며, 미친 사람처럼.
4.
그게 2년 전의 일이었다. 그 날 이후 남자에게 개머리판으로 맞은 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태형은 통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 심부름을 하다가 마주하게 되는 구타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명치를 맞아도 잠시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 뿐 전처럼 하루종일 아프지 않았다. 남준은 그걸 통증 상징불능이라는 이름의 병이라고 했던가. 태형은 그게 아주 반가웠다. 누군갈 때리고 맞는 건 이미 익숙했지만 원치 않아도 며칠씩 앓아 눕게 되는 고통은 성가셨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는데에도 아주 쓸만한 것이었다. 그 날 이후 살인충동을 벗어나지 못한 태형은 음침한 골목어귀에서 여자나 아이같은 약자들을 노리는 놈들을 봐뒀다가 무참하게 살해하곤 했다. 어차피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쓰레기들이었으니, 태형의 놀이에 제격인 장난감들이었다.
태형은 그 때마다 보육원을 떠나던 날 목사님이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 태형아. 세상에는 이유없이 태어난 사람은 하나 없단다. 하느님은 모든 아이들을 이유없이 세상에 내려주진 않아. 태형이에게도 곧 그게 생길거야. "
제 의지완 상관없이 태어난 생에서, 태형은 그 목적을 찾는 일이 버거운 일이었다. 그저 목사님의 말대로 살아남는 것이 세상의 진리였다.
아무런 감정이 없었기에 그게 가능했던가. 돌이켜보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태형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별다른 목적없이 사는 생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태형은 드디어 살아가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저보다 약한 인간을 해하려는 추악한 놈들을 제거하는 것. 그 쓰레기들의 몸에서 쏟아져나오는 피와, 꼴에 생존을 갈구하는 그 눈을 보는 일은 아주 재미있었다. 별안간 웃음이 터질 정도로. 그래서 태형에게 살인은 놀이였다. 유일하게 재미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 행적을 모두 꿰뚫고 있는 남준은 이따금씩 시민들 사이에선 네가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고 귀띔해줬지만, 태형은 그런 말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생긴다면, 살인보다 더 흥미로운 게 생긴다면 언제고 그만둘 수 있는 놀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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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날도 그랬다. 늦은 새벽 도심을 배회하는 이들은 먹거리가 없어 배를 곯은 승냥이같은 자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가 보였다. 멀리서 지켜보기에도 앙상해보이는 아이는 품에 무언갈 소중히 안고 주변을 살피며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일당일 것이었다. 공장단지 주변에 위치한 골목길에서는 그런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제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늦은 밤까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쥐꼬리같은 보수를 받는 아이들.
그를 노리는 놈들은 늦은 새벽까지 골목길 어귀에서 드문드문 보이곤 했다. 그 쓰레기들을 노리는 태형도 마찬가지였고.
때마침 아이의 앞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아이를 위협했고, 아이는 봉투를 더 품 속으로 안으며 고개를 도리질했다. 남자는 피식 웃더니 인정사정없이 아이의 복부를 걷어찼다. 억, 하는 아이의 비명이 들렸고 태형은 안주머니의 칼을 꺼내들며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
뜬금없는 맑은 목소리였다. 어두침침한 골목이 잠시 환하게 비춰지는 것 같이, 이상하게 말갛고 새하얀.
종종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니 작은 체구의 여자가 조금 가파른 골목길을 달려 남자의 앞에 서있었다. 아이를 제 뒤에 재빠르게 숨기며.
태형은 빠르게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모습을 지켜봤다.
" 지금 아이를 상대로 뭐하는 거에요! "
" ...하 씨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남자를 여자는 잠시 쏘아보더니 아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이를 보는 여자의 눈이 지나치게 따뜻했다.
" 괜찮아? 집이 어디야? "
" ...저, 저기. "
아이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하려는 순간, 여자의 머리채가 뒤로 확 넘어갔다. 남자가 잔뜩 성난 얼굴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채고 있었다.
여자는 악, 소리를 지르더니 빠르게 아이를 향해 말했다.
" 얼른 가! 빨리 도망가! "
아이는 잠깐 망설이는 눈으로 보더니 옆길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아주 빠른 속도로.
남자는 그 광경을 보며 여자의 머리카락을 더 세게 쥐었다. 이 개같은 년이, 욕을 뱉으며 남자가 머리를 잡아 뜯을 것처럼 말아쥐자 여자는 비명을 참는 듯 이를 꽉 깨물곤 제 패딩주머니에서 뭔갈 꺼내 그대로 휘둘렀다. 가로등 아래에서 빛이 번쩍했다. 태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보자, 여자의 손엔 작은 칼이 쥐어져있었다.
그 칼에 무참하게 잘려진 건 여자의 머리카락이었다. 남자가 말아쥐었던 머리칼이 속절없이 허공에 날리며 쏟아졌다.
" 더 건드리면 찔러버릴 거에요. "
여자는 꽤 위협적인 얼굴로 칼의 끝을 남자에게 돌렸다. 반정도가 잘려나간 제 머리카락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오로지 남자를 향한 반항적인 눈빛만 가득했다.
태형의 입가가 공연히 꿈틀거렸다.
" 하, 그딴 걸로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
남자가 코웃음을 치며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의 손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결코 사람을 해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태형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찌른다고 경고했어요! "
" 지랄하네. "
남자는 단숨에 여자의 손목을 잡아채 칼을 빼앗았다. 여자의 눈동자가 급속도로 어두워지며 두려움에 젖었다.
남자는 그 칼 끝을 여자의 목에 대며 비릿하게 웃었다.
" 아까 그 새낄 도망치게 했으니 니가 날 좀 재미있게 해줘야겠다, 썅년아. "
그리곤 여자의 겉옷을 거칠게 벗겼다. 여자가 그에 반항하며 몸을 크게 틀었고, 목에 닿은 칼날이 예리하게 스쳐가며 피가 흘러내렸다.
태형은 순간 머릿 속에 화마가 덮친 듯 시야가 흐릿해졌다.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흘러들어온 충동인진 모르겠지만.
태형은 빠르게 달려가 남자의 옆구리를 세게 걷어찼다. 남자가 무방비하게 쓰러져 괴물같은 신음을 흘렸다.
사이 태형은 고개를 돌려 여자를 쳐다봤고, 그 얼굴을 마주하자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눈물이 가득 차오른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 순진한 얼굴로 저를 보는 여자가 어쩐지 이상했다. 난데없이 가슴이 쿡쿡 쑤시는 것 같았다. 꼭 목사님의 얼굴을 볼 때처럼.
온 세상이 암전되고 여자의 얼굴만 보이는 것처럼 밝았다. 가로등 하나뿐인 음침한 골목이었는데도.
" 씨발! "
하지만 여자의 얼굴을 온전히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휘청이며 일어나 칼을 휘두르는 남자때문에.
태형은 여자의 손을 잡아끌어 제 뒤로 밀곤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는 싸우는 법을 제대로 모르는 듯 그저 칼을 휘두르기만 했다. 제대로 조준도 못하는 칼부림이 몇 번 허공을 스쳐지나갔다.
태형은 그 칼을 제 손으로 잡았다. 칼날이 박혀오는 손의 살결사이로 찬바람이 베어 들었지만 태형은 아프지 않았기에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놀란 남자가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려 했지만, 그 복부를 걷어찬 태형이 좀 더 빨랐다. 남자는 또 다시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성가시게 소리를 지르지 않게 하려면 목을 찌르는 게 가장 빨랐다. 태형은 칼을 손에 말아쥔 뒤 찌르려 천천히 걸어갔다. 사이 뚝뚝 떨어지는 제 피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남자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 도망치려던 순간 태형은 손을 허공으로 치켜올렸고, 그 순간 뒤에 있던 여자가 제 허리를 안아왔다.
" 안돼요! "
여자는 태형의 허리춤에 매달려 울부짖듯 소리쳤다. 그에 태형이 잠시 멈칫한 사이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빠르게 도망갔다.
이렇게 다 와서 놀잇감을 놓친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태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확실한 불쾌함이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태형은 거칠게 제 허리춤에 있는 여자의 손을 떼어냈다.
" 너, "
무언갈 말하기 위해 입을 뗀 순간, 태형의 손목이 부드러운 손에 의해 잡아당겨졌다.
갑작스러운 촉감에 태형이 숨을 작게 뱉고 시선을 돌리니 제 손을 양 손으로 살피며 울상인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닿은 손이 너무 뜨거워서 태형은 하려던 말도 잊은 채 매서운 눈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 아, 어떡해. 괜찮아요? 피가 너무 많이 나요. "
여자는 아랑곳 않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태형의 손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분홍꽃이 수놓아 있는 하얀 손수건에 붉은 피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태형은 그 광경이 이상했다. 여자가 왜 이런 눈으로 제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한 기분이었다. 불쾌함과는 다른 종류의. 그게 무슨 감정인 지 이해하기엔 태형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 왜 그런 눈으로 날 봐. "
그래서 물었다.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대체 왜, 닿으면 데일 것 같은 눈을 하고 저를 바라보는 지.
여자는 망설임없이 단숨에 대답했다.
" 다쳤잖아요. "
처음 듣는 종류의 말이었다. 보육원을 다닐 때에도 제 상처를 항상 감춰왔던 태형이었고, 딱히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누군가에게 보여봤자 비웃음만 살 것이었다. 저주받은 아이라며, 너는 그래도 싸다며. 언젠가 실수로 커터칼에 손목이 베여서 정신을 잃을 만큼 피를 쏟은 적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저를 더 혐오할 뿐이었다. 기어코 자살시도까지 했다면서. 그래서 태형에게 다친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감춰야할 무언가였다. 홀몸으로 나와 살아가면서도 칼에 베이거나 크게 다친 날은 혼자 피를 닦아내고 앓아내는 밤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제 상처를 보고도 싫은 표정 하나 없었다. 오히려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다쳤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여자는 눈을 빤히 보다가 다시 제 손을 지긋이 눌렀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피가 부지런히도 손수건을 적셔갔다.
연신 훌쩍이던 여자는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아프죠, 그런 물음을 던지며 태형의 손목에 똑 똑 눈물방울을 묻혔다.
태형은 그 눈물이 제 피부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그 부분이 유독 따뜻하게 저며왔다.
이상한 여자였다.
어쩌면 가장 흥미로운 장난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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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댕이 아니라 또 놀라셨죠...? (냥댕은 이번 주말이나...담주 초에 나올 것 같아요)
빌런썰은 이렇게 뜬금없이 툭툭 튀어나올 예정입니다!!!
이번엔 태형이에요 아마 상중하 / 상하 이런 식으로 나뉘어서 나올 것 같습니다. 분량조절을 잘해야 할 텐데...!!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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