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내게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안에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개’ 였다. 크고, 하얗고, 풍성한 털을 가진 이 견종의 이름은 뭐지. 사모예드인가.
“우리 집 뽀삐가 가출을 했어요.”
뽀삐? 그래, 네 이름이 뽀삐구나. 순하게 생긴 얼굴이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 추운 날 어쩌다 가출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집 나가면 ‘개 고생’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객님, 여기는 개를 찾아주는 곳이 아닙니다.”
흥신소를 방문한 목적이 없다면 이제 그만 돌아가 달라는 의미에서 목례를 했다. 아주 심각한 얼굴로 들어와 고작한다는 말이 개를 찾아달라? 아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에 시간을 뺏긴 것 같아 솔직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뽀삐는 사실 사람이에요.”
“죄송합니다.”
뭔 개소리야? 라는 말이 빛보다 빠르게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침착하게, 당황하지 않고. 팔을 쭉 뻗어 문을 가리켰다. 뽀삐는 금방 돌아올 겁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사례를 할게요. 현찰로 10억.”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시지. 나는 냉큼 소파에 앉아 수첩을 꺼냈다.
“그 개를, 아니 뽀삐를 마지막으로 보신게 어디였죠?”
“사장님께서 내 말을 어디까지 믿어줄지 모르겠네요. 일단 팩트는 우리 뽀삐가 원래 사람이었다는 것이며, 어느 날 갑자기 개로 변했다는 거예요.”
“그럼 뽀삐가 되기 전에 사진은 없습니까?”
“없어요.”
의뢰인이 핸드폰을 꺼냈다. 카페테라스에서 주스를 마시고 있는 뽀삐, 주둥이를 쭉 내밀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부는 뽀삐, PC 방에서 오버워치 캐릭터를 고르는 뽀삐. CG나 합성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정교하다. 심지어 그 누구도 뽀삐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그냥 사람 같은 개. 정도의 시선이랄까?
“왜냐하면 그가 뽀삐로 변하고 나서 모든 사진이 다 바뀌어 버렸거든요. 사람이었을 때 이름도 기억이 안 나요.”
“정말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고객님의 말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체포기각서라도 써야 할까요?”
“아니, 뭐 그렇게 까지는 필요 없고요. 지금 당장 예약금 명목으로 1억을 보내 주세요. 거래가 끝나면 돌려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근데 우리 뽀삐를 찾지 못한다면요?”
나는 의뢰인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뽀삐 가출 사건이 진짜라면? 1,000,000,000원. 아홉 개의 공이 통장에 찍힐 것이고, 피 보는 일 없이 평생을 먹고 놀 수 있다.
“찾지 못한다면 고객님이 시키는 대로 뭐든 하겠습니다.”
<한국 은행 입금 알림>
의뢰인 님으로부터 10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의뢰인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그리고 지갑에서 증명사진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네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이다. 이 학생을 찾으라는 건가요? 나의 물음에 의뢰인이 대꾸했다. 아뇨, 우리 뽀삐가 사람으로 변하면 이런 모습일 거 같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근데 우리 뽀삐가 맞는 것 같아요. 이 학생이 차고 있는 팔찌가 세상에 하나뿐인 디자인이거든요.”
“팔찌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가품들과 달라요. 그리고 사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작전 개시하겠습니다.”
의뢰인이 제시한 기간은 3개월. 그 안에 찾지 못하면 계약은 파기되고 나는 ‘인간 뽀삐’가 되어 살아갈 것이다. 반대로 더 빨리 찾아낸다면 남은 날짜만큼 1억씩 추가. 나 진짜 잘하고 있는 거 맞나?
네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열여덟 살 이제노. 의뢰인이 보여준 사진과 똑같이 생겼다. 일주일 내내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녔는데 딱히 소득은 없었다. 평일은 아침 여덟시 반, 집에서 나오자마자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다. 아홉 시, 교문을 통과한다. 두시 반, 혼자 하교를 한다. 세시, 네오 댄스 학원으로 들어간다. 열시, 친구들과 나온다. 열시 반, 학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사 먹는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만약 이제노가 진짜 뽀삐라면 길 가는 개를 보고 반가워하거나, 간식으로 핫바 대신 개껌을 씹는다거나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제노, 너는 정체가 뭐냐?
* * * * *
“안녕하세요. 저는 VIP 엔터테인먼트 이여주라고 합니다.”
이제노의 같은 반 학생으로 추정되는 남학생을 가로막고 명함을 내밀었다. 저는 연예인 할 생각 없거든요. 교복 단추가 터질듯한 몸매, TV에 나오는 아이돌과는 정 반대로 생긴 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뇨. 그쪽 말고 이제노 학생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제노요? 제노는 오늘 연습 있다고 조퇴했는데요.”
“아, 그러면 혹시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돼요.”
이제노가 평소에 자주 가던 분식집으로 남학생을 데려왔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시키라고 했더니 분식값으로 거의 5만 원어치를 쓰게 생겼다. 돈이 아까워서 이가 갈렸다. 그래도 이제노와 관련된 고급 정보를 제공해 준다면 만사가 오케이다.
“제노는 어떤 학생이에요?”
“잘생기고, 인기 많고,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어요.”
“그런 거 말고요.”
“잘 모르겠어요. 사실 같은 반 아니거든요.”
“알겠습니다. 참, 제노한테는 나 만난 거 비밀로 해 줘요.”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의뢰인께 죄송하지만 1억은 도로 돌려주고 뽀뽀인지, 뽀삐인지 찾는 건 없던 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미처 지우지 않은 알림 속 여덟 개의 공과 눈이 마주쳤다.
일단 조금 더 노력해봐야겠다.
토요일 아침, 나는 제노가 나올 때까지 무작정 집 앞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고 벌써 한 시가 다 돼가는데 굳게 닫힌 대문은 좀처럼 열릴 생각이 없다. 일단 배고파 죽겠으니까 근처 편의점에 가서 삼각 김밥이라도 사 먹어야겠다. 문을 짚고 일어나는데, 문이 열려버렸다.
“괜찮으세요?”
반쯤 기울어진 나를 제노가 바로 세워주며 물었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아침부터 계속 우리 집 앞에 앉아 계시던데. 뭐야. 내가 있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럼 진작 나와 볼 것이지. 괜히 기다렸네.
“저기, 이제노 학생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왜 저를 찾아다녀요?”
“내가요? 언제요?”
“친구한테 떡볶이 사 주면서 내 뒷조사했다는 거 다 들었어요.”
떡볶이, 순대, 튀김, 어묵, 음료수까지 사 먹이면서 입단속을 시켰는데, 네가 감히 내 뒤통수를 까?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면 남학생부터 찾아가 족쳐야겠다. 아무튼, 이제노가 먼저 내 정체를 알게 된 이상 작전을 바꾸기로 한다.
“그럼 우리 소고기 먹을래요?”
이제노는 뭔 개소리야... 같은 표정을 짓는다. 소고기 좀 먹자는 말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소리로 들렸나. 갑자기 웬 의뢰인이 찾아와서 ‘뽀삐는 사실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내 표정이 이랬을까?
* * * * *
한창 배고플 나이라 그런지 잘 먹어도 너무 잘 먹는다. 나는 본전도 못 찾고, 그저 이제노가 먹을 고기만 열심히 구워댔다. 하긴, 뽀삐가 언제 이런 걸 먹어보겠나. 사람이 됐을 때 실컷 먹어둬야지.
“제노 학생? 원하면 더 시켜 줄테니까 우리 대화 좀 해요.”
“콜라 시켜도 돼요?”
“시켜요.”
“물냉면은요?”
“시키세요.”
“된장찌개 하나만 더 먹어도 돼요?”
“야.”
이제노가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안 뺏어 먹을 테니까, 대화 좀 하자고요.
“저는 VIP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 이여주입니다.”
내가 명함을 내밀자 이제노는 소고기를 우물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들고 네이버를 킨다. ‘VIP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라는데요?
“네이버가 점검 중인가 보네. 아무튼 제노 학생, 혹시 강아지 좋아해요?”
“강아지요?”
“네. 하얗고 몽실몽실한 개. 사모예드요. 이렇게 생긴 건데 엄청 귀엽죠? 제노 학생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저는 개 알레르기 있어서 싫어해요. 그럼, 잘 먹었습니다.”
아직 불판에 올리지 못한 소고기가 반이나 남았는데 이제노는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요? 더 먹고 가요. 이제노의 손목에서 동글동글한 구슬 같은 팔찌가 만져진다.
“뽀삐야.”
“왜 사람한테 개 이름을 불러요?”
“개 이름이라고 한 적 없는데요?”
뽀삐도 잡고, 10억 플러스알파도 받게 생겼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단축 번호 1번을 꾹 누르자 의뢰인의 이름이 떴다. 성공률 100%의 VIP 흥신소는 오늘도 쾌거를 이뤘다. 생각한 그 순간, 제노가 나의 손을 콱 깨물고는 개 털 날리게 도망쳤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저 멀리 문 밖으로 도망치는 이제노의 이름을 부르는데 갑자기 목이 찢어질듯 아파왔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이며 다 나를 쳐본다. 아, 쪽팔려.
“죄송합니냥.”
“아줌마! 가게에 고양이 들어왔어요.”
“냥? 냥냥. 냐옹.”
X 됐다. 아니, 고양이 됐다.